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문건’ 작성 과정 공개한 청와대의 속내, 검찰의 전략은?

입력 2019.12.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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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된 사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첩보 문건 작성 과정을 청와대가 마침내 공개했습니다. 언론 보도로 의혹이 제기된 지 8일 만입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문건의 존재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던 청와대는 어제 민정수석실에서 조사한 문건 작성 경위를 공개했습니다.


'청와대 하명 수사', '백원우 첩보 문건' 등으로 불리는 이 사건,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사건 개요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지난해 경찰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서실장 등 측근에 대해 대대적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수사라며 논란이 됐고, 김 전 시장은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을 고발했습니다.

결국 김 전 시장은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올 초 김 전 시장 측근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겁니다.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데 경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했다는 건데요. 이 과정에서 김 전 시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청와대에서 내려온 '첩보 문건'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습니다.

도대체 이 '첩보 문건'을 누가 작성한 것이냐,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첩보 문건을 건네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어제 청와대가 마침내 문건 제보자와 작성자가 누군지 밝히면서 실마리가 하나 풀렸습니다. 문건을 작성한 사람은 민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던 행정관이었다는 겁니다.

이 행정관이 캠핑을 갔다가 누군가를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사람이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과 그 측근의 비리를 제보해주더라. 청와대 행정관으로선 당연히 위에 보고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다만 '윗분들 보시기 좋게' 보고서로 정리했다.

이게 어제 청와대의 설명입니다. 청와대는 비리 제보를 받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봤습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첩보 문건 생성과정이라고 본 겁니다.

'캠핑장서 만난 제보자', 알고 보니 울산시 부시장?

그렇다면 그 제보자는 누굴까요? 청와대는 제보자가 누군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주 철저히 비밀에 부치지도 않았습니다. "소문 도는 거로 아는데 취재하면 알 것"이라고했습니다. 제보자는 공직자이지만, 정당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제보자는 KBS 취재결과 송병기 울산시 부시장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송 부시장은 김기현 전 시장 시절 울산시 국장직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송철호 현 시장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습니다.

송 부시장은 KBS 취재진과 만나 '요구를 받아' 김기현 전 시장의 비리를 넘겨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에서 여러가지 동향들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 동향들에 대해 파악해서 알려줬을 뿐"이라는 겁니다. 김 전 시장 관련 첩보를 청와대 측이 먼저 요청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어 사실이라면 파장이 예상됩니다.

검찰의 수사 전략은?

1) 경찰, 청와대에 9번 수사상황 보고...정상인가?

이 사건이 실제로 청와대의 기획에서 시작된 '하명수사'였는지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건 경찰이 청와대에 김기현 전 시장 측근에 대한 수사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는 점입니다. 경찰도 9번의 보고가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주요 이슈가 있으면 관례적으로 관련 부처에 정보 공유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버닝썬' 때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에 수사상황을 보고 하는 건 관례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보고 과정을 아주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보고 체계는 이 사건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며 "(경찰 보고대로라면) 수사에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청와대로 올라간 보고서에는 "오늘 오후 압수수색 예정"이라며 압수수색을 사전에 보고한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해도 법무부에 '사후 보고'를 합니다.

2) 청와대 민정비서관 산하 특감반원, 울산 내려가 수사상황 파악했나?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산하에 있던 특감반원들이 울산에 내려와 김기현 전 시장 측에 대한 수사상황을 조회했다, 이건 현재까진 김기현 전 시장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도 특감반원들을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도 울산에 특감반원을 내려보낸 건 김 전 시장 사건 때문이 아니라 '고래고기' 사건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특감반원들 중 한 명이었던 검찰 수사관이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경찰서에 보관돼있던 이 수사관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는데요.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면 검찰의 수사 방향을 대략 읽을 수 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직권남용'입니다. 일단은 김 전 시장이 고발한 대로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이 직권남용의 피의자로 적시돼있지만, '직권남용'의 피의자는 청와대로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숨진 수사관의 '윗선'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없는 일을 시켰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검찰은 수사관이 윗선의 지시로 수사상황을 파악한 게 맞는지 입증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3) 제보자는 '순수'했는가?

청와대가 밝힌 대로, 제보받은 내용을 경찰에 이첩하는 건 민정수석실 본연의 임무입니다. 하지만 제보자인 송 부시장이 김 전 시장의 반대 진영이었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선거 캠프에서 일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집니다. 상대 후보의 낙선을 위해 청와대로 첩보가 흘러들어갔고, 경찰이 나서 수사를 벌였다면 제보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처음부터 송 부시장의 제보가 선거에 개입할 의도로 이뤄진 것은 아닌지, 송 부시장이 KBS 취재진에게 말한 대로 '청와대의 요구로' 이같은 비리를 제보한 것은 아닌지 수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송병기 울산 부시장은 오늘 공식 입장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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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첩보 문건’ 작성 과정 공개한 청와대의 속내, 검찰의 전략은?
    • 입력 2019-12-05 11:34:08
    취재K
"'캠핑장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된 사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첩보 문건 작성 과정을 청와대가 마침내 공개했습니다. 언론 보도로 의혹이 제기된 지 8일 만입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문건의 존재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던 청와대는 어제 민정수석실에서 조사한 문건 작성 경위를 공개했습니다.


'청와대 하명 수사', '백원우 첩보 문건' 등으로 불리는 이 사건,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사건 개요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지난해 경찰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서실장 등 측근에 대해 대대적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수사라며 논란이 됐고, 김 전 시장은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을 고발했습니다.

결국 김 전 시장은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올 초 김 전 시장 측근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겁니다.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데 경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했다는 건데요. 이 과정에서 김 전 시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청와대에서 내려온 '첩보 문건'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습니다.

도대체 이 '첩보 문건'을 누가 작성한 것이냐,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첩보 문건을 건네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어제 청와대가 마침내 문건 제보자와 작성자가 누군지 밝히면서 실마리가 하나 풀렸습니다. 문건을 작성한 사람은 민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던 행정관이었다는 겁니다.

이 행정관이 캠핑을 갔다가 누군가를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사람이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과 그 측근의 비리를 제보해주더라. 청와대 행정관으로선 당연히 위에 보고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다만 '윗분들 보시기 좋게' 보고서로 정리했다.

이게 어제 청와대의 설명입니다. 청와대는 비리 제보를 받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봤습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첩보 문건 생성과정이라고 본 겁니다.

'캠핑장서 만난 제보자', 알고 보니 울산시 부시장?

그렇다면 그 제보자는 누굴까요? 청와대는 제보자가 누군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주 철저히 비밀에 부치지도 않았습니다. "소문 도는 거로 아는데 취재하면 알 것"이라고했습니다. 제보자는 공직자이지만, 정당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제보자는 KBS 취재결과 송병기 울산시 부시장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송 부시장은 김기현 전 시장 시절 울산시 국장직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송철호 현 시장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습니다.

송 부시장은 KBS 취재진과 만나 '요구를 받아' 김기현 전 시장의 비리를 넘겨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에서 여러가지 동향들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 동향들에 대해 파악해서 알려줬을 뿐"이라는 겁니다. 김 전 시장 관련 첩보를 청와대 측이 먼저 요청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어 사실이라면 파장이 예상됩니다.

검찰의 수사 전략은?

1) 경찰, 청와대에 9번 수사상황 보고...정상인가?

이 사건이 실제로 청와대의 기획에서 시작된 '하명수사'였는지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건 경찰이 청와대에 김기현 전 시장 측근에 대한 수사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는 점입니다. 경찰도 9번의 보고가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주요 이슈가 있으면 관례적으로 관련 부처에 정보 공유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버닝썬' 때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에 수사상황을 보고 하는 건 관례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보고 과정을 아주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보고 체계는 이 사건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며 "(경찰 보고대로라면) 수사에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청와대로 올라간 보고서에는 "오늘 오후 압수수색 예정"이라며 압수수색을 사전에 보고한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해도 법무부에 '사후 보고'를 합니다.

2) 청와대 민정비서관 산하 특감반원, 울산 내려가 수사상황 파악했나?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산하에 있던 특감반원들이 울산에 내려와 김기현 전 시장 측에 대한 수사상황을 조회했다, 이건 현재까진 김기현 전 시장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도 특감반원들을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도 울산에 특감반원을 내려보낸 건 김 전 시장 사건 때문이 아니라 '고래고기' 사건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특감반원들 중 한 명이었던 검찰 수사관이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경찰서에 보관돼있던 이 수사관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는데요.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면 검찰의 수사 방향을 대략 읽을 수 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직권남용'입니다. 일단은 김 전 시장이 고발한 대로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이 직권남용의 피의자로 적시돼있지만, '직권남용'의 피의자는 청와대로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숨진 수사관의 '윗선'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없는 일을 시켰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검찰은 수사관이 윗선의 지시로 수사상황을 파악한 게 맞는지 입증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3) 제보자는 '순수'했는가?

청와대가 밝힌 대로, 제보받은 내용을 경찰에 이첩하는 건 민정수석실 본연의 임무입니다. 하지만 제보자인 송 부시장이 김 전 시장의 반대 진영이었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선거 캠프에서 일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집니다. 상대 후보의 낙선을 위해 청와대로 첩보가 흘러들어갔고, 경찰이 나서 수사를 벌였다면 제보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처음부터 송 부시장의 제보가 선거에 개입할 의도로 이뤄진 것은 아닌지, 송 부시장이 KBS 취재진에게 말한 대로 '청와대의 요구로' 이같은 비리를 제보한 것은 아닌지 수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송병기 울산 부시장은 오늘 공식 입장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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