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 안 해도 월급은 꼬박꼬박…‘세금 루팡들’

입력 2019.12.0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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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받아 회의 출석 못해도 의정비는 '꼬박꼬박']

올해 9월, 강원도의회 A 의원의 지역구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A 의원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술자리를 하다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폭행사건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A 의원은 강원도의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돼 됐고, '의회 출석 정지 30일'이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최고 징계 수위인 '파면'의 한 단계 아래의 중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이어, 강원도의회 의장은 의원으로서 품위를 유지하지 못했다며 도의회 본회의장에서 공식 사과까지 했습니다.

A 의원의 출석 정지 기간은 올해 10월 15일부터 11월 13일이었습니다. 이 시기 강원도의회에서는 제285회와 286회 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도, A 의원에게는 10월과 11월 월급이 전액 다 지급됐습니다.

[제한 없는 청원휴가…의정비는 덤]

지난달 13일 강원도의회 행정사무감사장 B 의원의 자리가 비어있다. (KBS춘천 영상물 캡처)지난달 13일 강원도의회 행정사무감사장 B 의원의 자리가 비어있다. (KBS춘천 영상물 캡처)

찬바람 부는 11월과 12월 사이. 강원도의회에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회기인 행정사무감사의 계절이 돌아옵니다. 이때 공격을 하려는 도의원과 방어에 나선 집행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B 의원은 올해 행정사무감사 기간 내내 자리를 비웠습니다. B 의원은 갑작스럽게 아내가 아팠고, 어린 자녀를 돌보는 등 보호자로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 청원휴가를 냈다고 밝혔습니다.

B 의원이 낸 청가 일수는 11월 12일부터 29일까지, 2주에 달합니다. 지방의원들은 소속 상임위원장이나 의장의 허가를 받으면 청가를 갈 수 있도록 의회 회의규칙에 정해져 있는데, B 의원은 이를 이용한 것입니다. 문제는 휴가를 보내주는 규칙만 있었지 1년 중 얼마까지 쓸 수 있는지 제한하는 조항은 없다는 점입니다.

B 의원에게도 11월 월급은 고스란히 입금됐습니다.

['구금되지 않으면 의정비 다 챙겨']

전국 기초 및 광역의회 의정비 지급 규정 조례 출력물전국 기초 및 광역의회 의정비 지급 규정 조례 출력물

강원도의회의 연간 회기 일수는 130일 이내입니다. 1년의 3분의 1만 출석하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올해 강원도의회의 경우, 이것도 못 채우고 휴가를 가거나 출석정지를 당한 의원이 10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급여 개념으로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이 매달 430만 원씩 꼬박꼬박 지급됐습니다.

'강원도의회 의원 의정활동비 등 지급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공소제기 후 구금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의정활동비 및 여비를 지급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법 처리를 받아 구속이나 구금된 게 아니라면 의정비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의회에 출석을 하든 안 하든...

이 같은 의정비 지급 기준을 적용한 것은 강원도의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KBS는 전국 광역의회 등 17곳과 전국 시군자치구의회 226곳 등 243곳의 조례를 전부 찾아봤습니다. 서울, 경기, 부산, 제주 등 광역의회의 의정비 지급 제한 조항은 하나같이 '의원이 구금상태일 때'로만 제한해 놨습니다.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날 경우 의정비를 소급해 돌려받도록 한 단서조항까지 베낀 듯 똑같았습니다.

경기도의회는 "특정 의회만 다르게 하면 언론의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 그렇게는 못하기 때문에, 전국의 지방의회들이 대동소이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가 하면, 경북 울진군의회의 경우, 회의 불출석자에 대한 최소한의 제재조항조차도 마련하지 않은 유일한 기초의회였습니다. 울진군의회는 상급 의회인 "경북도의회에 의정비 인상이나 삭감 등의 지침만 있었지, 이 부분에 대해서 안내된 게 없어 따로 없어서 의정비 지급제한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전국 243개 지방의회 가운데, 회의 불출석 의원에 대해 의정비 삭감 기준을 세워놓은 곳은 인천 서구와 광주 광산구, 전북 진안군의회 등 일부에 그쳤습니다.

강원도의회 감사나 회의에 불출석해도 의정비는 지급된다.강원도의회 감사나 회의에 불출석해도 의정비는 지급된다.

출석 안 하는 '세금 루팡들'…"일 한 만큼 받아야 "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소설의 주인공 '아르센 루팡'. 무엇이든 훔쳐낼 수 있는 신출귀몰한 도둑입니다.

일은 안 해도 월급은 10원짜리 하나까지 꼬박꼬박 받아가는 의원들. 국회의원도 지방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세금 루팡'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인지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국회 개혁안에는 불출석 의원에 대해 세비 20%를 삭감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제는 지방의회에서 대해서도 같은 법규를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직무조차 방기하는 의원들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강원도의회 본회의장 전경. 제대로 일하는 지방 의회를 기대해 본다. (KBS춘천 영상물 캡처)강원도의회 본회의장 전경. 제대로 일하는 지방 의회를 기대해 본다. (KBS춘천 영상물 캡처)

강원도의회의 한 의원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공감하며, 의정비 지급 조례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라며 자조섞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본 보도에서 사례로 든 강원도의회의 A와 B 의원 역시 "지역주민 등 유권자들이 요구한다면, 급여 환수 등의 조치에 응할 용의가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전국 지방의회에 의정비 지급 제한 규정을 도입해 회의참석을 강제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훼손할 수 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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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석 안 해도 월급은 꼬박꼬박…‘세금 루팡들’
    • 입력 2019-12-04 12:08:59
    취재K
[징계 받아 회의 출석 못해도 의정비는 '꼬박꼬박']

올해 9월, 강원도의회 A 의원의 지역구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A 의원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술자리를 하다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폭행사건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A 의원은 강원도의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돼 됐고, '의회 출석 정지 30일'이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최고 징계 수위인 '파면'의 한 단계 아래의 중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이어, 강원도의회 의장은 의원으로서 품위를 유지하지 못했다며 도의회 본회의장에서 공식 사과까지 했습니다.

A 의원의 출석 정지 기간은 올해 10월 15일부터 11월 13일이었습니다. 이 시기 강원도의회에서는 제285회와 286회 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도, A 의원에게는 10월과 11월 월급이 전액 다 지급됐습니다.

[제한 없는 청원휴가…의정비는 덤]

지난달 13일 강원도의회 행정사무감사장 B 의원의 자리가 비어있다. (KBS춘천 영상물 캡처)
찬바람 부는 11월과 12월 사이. 강원도의회에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회기인 행정사무감사의 계절이 돌아옵니다. 이때 공격을 하려는 도의원과 방어에 나선 집행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B 의원은 올해 행정사무감사 기간 내내 자리를 비웠습니다. B 의원은 갑작스럽게 아내가 아팠고, 어린 자녀를 돌보는 등 보호자로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 청원휴가를 냈다고 밝혔습니다.

B 의원이 낸 청가 일수는 11월 12일부터 29일까지, 2주에 달합니다. 지방의원들은 소속 상임위원장이나 의장의 허가를 받으면 청가를 갈 수 있도록 의회 회의규칙에 정해져 있는데, B 의원은 이를 이용한 것입니다. 문제는 휴가를 보내주는 규칙만 있었지 1년 중 얼마까지 쓸 수 있는지 제한하는 조항은 없다는 점입니다.

B 의원에게도 11월 월급은 고스란히 입금됐습니다.

['구금되지 않으면 의정비 다 챙겨']

전국 기초 및 광역의회 의정비 지급 규정 조례 출력물
강원도의회의 연간 회기 일수는 130일 이내입니다. 1년의 3분의 1만 출석하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올해 강원도의회의 경우, 이것도 못 채우고 휴가를 가거나 출석정지를 당한 의원이 10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급여 개념으로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이 매달 430만 원씩 꼬박꼬박 지급됐습니다.

'강원도의회 의원 의정활동비 등 지급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공소제기 후 구금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의정활동비 및 여비를 지급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법 처리를 받아 구속이나 구금된 게 아니라면 의정비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의회에 출석을 하든 안 하든...

이 같은 의정비 지급 기준을 적용한 것은 강원도의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KBS는 전국 광역의회 등 17곳과 전국 시군자치구의회 226곳 등 243곳의 조례를 전부 찾아봤습니다. 서울, 경기, 부산, 제주 등 광역의회의 의정비 지급 제한 조항은 하나같이 '의원이 구금상태일 때'로만 제한해 놨습니다.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날 경우 의정비를 소급해 돌려받도록 한 단서조항까지 베낀 듯 똑같았습니다.

경기도의회는 "특정 의회만 다르게 하면 언론의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 그렇게는 못하기 때문에, 전국의 지방의회들이 대동소이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가 하면, 경북 울진군의회의 경우, 회의 불출석자에 대한 최소한의 제재조항조차도 마련하지 않은 유일한 기초의회였습니다. 울진군의회는 상급 의회인 "경북도의회에 의정비 인상이나 삭감 등의 지침만 있었지, 이 부분에 대해서 안내된 게 없어 따로 없어서 의정비 지급제한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전국 243개 지방의회 가운데, 회의 불출석 의원에 대해 의정비 삭감 기준을 세워놓은 곳은 인천 서구와 광주 광산구, 전북 진안군의회 등 일부에 그쳤습니다.

강원도의회 감사나 회의에 불출석해도 의정비는 지급된다.
출석 안 하는 '세금 루팡들'…"일 한 만큼 받아야 "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소설의 주인공 '아르센 루팡'. 무엇이든 훔쳐낼 수 있는 신출귀몰한 도둑입니다.

일은 안 해도 월급은 10원짜리 하나까지 꼬박꼬박 받아가는 의원들. 국회의원도 지방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세금 루팡'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인지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국회 개혁안에는 불출석 의원에 대해 세비 20%를 삭감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제는 지방의회에서 대해서도 같은 법규를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직무조차 방기하는 의원들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강원도의회 본회의장 전경. 제대로 일하는 지방 의회를 기대해 본다. (KBS춘천 영상물 캡처)
강원도의회의 한 의원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공감하며, 의정비 지급 조례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라며 자조섞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본 보도에서 사례로 든 강원도의회의 A와 B 의원 역시 "지역주민 등 유권자들이 요구한다면, 급여 환수 등의 조치에 응할 용의가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전국 지방의회에 의정비 지급 제한 규정을 도입해 회의참석을 강제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훼손할 수 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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