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창] “北 낙지는 다리가 10개”…겨레말큰사전 어디까지 왔나?

입력 2019.11.30 (09:00) 수정 2019.12.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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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옷, 단조림, 뿌무개... 북한에서 흔히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섭니다. 무슨 뜻일까요? 각각 드레스, 잼, 분무기를 뜻합니다. 북한에서 낙지는 남한에서의 오징어를 나타냅니다. 북한의 낙지는 다리가 10개인 셈입니다.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움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탈북민 최송죽 씨와 양명순 씨가 인터넷 방송에서 남과 북의 언어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탈북민 최송죽 씨와 양명순 씨가 인터넷 방송에서 남과 북의 언어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3년 차 탈북민 최송죽 씨는 유튜브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탈북한 과정과 남측에서의 정착 과정 등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합니다. 생방송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반응도 살핍니다. 주고받는 질문과 답 가운데 상당수는 단어 뜻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탈북민을 초청해 함께 진행했던 최근 방송에서도 자주 연출된 상황이었습니다.

양명순 "대개 북한에서 어쩌다가 돼지고기 한 번 먹으면 '어, 트짓하게 잘 먹었다' 하는데..."
최송죽 "응 그렇지."
양명순 "한국에 와서 처음에 그렇게 말하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 무슨 말 하고 있지? 알고 보니까 남측에서는 '느끼하게, 느끼하다'라고 하더라고"
최송죽 "응, 느끼하다!"

최송죽 "전번에 내가 많이 앓았잖아. 한 20일 형편없이 앓았어. 너무 아파서 방송도 못 할 정도로 앓았는데."
양명순 "'통세날' 정도로 아프다고 그랬잖아."
최송죽 "네가 통세난다고 하면 한국 분들 모르잖아."
양명순 "아 진짜 그러네."
최송죽 "이 동생이 내가 많이 아팠다 하니 통세난다고 했죠? 여러분들 무슨 뜻인지 모르죠?"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연구원들이 서울시 마포구 사무실에서 편찬 회의를 하고 있다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연구원들이 서울시 마포구 사무실에서 편찬 회의를 하고 있다

남과 북에서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서로 이해가 가능한 것은 70% 정도입니다. 이런 남과 북의 간격을 좁히고자 하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입니다. 겨레말큰사전은 1989년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공동 사전을 만들자고 제안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2005년 2월 남과 북이 함께 첫 번째 회의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됐고, 2015년까지 모두 25번 회의가 열렸습니다. 남측은 ㄱ, ㅁ, ㅇ, ㅈ, ㅊ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북측은 나머지를 맡았습니다. 회의 때마다 남과 북이 각각 9천 개씩 단어에 대한 각자의 풀이를 갖고 가서 교환해 검토했습니다. 이런 작업을 거쳐서 남과 북이 합의에 이른 단어는 모두 12만 5천 개에 달합니다.

하지만 갈 길은 멉니다. 합의해야 할 단어는 20만 개나 남았지만 2015년 이후 더 이상의 작업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 상황에 따라 중단됐다 재개되기를 되풀이해 왔고 최근에 다시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북측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사전 편찬 시작 때부터 작업을 계속해온 김완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수석연구원은 "문화교류 사업인데도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게 가장 어렵다"면서 "정부가 통일 정책을 어떻게 세웠느냐에 따라서 공동회의가 중단되고, 안 되고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과 북이 단어 풀이에 대해 합의에 이른다고 끝은 아닙니다. 교열도 해야 하고 교정 단계도 거쳐야 합니다. 할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연구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김 수석연구원은 "남과 북이 분단된 탓에 남과 북에서 각각 다른 사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 겨레에게 남과 북의 말을 다 아우르는 사전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고 겨레말큰사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겨레말큰사전 홍보관이 11월 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문을 열었다겨레말큰사전 홍보관이 11월 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문을 열었다

"요즘 북한에서 유행하는 음악이 뭔가요?"
"북쪽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지난 평양 공연에서 빨간맛을 불렀던 레드벨벳이 아주 인기랍니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가 아닙니다. 북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인공지능 로봇이 척척 대답해 줍니다. 북한에서 유명한 영화가 무엇인지, 북한 학생이 제일 좋아하는 교과목은 무엇인지, 북한에 떡볶이는 있는지도 마치 평양 사람이 말하듯 답해줍니다. 물론 북한과 남한의 단어 차이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가상 로봇의 이름은 '내 생애 첫 평양 친구'. 지난 11월 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 개관한 겨레말큰사전 홍보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홍보관에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추진 경과, 편찬사업회 연혁이 전시되고 사전편찬 과정 등을 동영상으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남과 북, 중국, 중앙아시아에서 새로 찾은 겨레말도 선보입니다. 겨레말 풀이, 낱말 맞히기 등 놀이를 통해 남북 간 언어 차이를 확인할 수 있고 북한에서 발견된 사전과 도서 역시 전시됩니다. 겨레말큰사전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과 함께 언어 통합을 준비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홍보관은 내년 1월 31일까지 운영될 예정입니다.

◆ 겨레말큰사전이 왜 필요한지, 얼마나 연구가 진척됐는지 등의 자세한 내용은 11월 29일 토요일 KBS 1TV에서 방송된 '남북의창' 다시보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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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의 창] “北 낙지는 다리가 10개”…겨레말큰사전 어디까지 왔나?
    • 입력 2019-11-30 09:00:24
    • 수정2019-12-13 18:01:10
    취재K
나리옷, 단조림, 뿌무개... 북한에서 흔히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섭니다. 무슨 뜻일까요? 각각 드레스, 잼, 분무기를 뜻합니다. 북한에서 낙지는 남한에서의 오징어를 나타냅니다. 북한의 낙지는 다리가 10개인 셈입니다.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움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탈북민 최송죽 씨와 양명순 씨가 인터넷 방송에서 남과 북의 언어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3년 차 탈북민 최송죽 씨는 유튜브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탈북한 과정과 남측에서의 정착 과정 등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합니다. 생방송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반응도 살핍니다. 주고받는 질문과 답 가운데 상당수는 단어 뜻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탈북민을 초청해 함께 진행했던 최근 방송에서도 자주 연출된 상황이었습니다.

양명순 "대개 북한에서 어쩌다가 돼지고기 한 번 먹으면 '어, 트짓하게 잘 먹었다' 하는데..."
최송죽 "응 그렇지."
양명순 "한국에 와서 처음에 그렇게 말하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 무슨 말 하고 있지? 알고 보니까 남측에서는 '느끼하게, 느끼하다'라고 하더라고"
최송죽 "응, 느끼하다!"

최송죽 "전번에 내가 많이 앓았잖아. 한 20일 형편없이 앓았어. 너무 아파서 방송도 못 할 정도로 앓았는데."
양명순 "'통세날' 정도로 아프다고 그랬잖아."
최송죽 "네가 통세난다고 하면 한국 분들 모르잖아."
양명순 "아 진짜 그러네."
최송죽 "이 동생이 내가 많이 아팠다 하니 통세난다고 했죠? 여러분들 무슨 뜻인지 모르죠?"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연구원들이 서울시 마포구 사무실에서 편찬 회의를 하고 있다
남과 북에서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서로 이해가 가능한 것은 70% 정도입니다. 이런 남과 북의 간격을 좁히고자 하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입니다. 겨레말큰사전은 1989년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공동 사전을 만들자고 제안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2005년 2월 남과 북이 함께 첫 번째 회의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됐고, 2015년까지 모두 25번 회의가 열렸습니다. 남측은 ㄱ, ㅁ, ㅇ, ㅈ, ㅊ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북측은 나머지를 맡았습니다. 회의 때마다 남과 북이 각각 9천 개씩 단어에 대한 각자의 풀이를 갖고 가서 교환해 검토했습니다. 이런 작업을 거쳐서 남과 북이 합의에 이른 단어는 모두 12만 5천 개에 달합니다.

하지만 갈 길은 멉니다. 합의해야 할 단어는 20만 개나 남았지만 2015년 이후 더 이상의 작업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 상황에 따라 중단됐다 재개되기를 되풀이해 왔고 최근에 다시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북측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사전 편찬 시작 때부터 작업을 계속해온 김완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수석연구원은 "문화교류 사업인데도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게 가장 어렵다"면서 "정부가 통일 정책을 어떻게 세웠느냐에 따라서 공동회의가 중단되고, 안 되고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과 북이 단어 풀이에 대해 합의에 이른다고 끝은 아닙니다. 교열도 해야 하고 교정 단계도 거쳐야 합니다. 할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연구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김 수석연구원은 "남과 북이 분단된 탓에 남과 북에서 각각 다른 사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 겨레에게 남과 북의 말을 다 아우르는 사전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고 겨레말큰사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겨레말큰사전 홍보관이 11월 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문을 열었다
"요즘 북한에서 유행하는 음악이 뭔가요?"
"북쪽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지난 평양 공연에서 빨간맛을 불렀던 레드벨벳이 아주 인기랍니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가 아닙니다. 북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인공지능 로봇이 척척 대답해 줍니다. 북한에서 유명한 영화가 무엇인지, 북한 학생이 제일 좋아하는 교과목은 무엇인지, 북한에 떡볶이는 있는지도 마치 평양 사람이 말하듯 답해줍니다. 물론 북한과 남한의 단어 차이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가상 로봇의 이름은 '내 생애 첫 평양 친구'. 지난 11월 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 개관한 겨레말큰사전 홍보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홍보관에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추진 경과, 편찬사업회 연혁이 전시되고 사전편찬 과정 등을 동영상으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남과 북, 중국, 중앙아시아에서 새로 찾은 겨레말도 선보입니다. 겨레말 풀이, 낱말 맞히기 등 놀이를 통해 남북 간 언어 차이를 확인할 수 있고 북한에서 발견된 사전과 도서 역시 전시됩니다. 겨레말큰사전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과 함께 언어 통합을 준비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홍보관은 내년 1월 31일까지 운영될 예정입니다.

◆ 겨레말큰사전이 왜 필요한지, 얼마나 연구가 진척됐는지 등의 자세한 내용은 11월 29일 토요일 KBS 1TV에서 방송된 '남북의창' 다시보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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