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에 아세안, 한중일FTA까지…혼란의 시대 ‘뭉쳐야 산다’

입력 2019.11.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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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자국우선-보호무역 내세운 트럼프 시대
세계무역기구 설 곳 없어…상소기구 중단 위기
일부 국가-지역별로라도 자유무역 이어가는 것 중요
알셉(RCEP) 이어 한중일 FTA 까지 다층적 FTA 필요
농업 등 피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트럼프 대통령 집권과 함께 세계무역기구 체제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우선이다"에서 모든 국가가 "내가 우선이다"…자유무역 후퇴

제조업이 몰락한 미국 '러스트 벨트(녹슨 옛 공장지대)' 유권자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출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16번이나 "미국이 우선이다(America first)"라고 말했습니다. 이말은 금새 세계 곳곳에 메아리가 되어 퍼졌습니다.

러시아, 호주, 사우디 등 곳곳에서 "우리가 먼저다"라는 구호가 나왔습니다. 자유 무역이 궁극적으로는 서로 이득이 된다는 믿음은 깨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사흘 뒤 무역 자유화를 촉진시키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습니다.

다음 달부터 세계무역기구 상소 절차 중단될 듯…기능 축소

1995년 설립 이후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해온 세계무역기구(WTO)도 위기입니다.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억울한 조치에 대해 제소를 할 수 있다는 기능이 핵심인데, 제소 절차는 12월이면 중단될 상황입니다. 최소 3명의 재판관이 있어야 최종심인 상소기구가 운영되는데 2명이 퇴직하지만 미국이 후임자를 내지 않았습니다.

원래 7명이 있어야 하고 최소 3명의 재판관이 필요한 WTO 상소기구는 미국의 지명 거부로 기능이 중단될 수 있다.원래 7명이 있어야 하고 최소 3명의 재판관이 필요한 WTO 상소기구는 미국의 지명 거부로 기능이 중단될 수 있다.

혼란할 때는 '뭉쳐야 산다'?

자유무역의 위축은 무역량 감소와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외교 갈등을 통상의 영역으로 가져와서 우리나라를 상대로 수출 규제를 한 것도 이같은 조류와 무관치 않습니다. WTO가 신속하고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면 일본이 자유무역 원칙을 어기는 조치를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자유무역 후퇴는 저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수 시장과 자원이 적은 우리나라는 자유무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만큼 충격도 가장 큽니다. 10대 수출국 가운데 올 들어 7월까지 수출량 감소는 우리나라가 가장 많다고 WTO가 집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부진했던 '복수국가 무역협정'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WTO 제소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역별로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 협정을 맺으면서 자유무역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논의가 시작된 지 무려 7년 만에 최근 RCEP(알셉)의 협정문이 타결된 것은 회원국 사이에 자유무역을 회복하자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RCEP 협정문 타결에 이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자유무역 가능성을 보여줬다.RCEP 협정문 타결에 이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자유무역 가능성을 보여줬다.

용어부터 낯선 다층적인 무역의 시대

그런데 새로운 체계는 참으로 복잡합니다. 먼저 국가 사이에 FTA나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체결됩니다. CEPA 역시 양자가 맺는 FTA의 일종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기간 인도네시아와 CEPA를 타결했습니다.

이와 함께 '메가 FTA'라고 부르는 3국가 이상이 참여하는 협정들이 체결되고 있습니다. 이런 메가 FTA는 RCEP이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처럼 각자 고유 이름을 가집니다.

다층적인 WTO 복수국가 협정이 체결되고 있다.다층적인 WTO 복수국가 협정이 체결되고 있다.

메가 FTA는 2개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원산지 표기 통일화나 세계적 가치사슬 형성을 촉진하고 이행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우리나라가 강대국과 1대 1로 협상을 하는 것보다 여러 국가가 동참해 동일한 기준을 따르는 다자 협상이 편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를 "다자 무역 시대가 지고 다층 무역이 뜨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WTO가 제 기능을 했다면 이런 복잡한 체제는 필요도 없었겠지요. 어쩔 수 없이 다층적 안전장치로 자유무역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RCEP이후 우리나라의 관심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5개국과의 '한-메르코수르 FTA'나 '한·중·일 FTA'입니다. 28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FTA 16차 협상에서 우리 수석대표는 "RCEP보다 높은 수준의 한·중·일 FTA가 필요하다"고 했고 중국과 일본도 긍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대표들도 "지금은 자유무역의 위기다", "갈림길이다"면서 해법은 다층적인 안전장치밖에 없다는데 공감하더군요. 나아가 우리나라가 일본과 멕시코가 주도하는 CPTPP 가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자유무역이 궁극적으로 이익이더라도 현실적으로 피해를 보는 분야가 있다는 점입니다. 당장 RCEP이 시행되면 국내 과일과 채소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메가 FTA' 협상의 특성상, 언제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협상 단계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구제 방안도 함께 연구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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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CEP에 아세안, 한중일FTA까지…혼란의 시대 ‘뭉쳐야 산다’
    • 입력 2019-11-29 08:00:15
    취재K
자국우선-보호무역 내세운 트럼프 시대 <br />세계무역기구 설 곳 없어…상소기구 중단 위기 <br />일부 국가-지역별로라도 자유무역 이어가는 것 중요 <br />알셉(RCEP) 이어 한중일 FTA 까지 다층적 FTA 필요 <br />농업 등 피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트럼프 대통령 집권과 함께 세계무역기구 체제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우선이다"에서 모든 국가가 "내가 우선이다"…자유무역 후퇴

제조업이 몰락한 미국 '러스트 벨트(녹슨 옛 공장지대)' 유권자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출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16번이나 "미국이 우선이다(America first)"라고 말했습니다. 이말은 금새 세계 곳곳에 메아리가 되어 퍼졌습니다.

러시아, 호주, 사우디 등 곳곳에서 "우리가 먼저다"라는 구호가 나왔습니다. 자유 무역이 궁극적으로는 서로 이득이 된다는 믿음은 깨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사흘 뒤 무역 자유화를 촉진시키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습니다.

다음 달부터 세계무역기구 상소 절차 중단될 듯…기능 축소

1995년 설립 이후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해온 세계무역기구(WTO)도 위기입니다.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억울한 조치에 대해 제소를 할 수 있다는 기능이 핵심인데, 제소 절차는 12월이면 중단될 상황입니다. 최소 3명의 재판관이 있어야 최종심인 상소기구가 운영되는데 2명이 퇴직하지만 미국이 후임자를 내지 않았습니다.

원래 7명이 있어야 하고 최소 3명의 재판관이 필요한 WTO 상소기구는 미국의 지명 거부로 기능이 중단될 수 있다.
혼란할 때는 '뭉쳐야 산다'?

자유무역의 위축은 무역량 감소와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외교 갈등을 통상의 영역으로 가져와서 우리나라를 상대로 수출 규제를 한 것도 이같은 조류와 무관치 않습니다. WTO가 신속하고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면 일본이 자유무역 원칙을 어기는 조치를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자유무역 후퇴는 저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수 시장과 자원이 적은 우리나라는 자유무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만큼 충격도 가장 큽니다. 10대 수출국 가운데 올 들어 7월까지 수출량 감소는 우리나라가 가장 많다고 WTO가 집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부진했던 '복수국가 무역협정'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WTO 제소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역별로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 협정을 맺으면서 자유무역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논의가 시작된 지 무려 7년 만에 최근 RCEP(알셉)의 협정문이 타결된 것은 회원국 사이에 자유무역을 회복하자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RCEP 협정문 타결에 이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자유무역 가능성을 보여줬다.
용어부터 낯선 다층적인 무역의 시대

그런데 새로운 체계는 참으로 복잡합니다. 먼저 국가 사이에 FTA나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체결됩니다. CEPA 역시 양자가 맺는 FTA의 일종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기간 인도네시아와 CEPA를 타결했습니다.

이와 함께 '메가 FTA'라고 부르는 3국가 이상이 참여하는 협정들이 체결되고 있습니다. 이런 메가 FTA는 RCEP이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처럼 각자 고유 이름을 가집니다.

다층적인 WTO 복수국가 협정이 체결되고 있다.
메가 FTA는 2개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원산지 표기 통일화나 세계적 가치사슬 형성을 촉진하고 이행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우리나라가 강대국과 1대 1로 협상을 하는 것보다 여러 국가가 동참해 동일한 기준을 따르는 다자 협상이 편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를 "다자 무역 시대가 지고 다층 무역이 뜨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WTO가 제 기능을 했다면 이런 복잡한 체제는 필요도 없었겠지요. 어쩔 수 없이 다층적 안전장치로 자유무역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RCEP이후 우리나라의 관심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5개국과의 '한-메르코수르 FTA'나 '한·중·일 FTA'입니다. 28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FTA 16차 협상에서 우리 수석대표는 "RCEP보다 높은 수준의 한·중·일 FTA가 필요하다"고 했고 중국과 일본도 긍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대표들도 "지금은 자유무역의 위기다", "갈림길이다"면서 해법은 다층적인 안전장치밖에 없다는데 공감하더군요. 나아가 우리나라가 일본과 멕시코가 주도하는 CPTPP 가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자유무역이 궁극적으로 이익이더라도 현실적으로 피해를 보는 분야가 있다는 점입니다. 당장 RCEP이 시행되면 국내 과일과 채소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메가 FTA' 협상의 특성상, 언제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협상 단계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구제 방안도 함께 연구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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