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30만 구독자 ‘덕자’가 유튜브를 떠난 까닭은?

입력 2019.11.27 (17:00) 수정 2019.11.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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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덕자 사건’이 뒤에는 유사 연예기획사의 불공정계약
연습생 ‘노예계약’ 논란 이후 2009년 연예인 표준계약서 만들어져…“뜨는 직업인 유튜버에 맞는 표준계약서가 없다”

덕자 박 모 씨가 유튜브 ‘덕자전성시대’의 마지막 영상에서 시청자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당분간 제가 영상을 유튜브에 올릴 수 없게 돼서…제 영상 기다리는데 안 나와서 서운했던 분들 너무 죄송합니다."
(10월 18일 유튜브 '덕자전성시대'채널 '마지막 영상' 중에서)

지난달 18일 귀농 유튜버 덕자가 돌연 유튜브 방송을 중단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선생님(덕자가 시청자를 지칭하는 말) 죄송해요"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덕자의 구독자는 30만 명. 유튜브 광고수익을 '인증'한 다른 유튜버의 사례를 보면 한 달에 수천만 원까지 벌 수 있는데 하루아침에 유튜브를 접겠다고 한 겁니다.

덕자가 방송을 포기한 건 '덕자전성시대' 채널을 소속사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유튜버에게 채널은 방송을 하는 공간인 동시에 저작물을 보관하고, 수익을 내는 공장이자 창고입니다.

덕자의 소속사인 A기획사는 전속계약서를 토대로 계약을 중도 해지한 덕자가 채널에서 활동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덕자는 해약 후 1년간 '덕자'라는 별칭조차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계약 해지 조항만 봐도 부당한데, 알고보니 이건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덕자는 사실상 '노예계약'을 맺은 것과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영상편집·소품비용 모두 유튜버가 부담했는데 수익은 5:5 배분?

올해 5월 덕자는 A사와 '매니지먼트 전속계약'을 맺습니다. 기획사 측에서 자신들을 유명한 유튜버들이 소속된 기획사라며 먼저 접근했고 첫 만남에서 회사와 덕자는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덕자의 주장으로는 기획사 담당자는 계약서를 내밀고 "내용이 좀 어렵지 않느냐"면서 '종이쪼가리'에 불과하고 다른 유튜버와 같은 내용이니 서명하자고 재촉했다고 합니다.

덕자는 내용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계약서에 서명했고, 3년짜리 전속계약을 맺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종이쪼가리'의 핵심은 덕자와 소속사가 수익을 5:5로 배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수익 배분 비율은 덕자에 대한 초기 투자와 활동 지원비를 고려해 정한 것이고, 회사와 덕자 모두 공정한 것임을 인정한다고도 돼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투자도 활동비도 없었습니다. 초기 투자란 예컨대 가수 지망생이 데뷔하기까지 음악과 춤을 배우고, 음반을 제작하는 등의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입니다. 하지만 덕자는 이미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을 하고 있었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장소도 이전과 같은 시골집이었습니다. 방송을 위한 방을 새로 꾸며준 것도 아니고, 장비를 바꿔준 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계약에서는 지원하기로 한 영상제작과 편집, 매니저와 PD 등 전담 인력 지원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덕자는 "계약 초기에 편집자를 바꿀 생각이 있느냐고 해서 예전부터 해오던 편집자와 하고 싶다고 했더니 별다른 말이 없었다"며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지고 편집자 급여 문제를 물었더니 그제야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게 맞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가 지원을 미룬 사이 매달 영상편집자 3명의 급여 550만 원은 덕자의 몫이었습니다. 덕자가 계약을 해지하기 전까지 약 5개월간 소속사에서 수익으로 배분받은 금액은 약 2천200만 원. 월평균 440만 원, 편집자 급여를 주기에도 부족했습니다.

덕자의 방송은 주로 장을 봐와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먹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비나 그 밖의 소품비용도 덕자가 부담했습니다. 덕자는 "계약기간 동안 소품이라고는 성냥 한 상자, 1m짜리 대나무 막대 4개를 준 게 전부다"라고 했습니다.

불공정한 건 수익 배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속사는 계약 이후 덕자의 모든 저작물을 회사가 넘겨받는다고 했습니다. 덕자의 계약서는 상당부분 연예인 표준계약서를 가져온 것이었는데, 이 조항은 연예인 표준계약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연예인 표준계약서는 연예인의 저작권을 인정하되, 소속사가 개발·제작한 저작물은 소속사에 귀속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계약종료 후 1년간은 기존에 개발·제작한 콘텐츠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하거나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작물과 채널을 모두 가져가고, 계약 이전에도 있던 '덕자'라는 닉네임, 캐릭터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소속사가 표준계약서를 편의대로 바꾼 결과입니다.

결과적으로 덕자의 계약 사항을 살펴보면 기획사가 해 주는 건 거의 없는데 수익은 절반 가져가고 그동안 쌓아놓은 콘텐츠와 계약기간 동안 만들 콘텐츠 저작권까지 모두 갖겠다는 거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적셔’라는 말을 유행시킨 웹툰 작가 서영관 씨인터넷에서 ‘적셔’라는 말을 유행시킨 웹툰 작가 서영관 씨

연예기획사 자격 갖춰야 등록하는데…유튜버 기획사는 '규제 사각'

A사의 대표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박 모 씨입니다. 이 회사로부터 불공정한 계약으로 피해를 당한 것은 덕자가 처음이 아닙니다.

웹툰 작가 서영관 씨도 2017년 A사의 전신인 B사와 계약을 맺었다가 불공정한 수익 배분 문제로 사실상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서 씨가 겪은 일을 이렇습니다.

서 씨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일주일에 웹툰 2~3편을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획사에서 접근했고, 서 씨도 덕자와 마찬가지로 회사와 5대 5로 수익을 나눠 갖는 계약을 맺게 됩니다.

팔로워가 10만 명이나 됐던 서 씨, 그런데 계약을 맺은 다음 수개월이 지나도록 돈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서 씨는 "기획사를 나가겠다고 하자 팔로워 10만 명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빼앗고, 오히려 위약금 1억 원과 회사 직원들 인력비(인건비) 1천300만 원을 청구했다"며 "집에서 기획과 제작을 모두 맡아 회사에서 지원받은 것이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 씨는 계약서에 따라 자신의 저작물을 모두 회사에 양도할 수밖에 없었고, 수익의 기반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같은 유튜버가 대표로 있는 A사는 어떤 곳일까요?

A사는 연예기획사가 아닌 '다중채널네트워크(MCN, Multi Channel Network)'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MCN을 여러 개 채널과 제휴한 조직으로 제품·프로그래밍·자금지원과 저작권 관리, 수익창출 등에서 도움을 주는 집단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유튜버가 급격히 늘고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면서 여러 곳에서 MCN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연예기획사와 달리 MCN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현행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연예기획사 등록제를 도입해 일정 요건을 갖춘 기획사만 사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작물 관리와 수익 배분에 대해서도 표준전속계약서가 마련돼 있어 조항을 불공정하게 바꿀 경우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MCN의 경우 이런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그래서 A사와 같이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도 규제할 길이 없습니다.

강진석 법무법인 율원 변호사는 "MCN이 많이 생기고 형태도 다양해 자기들이 임의로 만들어서 쓰는 계약서도 있고, 연예인 표준계약서를 유리하게 수정해 만드는 계약서도 있고, 통일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계약기간 등이 불리하게 짜인 경우가 많고, 위약금을 상당히 과도하게 해놓은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정위는 가수와 연기자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지난 2009년 마련했다.공정위는 가수와 연기자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지난 2009년 마련했다.

유튜버 컨텐츠 직접 기획·제작해 연예기획사보다 역할 적어

MCN과 연예기획사는 콘텐츠 제작의 주도권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어 연예기획사 기준을 가져다 쓰면 유튜버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덕자도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직접 고용한 편집자를 통해 영상편집을 하는 식인데 사실 전부터 이미 해오고 있는 일이라 기획사가 지원해줄 영역이 크지 않고, 수익 배분 비율도 연예인과는 달라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덕자나 서영관 씨 모두 성인인 계약당사자로 계약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책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틀이 없는 상황에서 계약 내용이 자신에게 얼마나 불리한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기획사와 계약을 맺으려 하는 유튜버들이 계약 내용을 따지기보단 회사의 규모나 소속 유튜버 등을 보고 쉽게 계약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과거 연예인들도 표준계약서가 없을 땐 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09년 故 장자연 씨 사건과 아이돌 '노예 계약' 논란을 겪은 다음 공정위는 연예인 전속계약의 실태를 조사해 공정한 계약을 위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했고, 이후 노예계약 논란은 차츰 줄어갔습니다.

유튜버는 이른바 '뜨는' 직업입니다. 지난해 교육부 조사에서 초등학생의 희망직업 5위가 바로 유튜버였습니다. 올해 한 교육 관련 업체 조사에서는 유튜버가 희망직업 1위로 나타났습니다. 생업을 관두고 전업 유튜버로 뛰어드는 경우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망의 직업이 된 셈이죠. 하지만 그 직업을 '갑질'에서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그 '구멍'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먹잇감으로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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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30만 구독자 ‘덕자’가 유튜브를 떠난 까닭은?
    • 입력 2019-11-27 17:00:40
    • 수정2019-11-27 18:09:28
    취재K
‘덕자 사건’이 뒤에는 유사 연예기획사의 불공정계약<br />연습생 ‘노예계약’ 논란 이후 2009년 연예인 표준계약서 만들어져…“뜨는 직업인 유튜버에 맞는 표준계약서가 없다”
덕자 박 모 씨가 유튜브 ‘덕자전성시대’의 마지막 영상에서 시청자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당분간 제가 영상을 유튜브에 올릴 수 없게 돼서…제 영상 기다리는데 안 나와서 서운했던 분들 너무 죄송합니다."
(10월 18일 유튜브 '덕자전성시대'채널 '마지막 영상' 중에서)

지난달 18일 귀농 유튜버 덕자가 돌연 유튜브 방송을 중단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선생님(덕자가 시청자를 지칭하는 말) 죄송해요"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덕자의 구독자는 30만 명. 유튜브 광고수익을 '인증'한 다른 유튜버의 사례를 보면 한 달에 수천만 원까지 벌 수 있는데 하루아침에 유튜브를 접겠다고 한 겁니다.

덕자가 방송을 포기한 건 '덕자전성시대' 채널을 소속사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유튜버에게 채널은 방송을 하는 공간인 동시에 저작물을 보관하고, 수익을 내는 공장이자 창고입니다.

덕자의 소속사인 A기획사는 전속계약서를 토대로 계약을 중도 해지한 덕자가 채널에서 활동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덕자는 해약 후 1년간 '덕자'라는 별칭조차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계약 해지 조항만 봐도 부당한데, 알고보니 이건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덕자는 사실상 '노예계약'을 맺은 것과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영상편집·소품비용 모두 유튜버가 부담했는데 수익은 5:5 배분?

올해 5월 덕자는 A사와 '매니지먼트 전속계약'을 맺습니다. 기획사 측에서 자신들을 유명한 유튜버들이 소속된 기획사라며 먼저 접근했고 첫 만남에서 회사와 덕자는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덕자의 주장으로는 기획사 담당자는 계약서를 내밀고 "내용이 좀 어렵지 않느냐"면서 '종이쪼가리'에 불과하고 다른 유튜버와 같은 내용이니 서명하자고 재촉했다고 합니다.

덕자는 내용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계약서에 서명했고, 3년짜리 전속계약을 맺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종이쪼가리'의 핵심은 덕자와 소속사가 수익을 5:5로 배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수익 배분 비율은 덕자에 대한 초기 투자와 활동 지원비를 고려해 정한 것이고, 회사와 덕자 모두 공정한 것임을 인정한다고도 돼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투자도 활동비도 없었습니다. 초기 투자란 예컨대 가수 지망생이 데뷔하기까지 음악과 춤을 배우고, 음반을 제작하는 등의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입니다. 하지만 덕자는 이미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을 하고 있었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장소도 이전과 같은 시골집이었습니다. 방송을 위한 방을 새로 꾸며준 것도 아니고, 장비를 바꿔준 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계약에서는 지원하기로 한 영상제작과 편집, 매니저와 PD 등 전담 인력 지원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덕자는 "계약 초기에 편집자를 바꿀 생각이 있느냐고 해서 예전부터 해오던 편집자와 하고 싶다고 했더니 별다른 말이 없었다"며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지고 편집자 급여 문제를 물었더니 그제야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게 맞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가 지원을 미룬 사이 매달 영상편집자 3명의 급여 550만 원은 덕자의 몫이었습니다. 덕자가 계약을 해지하기 전까지 약 5개월간 소속사에서 수익으로 배분받은 금액은 약 2천200만 원. 월평균 440만 원, 편집자 급여를 주기에도 부족했습니다.

덕자의 방송은 주로 장을 봐와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먹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비나 그 밖의 소품비용도 덕자가 부담했습니다. 덕자는 "계약기간 동안 소품이라고는 성냥 한 상자, 1m짜리 대나무 막대 4개를 준 게 전부다"라고 했습니다.

불공정한 건 수익 배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속사는 계약 이후 덕자의 모든 저작물을 회사가 넘겨받는다고 했습니다. 덕자의 계약서는 상당부분 연예인 표준계약서를 가져온 것이었는데, 이 조항은 연예인 표준계약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연예인 표준계약서는 연예인의 저작권을 인정하되, 소속사가 개발·제작한 저작물은 소속사에 귀속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계약종료 후 1년간은 기존에 개발·제작한 콘텐츠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하거나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작물과 채널을 모두 가져가고, 계약 이전에도 있던 '덕자'라는 닉네임, 캐릭터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소속사가 표준계약서를 편의대로 바꾼 결과입니다.

결과적으로 덕자의 계약 사항을 살펴보면 기획사가 해 주는 건 거의 없는데 수익은 절반 가져가고 그동안 쌓아놓은 콘텐츠와 계약기간 동안 만들 콘텐츠 저작권까지 모두 갖겠다는 거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적셔’라는 말을 유행시킨 웹툰 작가 서영관 씨
연예기획사 자격 갖춰야 등록하는데…유튜버 기획사는 '규제 사각'

A사의 대표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박 모 씨입니다. 이 회사로부터 불공정한 계약으로 피해를 당한 것은 덕자가 처음이 아닙니다.

웹툰 작가 서영관 씨도 2017년 A사의 전신인 B사와 계약을 맺었다가 불공정한 수익 배분 문제로 사실상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서 씨가 겪은 일을 이렇습니다.

서 씨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일주일에 웹툰 2~3편을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획사에서 접근했고, 서 씨도 덕자와 마찬가지로 회사와 5대 5로 수익을 나눠 갖는 계약을 맺게 됩니다.

팔로워가 10만 명이나 됐던 서 씨, 그런데 계약을 맺은 다음 수개월이 지나도록 돈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서 씨는 "기획사를 나가겠다고 하자 팔로워 10만 명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빼앗고, 오히려 위약금 1억 원과 회사 직원들 인력비(인건비) 1천300만 원을 청구했다"며 "집에서 기획과 제작을 모두 맡아 회사에서 지원받은 것이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 씨는 계약서에 따라 자신의 저작물을 모두 회사에 양도할 수밖에 없었고, 수익의 기반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같은 유튜버가 대표로 있는 A사는 어떤 곳일까요?

A사는 연예기획사가 아닌 '다중채널네트워크(MCN, Multi Channel Network)'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MCN을 여러 개 채널과 제휴한 조직으로 제품·프로그래밍·자금지원과 저작권 관리, 수익창출 등에서 도움을 주는 집단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유튜버가 급격히 늘고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면서 여러 곳에서 MCN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연예기획사와 달리 MCN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현행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연예기획사 등록제를 도입해 일정 요건을 갖춘 기획사만 사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작물 관리와 수익 배분에 대해서도 표준전속계약서가 마련돼 있어 조항을 불공정하게 바꿀 경우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MCN의 경우 이런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그래서 A사와 같이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도 규제할 길이 없습니다.

강진석 법무법인 율원 변호사는 "MCN이 많이 생기고 형태도 다양해 자기들이 임의로 만들어서 쓰는 계약서도 있고, 연예인 표준계약서를 유리하게 수정해 만드는 계약서도 있고, 통일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계약기간 등이 불리하게 짜인 경우가 많고, 위약금을 상당히 과도하게 해놓은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정위는 가수와 연기자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지난 2009년 마련했다.
유튜버 컨텐츠 직접 기획·제작해 연예기획사보다 역할 적어

MCN과 연예기획사는 콘텐츠 제작의 주도권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어 연예기획사 기준을 가져다 쓰면 유튜버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덕자도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직접 고용한 편집자를 통해 영상편집을 하는 식인데 사실 전부터 이미 해오고 있는 일이라 기획사가 지원해줄 영역이 크지 않고, 수익 배분 비율도 연예인과는 달라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덕자나 서영관 씨 모두 성인인 계약당사자로 계약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책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틀이 없는 상황에서 계약 내용이 자신에게 얼마나 불리한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기획사와 계약을 맺으려 하는 유튜버들이 계약 내용을 따지기보단 회사의 규모나 소속 유튜버 등을 보고 쉽게 계약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과거 연예인들도 표준계약서가 없을 땐 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09년 故 장자연 씨 사건과 아이돌 '노예 계약' 논란을 겪은 다음 공정위는 연예인 전속계약의 실태를 조사해 공정한 계약을 위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했고, 이후 노예계약 논란은 차츰 줄어갔습니다.

유튜버는 이른바 '뜨는' 직업입니다. 지난해 교육부 조사에서 초등학생의 희망직업 5위가 바로 유튜버였습니다. 올해 한 교육 관련 업체 조사에서는 유튜버가 희망직업 1위로 나타났습니다. 생업을 관두고 전업 유튜버로 뛰어드는 경우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망의 직업이 된 셈이죠. 하지만 그 직업을 '갑질'에서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그 '구멍'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먹잇감으로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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