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률 0.1%, 바이오에 묻지마 투자하시겠습니까

입력 2019.11.27 (07:00) 수정 2019.11.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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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메지온을 아십니까? 저는 한 메지온 투자자를 압니다

올해 6월 그 친구는 지옥행 특급열차 탑승객 표정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3상 결과 발표 연기 소식에 메지온 주가가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신라젠의 3상 실패 소식이 전해지던 때였죠. 15만 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6만 3천 원(6월 28일)으로 곤두박질칩니다. 그는 물타기에 물타기를 거듭했습니다.

다행히 '메지온'호의 목적지는 끝없는 추락이 아니었습니다. 신라젠이 하한가에 하한가를 거듭하며 최고가 대비 20분의 1 토막이 나던 7월, 메지온 주가는 신라젠과의 디커플링을 선언하며 서서히 고개를 쳐들기 시작합니다. 미국 3상 발표를 앞두고는 무섭게 올랐습니다. 약 보름 전(11월 12일), 메지온은 25만 원 선을 돌파합니다.


"30만 원"

주가가 회복되던 어느날, 동료는 30만 원이 되기 전엔 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더 낙관적인 전망이 많으니 그 정도면 합리적인 목표란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하지만 정상을 찍은 메지온은 이후 9일 만에 40% 넘게 폭락했습니다. 3상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발표가 났기 때문입니다.

HLB는 아십니까? 저는 한 HLB 투자자도 압니다

이름도 생소한 이 회사 때문에 그는 초조해 했습니다. 주가가 반 토막이 나서 물을 타고 또 타고 있는데, 그래도 내리고 또 내린다는 거였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돈을 투자했단 사실에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에이치엘비'로 검색해야 나오는 그 생소한 회사의 주가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이오 업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될 무렵, 주가는 급격히 상승반전했습니다. 저명한 유럽 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됐단 소식에 2만 원까지 폭락했던 주가가 석 달 만에 열 배나 오른 겁니다. 20만 원을 넘겼습니다. 한 때 코스닥 시총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3상 발표 전후, 주가가 심하게 요동칠 때 그는 주식 전량을 처분했습니다. 제 말보다 조금 늦게,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은 때였습니다. 두 배 이상의 시세 차익을 얻은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억대 투자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메지온과 에이치엘비, 두 회사 모두 FDA 승인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나마 거론할 수 있는 '성공한 그룹'에 속한 회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한 변동성을 겪고 있습니다. 누군가 투자에 성공하고 실패한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바이오 산업의 리스크는 이렇게 큽니다.

'바이오'라는 롤러코스터, 너도나도 묻지 마 탑승

올해 화제의 업종은 단연 바이오입니다. 저는 제 동료들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관심있게 지켜보다가 알게 된 사실은, 이 업종의 놀랄만큼 큰 변동성이었습니다.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에 쉽게 휩쓸렸고, 하루에 두자릿수 진폭으로 오르내렸습니다. 다른 종목의 주가에 영향받아 함께 움직이는 경향도 뚜렷했습니다. 이 큰 변동성의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하던 시점에 흡인력 있는 한 책을 읽게 됐습니다.

신약 개발은 원래 롤러코스터, "성공률 0.1%을 향한 여정"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이라는 신간 도서가 있습니다. (근래에 보지 못한 흡인력을 가진, 흥미진진한 논픽션입니다) 저자는 35년 이상 경력의 1급 제약업계 종사자입니다.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인 그는 스스로를 '신약 사냥꾼(Drug Hunter)'이라고 부릅니다.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 여러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약은 과학적으로 발명한다기보다는, 사냥터에서 우연에 기대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학만큼이나 '행운'이 필요하단 겁니다. 그에 따르면 약초를 절구통에 찧어 바르던 수천 년 전 석기시대부터, 화학적 변이를 통해 신약을 개발하고, 최첨단 유전자 기술이 접목되는 바로 이 순간까지 이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과학자라기 보다 사냥꾼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요컨대, 신약개발은 물론 성공하면 천문학적 이익을 보장받지만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신약 성분을 찾을 확률도 낮고, 찾아도 임상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임상에 성공해도 돈을 버는 약으로 흥행에 성공할 확률도 낮습니다. 흥행에 성공해 큰돈을 번 회사라 해도 금방 망하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됩니다. 그는 신약개발이 큰 돈을 버는 약으로 이어질 확률은 0.1%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위험합니다. 그게 신약 산업의 본질적 특징입니다.

"신약개발은 실패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한국 바이오도 다르지 않습니다

존 리 메리츠 자산운용 대표는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산업은 "실패가 더 자연스럽다"고 말합니다. "바이오는 원래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시간의 제약도 있는 데다가 경쟁자도 많습니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고, 실패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10개 신약을 임상에 들어가면 1개가 성공합니다. 성공한 하나만 큰돈을 벌지요. 연구하지 않는 투자는 매우 위험합니다."

존 리 대표는 그러면서 한국의 신약들은 미국 대형제약사들처럼 약효가 탁월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블록버스터'급 약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극히 작은 부분에 통용될 수 있는 작은 약들을 많이 개발한다는 거죠. 이를 본 대형 제약사가 라이센스를 사가거나 회사를 통째로 사가면 큰돈을 벌 겁니다. 메디톡스가 외국 대형 제약사에 신경독소 후보 물질 기술을 수출했던 것처럼 관련 소식은 종종 뉴스가 되곤 합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신약 회사 투자에 나서는 것, 제약 산업만큼이나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존 리 대표의 조언을 좀 더 들어보면요, 과장된 정보에 속지 않아야 하고, 전문가가 아니면 직접 투자는 삼가는 게 좋습니다. 회사가 개발하는 신약이 몇 개인지, 파이프라인을 보고 회사의 능력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이오의 경우 투자법이라는 말을 하는 자체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약 한두 개에 일희일비하는 투자는 위험합니다. 바이오 주식 시황 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표 주라고 하는 회사들 대부분이 심하게 등락합니다. 신약 산업의 불확실한 본질적 특성을 주가가 반영하는 것이지요. 위 책에서 보듯 1등 회사 '화이자'도 '좌불안석'인 산업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약 하나 보고 투자하시면 안 됩니다. 업계와 투자전문가들이 실패가 더 자연스럽다는 산업에 투자하실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파이프라인 : 파이프라인은 원래 석유나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수송관을 의미합니다. 신약개발에서 파이프라인은 새롭게 개발하는 신약의 종류, 최종 완성 대비 현 개발 단계 등을 의미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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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률 0.1%, 바이오에 묻지마 투자하시겠습니까
    • 입력 2019-11-27 07:00:04
    • 수정2019-11-27 14:42:19
    취재K
회사 메지온을 아십니까? 저는 한 메지온 투자자를 압니다

올해 6월 그 친구는 지옥행 특급열차 탑승객 표정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3상 결과 발표 연기 소식에 메지온 주가가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신라젠의 3상 실패 소식이 전해지던 때였죠. 15만 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6만 3천 원(6월 28일)으로 곤두박질칩니다. 그는 물타기에 물타기를 거듭했습니다.

다행히 '메지온'호의 목적지는 끝없는 추락이 아니었습니다. 신라젠이 하한가에 하한가를 거듭하며 최고가 대비 20분의 1 토막이 나던 7월, 메지온 주가는 신라젠과의 디커플링을 선언하며 서서히 고개를 쳐들기 시작합니다. 미국 3상 발표를 앞두고는 무섭게 올랐습니다. 약 보름 전(11월 12일), 메지온은 25만 원 선을 돌파합니다.


"30만 원"

주가가 회복되던 어느날, 동료는 30만 원이 되기 전엔 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더 낙관적인 전망이 많으니 그 정도면 합리적인 목표란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하지만 정상을 찍은 메지온은 이후 9일 만에 40% 넘게 폭락했습니다. 3상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발표가 났기 때문입니다.

HLB는 아십니까? 저는 한 HLB 투자자도 압니다

이름도 생소한 이 회사 때문에 그는 초조해 했습니다. 주가가 반 토막이 나서 물을 타고 또 타고 있는데, 그래도 내리고 또 내린다는 거였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돈을 투자했단 사실에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에이치엘비'로 검색해야 나오는 그 생소한 회사의 주가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이오 업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될 무렵, 주가는 급격히 상승반전했습니다. 저명한 유럽 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됐단 소식에 2만 원까지 폭락했던 주가가 석 달 만에 열 배나 오른 겁니다. 20만 원을 넘겼습니다. 한 때 코스닥 시총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3상 발표 전후, 주가가 심하게 요동칠 때 그는 주식 전량을 처분했습니다. 제 말보다 조금 늦게,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은 때였습니다. 두 배 이상의 시세 차익을 얻은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억대 투자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메지온과 에이치엘비, 두 회사 모두 FDA 승인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나마 거론할 수 있는 '성공한 그룹'에 속한 회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한 변동성을 겪고 있습니다. 누군가 투자에 성공하고 실패한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바이오 산업의 리스크는 이렇게 큽니다.

'바이오'라는 롤러코스터, 너도나도 묻지 마 탑승

올해 화제의 업종은 단연 바이오입니다. 저는 제 동료들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관심있게 지켜보다가 알게 된 사실은, 이 업종의 놀랄만큼 큰 변동성이었습니다.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에 쉽게 휩쓸렸고, 하루에 두자릿수 진폭으로 오르내렸습니다. 다른 종목의 주가에 영향받아 함께 움직이는 경향도 뚜렷했습니다. 이 큰 변동성의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하던 시점에 흡인력 있는 한 책을 읽게 됐습니다.

신약 개발은 원래 롤러코스터, "성공률 0.1%을 향한 여정"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이라는 신간 도서가 있습니다. (근래에 보지 못한 흡인력을 가진, 흥미진진한 논픽션입니다) 저자는 35년 이상 경력의 1급 제약업계 종사자입니다.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인 그는 스스로를 '신약 사냥꾼(Drug Hunter)'이라고 부릅니다.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 여러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약은 과학적으로 발명한다기보다는, 사냥터에서 우연에 기대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학만큼이나 '행운'이 필요하단 겁니다. 그에 따르면 약초를 절구통에 찧어 바르던 수천 년 전 석기시대부터, 화학적 변이를 통해 신약을 개발하고, 최첨단 유전자 기술이 접목되는 바로 이 순간까지 이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과학자라기 보다 사냥꾼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요컨대, 신약개발은 물론 성공하면 천문학적 이익을 보장받지만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신약 성분을 찾을 확률도 낮고, 찾아도 임상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임상에 성공해도 돈을 버는 약으로 흥행에 성공할 확률도 낮습니다. 흥행에 성공해 큰돈을 번 회사라 해도 금방 망하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됩니다. 그는 신약개발이 큰 돈을 버는 약으로 이어질 확률은 0.1%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위험합니다. 그게 신약 산업의 본질적 특징입니다.

"신약개발은 실패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한국 바이오도 다르지 않습니다

존 리 메리츠 자산운용 대표는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산업은 "실패가 더 자연스럽다"고 말합니다. "바이오는 원래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시간의 제약도 있는 데다가 경쟁자도 많습니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고, 실패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10개 신약을 임상에 들어가면 1개가 성공합니다. 성공한 하나만 큰돈을 벌지요. 연구하지 않는 투자는 매우 위험합니다."

존 리 대표는 그러면서 한국의 신약들은 미국 대형제약사들처럼 약효가 탁월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블록버스터'급 약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극히 작은 부분에 통용될 수 있는 작은 약들을 많이 개발한다는 거죠. 이를 본 대형 제약사가 라이센스를 사가거나 회사를 통째로 사가면 큰돈을 벌 겁니다. 메디톡스가 외국 대형 제약사에 신경독소 후보 물질 기술을 수출했던 것처럼 관련 소식은 종종 뉴스가 되곤 합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신약 회사 투자에 나서는 것, 제약 산업만큼이나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존 리 대표의 조언을 좀 더 들어보면요, 과장된 정보에 속지 않아야 하고, 전문가가 아니면 직접 투자는 삼가는 게 좋습니다. 회사가 개발하는 신약이 몇 개인지, 파이프라인을 보고 회사의 능력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이오의 경우 투자법이라는 말을 하는 자체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약 한두 개에 일희일비하는 투자는 위험합니다. 바이오 주식 시황 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표 주라고 하는 회사들 대부분이 심하게 등락합니다. 신약 산업의 불확실한 본질적 특성을 주가가 반영하는 것이지요. 위 책에서 보듯 1등 회사 '화이자'도 '좌불안석'인 산업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약 하나 보고 투자하시면 안 됩니다. 업계와 투자전문가들이 실패가 더 자연스럽다는 산업에 투자하실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파이프라인 : 파이프라인은 원래 석유나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수송관을 의미합니다. 신약개발에서 파이프라인은 새롭게 개발하는 신약의 종류, 최종 완성 대비 현 개발 단계 등을 의미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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