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사람만 봐도”…법정에 선 폭행 피해 ‘일본 여성’

입력 2019.11.28 (07:00) 수정 2019.11.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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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에는 재미있게 놀자는 마음으로 왔는데, 이번에는 좀 무서웠어요."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일본인 A 씨. 한국에 온 느낌을 말해달라고 하자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시간 뒤 법정에 설 A 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습니다.

A 씨는 지난 8월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한국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남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붙잡혔고, 폭행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A 씨는 이 남성의 2번째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3달 만에 서울을 찾았습니다.

‘홍대 일본인 여성 폭행’ 사건 피해자 A 씨가 취재진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홍대 일본인 여성 폭행’ 사건 피해자 A 씨가 취재진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닮은 사람만 봐도 그날이 생각나"…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A 씨는 한동안 바깥 출입은 거의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길을 걷다가 가해 남성과 닮은 사람만 마주쳐도 그 날이 생각났다"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같다"고 호소했습니다.

사건이 알려지고 난 뒤, 일본 네티즌들이 'A 씨가 한국에 간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비난해 속이 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A 씨는 당시 상황은 가급적 떠올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한동안 집 안에 머무르던 A 씨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자신의 SNS에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보내준 '힘내라'는 쪽지가 큰 힘이 됐다고 A 씨는 말했습니다. A 씨는 자신의 바람대로 이 사건 때문에 한일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A 씨가 법원으로부터 받은 재판 증인 출석 통지서A 씨가 법원으로부터 받은 재판 증인 출석 통지서

"가해자 대면하는 것 두렵지만…자신의 죄를 인정하길 바라"

재판이 시작되면 A 씨는 가해자를 다시 만나야 합니다. 재판에 들어가면 그 남성을 다시 만나게 될 텐데, 어떻게 용기를 내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A 씨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는 건 여전히 무섭다"면서도 "재판을 통해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검찰 수사 이후 재판에서도 A 씨는 폭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달 30일 열린 첫 공판에서 가해 남성은 "A 씨 얼굴을 고의로 가격한 적이 없고, 넘어뜨려 뇌진탕을 입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A 씨는 용기를 내서 재판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신 가해 남성과 직접 대면하지 않을 수 있게 가림막을 설치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해뒀습니다.

일본인 여성에게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린 남성이 지난 9월 24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후 나서고 있는 모습. 일본인 여성에게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린 남성이 지난 9월 24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후 나서고 있는 모습.

차분히 증언 이어간 A 씨…"왜 촬영했냐" 질문에 눈물도

그리고 몇 시간 뒤 A 씨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곧이어 시작된 재판에서 A 씨는 검사의 질문에 차분하게 그 날의 일을 설명했습니다. 때때로 손동작을 섞어 가면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검사가 어떻게 폭행당했는지를 묻자, A 씨는 직접 누군가를 잡고 흔드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어디를 다쳤냐는 질문에는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짚기도 했습니다.

"피고인(가해남성)이 촬영하지 말라고 수차례 말했는데도, 촬영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증언을 비교적 잘 이어가던 A 씨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뒤 북받친 감정을 겨우 추스른 A 씨는 "일본에 있을 때도 한국인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면서 "당시 (일본)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증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폭행의 고의성을 두고 한 시간 반가량 검사와 변호인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재판 말미,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냐"는 판사의 질문에는 단호한 어투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서울 서부지방법원

"제가 잘 이야기했나요?"…아쉬움 남긴 증인심문

재판을 마치고 나온 A 씨, 취재진에게 "제가 재판에서 잘 말한 건가요?"하고 물었습니다. 차분하게 잘 말씀하신 것 같다고 대답하자, A 씨는 "사건 이후 몇 달이 지나서 사건 당일만큼 기억이 생생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재판이 조금만 빨리 진행됐다면. 더 잘 말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가해 남성의 세 번째 공판은 다음 달 13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이 남성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받기를 원한다는 A 씨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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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8 07:00:06
    • 수정2019-11-28 11:09:55
    취재K
"3개월 전에는 재미있게 놀자는 마음으로 왔는데, 이번에는 좀 무서웠어요."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일본인 A 씨. 한국에 온 느낌을 말해달라고 하자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시간 뒤 법정에 설 A 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습니다.

A 씨는 지난 8월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한국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남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붙잡혔고, 폭행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A 씨는 이 남성의 2번째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3달 만에 서울을 찾았습니다.

‘홍대 일본인 여성 폭행’ 사건 피해자 A 씨가 취재진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닮은 사람만 봐도 그날이 생각나"…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A 씨는 한동안 바깥 출입은 거의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길을 걷다가 가해 남성과 닮은 사람만 마주쳐도 그 날이 생각났다"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같다"고 호소했습니다.

사건이 알려지고 난 뒤, 일본 네티즌들이 'A 씨가 한국에 간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비난해 속이 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A 씨는 당시 상황은 가급적 떠올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한동안 집 안에 머무르던 A 씨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자신의 SNS에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보내준 '힘내라'는 쪽지가 큰 힘이 됐다고 A 씨는 말했습니다. A 씨는 자신의 바람대로 이 사건 때문에 한일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A 씨가 법원으로부터 받은 재판 증인 출석 통지서
"가해자 대면하는 것 두렵지만…자신의 죄를 인정하길 바라"

재판이 시작되면 A 씨는 가해자를 다시 만나야 합니다. 재판에 들어가면 그 남성을 다시 만나게 될 텐데, 어떻게 용기를 내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A 씨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는 건 여전히 무섭다"면서도 "재판을 통해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검찰 수사 이후 재판에서도 A 씨는 폭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달 30일 열린 첫 공판에서 가해 남성은 "A 씨 얼굴을 고의로 가격한 적이 없고, 넘어뜨려 뇌진탕을 입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A 씨는 용기를 내서 재판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신 가해 남성과 직접 대면하지 않을 수 있게 가림막을 설치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해뒀습니다.

일본인 여성에게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린 남성이 지난 9월 24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후 나서고 있는 모습.
차분히 증언 이어간 A 씨…"왜 촬영했냐" 질문에 눈물도

그리고 몇 시간 뒤 A 씨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곧이어 시작된 재판에서 A 씨는 검사의 질문에 차분하게 그 날의 일을 설명했습니다. 때때로 손동작을 섞어 가면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검사가 어떻게 폭행당했는지를 묻자, A 씨는 직접 누군가를 잡고 흔드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어디를 다쳤냐는 질문에는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짚기도 했습니다.

"피고인(가해남성)이 촬영하지 말라고 수차례 말했는데도, 촬영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증언을 비교적 잘 이어가던 A 씨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뒤 북받친 감정을 겨우 추스른 A 씨는 "일본에 있을 때도 한국인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면서 "당시 (일본)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증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폭행의 고의성을 두고 한 시간 반가량 검사와 변호인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재판 말미,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냐"는 판사의 질문에는 단호한 어투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
"제가 잘 이야기했나요?"…아쉬움 남긴 증인심문

재판을 마치고 나온 A 씨, 취재진에게 "제가 재판에서 잘 말한 건가요?"하고 물었습니다. 차분하게 잘 말씀하신 것 같다고 대답하자, A 씨는 "사건 이후 몇 달이 지나서 사건 당일만큼 기억이 생생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재판이 조금만 빨리 진행됐다면. 더 잘 말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가해 남성의 세 번째 공판은 다음 달 13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이 남성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받기를 원한다는 A 씨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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