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뺑소니’ 30대, 석 달 금주에 감형…처벌 대신 ‘치유’

입력 2019.12.05 (06:44) 수정 2019.12.05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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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법원은 보통 법을 어긴 사람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기관으로 인식돼 있죠.

그런데 법원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색적인 판결이 나왔습니다.

단죄와 처벌이 아닌, '치유'에 초점을 맞춰 음주운전 사건을 다룬 건데요.

어떤 사건인지, 김채린 기자가 판결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드립니다.

[리포트]

태블릿 PC로 현재 시각을 알린 뒤, 한 남성이 카메라 앞에 등장합니다.

[허○○/음성변조/지난 8월 28일 : "오늘은 지금 퇴근하고, 애들이랑 같이 저녁 먹고..."]

34살 허 모 씨가 자신의 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낸 '과제물' 영상입니다.

허 씨는 음주운전으로 두 명을 다치게 하고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난 혐의 등으로 지난 2월 기소됐습니다.

이미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 벌금형을 받은 전력을 고려해, 1심은 징역 1년을 선고하고 허 씨를 법정 구속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8월 첫 재판에서 허 씨를 보석으로 풀어줬습니다.

보석 조건은 세 가지.

석 달 동안 술을 입에 대지 말고, 밤 10시 전에 귀가할 것.

매일, 온라인 비공개 카페에 활동보고서와 동영상을 올리라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처벌보다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자는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시도한 것입니다.

[정수진/서울고등법원 공보판사 : "(치유법원 프로그램은) 범죄의 원인이 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과제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입니다."]

허 씨가 영상과 글로 '금주' 일기를 쓰면,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은 격려 댓글을 달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온라인 채팅창에서 회의도 했습니다.

103일 동안 과제를 성실히 수행한 허 씨에게, 재판부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집행유예 기간 동안에도 가급적 술을 마시지 말고 밤 10시까지 귀가해야 한다고 명했습니다.

[허○○/'치유법원' 프로그램 이행/음성변조 : "술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시간 보내는 게 행복하다는 걸 많이 깨달았고..."]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치유법원' 제도 연구를 위해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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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뺑소니’ 30대, 석 달 금주에 감형…처벌 대신 ‘치유’
    • 입력 2019-12-05 06:45:56
    • 수정2019-12-05 06:52:13
    뉴스광장 1부
[앵커]

법원은 보통 법을 어긴 사람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기관으로 인식돼 있죠.

그런데 법원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색적인 판결이 나왔습니다.

단죄와 처벌이 아닌, '치유'에 초점을 맞춰 음주운전 사건을 다룬 건데요.

어떤 사건인지, 김채린 기자가 판결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드립니다.

[리포트]

태블릿 PC로 현재 시각을 알린 뒤, 한 남성이 카메라 앞에 등장합니다.

[허○○/음성변조/지난 8월 28일 : "오늘은 지금 퇴근하고, 애들이랑 같이 저녁 먹고..."]

34살 허 모 씨가 자신의 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낸 '과제물' 영상입니다.

허 씨는 음주운전으로 두 명을 다치게 하고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난 혐의 등으로 지난 2월 기소됐습니다.

이미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 벌금형을 받은 전력을 고려해, 1심은 징역 1년을 선고하고 허 씨를 법정 구속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8월 첫 재판에서 허 씨를 보석으로 풀어줬습니다.

보석 조건은 세 가지.

석 달 동안 술을 입에 대지 말고, 밤 10시 전에 귀가할 것.

매일, 온라인 비공개 카페에 활동보고서와 동영상을 올리라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처벌보다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자는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시도한 것입니다.

[정수진/서울고등법원 공보판사 : "(치유법원 프로그램은) 범죄의 원인이 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과제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입니다."]

허 씨가 영상과 글로 '금주' 일기를 쓰면,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은 격려 댓글을 달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온라인 채팅창에서 회의도 했습니다.

103일 동안 과제를 성실히 수행한 허 씨에게, 재판부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집행유예 기간 동안에도 가급적 술을 마시지 말고 밤 10시까지 귀가해야 한다고 명했습니다.

[허○○/'치유법원' 프로그램 이행/음성변조 : "술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시간 보내는 게 행복하다는 걸 많이 깨달았고..."]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치유법원' 제도 연구를 위해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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