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보는 공연’…사운드 드라마를 아십니까?

입력 2019.12.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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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운드 드라마(Sound Drama)
청각 의존하는 시각장애인 위해 스피커 60여 개로 현장감 살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공감의 장

"만약에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우리가 잠을 자야 하는 것으로 아는 그 시간에
신비로운 또 다른 세계가 고독과 고요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아실 겁니다."
- 알퐁스 도데, 「별」에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각 장애인들은 이 아름다운 별들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이 의존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청각입니다. 이 세상을 시각장애인들은 소리로 듣고 느낍니다.


음성 해설이 있어야 문화생활이 가능한 시각장애인들

시각장애인들에게 문화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비장애인이 흔히 보는 영화나 드라마도 음성 해설이 있어야 합니다. 이른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영화입니다. '배리어 프리'는 사회적 약자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입니다. 배리어 프리 영화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설명이 음성으로 함께 제공됩니다.

[관련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4cGjHOwKPA&feature=emb_err_watch_on_yt

이런 영화와 달리 뮤지컬이나 연극은 매번 음성해설을 제공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음성해설이 제공되더라도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해설이 극에 대한 몰입에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이 공연을 제대로 관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배리어 프리 방식에서 더 나아간 '사운드 드라마'

그런데 음성해설을 활용하는 배리어 프리 방식을 벗어나 오로지 배우의 대사와 현장음으로만 진행되는 공연이 있습니다. 경기도 문화의 전당이 연 사운드 드라마, <알퐁스 도데의 별>이 그 예입니다. 인물 간의 대사와 배경 효과음, 음악만으로 공연의 줄거리를 온전히 전달하는 공연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과연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부터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연이 진행되는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궁금증은 공연 현장에 가서야 풀렸습니다.

음성해설 없애고 대본 각색…효과음 연기로 현장감 살려

이 공연은 음성해설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제공되는 음성해설의 빈자리는 극중 상황을 배우 대사에 녹여서 대본을 각색하는 것으로 채웠습니다. 이를 위해 도데의 원작 '별'의 설정도 바꿨습니다. 주인공인 목동을 작가 지망생으로 설정해 '별'의 줄거리를 들려주는 식입니다. 일종의 '별'의 프리퀄(prequel, 원작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인 셈입니다.


대본에 녹이지 못한 상황은 효과음 연기자(Foley artist)가 대신 전달합니다. 철판이나 빗자루 등 다양한 소도구들로 다양한 효과음을 무대 위에서 효과음 연기자들이 만들어냅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현장감을 선사하는 효과음 이외에도 공연 음향 전문가들이 직접 설악산 등 현장에서 채집한 음향도 공연에 쓰입니다.


스피커만 60여개…시각장애인에게 공간감 선사하는 첨단 음향 시스템

그러나 아무리 대본에 상황을 녹이고 효과음에 공을 들여도 시각장애인이 일반적 음향 시스템으로 공간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멀리서 벌어지는 상황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 원근과 좌우, 상하의 공간감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했습니다.


9인치 패시브 스피커 66개로 구성된 첨단 음향 시스템입니다. 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Immersive sound system)이라고 하는 이 기술은 객석 어디에서도 균일한 품질의 사운드와 공간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음향 전문가들은 소리의 위치를 느끼는 감각을 정위감이라고 하는데 이 정위감이 뛰어난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상황이라고 하면 위에서 비가 쏟아져 바닥에 떨어져 내는 소리까지를 공간적으로 입체감있게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 객석 좌우, 전후, 상하까지 44곳에 스피커 66개가 설치됐습니다. 완전히 스피커에 둘러싸여 공연을 감상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콘서트를 제외한 무대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도입된 기술입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함께 즐긴다…배려가 아니라 공감으로

이 공연이 무엇보다 좋은 점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 공연에 녹아 있지만 모두 비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는 요소입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여타 다른 공연과 똑같이 연기합니다. 또한 무대 한쪽에서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효과음 연기자의 움직임도 또 다른 볼거리입니다.


비장애인이 아예 눈을 감고 공연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번 공연을 담당한 구종회 총감독은 "청각만으로 모든 상황을 전달할 수 있도록 공연이 구성되어 있고 첨단 음향 시스템을 통해 뛰어난 음향이 제공된다"며 "비장애인이 눈을 감고 공연을 감상하는 것도 이색적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분이 아니라 공감이, 배려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문화에 대한 향유마저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공연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 나가는 시도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함께 어울려 같은 경험을 한 자리서 공유하는 이번 공연은 우리 사회가 시혜적 배려를 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공감하고 인정하는 좋은 한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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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로 보는 공연’…사운드 드라마를 아십니까?
    • 입력 2019-12-01 09:00:38
    취재K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운드 드라마(Sound Drama) <br />청각 의존하는 시각장애인 위해 스피커 60여 개로 현장감 살려 <br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공감의 장
"만약에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우리가 잠을 자야 하는 것으로 아는 그 시간에
신비로운 또 다른 세계가 고독과 고요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아실 겁니다."
- 알퐁스 도데, 「별」에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각 장애인들은 이 아름다운 별들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이 의존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청각입니다. 이 세상을 시각장애인들은 소리로 듣고 느낍니다.


음성 해설이 있어야 문화생활이 가능한 시각장애인들

시각장애인들에게 문화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비장애인이 흔히 보는 영화나 드라마도 음성 해설이 있어야 합니다. 이른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영화입니다. '배리어 프리'는 사회적 약자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입니다. 배리어 프리 영화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설명이 음성으로 함께 제공됩니다.

[관련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4cGjHOwKPA&feature=emb_err_watch_on_yt

이런 영화와 달리 뮤지컬이나 연극은 매번 음성해설을 제공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음성해설이 제공되더라도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해설이 극에 대한 몰입에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이 공연을 제대로 관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배리어 프리 방식에서 더 나아간 '사운드 드라마'

그런데 음성해설을 활용하는 배리어 프리 방식을 벗어나 오로지 배우의 대사와 현장음으로만 진행되는 공연이 있습니다. 경기도 문화의 전당이 연 사운드 드라마, <알퐁스 도데의 별>이 그 예입니다. 인물 간의 대사와 배경 효과음, 음악만으로 공연의 줄거리를 온전히 전달하는 공연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과연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부터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연이 진행되는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궁금증은 공연 현장에 가서야 풀렸습니다.

음성해설 없애고 대본 각색…효과음 연기로 현장감 살려

이 공연은 음성해설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제공되는 음성해설의 빈자리는 극중 상황을 배우 대사에 녹여서 대본을 각색하는 것으로 채웠습니다. 이를 위해 도데의 원작 '별'의 설정도 바꿨습니다. 주인공인 목동을 작가 지망생으로 설정해 '별'의 줄거리를 들려주는 식입니다. 일종의 '별'의 프리퀄(prequel, 원작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인 셈입니다.


대본에 녹이지 못한 상황은 효과음 연기자(Foley artist)가 대신 전달합니다. 철판이나 빗자루 등 다양한 소도구들로 다양한 효과음을 무대 위에서 효과음 연기자들이 만들어냅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현장감을 선사하는 효과음 이외에도 공연 음향 전문가들이 직접 설악산 등 현장에서 채집한 음향도 공연에 쓰입니다.


스피커만 60여개…시각장애인에게 공간감 선사하는 첨단 음향 시스템

그러나 아무리 대본에 상황을 녹이고 효과음에 공을 들여도 시각장애인이 일반적 음향 시스템으로 공간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멀리서 벌어지는 상황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 원근과 좌우, 상하의 공간감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했습니다.


9인치 패시브 스피커 66개로 구성된 첨단 음향 시스템입니다. 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Immersive sound system)이라고 하는 이 기술은 객석 어디에서도 균일한 품질의 사운드와 공간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음향 전문가들은 소리의 위치를 느끼는 감각을 정위감이라고 하는데 이 정위감이 뛰어난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상황이라고 하면 위에서 비가 쏟아져 바닥에 떨어져 내는 소리까지를 공간적으로 입체감있게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 객석 좌우, 전후, 상하까지 44곳에 스피커 66개가 설치됐습니다. 완전히 스피커에 둘러싸여 공연을 감상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콘서트를 제외한 무대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도입된 기술입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함께 즐긴다…배려가 아니라 공감으로

이 공연이 무엇보다 좋은 점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 공연에 녹아 있지만 모두 비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는 요소입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여타 다른 공연과 똑같이 연기합니다. 또한 무대 한쪽에서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효과음 연기자의 움직임도 또 다른 볼거리입니다.


비장애인이 아예 눈을 감고 공연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번 공연을 담당한 구종회 총감독은 "청각만으로 모든 상황을 전달할 수 있도록 공연이 구성되어 있고 첨단 음향 시스템을 통해 뛰어난 음향이 제공된다"며 "비장애인이 눈을 감고 공연을 감상하는 것도 이색적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분이 아니라 공감이, 배려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문화에 대한 향유마저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공연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 나가는 시도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함께 어울려 같은 경험을 한 자리서 공유하는 이번 공연은 우리 사회가 시혜적 배려를 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공감하고 인정하는 좋은 한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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