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일제 잔재’ 왜향나무 9그루 뽑아내고 1그루 남긴 사연은?

입력 2019.11.29 (07:00) 수정 2019.11.2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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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버티곤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등굣길 학생들을 맞이하는 이 학교. 바로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홍동초등학교입니다. 학생 수가 150명 남짓한 작은 농촌학교지만 지역 주민들이 서로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1922년에 개교해 1980년대에는 국무총리를 배출한 전통 있는 학교인데요.

이 학교는 올해 화단에 있던 왜향나무 10그루 가운데 1그루를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뽑아 버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대신 무궁화를 심었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문을 연 학교인 만큼 올해 제거한 왜향나무들도 그 무렵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익숙한 그 나무도 알고보면…

이 학교에서 왜향나무를 뽑아 버린 건 단지 일제강점기에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왜향나무는 가이즈카 향나무라고도 불리는데, 일왕을 상징하는 나무인 금송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 때문에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로 꼽히는 나무 수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왜향나무와 금송은 종종 뉴스가 됩니다. 국회와 국립대전현충원에 여전히 왜향나무가 심어져 있다거나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에 있던 금송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다거나 하는 내용으로요.

왜향나무는 1909년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가 처음 조선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식민통치를 홍보하기 위해 당시 국채보상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대구를 찾아 기념식수로 심었는데요. 이후 한반도 전역에 퍼졌고, 아직도 관공서나 유적지, 학교에 남아 있습니다.


충청남도교육청 조사 결과, 충남지역 학교 723곳 가운데 절반인 362곳에 왜향나무 7720그루와 금송 212그루가 있었습니다. 왜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도 52곳이나 됐습니다.


'일본인 교장 사진'에 '생활 규정'까지 남아있어

따져 보면 학교에 스며든 일제 잔재는 나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충남에서 일본인 교장 사진을 계단 벽면이나 복도에 걸어둔 학교는 29곳, 친일인사가 작곡.작사한 교가를 부르는 곳도 31곳이나 됐습니다. 학생들의 생활 규정에도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징계조항이었던 백지동맹이나 동맹휴학 등의 용어를 지금도 쓰는 곳이 80여 곳이었습니다.

다행히 학교 안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조사하고 없애려는 작업이 전국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충남의 한 고등학교의 경우 문제가 된 교가를 바꾸려고 했지만 수십 년간 이어진 전통인데다 가사에는 문제될 내용도 없다는 동문들의 반대에 부딪힌 겁니다.


9그루 베어내고도 1그루만은 남겨

앞서 소개한 홍동초등학교는 왜향나무 9그루를 베어내고 1그루만은 남겨 두기로 했는데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자료로 쓰자는 취지입니다.

이 학교는 왜향나무를 없애면서 학교 뒷동산에 있는 3·1공원과 연결되는 산책로도 조성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와 이어진 길을 따라 10분만 걸으면 100년 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의 현장에 가 볼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인지 3·1공원에서 만난 학생들은 초등학교 2학년인데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똑 부러지게 정답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일본 말 안 쓰고 한글을 쓸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도 했습니다.


쓰러진 '황국신민서사비'의 교훈

대전에 있는 한밭교육박물관에 가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황국신민서사비'를 볼 수 있는데요. 황국신민서사비는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1930년대,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의 문구를 새겨 세운 비석입니다. 한밭교육박물관에 있는 것은 1995년에 대전 산내초등학교 교정에서 발견돼 옮겨온 것인데, 수십 개의 총탄 자국과 함께 글자 위에 시멘트를 발랐던 흔적도 있습니다. 이 흔적을 일제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광복 후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워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완전히 뿌리뽑나,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나

어떤 것을 모두 없애 흔적조차 지워야 할지, 또 어떤 것은 남겨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지.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번 다시 아픈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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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일제 잔재’ 왜향나무 9그루 뽑아내고 1그루 남긴 사연은?
    • 입력 2019-11-29 07:00:13
    • 수정2019-11-29 07:03:58
    취재후·사건후
운동장에 버티곤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등굣길 학생들을 맞이하는 이 학교. 바로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홍동초등학교입니다. 학생 수가 150명 남짓한 작은 농촌학교지만 지역 주민들이 서로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1922년에 개교해 1980년대에는 국무총리를 배출한 전통 있는 학교인데요.

이 학교는 올해 화단에 있던 왜향나무 10그루 가운데 1그루를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뽑아 버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대신 무궁화를 심었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문을 연 학교인 만큼 올해 제거한 왜향나무들도 그 무렵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익숙한 그 나무도 알고보면…

이 학교에서 왜향나무를 뽑아 버린 건 단지 일제강점기에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왜향나무는 가이즈카 향나무라고도 불리는데, 일왕을 상징하는 나무인 금송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 때문에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로 꼽히는 나무 수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왜향나무와 금송은 종종 뉴스가 됩니다. 국회와 국립대전현충원에 여전히 왜향나무가 심어져 있다거나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에 있던 금송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다거나 하는 내용으로요.

왜향나무는 1909년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가 처음 조선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식민통치를 홍보하기 위해 당시 국채보상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대구를 찾아 기념식수로 심었는데요. 이후 한반도 전역에 퍼졌고, 아직도 관공서나 유적지, 학교에 남아 있습니다.


충청남도교육청 조사 결과, 충남지역 학교 723곳 가운데 절반인 362곳에 왜향나무 7720그루와 금송 212그루가 있었습니다. 왜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도 52곳이나 됐습니다.


'일본인 교장 사진'에 '생활 규정'까지 남아있어

따져 보면 학교에 스며든 일제 잔재는 나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충남에서 일본인 교장 사진을 계단 벽면이나 복도에 걸어둔 학교는 29곳, 친일인사가 작곡.작사한 교가를 부르는 곳도 31곳이나 됐습니다. 학생들의 생활 규정에도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징계조항이었던 백지동맹이나 동맹휴학 등의 용어를 지금도 쓰는 곳이 80여 곳이었습니다.

다행히 학교 안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조사하고 없애려는 작업이 전국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충남의 한 고등학교의 경우 문제가 된 교가를 바꾸려고 했지만 수십 년간 이어진 전통인데다 가사에는 문제될 내용도 없다는 동문들의 반대에 부딪힌 겁니다.


9그루 베어내고도 1그루만은 남겨

앞서 소개한 홍동초등학교는 왜향나무 9그루를 베어내고 1그루만은 남겨 두기로 했는데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자료로 쓰자는 취지입니다.

이 학교는 왜향나무를 없애면서 학교 뒷동산에 있는 3·1공원과 연결되는 산책로도 조성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와 이어진 길을 따라 10분만 걸으면 100년 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의 현장에 가 볼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인지 3·1공원에서 만난 학생들은 초등학교 2학년인데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똑 부러지게 정답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일본 말 안 쓰고 한글을 쓸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도 했습니다.


쓰러진 '황국신민서사비'의 교훈

대전에 있는 한밭교육박물관에 가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황국신민서사비'를 볼 수 있는데요. 황국신민서사비는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1930년대,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의 문구를 새겨 세운 비석입니다. 한밭교육박물관에 있는 것은 1995년에 대전 산내초등학교 교정에서 발견돼 옮겨온 것인데, 수십 개의 총탄 자국과 함께 글자 위에 시멘트를 발랐던 흔적도 있습니다. 이 흔적을 일제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광복 후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워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완전히 뿌리뽑나,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나

어떤 것을 모두 없애 흔적조차 지워야 할지, 또 어떤 것은 남겨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지.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번 다시 아픈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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