[취재후] 잇따르는 먼바다 조업 어선사고 왜?…대책은 없나

입력 2019.11.26 (18:46) 수정 2019.11.2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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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상에서 어선 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제주시 차귀도 해상에서 통영선적 29톤급 근해연승어선 대성호에 불이 났고, 지난 25일에는 서귀포시 마라도 해상에서 통영선적 24톤급 근해연승어선 창진호가 전복됐습니다.

두 어선은 장어잡이 근해연승어선이라는 점에선 같았지만, 인명피해 양상은 달랐습니다. 대성호는 선원 12명 가운데 1명만 숨진 채 발견됐고, 다른 선원들은 모두 실종 상태입니다. 반면 창진호는 선원 14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지만 10명은 구조됐습니다.

인명피해 규모를 가른 건 불행한 사고에 어떻게 대피를 준비할 수 있었느냐의 차이로 추정됩니다.

창진호 선원들은 어떻게 구조됐나?


창진호의 생존 선원은 사고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더니 파도가 높게 치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이 배로 들어왔는데, 밖으로 나가봤더니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겁니다.

선원들은 바로 구명조끼를 입었고, 선장은 계속해서 구조요청을 보냈습니다. 또 구명벌이 바로 터지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작동하면서 선원 4명이 비상시 작은 구명보트도 되면서 부표 역할까지 하는 '구명벌'에 탄 채로 구조됐습니다. 구명벌에 미처 탑승하지 못한 선원들도 동그란 부표인 구명환을 붙잡아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창진호 선원들은 대피를 준비할 수 있었고 인명피해도 다소나마 줄일 수 있었습니다.

대성호의 선원들은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반면 불이 난 대성호 선원들은 미처 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경 발표대로라면. 대성호의 자동선박 식별장치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건 지난 19일 새벽 4시 15분쯤. 해경은 이때부터 오전 7시 사이에 대성호에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은 통상적으로 연승어선들이 바다에 낚싯줄을 던져놓고 잠시 눈을 붙이는 때입니다. 따라서 대성호는 구조요청을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불이 퍼지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유일하게 발견된 사망자가 간편한 운동복 차림이었고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던 점, 또 익사가 사망 원인으로 보인다는 부검 결과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합니다.

순식간에 번지는 어선화재, 원인은 FRP 재질?


이번에 불이 난 대성호는 FRP 재질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말로 섬유 강화 플라스틱입니다. 이 소재는 비교적 저렴하고 가벼운 데다 부식에도 강합니다. 하지만 외부 충격과 화재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 한계입니다.

FRP 소재는 2017년 기준, 동력어선 6만 5천여 척 가운데 96%에 사용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보급됐습니다. 그만큼 어선들은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국회 정인화 의원이 해경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화재 피해선박 가운데 62%가 FRP 선박일 정도입니다.

이렇다 보니 해양수산부는 2014년부터 선체에 화재 예방용 페인트 사용을 의무화했지만, 이번 대성호 사례처럼 이전에 만들어진 배는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사고는 적지만 대형 사고가 잦은 겨울


이번 두 사고는 모두 초겨울에 일어났습니다. 겨울철은 대륙고기압 등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고 강풍이 부는 날씨가 잦아 대형 사고의 위험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평균 풍랑특보 일수가 다른 계절보다 월등히 높고, 배 안에서 난방기 등 화기 사용이 늘면서 화재에도 취약한 계절입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분석한 해양사고 통계를 보면, 겨울철에는 월평균 131건의 해양사고가 일어나, 연간 월평균 157건과 비교하면 발생 건수 자체는 적었습니다. 하지만 화재나 폭발, 침몰 등 대형 사고에서 겨울철이 차지하는 비율은 최고 28%대에 달합니다.

겨울철은 수온이 낮아서 해양사고 건수와 비교하면 사망이나 실종사고 발생 비율이 다른 계절보다 높은 것도 문제입니다. 전체 사고 가운데 사망이나 실종자가 발생한 사고 비율은 겨울철이 11%로 가장 높았고, 여름철 3.6%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은?

같은 통계에서 사고 원인은 '경계 소홀'이 48.8%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항법 위반'이나 '안전수칙 미준수'가 12%를 차지하는 등 인적 과실이 사고 원인의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결국, 사고 예방을 위해선 사전 점검을 철저히 하고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겁니다.

또 화기를 사용하는 선원들은 안전수칙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화재 예방에 나서고, 유사시에는 신속한 초기 대응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덧붙여 겨울철에는 바다 날씨가 수시로 급변하기 때문에 기상 정보를 항상 확인해야 하고, 되도록 선단을 꾸려 홀로 조업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적지 않은 선원들을 구한 창진호처럼 구명 장비를 제대로 챙기는 것도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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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6 18:46:46
    • 수정2019-11-26 18:47:05
    취재후·사건후
제주 해상에서 어선 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제주시 차귀도 해상에서 통영선적 29톤급 근해연승어선 대성호에 불이 났고, 지난 25일에는 서귀포시 마라도 해상에서 통영선적 24톤급 근해연승어선 창진호가 전복됐습니다.

두 어선은 장어잡이 근해연승어선이라는 점에선 같았지만, 인명피해 양상은 달랐습니다. 대성호는 선원 12명 가운데 1명만 숨진 채 발견됐고, 다른 선원들은 모두 실종 상태입니다. 반면 창진호는 선원 14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지만 10명은 구조됐습니다.

인명피해 규모를 가른 건 불행한 사고에 어떻게 대피를 준비할 수 있었느냐의 차이로 추정됩니다.

창진호 선원들은 어떻게 구조됐나?


창진호의 생존 선원은 사고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더니 파도가 높게 치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이 배로 들어왔는데, 밖으로 나가봤더니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겁니다.

선원들은 바로 구명조끼를 입었고, 선장은 계속해서 구조요청을 보냈습니다. 또 구명벌이 바로 터지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작동하면서 선원 4명이 비상시 작은 구명보트도 되면서 부표 역할까지 하는 '구명벌'에 탄 채로 구조됐습니다. 구명벌에 미처 탑승하지 못한 선원들도 동그란 부표인 구명환을 붙잡아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창진호 선원들은 대피를 준비할 수 있었고 인명피해도 다소나마 줄일 수 있었습니다.

대성호의 선원들은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반면 불이 난 대성호 선원들은 미처 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경 발표대로라면. 대성호의 자동선박 식별장치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건 지난 19일 새벽 4시 15분쯤. 해경은 이때부터 오전 7시 사이에 대성호에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은 통상적으로 연승어선들이 바다에 낚싯줄을 던져놓고 잠시 눈을 붙이는 때입니다. 따라서 대성호는 구조요청을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불이 퍼지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유일하게 발견된 사망자가 간편한 운동복 차림이었고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던 점, 또 익사가 사망 원인으로 보인다는 부검 결과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합니다.

순식간에 번지는 어선화재, 원인은 FRP 재질?


이번에 불이 난 대성호는 FRP 재질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말로 섬유 강화 플라스틱입니다. 이 소재는 비교적 저렴하고 가벼운 데다 부식에도 강합니다. 하지만 외부 충격과 화재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 한계입니다.

FRP 소재는 2017년 기준, 동력어선 6만 5천여 척 가운데 96%에 사용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보급됐습니다. 그만큼 어선들은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국회 정인화 의원이 해경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화재 피해선박 가운데 62%가 FRP 선박일 정도입니다.

이렇다 보니 해양수산부는 2014년부터 선체에 화재 예방용 페인트 사용을 의무화했지만, 이번 대성호 사례처럼 이전에 만들어진 배는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사고는 적지만 대형 사고가 잦은 겨울


이번 두 사고는 모두 초겨울에 일어났습니다. 겨울철은 대륙고기압 등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고 강풍이 부는 날씨가 잦아 대형 사고의 위험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평균 풍랑특보 일수가 다른 계절보다 월등히 높고, 배 안에서 난방기 등 화기 사용이 늘면서 화재에도 취약한 계절입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분석한 해양사고 통계를 보면, 겨울철에는 월평균 131건의 해양사고가 일어나, 연간 월평균 157건과 비교하면 발생 건수 자체는 적었습니다. 하지만 화재나 폭발, 침몰 등 대형 사고에서 겨울철이 차지하는 비율은 최고 28%대에 달합니다.

겨울철은 수온이 낮아서 해양사고 건수와 비교하면 사망이나 실종사고 발생 비율이 다른 계절보다 높은 것도 문제입니다. 전체 사고 가운데 사망이나 실종자가 발생한 사고 비율은 겨울철이 11%로 가장 높았고, 여름철 3.6%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은?

같은 통계에서 사고 원인은 '경계 소홀'이 48.8%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항법 위반'이나 '안전수칙 미준수'가 12%를 차지하는 등 인적 과실이 사고 원인의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결국, 사고 예방을 위해선 사전 점검을 철저히 하고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겁니다.

또 화기를 사용하는 선원들은 안전수칙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화재 예방에 나서고, 유사시에는 신속한 초기 대응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덧붙여 겨울철에는 바다 날씨가 수시로 급변하기 때문에 기상 정보를 항상 확인해야 하고, 되도록 선단을 꾸려 홀로 조업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적지 않은 선원들을 구한 창진호처럼 구명 장비를 제대로 챙기는 것도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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