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10중 9명이 자살 전에 SOS”…자살방지 골든타임을 잡아라

입력 2019.12.02 (16:49) 수정 2019.12.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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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들다" "내가 없는 게 나아"...자살 전 SOS 신호 포착

경남 김해시의 500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올해 36살 강신민씨는 6년 차 경력 주택관리공단 소속 주택관리사이다. 한 달쯤 전 관리사무소를 찾아온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강 씨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올해 가족을 여읜 채 혼자 사는 50대 여성 주민은 '층간 소음으로 인해 잠을 잘 들지 못하는 데 남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소음을 일으키는 것 같다.'는 호소를 하기 위해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주민은 이어 "사는 게 힘들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등의 말을 반복해서 이어갔다.


강 씨는 경남 김해시 보건소 산하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락해 여성 주민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요원이 여성 주민을 상대로 문진표를 작성하고 설문지 조사, 상담까지 한 결과 우울증과 피해의식을 동반한 상태로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김해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이후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이 여성 주민의 집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상담하고 있다. 김미경 정신건강전문 팀장은 이 여성이 당시 방치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다며 지금은 많이 안정돼 위험한 상태를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92%가 자살 전 SOS ... 자살 방지 '골든타임' 인지 21%에 불과

주택관리사 강신민 씨가 여성 주민의 자살 징후를 알게 된 것은 지난 7월 받았던 '생명지킴이' 교육을 이수한 덕분이다. 생명지킴이 교육은 1시간~ 3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이 정도 교육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자살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정신건강센터 김미경 팀장의 설명이다. 자살 징후를 보였을 때 전문가가 신속하게 개입해 집중 상담을 하면 자살 시도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일반인생명지킴이 교육 모습 일반인생명지킴이 교육 모습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경남대학교 건강과학대학 이수정 교수에 따르면 자살은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계획-실행' 단계로 상당한 시간을 거쳐 진행된다는 것이란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3년 동안 자살 사망자 289명의 사례를 통해 사후 '심리부검'을 한 결과 92%가 자살 감행 전에 구조신호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정 교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구조신호를 보내는 이때가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지만 이를 SOS 신호로 인지한 경우는 21%에 불과하다고 했다. 특히 SOS 인지를 하고도 대응방법을 모르거나 잘못된 대응으로 자살을 막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때문에 '생명지킴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살자가 마지막으로 보내는 SOS 신호를 해석하고 섣부르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전문기관에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자살을 막는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자살시도자가 구조되고 있다.자살시도자가 구조되고 있다.

자살 징후는 간접적인 표현...포착이 중요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두려운 마음에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야'라는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조신호는 간접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생명지킴이 교육 교재를 보면 자살 시도의 단서는 언어, 감정, 상황, 행동의 4가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언어에서는 "부담되기 싫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더 나을 거야."와 같이 죽고 싶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감정에서는 감정의 기복이 커지고 급작스러운 분노와 불안감, 절망감, 죄책감을 드러낸다.

이런 단서를 보이는 사람 가운데 최근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질병, 장애 등을 갖는 상황적 단서가 더해지면 자살의 위험이 커진다. 마지막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단계로 약을 모으거나 도구를 준비하는 단서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인구의 5% 생명지킴이, '심폐소생술'과 같아

다시 이수정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자살률을 낮추는 데 성공한 선진국의 경우 '생명지킴이'와 같은 '구조신호 포착-구조 실행' 시스템의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5%를 생명지킴이로 양성했을 때 자살률이 떨어졌다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지난 2013년부터 생명지킴이 양성이 시작됐고 최근 3년 동안 집중적인 생명지킴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 단위인 중앙자살예방센터와 각 시도별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으며 최일선에서는 시군정신건강복지센터가 생명지킴이 양성하는 실행을 하고 있다.

생명지킴이 교육은 청소년에서부터 대학생, 사회*봉사*복지단체 관계자, 군부대 장병, 마을 이통장, 자율방범대원 등 사회 전 분야 구성원들이 대상이다. 평범한 이웃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자살 징후를 감지해 전문기관에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노인생명지킴이 교육, 고교생체육관생명지킴이 교육, 생명지킴이경찰수료식, 종교계생명지키기간담회 모습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노인생명지킴이 교육, 고교생체육관생명지킴이 교육, 생명지킴이경찰수료식, 종교계생명지키기간담회 모습

경남 김해시의 경우 도농복합지역에 중소기업 집중도가 높아 경제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으로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생명지킴이 교육이 선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양성실적을 보면 2017년 4,200명, 2018년 5,900명, 올해는 지금까지 6,200명으로 3년 동안 16,300명이 양성되었다. 김해시 인구의 3% 정도로 아직은 목표치 5%에는 모자라지만 올해 들어 지금까지 87명의 자살 위험군을 발견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결해주는 활약을 보였다. 전국적으로는 지난해 말 기준 100만 명이 생명지킴이 교육을 이수해 활동하고 있다.

이종학 경남 김해시 보건소장은 생명지킴이는 급성 심장정지사를 일으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며 생명지킴이를 양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활동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교육을 이수한 시민들을 재교육해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해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자살방지 거리 캠페인김해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자살방지 거리 캠페인

한국, 하루 36명 자살...OECD 국가 자살률 1위 오명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는 지난해 기준 인구 10만 명당 26.6명으로 전년도 대비 2.3명이 증가했다. 8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에서 증가하며 여전히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유지하고 있다. 40분에 한 명, 하루에 36명, 1년에 만3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이보다 40배가 많을 것으로 전문기관은 추정하고 있다.

간절한 구조신호 SOS '수신거부' 하지 않도록 해야

자살 시도자가 말하는 '죽고 싶다'는 말의 속뜻은 '살고 싶다'로 강력한 삶에 의지의 표현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마지막 SOS 신호이다. 무지로 인해 간절하게 울리는 SOS 신호를 '수신거부'하지 않도록 생명지킴이의 양성과 활동에 거는 기대가 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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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10중 9명이 자살 전에 SOS”…자살방지 골든타임을 잡아라
    • 입력 2019-12-02 16:49:18
    • 수정2019-12-03 14:00:26
    취재후·사건후
"사는 게 힘들다" "내가 없는 게 나아"...자살 전 SOS 신호 포착

경남 김해시의 500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올해 36살 강신민씨는 6년 차 경력 주택관리공단 소속 주택관리사이다. 한 달쯤 전 관리사무소를 찾아온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강 씨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올해 가족을 여읜 채 혼자 사는 50대 여성 주민은 '층간 소음으로 인해 잠을 잘 들지 못하는 데 남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소음을 일으키는 것 같다.'는 호소를 하기 위해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주민은 이어 "사는 게 힘들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등의 말을 반복해서 이어갔다.


강 씨는 경남 김해시 보건소 산하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락해 여성 주민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요원이 여성 주민을 상대로 문진표를 작성하고 설문지 조사, 상담까지 한 결과 우울증과 피해의식을 동반한 상태로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김해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이후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이 여성 주민의 집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상담하고 있다. 김미경 정신건강전문 팀장은 이 여성이 당시 방치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다며 지금은 많이 안정돼 위험한 상태를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92%가 자살 전 SOS ... 자살 방지 '골든타임' 인지 21%에 불과

주택관리사 강신민 씨가 여성 주민의 자살 징후를 알게 된 것은 지난 7월 받았던 '생명지킴이' 교육을 이수한 덕분이다. 생명지킴이 교육은 1시간~ 3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이 정도 교육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자살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정신건강센터 김미경 팀장의 설명이다. 자살 징후를 보였을 때 전문가가 신속하게 개입해 집중 상담을 하면 자살 시도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일반인생명지킴이 교육 모습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경남대학교 건강과학대학 이수정 교수에 따르면 자살은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계획-실행' 단계로 상당한 시간을 거쳐 진행된다는 것이란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3년 동안 자살 사망자 289명의 사례를 통해 사후 '심리부검'을 한 결과 92%가 자살 감행 전에 구조신호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정 교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구조신호를 보내는 이때가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지만 이를 SOS 신호로 인지한 경우는 21%에 불과하다고 했다. 특히 SOS 인지를 하고도 대응방법을 모르거나 잘못된 대응으로 자살을 막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때문에 '생명지킴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살자가 마지막으로 보내는 SOS 신호를 해석하고 섣부르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전문기관에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자살을 막는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자살시도자가 구조되고 있다.
자살 징후는 간접적인 표현...포착이 중요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두려운 마음에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야'라는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조신호는 간접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생명지킴이 교육 교재를 보면 자살 시도의 단서는 언어, 감정, 상황, 행동의 4가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언어에서는 "부담되기 싫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더 나을 거야."와 같이 죽고 싶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감정에서는 감정의 기복이 커지고 급작스러운 분노와 불안감, 절망감, 죄책감을 드러낸다.

이런 단서를 보이는 사람 가운데 최근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질병, 장애 등을 갖는 상황적 단서가 더해지면 자살의 위험이 커진다. 마지막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단계로 약을 모으거나 도구를 준비하는 단서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인구의 5% 생명지킴이, '심폐소생술'과 같아

다시 이수정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자살률을 낮추는 데 성공한 선진국의 경우 '생명지킴이'와 같은 '구조신호 포착-구조 실행' 시스템의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5%를 생명지킴이로 양성했을 때 자살률이 떨어졌다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지난 2013년부터 생명지킴이 양성이 시작됐고 최근 3년 동안 집중적인 생명지킴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 단위인 중앙자살예방센터와 각 시도별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으며 최일선에서는 시군정신건강복지센터가 생명지킴이 양성하는 실행을 하고 있다.

생명지킴이 교육은 청소년에서부터 대학생, 사회*봉사*복지단체 관계자, 군부대 장병, 마을 이통장, 자율방범대원 등 사회 전 분야 구성원들이 대상이다. 평범한 이웃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자살 징후를 감지해 전문기관에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노인생명지킴이 교육, 고교생체육관생명지킴이 교육, 생명지킴이경찰수료식, 종교계생명지키기간담회 모습
경남 김해시의 경우 도농복합지역에 중소기업 집중도가 높아 경제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으로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생명지킴이 교육이 선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양성실적을 보면 2017년 4,200명, 2018년 5,900명, 올해는 지금까지 6,200명으로 3년 동안 16,300명이 양성되었다. 김해시 인구의 3% 정도로 아직은 목표치 5%에는 모자라지만 올해 들어 지금까지 87명의 자살 위험군을 발견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결해주는 활약을 보였다. 전국적으로는 지난해 말 기준 100만 명이 생명지킴이 교육을 이수해 활동하고 있다.

이종학 경남 김해시 보건소장은 생명지킴이는 급성 심장정지사를 일으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며 생명지킴이를 양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활동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교육을 이수한 시민들을 재교육해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해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자살방지 거리 캠페인
한국, 하루 36명 자살...OECD 국가 자살률 1위 오명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는 지난해 기준 인구 10만 명당 26.6명으로 전년도 대비 2.3명이 증가했다. 8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에서 증가하며 여전히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유지하고 있다. 40분에 한 명, 하루에 36명, 1년에 만3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이보다 40배가 많을 것으로 전문기관은 추정하고 있다.

간절한 구조신호 SOS '수신거부' 하지 않도록 해야

자살 시도자가 말하는 '죽고 싶다'는 말의 속뜻은 '살고 싶다'로 강력한 삶에 의지의 표현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마지막 SOS 신호이다. 무지로 인해 간절하게 울리는 SOS 신호를 '수신거부'하지 않도록 생명지킴이의 양성과 활동에 거는 기대가 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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