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새고, 방바닥 꺼지고…노인 울리는 노인복지주택

입력 2019.12.0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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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도 하지 않은 새집 거실 바닥이 꺼져 구멍이 생기고, 아파트 복도가 물바다가 됩니다. 입주가 채 끝나지도 않은 집에 자꾸만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떨까요? 일반 아파트도 아닌, 어르신들만 사는 한 노인복지주택 이야기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 노인복지주택...하지만 입주율은 절반도 안 돼

겉보기엔 일반 아파트와 비슷하지만, 이곳은 노인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주거형태입니다.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되며, 법적으로 '주택'이 아닌 '준주택'입니다. 흔히 '실버타운'으로도 불립니다.

그래서 부부 중 적어도 한 명이 60세 이상이거나, 자녀나 손자 등 피부양자가 미성년자여야만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입주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단지 내부에 식당이 있고, 피트니스 센터나 사우나 등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지난달 초,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노인복지주택이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총 1천3백 세대가 넘고, 대형 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분양 3개월 만에 계약이 모두 마감됐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2일)이 입주 지정 기한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입주율이 절반도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방 꺼지고 물바다 되고


A 씨는 입주 전 자신이 계약한 집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타일로 시공한 거실 바닥이 깨져 구멍이 생긴 겁니다. 시공사 측은 "타일 접착제 부족으로 인한 시공 과정의 단순 하자"라고 해명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언제 어디서 같은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 주민들은 불안합니다.


지난달 22일, 아파트 복도가 물바다가 돼버렸습니다. 11층 엘리베이터 앞 휴게실 안에 있는 수도 배관 밸브가 제대로 잠겨있지 않았던 겁니다. 배관 사이로 터져 나온 물 때문에 11층부터 1층 현관까지 물이 쏟아졌습니다. 영상으로 보면 폭포수 같습니다.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인도로 걸어 다니기 힘들어 차도로 다녀요."

앞서 말한 문제들은 단순 하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노인복지주택이 지어진 위치입니다. 단지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경사가 심합니다. 입주자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인데 말이죠. 단지 입구부터가 장애물입니다. 붙잡고 올라갈 만한 난간도 없습니다. 휠체어를 타야 하거나, 차가 없는 노인들은 더 버겁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입주민 B 씨는 "이곳을 지나다니려면 발에 엄청난 힘을 줘야 한다"며 "안 그래도 연골이 워낙 노인이라 약한데, 경사진 비탈길을 힘을 주면서 가다 보니까 무릎에 무리가 온다"고 무릎에 붙인 파스를 보여주며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도 다니기 힘든 길"이고, "요즘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도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도가 있지만, 차도를 선택할 정도인 겁니다. "외출이 힘들다 보니 아파트 단지가 감옥 같다"는 주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시공사에 물어봤습니다. 노인복지주택인데 왜 이렇게 높고 다니기 불편한 곳에 집을 지었는지를요. 돌아온 대답은 "우리보다 심한 곳도 있다"였습니다. 경기도의 다른 노인복지주택 두 곳을 예로 들어, 경사가 더 심한 곳도 있고 차가 없으면 단지로 들어가기 힘든 곳도 있다는 겁니다.


경사뿐만이 아닙니다. 위 사진은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통로 양옆은 유리창으로 돼 있어 햇빛이 들어오고 바닥은 대리석이라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CCTV를 제외하고는 안전장치가 따로 없습니다. 한 입주민은 "눈이나 비가 오는 날 물기가 묻은 신발을 신고 통로를 걷다 보면 여차하면 넘어질 것 같아 큰 사고로 이어질 것 같다"고 걱정합니다.


"이제 돈도 안 버는데, 한 끼에 7천800원?"

입주자들은 단지 내부 식당에서 하루에 한 끼를 의무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가격은 7천800원. 분양 당시에는 7천 원이었는데 입주민들에게 별도의 공지 없이 800원을 올려버린 겁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시행사 측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재료비 인상에 따른 결정"이라며 "2016년 분양 당시 물가 인상분을 반영해 산정한 가격이 7천 원이었고 그 금액도 확정된 금액이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게다가 하루 한 끼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다 보니 한 달에 20만 원 넘게 지출이 발생합니다. 이 돈은 밥을 먹든 먹지 않든 관리비에서 차감됩니다. 이월도 안 됩니다.

시행사 측은 "1일 1식이 의무라는 건 분양 공고에도 포함돼 있었던 내용"이라면서 "단지 안에 있는 카페나 빵집에서 남은 금액을 사용할 수 있고, 이건 다른 노인복지주택에선 불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입주민 B 씨는 "편의점에 갔더니, 이미 다 팔려서 남은 게 없었다"며 "먹지도 않는 음료수를 잔뜩 사와 아직도 냉장고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입니다.


"용인시청, 사용 승인 취소해야"…"시공사 소송 우려있어 불가"

이곳에서 만난 입주민들은 대부분 자녀를 다 키우고, 은퇴한 뒤에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건물 하자와 여러 불편에 입주를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할 경기 용인시청을 찾아가 여러 차례 집회를 하고 시장 면담도 요구했습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용 승인을 내줬기 때문에 이를 임시 사용 승인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시공사 본사 앞에서도 집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용인시청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미 허가가 난 사용 승인 처분을 다시 바꾸게 되면, 시공사가 시청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용인시청은 관계자는 "기자님이 보고 들은 대로 쓰시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시공사 측은 "대다수 입주민은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데, 일부 강성 입주자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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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새고, 방바닥 꺼지고…노인 울리는 노인복지주택
    • 입력 2019-12-04 12:11:14
    취재K
입주도 하지 않은 새집 거실 바닥이 꺼져 구멍이 생기고, 아파트 복도가 물바다가 됩니다. 입주가 채 끝나지도 않은 집에 자꾸만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떨까요? 일반 아파트도 아닌, 어르신들만 사는 한 노인복지주택 이야기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 노인복지주택...하지만 입주율은 절반도 안 돼

겉보기엔 일반 아파트와 비슷하지만, 이곳은 노인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주거형태입니다.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되며, 법적으로 '주택'이 아닌 '준주택'입니다. 흔히 '실버타운'으로도 불립니다.

그래서 부부 중 적어도 한 명이 60세 이상이거나, 자녀나 손자 등 피부양자가 미성년자여야만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입주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단지 내부에 식당이 있고, 피트니스 센터나 사우나 등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지난달 초,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노인복지주택이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총 1천3백 세대가 넘고, 대형 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분양 3개월 만에 계약이 모두 마감됐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2일)이 입주 지정 기한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입주율이 절반도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방 꺼지고 물바다 되고


A 씨는 입주 전 자신이 계약한 집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타일로 시공한 거실 바닥이 깨져 구멍이 생긴 겁니다. 시공사 측은 "타일 접착제 부족으로 인한 시공 과정의 단순 하자"라고 해명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언제 어디서 같은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 주민들은 불안합니다.


지난달 22일, 아파트 복도가 물바다가 돼버렸습니다. 11층 엘리베이터 앞 휴게실 안에 있는 수도 배관 밸브가 제대로 잠겨있지 않았던 겁니다. 배관 사이로 터져 나온 물 때문에 11층부터 1층 현관까지 물이 쏟아졌습니다. 영상으로 보면 폭포수 같습니다.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인도로 걸어 다니기 힘들어 차도로 다녀요."

앞서 말한 문제들은 단순 하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노인복지주택이 지어진 위치입니다. 단지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경사가 심합니다. 입주자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인데 말이죠. 단지 입구부터가 장애물입니다. 붙잡고 올라갈 만한 난간도 없습니다. 휠체어를 타야 하거나, 차가 없는 노인들은 더 버겁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입주민 B 씨는 "이곳을 지나다니려면 발에 엄청난 힘을 줘야 한다"며 "안 그래도 연골이 워낙 노인이라 약한데, 경사진 비탈길을 힘을 주면서 가다 보니까 무릎에 무리가 온다"고 무릎에 붙인 파스를 보여주며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도 다니기 힘든 길"이고, "요즘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도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도가 있지만, 차도를 선택할 정도인 겁니다. "외출이 힘들다 보니 아파트 단지가 감옥 같다"는 주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시공사에 물어봤습니다. 노인복지주택인데 왜 이렇게 높고 다니기 불편한 곳에 집을 지었는지를요. 돌아온 대답은 "우리보다 심한 곳도 있다"였습니다. 경기도의 다른 노인복지주택 두 곳을 예로 들어, 경사가 더 심한 곳도 있고 차가 없으면 단지로 들어가기 힘든 곳도 있다는 겁니다.


경사뿐만이 아닙니다. 위 사진은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통로 양옆은 유리창으로 돼 있어 햇빛이 들어오고 바닥은 대리석이라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CCTV를 제외하고는 안전장치가 따로 없습니다. 한 입주민은 "눈이나 비가 오는 날 물기가 묻은 신발을 신고 통로를 걷다 보면 여차하면 넘어질 것 같아 큰 사고로 이어질 것 같다"고 걱정합니다.


"이제 돈도 안 버는데, 한 끼에 7천800원?"

입주자들은 단지 내부 식당에서 하루에 한 끼를 의무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가격은 7천800원. 분양 당시에는 7천 원이었는데 입주민들에게 별도의 공지 없이 800원을 올려버린 겁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시행사 측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재료비 인상에 따른 결정"이라며 "2016년 분양 당시 물가 인상분을 반영해 산정한 가격이 7천 원이었고 그 금액도 확정된 금액이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게다가 하루 한 끼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다 보니 한 달에 20만 원 넘게 지출이 발생합니다. 이 돈은 밥을 먹든 먹지 않든 관리비에서 차감됩니다. 이월도 안 됩니다.

시행사 측은 "1일 1식이 의무라는 건 분양 공고에도 포함돼 있었던 내용"이라면서 "단지 안에 있는 카페나 빵집에서 남은 금액을 사용할 수 있고, 이건 다른 노인복지주택에선 불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입주민 B 씨는 "편의점에 갔더니, 이미 다 팔려서 남은 게 없었다"며 "먹지도 않는 음료수를 잔뜩 사와 아직도 냉장고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입니다.


"용인시청, 사용 승인 취소해야"…"시공사 소송 우려있어 불가"

이곳에서 만난 입주민들은 대부분 자녀를 다 키우고, 은퇴한 뒤에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건물 하자와 여러 불편에 입주를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할 경기 용인시청을 찾아가 여러 차례 집회를 하고 시장 면담도 요구했습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용 승인을 내줬기 때문에 이를 임시 사용 승인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시공사 본사 앞에서도 집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용인시청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미 허가가 난 사용 승인 처분을 다시 바꾸게 되면, 시공사가 시청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용인시청은 관계자는 "기자님이 보고 들은 대로 쓰시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시공사 측은 "대다수 입주민은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데, 일부 강성 입주자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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