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가 왜 친환경 텀블러에서 나와?

입력 2019.11.29 (17:01) 수정 2019.11.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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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정말 '친환경 제품'일까?

두 사람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한 명은 종이컵에, 다른 한 명은 개인용 보온병, 즉 텀블러에 커피를 받았습니다. 이후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과 달리, 텀블러는 매번 설거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환경친화적일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설거지할 때 사용되는 물과 화학 세제 등 이것저것 다 따져보면,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 못지않게 환경에 해롭지 않으냐는 지적입니다.

비슷한 의문에서 시작된 연구도 있습니다. 2005년 영국 환경성에서 수행한 천 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 전 과정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 연구입니다. 천 기저귀를 세탁할 때 들어가는 물과 에너지와 세제를 계산해봤더니 일회용 기저귀를 쓸 때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합니다.

11월 22일 자 KBS 〈뉴스7〉 ‘일회용품 사용 대폭 줄인…카페서도 컵 따로 구입해야’ 영상11월 22일 자 KBS 〈뉴스7〉 ‘일회용품 사용 대폭 줄인…카페서도 컵 따로 구입해야’ 영상

환경부는 지난 22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중장기 단계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2021년부터 식당과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 식품접객업소에서 플라스틱 컵뿐만 아니라 종이컵 사용까지 금지됩니다. 음료를 밖에 들고 나가려면 추가로 돈을 내거나, 텀블러나 머그잔 등 다회용 컵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텀블러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만큼, 서두에서 꺼낸 질문의 답이 더 궁금해집니다.

이 같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KBS는 비영리 민간 연구소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일회용 컵과 텀블러를 만들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을 계산해봤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 실험해보니…반전에 반전

결론부터 말하면,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종이컵보다는 24배, 일회용 플라스틱 컵보다는 13배 높은 수치입니다. 일반적으로 친환경 제품이라고 알려진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높다는, 상식에 다소 어긋나는 결과입니다.


실험 방법은 이렇습니다. 300mL 용량의 텀블러와 일반적으로 카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그리고 종이컵의 소재를 분석하고 무게를 잰 뒤, 소재별 탄소배출계수를 적용해 계산했습니다.

텀블러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배출되는 이유는 바로 '소재'에 있습니다. 스테인리스와 실리콘 고무,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만들어지는 텀블러는 가공 과정에서 종이나 플라스틱 소재의 컵보다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또 설거지하는 과정과 버려진 텀블러를 폐기하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나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그만큼 늘어납니다.

그런데 반전이 한 번 더 남았습니다. 이 수치가 텀블러 사용을 거듭하면, 완전히 뒤집히기 때문입니다. 재사용률이 1% 남짓인 일회용 컵은 쓰는 만큼 제조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누적됩니다. 반면, 텀블러는 수백, 수천 회 재사용이 가능하므로 설거지할 때 배출되는 극소수 양의 온실가스만 더해집니다.


하루에 커피 한 잔씩을 마신다고 가정해본다면, 플라스틱 컵은 2주 만에, 종이컵은 한 달 만에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따라잡습니다. 격차는 점점 벌어져, 6개월 후에는 플라스틱 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텀블러의 11.9배, 1년 후 21배가 됩니다.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2년 이상 꾸준히 쓰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33.5배가량 줄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텀블러는, 오래 쓰기만 하면 의심할 여지 없이 '친환경 제품'인 겁니다.

유행따라 색색 텀블러…환경에는 독 된다

요약하자면, 환경을 보호하고자 텀블러를 샀다면 적어도 한 달 이상 꾸준히 써야 합니다. 뒤집어 말해보면 한 달 이상 꾸준히 쓰지 않는다면 텀블러를 사는 행위가 오히려 환경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텀블러와 같은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오히려 환경에 해가 되는 현상, 학계에서는 이를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라 부릅니다. 소비자의 환경 의식이 높아져 에너지 고효율 제품의 구매는 늘지만, 가전제품의 수도 함께 늘어나 전체 전기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서울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 다양한 종류의 텀블러가 진열돼 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스타벅스에서 개인 텀블러를 사용한 건수는 전년 대비 178% 증가했다고 합니다.서울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 다양한 종류의 텀블러가 진열돼 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스타벅스에서 개인 텀블러를 사용한 건수는 전년 대비 178% 증가했다고 합니다.

리바운드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한 텀블러를 오랫동안 아껴 쓰고 다시 쓰는 게 중요합니다. 유행따라 텀블러를 다량 구매하거나, 몇 번 쓰지 않은 텀블러를 버린다면 환경에 오히려 해롭기 때문입니다.

실험을 진행한 이윤희 선임연구원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안인 텀블러를 여러 개 자주 바꿔가며 사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라며 "환경 보호라는 원래 목적을 부합하기 위해선 하나의 다회용 컵을 오래도록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일회용 컵 꼭 써야 한다면? 뚜껑·빨대 사용 줄여야

텀블러를 꾸준히 사용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이를 실천할 수 없는 상황도 생깁니다. 깜빡 잊고 개인 컵을 챙겨오지 않은 경우, 실내에서 음료를 먹다가 급히 밖으로 나가야 할 때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모적인 부품 사용이라도 줄이는 방법을 권장합니다.


종이컵의 경우 컵 홀더와 뚜껑, 빨대 사용만 멈춰도 온실가스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카페에서 사용하는 '보통(10온스)' 크기의 컵보다 작은 종이컵(6.5온스)을 쓸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4배 줄어듭니다. 물론 일회용품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의식적으로나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도 그 나름의 효용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달 발표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른 제4차 대한민국 국가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50여 년 뒤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4.4℃ 상승하고, 강수량은 172.5mm가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봄과 여름의 계절 시작일은 빨라지고, 폭염일수는 25.4일 늘어날 전망입니다. 온실가스 등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겁니다. 기상 이변에 따른 자연재난 피해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단 걸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다행히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국민의 수준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국 1만 360여 곳 카페에서 일회용 컵 사용량이 지난해보다 75% 감소했고, 국내 텀블러 시장은 매년 20%씩 커지고 있습니다. 환경 문제에 공감하고 행동에 나서는 시민들이 늘고 있단 걸 보여주는 좋은 신호입니다. 다만, 환경을 살리는 것은 일회성 행동이 아닌 꾸준한 실천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을 이 실험결과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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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실가스가 왜 친환경 텀블러에서 나와?
    • 입력 2019-11-29 17:01:23
    • 수정2019-11-29 18:17:43
    취재K
텀블러, 정말 '친환경 제품'일까?

두 사람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한 명은 종이컵에, 다른 한 명은 개인용 보온병, 즉 텀블러에 커피를 받았습니다. 이후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과 달리, 텀블러는 매번 설거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환경친화적일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설거지할 때 사용되는 물과 화학 세제 등 이것저것 다 따져보면,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 못지않게 환경에 해롭지 않으냐는 지적입니다.

비슷한 의문에서 시작된 연구도 있습니다. 2005년 영국 환경성에서 수행한 천 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 전 과정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 연구입니다. 천 기저귀를 세탁할 때 들어가는 물과 에너지와 세제를 계산해봤더니 일회용 기저귀를 쓸 때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합니다.

11월 22일 자 KBS 〈뉴스7〉 ‘일회용품 사용 대폭 줄인…카페서도 컵 따로 구입해야’ 영상
환경부는 지난 22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중장기 단계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2021년부터 식당과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 식품접객업소에서 플라스틱 컵뿐만 아니라 종이컵 사용까지 금지됩니다. 음료를 밖에 들고 나가려면 추가로 돈을 내거나, 텀블러나 머그잔 등 다회용 컵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텀블러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만큼, 서두에서 꺼낸 질문의 답이 더 궁금해집니다.

이 같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KBS는 비영리 민간 연구소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일회용 컵과 텀블러를 만들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을 계산해봤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 실험해보니…반전에 반전

결론부터 말하면,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종이컵보다는 24배, 일회용 플라스틱 컵보다는 13배 높은 수치입니다. 일반적으로 친환경 제품이라고 알려진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높다는, 상식에 다소 어긋나는 결과입니다.


실험 방법은 이렇습니다. 300mL 용량의 텀블러와 일반적으로 카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그리고 종이컵의 소재를 분석하고 무게를 잰 뒤, 소재별 탄소배출계수를 적용해 계산했습니다.

텀블러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배출되는 이유는 바로 '소재'에 있습니다. 스테인리스와 실리콘 고무,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만들어지는 텀블러는 가공 과정에서 종이나 플라스틱 소재의 컵보다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또 설거지하는 과정과 버려진 텀블러를 폐기하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나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그만큼 늘어납니다.

그런데 반전이 한 번 더 남았습니다. 이 수치가 텀블러 사용을 거듭하면, 완전히 뒤집히기 때문입니다. 재사용률이 1% 남짓인 일회용 컵은 쓰는 만큼 제조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누적됩니다. 반면, 텀블러는 수백, 수천 회 재사용이 가능하므로 설거지할 때 배출되는 극소수 양의 온실가스만 더해집니다.


하루에 커피 한 잔씩을 마신다고 가정해본다면, 플라스틱 컵은 2주 만에, 종이컵은 한 달 만에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따라잡습니다. 격차는 점점 벌어져, 6개월 후에는 플라스틱 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텀블러의 11.9배, 1년 후 21배가 됩니다.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2년 이상 꾸준히 쓰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33.5배가량 줄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텀블러는, 오래 쓰기만 하면 의심할 여지 없이 '친환경 제품'인 겁니다.

유행따라 색색 텀블러…환경에는 독 된다

요약하자면, 환경을 보호하고자 텀블러를 샀다면 적어도 한 달 이상 꾸준히 써야 합니다. 뒤집어 말해보면 한 달 이상 꾸준히 쓰지 않는다면 텀블러를 사는 행위가 오히려 환경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텀블러와 같은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오히려 환경에 해가 되는 현상, 학계에서는 이를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라 부릅니다. 소비자의 환경 의식이 높아져 에너지 고효율 제품의 구매는 늘지만, 가전제품의 수도 함께 늘어나 전체 전기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서울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 다양한 종류의 텀블러가 진열돼 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스타벅스에서 개인 텀블러를 사용한 건수는 전년 대비 178% 증가했다고 합니다.
리바운드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한 텀블러를 오랫동안 아껴 쓰고 다시 쓰는 게 중요합니다. 유행따라 텀블러를 다량 구매하거나, 몇 번 쓰지 않은 텀블러를 버린다면 환경에 오히려 해롭기 때문입니다.

실험을 진행한 이윤희 선임연구원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안인 텀블러를 여러 개 자주 바꿔가며 사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라며 "환경 보호라는 원래 목적을 부합하기 위해선 하나의 다회용 컵을 오래도록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일회용 컵 꼭 써야 한다면? 뚜껑·빨대 사용 줄여야

텀블러를 꾸준히 사용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이를 실천할 수 없는 상황도 생깁니다. 깜빡 잊고 개인 컵을 챙겨오지 않은 경우, 실내에서 음료를 먹다가 급히 밖으로 나가야 할 때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모적인 부품 사용이라도 줄이는 방법을 권장합니다.


종이컵의 경우 컵 홀더와 뚜껑, 빨대 사용만 멈춰도 온실가스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카페에서 사용하는 '보통(10온스)' 크기의 컵보다 작은 종이컵(6.5온스)을 쓸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4배 줄어듭니다. 물론 일회용품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의식적으로나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도 그 나름의 효용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달 발표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른 제4차 대한민국 국가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50여 년 뒤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4.4℃ 상승하고, 강수량은 172.5mm가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봄과 여름의 계절 시작일은 빨라지고, 폭염일수는 25.4일 늘어날 전망입니다. 온실가스 등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겁니다. 기상 이변에 따른 자연재난 피해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단 걸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다행히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국민의 수준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국 1만 360여 곳 카페에서 일회용 컵 사용량이 지난해보다 75% 감소했고, 국내 텀블러 시장은 매년 20%씩 커지고 있습니다. 환경 문제에 공감하고 행동에 나서는 시민들이 늘고 있단 걸 보여주는 좋은 신호입니다. 다만, 환경을 살리는 것은 일회성 행동이 아닌 꾸준한 실천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을 이 실험결과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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