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일자리의 두 얼굴…공짜노동과 압축노동

입력 2019.12.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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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만족도 97%, 돌봄 교실의 '눈물'

초등학교에는 돌봄 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수업이 끝난 후 부모님이 퇴근할 때까지 학생들을 도맡아 돌봐준다. 수업이 끝나도 학교에서 자녀들을 돌봐주니 굳이 학원으로 돌리지 않아도 되고, 맞벌이 부모로선 정말 든든한 '빽'이다. 실제로 서울시 교육청에서 실시한 2018년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서 초등 돌봄 교실에 대한 만족도가 97%를 웃돌았다.

부모들은 대만족이고, 학생들은 행복하다. 이 초등 돌봄 교실이 시작된 게 2004년. 그리고 그 후 15년이 지났다. 이만하면 정말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은데 말이다.


거리로 뛰쳐나온 돌봄 전담사들, 그들은 왜?

2019년 12월, 돌봄 교실을 지키는 돌봄 전담사들을 만난 건 거리에서였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시간제 돌봄 전담사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200일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독 일찍찾아온 겨울, 이들은 왜 거리로 뛰쳐 나온 걸까.

"2004년 당시에는 1일 8시간 주 5일 근무하는 '정상적인 일자리'였어요. 그런데 2014년부터 돌봄 교실이 대폭 확대됐죠. 그러면서 8시간 전일제 일자리를 시간제로 쪼개고, 1일 4시간의 시간제 노동자로 채용했습니다."

"결국 4시간 안에 구겨넣기 식으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하루 4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데도 억지로 4시간 안에 하라는 식이지요. 결국 방과후 학생들을 돌보는 4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되고요, 수업 준비물 챙기기와 외부강사 섭외, 학생들 귀가 후 정리, 그리고 주간 월간 계획안 작성과 일지 정리 같은 행정 업무가 끝도 없는데, 이런 업무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해야 하는 겁니다. 무보수 초과근무가 일상화돼 있는 거죠. 사실상 공짜 노동이죠."


"학교 비정규직 시간제 돌봄 전담사는 나쁜 일자리입니다"

"학교 비정규직 시간제 돌봄 전담사는 나쁜 일자리입니다. 시간제 일자리로 정책을 유지하며 모든 부담을 돌봄 전담사들이 감당하도록 희생을 강요하고,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경력단절여성의 일자리로 창출해서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나아지는 게 사람살이의 기본인데, 오히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니 돌봄 전담사들은 거리를 떠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2004년 수준의 근로 조건을 원한다. 1일 8시간 주 5일 근무.


시간제 노동자 300만 명 시대, 그 이면은?

2019년 통계청 조사결과를 보면 시간제 노동자는 이미 300만 명을 넘어섰다. 여러 가지 비정규직 형태 중에서도 계속해서 증가일로이다. 시간제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3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국민연금 가입률도 20%가 안 되는, 몹시 불안정한 일자리이다. 이 시간제 노동자의 70% 이상이 여성이다. 돌봄 전담사를 비롯해 콜센터 상담사, 요양보호사, 학교급식운반, 판매직 등 하루 2.5시간씩, 혹은 많게는 8시간씩 근무한다.

4.5시간 노동자, 압축노동...화장실 가서도 콜 수 계산

정부 부처 고객상담센터에서 일하는 7년차 시간제 노동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압축노동이란 말이
실감난다. 그는 4.5시간 노동자이다.

"'목표관리제'라고 쓰인 문서를 보았는데요, 1일 3시간 50분 실근무시간 중에 74콜, 2시간 48분 이상 전화를 받아야 된다고 돼 있었습니다. 못 미치는 상담사에게 팀장은 월마다 메시지를 보냈고, 실적 저조자 사유서를 쓰게 했습니다. 2번 이상이면 전화과장 면담 코스로 이중삼중 고통을 겪었죠.결국 과장 면담까지 간 오랜 경륜의 상담사가 말했다죠. 먼저 팀장,과장님이 우리처럼 74콜 이상을 받아보고 그 테크닉을 바로 전수해주는 게 어떠냐고 했답니다. 2년 전부터는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압박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콜 수 위주의 성과 평가 시상 등 상담사들 간에 경쟁을 하도록 하고, 자발적인 압축노동을 하게 만드는 구조는 여전합니다."

"지난주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란 일이 있었어요. 보통 때는 화장실에도 잘 안 가지만 그 날은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에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시간이면 전화 2~3통은 받을 수 있는데' 싶은 거예요. 그렇게 콜 수 계산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바쁘게 나왔더니 내 앞에 다른 상담사가화장실에서 막 뛰어 나가는 거예요. 다 내 마음과 같은 거죠."

시간제 일자리의 막다른 길

이들의 소원은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회사 앞마당을 산책하는것. 하루 8시간 일하는 전일제 근무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가능한데, 이게 쉽지가 않다. 현 직장 내에서 전일제 근무로의 전환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86.7%가 그렇지 못하다고 응답했다. 시간제 일자리가 전일제 근무로 가는 징검다리라기 보다는 막다른 길(dead-end)이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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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제 일자리의 두 얼굴…공짜노동과 압축노동
    • 입력 2019-12-03 15:31:04
    취재K
학부모 만족도 97%, 돌봄 교실의 '눈물'

초등학교에는 돌봄 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수업이 끝난 후 부모님이 퇴근할 때까지 학생들을 도맡아 돌봐준다. 수업이 끝나도 학교에서 자녀들을 돌봐주니 굳이 학원으로 돌리지 않아도 되고, 맞벌이 부모로선 정말 든든한 '빽'이다. 실제로 서울시 교육청에서 실시한 2018년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서 초등 돌봄 교실에 대한 만족도가 97%를 웃돌았다.

부모들은 대만족이고, 학생들은 행복하다. 이 초등 돌봄 교실이 시작된 게 2004년. 그리고 그 후 15년이 지났다. 이만하면 정말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은데 말이다.


거리로 뛰쳐나온 돌봄 전담사들, 그들은 왜?

2019년 12월, 돌봄 교실을 지키는 돌봄 전담사들을 만난 건 거리에서였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시간제 돌봄 전담사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200일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독 일찍찾아온 겨울, 이들은 왜 거리로 뛰쳐 나온 걸까.

"2004년 당시에는 1일 8시간 주 5일 근무하는 '정상적인 일자리'였어요. 그런데 2014년부터 돌봄 교실이 대폭 확대됐죠. 그러면서 8시간 전일제 일자리를 시간제로 쪼개고, 1일 4시간의 시간제 노동자로 채용했습니다."

"결국 4시간 안에 구겨넣기 식으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하루 4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데도 억지로 4시간 안에 하라는 식이지요. 결국 방과후 학생들을 돌보는 4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되고요, 수업 준비물 챙기기와 외부강사 섭외, 학생들 귀가 후 정리, 그리고 주간 월간 계획안 작성과 일지 정리 같은 행정 업무가 끝도 없는데, 이런 업무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해야 하는 겁니다. 무보수 초과근무가 일상화돼 있는 거죠. 사실상 공짜 노동이죠."


"학교 비정규직 시간제 돌봄 전담사는 나쁜 일자리입니다"

"학교 비정규직 시간제 돌봄 전담사는 나쁜 일자리입니다. 시간제 일자리로 정책을 유지하며 모든 부담을 돌봄 전담사들이 감당하도록 희생을 강요하고,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경력단절여성의 일자리로 창출해서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나아지는 게 사람살이의 기본인데, 오히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니 돌봄 전담사들은 거리를 떠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2004년 수준의 근로 조건을 원한다. 1일 8시간 주 5일 근무.


시간제 노동자 300만 명 시대, 그 이면은?

2019년 통계청 조사결과를 보면 시간제 노동자는 이미 300만 명을 넘어섰다. 여러 가지 비정규직 형태 중에서도 계속해서 증가일로이다. 시간제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3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국민연금 가입률도 20%가 안 되는, 몹시 불안정한 일자리이다. 이 시간제 노동자의 70% 이상이 여성이다. 돌봄 전담사를 비롯해 콜센터 상담사, 요양보호사, 학교급식운반, 판매직 등 하루 2.5시간씩, 혹은 많게는 8시간씩 근무한다.

4.5시간 노동자, 압축노동...화장실 가서도 콜 수 계산

정부 부처 고객상담센터에서 일하는 7년차 시간제 노동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압축노동이란 말이
실감난다. 그는 4.5시간 노동자이다.

"'목표관리제'라고 쓰인 문서를 보았는데요, 1일 3시간 50분 실근무시간 중에 74콜, 2시간 48분 이상 전화를 받아야 된다고 돼 있었습니다. 못 미치는 상담사에게 팀장은 월마다 메시지를 보냈고, 실적 저조자 사유서를 쓰게 했습니다. 2번 이상이면 전화과장 면담 코스로 이중삼중 고통을 겪었죠.결국 과장 면담까지 간 오랜 경륜의 상담사가 말했다죠. 먼저 팀장,과장님이 우리처럼 74콜 이상을 받아보고 그 테크닉을 바로 전수해주는 게 어떠냐고 했답니다. 2년 전부터는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압박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콜 수 위주의 성과 평가 시상 등 상담사들 간에 경쟁을 하도록 하고, 자발적인 압축노동을 하게 만드는 구조는 여전합니다."

"지난주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란 일이 있었어요. 보통 때는 화장실에도 잘 안 가지만 그 날은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에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시간이면 전화 2~3통은 받을 수 있는데' 싶은 거예요. 그렇게 콜 수 계산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바쁘게 나왔더니 내 앞에 다른 상담사가화장실에서 막 뛰어 나가는 거예요. 다 내 마음과 같은 거죠."

시간제 일자리의 막다른 길

이들의 소원은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회사 앞마당을 산책하는것. 하루 8시간 일하는 전일제 근무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가능한데, 이게 쉽지가 않다. 현 직장 내에서 전일제 근무로의 전환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86.7%가 그렇지 못하다고 응답했다. 시간제 일자리가 전일제 근무로 가는 징검다리라기 보다는 막다른 길(dead-end)이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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