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추적 따돌리고 사라진 렌터카는 어디로?

입력 2019.11.28 (07:00) 수정 2019.11.2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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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해서 기다렸는데…전화도 안 받아요."

취재진과 만난 부산의 렌터카 업체 관계자는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일주일 뒤 반납하기로 하고 계약금까지 내고 렌터카를 타고 나간 30대 남성이 잠적한 겁니다. 렌터카는 출고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중형 승용차였습니다.

렌터카 위치 파악해 보니 차에서 분리한 추적기만…

렌터카 업체는 도난 방지를 위해 차에 달아놓은 위치 추적기로 차량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찾아간 곳은 업체에서 20㎞ 정도 떨어진 주택가. 하지만 렌터카는 온데간데없고 위치 추적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렌터카에서 분리돼 주택가에서 발견된 위치 추적기렌터카에서 분리돼 주택가에서 발견된 위치 추적기

"위치 추적기는 차량 안쪽에 깊숙한 곳에 있는 거라서 찾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그건 아무나 뗄 수도 없어요. 조금 안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뗄 수 있는 게 아니고 완전 전문가죠."

차량을 잃어버린 렌터카 업체 사장의 말입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부산, 울산, 경남·북 등 확인된 피해 업체만 10여 곳

추가 취재를 해보니 이런 식으로 렌터카를 잃어버린 건 이 업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은 물론 인근 울산과 경남, 경북 등에서 확인된 피해 업체가 10여 곳에 달했습니다.

범행 수법도 비슷했습니다. 나흘에 걸쳐 모두 같은 사람이 여러 업체를 돌며 정상적인 계약으로 렌터카를 빌려 타고 나간 뒤 종적을 감췄습니다.

피해 업체들을 더 당혹하게 한 건 보상 문제였습니다. 렌터카 업체들도 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약관에 따라 차를 도난당했을 때만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정식으로 계약금까지 내고 빌려 간 차를 돌려받지 못할 경우 차량 절도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변호사는 "렌트 계약이 정확하게 맺어지고 며칠간 사용하고 돌려주겠다 해서 정당하게 자동차를 넘겨받은 거면 처음부터 돌려줄 의사가 없이 그런 식으로 받았으면 사기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라진 렌터카를 찾지 못하면 업체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중고차 수출 야적장에서 발견된 '사라진 렌터카'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피해 렌터카 업체들은 수사에 나선 경찰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도로 CCTV 분석으로 렌터카의 이동 동선을 파악한 결과 인천의 한 중고차 수출 야적장에서 차량 위치가 확인됐다는 겁니다.

사라진 렌터카가 발견된 중고차 수출 야적장사라진 렌터카가 발견된 중고차 수출 야적장

잃어버린 차량을 되찾을 수 있다는 소식에 피해 렌터카 업체들은 한달음에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야적장에는 해외로 내다 팔 중고차가 빼곡히 주차돼 있습니다. 어렵게 되찾은 렌터카는 모두 13대. 차량 번호판은 없었고, 앞유리에 이미 팔았다는 뜻의 영문 글씨를 적어놓은 차도 있었습니다. 위치 추적까지 따돌리며 잠적한 뒤 렌터카를 수출 업체로 넘긴 점으로 미뤄 범죄 조직이 개입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분증까지 확인했는데…"이제 뭘 믿고 차를 빌려주나요?"

일부 피해 렌터카 업체의 차량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선적에 앞서 여러 곳에 렌터카를 분산해 보관 중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전화번호까지 받은 뒤 빌려준 차를 잃어버린 렌터카 업체들은 걱정이 큽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손님이 와도 의심부터 하게 돼요. 그렇다고 손님을 골라서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경찰은 차를 빌린 남성 외에 추가로 범행에 가담한 사람이 있을 것으로 보고 중고차 수출 업체 등을 상대로 사라진 렌터카의 유통 경로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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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치 추적 따돌리고 사라진 렌터카는 어디로?
    • 입력 2019-11-28 07:00:07
    • 수정2019-11-28 07:41:54
    취재K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해서 기다렸는데…전화도 안 받아요."

취재진과 만난 부산의 렌터카 업체 관계자는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일주일 뒤 반납하기로 하고 계약금까지 내고 렌터카를 타고 나간 30대 남성이 잠적한 겁니다. 렌터카는 출고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중형 승용차였습니다.

렌터카 위치 파악해 보니 차에서 분리한 추적기만…

렌터카 업체는 도난 방지를 위해 차에 달아놓은 위치 추적기로 차량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찾아간 곳은 업체에서 20㎞ 정도 떨어진 주택가. 하지만 렌터카는 온데간데없고 위치 추적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렌터카에서 분리돼 주택가에서 발견된 위치 추적기
"위치 추적기는 차량 안쪽에 깊숙한 곳에 있는 거라서 찾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그건 아무나 뗄 수도 없어요. 조금 안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뗄 수 있는 게 아니고 완전 전문가죠."

차량을 잃어버린 렌터카 업체 사장의 말입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부산, 울산, 경남·북 등 확인된 피해 업체만 10여 곳

추가 취재를 해보니 이런 식으로 렌터카를 잃어버린 건 이 업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은 물론 인근 울산과 경남, 경북 등에서 확인된 피해 업체가 10여 곳에 달했습니다.

범행 수법도 비슷했습니다. 나흘에 걸쳐 모두 같은 사람이 여러 업체를 돌며 정상적인 계약으로 렌터카를 빌려 타고 나간 뒤 종적을 감췄습니다.

피해 업체들을 더 당혹하게 한 건 보상 문제였습니다. 렌터카 업체들도 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약관에 따라 차를 도난당했을 때만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정식으로 계약금까지 내고 빌려 간 차를 돌려받지 못할 경우 차량 절도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변호사는 "렌트 계약이 정확하게 맺어지고 며칠간 사용하고 돌려주겠다 해서 정당하게 자동차를 넘겨받은 거면 처음부터 돌려줄 의사가 없이 그런 식으로 받았으면 사기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라진 렌터카를 찾지 못하면 업체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중고차 수출 야적장에서 발견된 '사라진 렌터카'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피해 렌터카 업체들은 수사에 나선 경찰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도로 CCTV 분석으로 렌터카의 이동 동선을 파악한 결과 인천의 한 중고차 수출 야적장에서 차량 위치가 확인됐다는 겁니다.

사라진 렌터카가 발견된 중고차 수출 야적장
잃어버린 차량을 되찾을 수 있다는 소식에 피해 렌터카 업체들은 한달음에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야적장에는 해외로 내다 팔 중고차가 빼곡히 주차돼 있습니다. 어렵게 되찾은 렌터카는 모두 13대. 차량 번호판은 없었고, 앞유리에 이미 팔았다는 뜻의 영문 글씨를 적어놓은 차도 있었습니다. 위치 추적까지 따돌리며 잠적한 뒤 렌터카를 수출 업체로 넘긴 점으로 미뤄 범죄 조직이 개입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분증까지 확인했는데…"이제 뭘 믿고 차를 빌려주나요?"

일부 피해 렌터카 업체의 차량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선적에 앞서 여러 곳에 렌터카를 분산해 보관 중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전화번호까지 받은 뒤 빌려준 차를 잃어버린 렌터카 업체들은 걱정이 큽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손님이 와도 의심부터 하게 돼요. 그렇다고 손님을 골라서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경찰은 차를 빌린 남성 외에 추가로 범행에 가담한 사람이 있을 것으로 보고 중고차 수출 업체 등을 상대로 사라진 렌터카의 유통 경로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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