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천재 화가’ 김홍도가 태어난 곳은?

입력 2019.12.04 (19: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김홍도. 우리 미술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천부적 재능의 화가. 그래서 수많은 학자가 김홍도를 연구했고, 많은 책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책을 뒤져보고 사전을 찾아봐도 풀리지 않은 몇 가지 의문이 있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홍도의 출생지입니다.

그동안 학자들은 김홍도의 출생지를 놓고 이런저런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안산 설과 서울 설이죠. 안산 설은 김홍도가 어린 시절 안산에서 스승으로 모신 표암 강세황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어린 시절을 안산에서 보냈다면 당연히 태어난 곳도 안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김홍도는 한양 청계천에서 태어났다?

또 하나가 서울 설입니다. 2013년에 서울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김홍도가 안동에서 그린 그림들을 모은 화첩 하나가 공개됩니다. 그 화첩에 김홍도가 직접 쓴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김홍도 낙성 하량인 자호 단원
金弘道 落城 河梁人 自號 檀園

여기서 낙성은 한양, 하량은 청계천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당시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 화첩에 적힌 이 문구야말로 김홍도가 서울 출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라는 내용이 꽤 많이 회자됐습니다. 하지만 안산 설 대 서울 설로 갈라진 논란에 완벽한 종지부를 찍지는 못했죠.

오히려 학자들은 김홍도가 중인 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또 비슷한 용례를 찾아 비교해보면 김홍도가 자신을 낙성 하량인이라고 한 것은 태어난 곳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동네를 말한 것이란 의견이 훨씬 더 우세합니다. 포털사이트에서 '김홍도'로 검색하면 나오는 김홍도의 일대기 어디를 찾아봐도 출생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내용은 없습니다.

김홍도가 지어 붙인 서호(西湖)는 대체 어디?

그런데 최근 김홍도의 전기 《천년의 화가 김홍도》를 펴낸 전기작가 이충렬 씨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획기적인 근거를 찾아냈습니다. 김홍도의 호(號)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단원(檀園)이죠. 단원이라는 호는 김홍도가 두 번째로 지은 호입니다. 이보다 앞서 처음으로 스스로 지은 호는 서호(西湖)였습니다.

<성호선생전집>에 수록된 성호 이익의 시 ‘석민부(釋憫賦)’<성호선생전집>에 수록된 성호 이익의 시 ‘석민부(釋憫賦)’

그렇다면 서호가 대체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 중국의 유명 관광지 서호라는 주장도 있었죠. 그보다는 한강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주장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충렬 작가가 서호의 유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문헌 기록을 찾아냅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살았던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시(詩) <석민부(釋憫賦, 고민을 푸는 노래)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望西湖之莽蒼兮
서호를 바라보니 아득하더라

자신의 집에서 바라본 서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성호 이익의 집이 서호 부근에 있었다는 뜻이죠. 이익의 집은 안산이었습니다. 따라서 김홍도가 서호라는 호를 지었다는 것은 김홍도의 고향 역시 서호가 보이는 안산의 어느 동네였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죠. 조선시대에 서호가 바라보이는 동네를 찾으면 의문이 풀리게 되는 겁니다.

‘단원아집’(1753)‘단원아집’(1753)

서호가 보이는 곳이 어딘지 현장을 직접 찾아다닌 이충렬 작가는 안산 노적봉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연관된 또 다른 문헌 기록을 찾아내죠. 1753년 가을,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이 안산 노적봉 부근에서 살던 여주 이씨 가문 사람들과 시 모임을 연 뒤 그 자리에서 읊은 시를 모아 《단원아집》이란 시집을 펴냅니다.

이 시집의 표지를 보면 제목 옆에 글자 2개가 보입니다. 성고(聲皐)입니다. 성고는 실제 지명입니다. 이곳에서 시 모임을 했다는 거죠. 그렇다면 대체 성고가 어디인가. 그래서 이충렬 작가가 찾아본 것이 바로 조선 후기 지도였습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안산 지역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바닷가 마을 이름이 성고라고 돼 있었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보이는 안산 지역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보이는 안산 지역

그렇다면 성고의 현재 이름은 뭘까. 안산시 성포동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성포리였던 곳으로 지금까지도 성포라는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죠. 앞서 소개해드린 시 모임의 참석자 중 한 명인 이경환이란 분은 "박달나무 숲이 십 묘나 늘어서 있고, 저 멀리 소래포구와 초지도가 보인다."며 구체적으로 보이는 풍경을 묘사했습니다.

"김홍도가 태어난 곳은 안산시 성포동이다!"

이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김홍도가 태어난 곳은 현재 단원미술관이 들어서 있는 안산시 성포동의 노적봉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충렬 작가가 내린 결론입니다. 시집의 제목에 보이는 단원이라는 명칭 역시 김홍도의 호와 일치하죠. 모든 게 맞아떨어집니다. 김홍도는 자신의 고향을 생각하며 서호와 단원이라는 호를 지었던 겁니다.

결국,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보는 이에게 답이 주어지는 법인 것 같습니다. 김홍도의 생애 전체를 기술한 최초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이충렬 작가는 수많은 문헌 자료를 찾아 헤맸다고 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옛 문헌 기록이 꽤 많이 전산화돼 있어서, 컴퓨터만 켤 수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천년의 화가 김홍도》에서 이충렬 작가는 김홍도의 출생지뿐만 아니라 김홍도가 <단원도>에서 그린 집 '단원'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김홍도가 말년을 불우하게 보내다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곳이 어디인지도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한 위대했던 화가의 일대기를 온전하게 되살려 보겠다는 한 전기작가의 집념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조선의 천재 화가’ 김홍도가 태어난 곳은?
    • 입력 2019-12-04 19:01:40
    취재K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김홍도. 우리 미술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천부적 재능의 화가. 그래서 수많은 학자가 김홍도를 연구했고, 많은 책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책을 뒤져보고 사전을 찾아봐도 풀리지 않은 몇 가지 의문이 있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홍도의 출생지입니다.

그동안 학자들은 김홍도의 출생지를 놓고 이런저런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안산 설과 서울 설이죠. 안산 설은 김홍도가 어린 시절 안산에서 스승으로 모신 표암 강세황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어린 시절을 안산에서 보냈다면 당연히 태어난 곳도 안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김홍도는 한양 청계천에서 태어났다?

또 하나가 서울 설입니다. 2013년에 서울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김홍도가 안동에서 그린 그림들을 모은 화첩 하나가 공개됩니다. 그 화첩에 김홍도가 직접 쓴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김홍도 낙성 하량인 자호 단원
金弘道 落城 河梁人 自號 檀園

여기서 낙성은 한양, 하량은 청계천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당시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 화첩에 적힌 이 문구야말로 김홍도가 서울 출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라는 내용이 꽤 많이 회자됐습니다. 하지만 안산 설 대 서울 설로 갈라진 논란에 완벽한 종지부를 찍지는 못했죠.

오히려 학자들은 김홍도가 중인 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또 비슷한 용례를 찾아 비교해보면 김홍도가 자신을 낙성 하량인이라고 한 것은 태어난 곳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동네를 말한 것이란 의견이 훨씬 더 우세합니다. 포털사이트에서 '김홍도'로 검색하면 나오는 김홍도의 일대기 어디를 찾아봐도 출생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내용은 없습니다.

김홍도가 지어 붙인 서호(西湖)는 대체 어디?

그런데 최근 김홍도의 전기 《천년의 화가 김홍도》를 펴낸 전기작가 이충렬 씨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획기적인 근거를 찾아냈습니다. 김홍도의 호(號)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단원(檀園)이죠. 단원이라는 호는 김홍도가 두 번째로 지은 호입니다. 이보다 앞서 처음으로 스스로 지은 호는 서호(西湖)였습니다.

<성호선생전집>에 수록된 성호 이익의 시 ‘석민부(釋憫賦)’
그렇다면 서호가 대체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 중국의 유명 관광지 서호라는 주장도 있었죠. 그보다는 한강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주장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충렬 작가가 서호의 유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문헌 기록을 찾아냅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살았던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시(詩) <석민부(釋憫賦, 고민을 푸는 노래)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望西湖之莽蒼兮
서호를 바라보니 아득하더라

자신의 집에서 바라본 서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성호 이익의 집이 서호 부근에 있었다는 뜻이죠. 이익의 집은 안산이었습니다. 따라서 김홍도가 서호라는 호를 지었다는 것은 김홍도의 고향 역시 서호가 보이는 안산의 어느 동네였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죠. 조선시대에 서호가 바라보이는 동네를 찾으면 의문이 풀리게 되는 겁니다.

‘단원아집’(1753)
서호가 보이는 곳이 어딘지 현장을 직접 찾아다닌 이충렬 작가는 안산 노적봉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연관된 또 다른 문헌 기록을 찾아내죠. 1753년 가을,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이 안산 노적봉 부근에서 살던 여주 이씨 가문 사람들과 시 모임을 연 뒤 그 자리에서 읊은 시를 모아 《단원아집》이란 시집을 펴냅니다.

이 시집의 표지를 보면 제목 옆에 글자 2개가 보입니다. 성고(聲皐)입니다. 성고는 실제 지명입니다. 이곳에서 시 모임을 했다는 거죠. 그렇다면 대체 성고가 어디인가. 그래서 이충렬 작가가 찾아본 것이 바로 조선 후기 지도였습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안산 지역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바닷가 마을 이름이 성고라고 돼 있었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보이는 안산 지역
그렇다면 성고의 현재 이름은 뭘까. 안산시 성포동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성포리였던 곳으로 지금까지도 성포라는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죠. 앞서 소개해드린 시 모임의 참석자 중 한 명인 이경환이란 분은 "박달나무 숲이 십 묘나 늘어서 있고, 저 멀리 소래포구와 초지도가 보인다."며 구체적으로 보이는 풍경을 묘사했습니다.

"김홍도가 태어난 곳은 안산시 성포동이다!"

이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김홍도가 태어난 곳은 현재 단원미술관이 들어서 있는 안산시 성포동의 노적봉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충렬 작가가 내린 결론입니다. 시집의 제목에 보이는 단원이라는 명칭 역시 김홍도의 호와 일치하죠. 모든 게 맞아떨어집니다. 김홍도는 자신의 고향을 생각하며 서호와 단원이라는 호를 지었던 겁니다.

결국,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보는 이에게 답이 주어지는 법인 것 같습니다. 김홍도의 생애 전체를 기술한 최초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이충렬 작가는 수많은 문헌 자료를 찾아 헤맸다고 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옛 문헌 기록이 꽤 많이 전산화돼 있어서, 컴퓨터만 켤 수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천년의 화가 김홍도》에서 이충렬 작가는 김홍도의 출생지뿐만 아니라 김홍도가 <단원도>에서 그린 집 '단원'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김홍도가 말년을 불우하게 보내다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곳이 어디인지도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한 위대했던 화가의 일대기를 온전하게 되살려 보겠다는 한 전기작가의 집념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