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나토의 ‘단결’ 선언…현실은?

입력 2019.12.0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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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주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기념 촬영(지난 4일/영국)

제70주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기념 촬영(지난 4일/영국)

'런던 선언'이 강조한 나토 '단결'... 현실은 과연?
영국 런던 북서부 교외에 위치한 왓퍼드에서 열렸던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나토) 정상회의가 현지 시간 4일 '런던 선언'을 채택하고 폐막했습니다. 모두 9개 항으로 이뤄진 '런던 선언'은 첫 번째 항부터 '단결과 통합 그리고 화합은 우리 동맹의 주춧돌 원칙'(Solidarity, unity, and cohesion are cornerstone principles of our Alliance)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선언'은 이후에서도 29개 나토 회원국들의 공동 행동을 유독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창설 70주년을 맞은 나토는 과연 '선언' 대로 단합하고 있을까요?

시작은 냉전…'올 포원, 원 포 올(All for one, One for all)' 정신
올해 정상회담은 냉전 종식 30주년을 맞아 최초로 나토 사령부가 있던 곳을 회의 장소로 택했습니다. 1949년 체결된 북대서양 조약, 이른바 워싱턴 조약을 근거로 했던 나토가 첨예했던 미국과 소련 간 대결의 산물임을 되새긴 겁니다. 여기에는 출범 당시의 '정신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어떤 정신이었을까요?

워싱턴 조약 5조를 살펴볼까요?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있는 하나 또는 복수의 회원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은 모든 회원국을 상대로 한 공격으로 간주한다'(an armed attack against one or more of them in Europe or North America shall be considered an attack against them all)는 내용이 있습니다. 집단 안보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이죠.
실제, 정상회담 주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 역시 이번 회담의 모토를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One for all, and all for one)라고 밝혔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나왔던 구호로 영국에서 장기 공연됐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탄광 노동자들이 '영원한 단결'(Solidarity forever)을 합창하며 강조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70년이 지났어도 출범 당시의 '동맹 정신'이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죠.

동맹 토대 변화…'정체성' 혼란
지난 70년 세월은 바로 그 '동맹 정신'의 토대가 바뀌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부활을 막고 동유럽을 장악했던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며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과 서유럽 각국의 공통된 위기 인식이 바로 나토 결성의 토대였죠. 그런데 베를린 장벽에서 시작됐던 냉전 해체가 동유럽을 넘어 결국 소련 체제 붕괴로 나아가면서 나토는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됩니다. 포스트 냉전 시대, 나토는 옛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시작으로 아랍의 봄 시절 리비아 등 스스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규정한 정권의 억압에 군사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이슬람 국가 ISIS를 비롯한 이슬람 무장단체를 상대로 대테러전도 적극적으로 진행했죠. 처음에 12개 나라뿐이었던 회원국도 동유럽은 물론 옛 소련에 속했던 지역까지 받아들이면서 29개국이 가입한 세계 최대 군사동맹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동맹 확대 과정은 동시에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의 시리아 상황입니다. ISIS 격퇴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쿠르드 민병대 세력은 미국의 지원 아래 활동했죠. 그런데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자국 내 분리주의 운동을 이끌고 있는 쿠르드 노동자당(PKK)과의 연계를 이유로 중립지대를 확보하겠다며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 장악 지역 공격에 나섰습니다. 세력 균형을 담당했던 미국은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둔군을 철수시켰습니다. 프랑스는 터키의 행동이 대테러전을 함께 수행한 동료들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비난하며 사태의 발단이 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혼란 상황에 대해 1950년대 수에즈 운하 사태부터 이라크전 참전 논란 등을 언급하며 나토의 강점이 논란을 극복할 능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핵심 임무에 협력해 온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극복 가능한 차이일 뿐이라는 겁니다.

나토 "정치적 강화 모색하겠다"
스톨렌베르그 사무총장은 앞으로 나토의 정치적 측면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의 과정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시작하는 데 회원국들이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지만, 정치인들은 "수사에 능할 뿐 실체는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이번 회담 기간 오갔던 각국 정상들의 나토에 대한 회의적 발언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입니다. 반면, 나토의 경우 "수사가 언제나 훌륭하지 않을 수 있어도 실체는 완벽하다"고 단언했습니다.
여러 정치적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결국 나토 깃발 아래 단합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인 셈입니다.
미래를 둘러싸고 날로 높아지는 회의적 시각을 나토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현재까지는 판단을 유보. 앞으로 자세히 지켜봐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참조〉
나토 런던 선언 (https://www.nato.int/cps/en/natohq/official_texts_171584.htm?selectedLocale=en)
옌스 스톨렌베르크 사무총장 기자회견 (https://www.nato.int/cps/en/natohq/opinions_171554.htm)
북대서양 조약(https://www.nato.int/cps/en/natohq/official_texts_171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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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나토의 ‘단결’ 선언…현실은?
    • 입력 2019-12-06 07:03:34
    팩트체크K

제70주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기념 촬영(지난 4일/영국)

'런던 선언'이 강조한 나토 '단결'... 현실은 과연?
영국 런던 북서부 교외에 위치한 왓퍼드에서 열렸던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나토) 정상회의가 현지 시간 4일 '런던 선언'을 채택하고 폐막했습니다. 모두 9개 항으로 이뤄진 '런던 선언'은 첫 번째 항부터 '단결과 통합 그리고 화합은 우리 동맹의 주춧돌 원칙'(Solidarity, unity, and cohesion are cornerstone principles of our Alliance)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선언'은 이후에서도 29개 나토 회원국들의 공동 행동을 유독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창설 70주년을 맞은 나토는 과연 '선언' 대로 단합하고 있을까요?

시작은 냉전…'올 포원, 원 포 올(All for one, One for all)' 정신
올해 정상회담은 냉전 종식 30주년을 맞아 최초로 나토 사령부가 있던 곳을 회의 장소로 택했습니다. 1949년 체결된 북대서양 조약, 이른바 워싱턴 조약을 근거로 했던 나토가 첨예했던 미국과 소련 간 대결의 산물임을 되새긴 겁니다. 여기에는 출범 당시의 '정신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어떤 정신이었을까요?

워싱턴 조약 5조를 살펴볼까요?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있는 하나 또는 복수의 회원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은 모든 회원국을 상대로 한 공격으로 간주한다'(an armed attack against one or more of them in Europe or North America shall be considered an attack against them all)는 내용이 있습니다. 집단 안보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이죠.
실제, 정상회담 주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 역시 이번 회담의 모토를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One for all, and all for one)라고 밝혔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나왔던 구호로 영국에서 장기 공연됐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탄광 노동자들이 '영원한 단결'(Solidarity forever)을 합창하며 강조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70년이 지났어도 출범 당시의 '동맹 정신'이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죠.

동맹 토대 변화…'정체성' 혼란
지난 70년 세월은 바로 그 '동맹 정신'의 토대가 바뀌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부활을 막고 동유럽을 장악했던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며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과 서유럽 각국의 공통된 위기 인식이 바로 나토 결성의 토대였죠. 그런데 베를린 장벽에서 시작됐던 냉전 해체가 동유럽을 넘어 결국 소련 체제 붕괴로 나아가면서 나토는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됩니다. 포스트 냉전 시대, 나토는 옛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시작으로 아랍의 봄 시절 리비아 등 스스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규정한 정권의 억압에 군사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이슬람 국가 ISIS를 비롯한 이슬람 무장단체를 상대로 대테러전도 적극적으로 진행했죠. 처음에 12개 나라뿐이었던 회원국도 동유럽은 물론 옛 소련에 속했던 지역까지 받아들이면서 29개국이 가입한 세계 최대 군사동맹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동맹 확대 과정은 동시에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의 시리아 상황입니다. ISIS 격퇴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쿠르드 민병대 세력은 미국의 지원 아래 활동했죠. 그런데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자국 내 분리주의 운동을 이끌고 있는 쿠르드 노동자당(PKK)과의 연계를 이유로 중립지대를 확보하겠다며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 장악 지역 공격에 나섰습니다. 세력 균형을 담당했던 미국은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둔군을 철수시켰습니다. 프랑스는 터키의 행동이 대테러전을 함께 수행한 동료들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비난하며 사태의 발단이 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혼란 상황에 대해 1950년대 수에즈 운하 사태부터 이라크전 참전 논란 등을 언급하며 나토의 강점이 논란을 극복할 능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핵심 임무에 협력해 온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극복 가능한 차이일 뿐이라는 겁니다.

나토 "정치적 강화 모색하겠다"
스톨렌베르그 사무총장은 앞으로 나토의 정치적 측면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의 과정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시작하는 데 회원국들이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지만, 정치인들은 "수사에 능할 뿐 실체는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이번 회담 기간 오갔던 각국 정상들의 나토에 대한 회의적 발언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입니다. 반면, 나토의 경우 "수사가 언제나 훌륭하지 않을 수 있어도 실체는 완벽하다"고 단언했습니다.
여러 정치적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결국 나토 깃발 아래 단합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인 셈입니다.
미래를 둘러싸고 날로 높아지는 회의적 시각을 나토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현재까지는 판단을 유보. 앞으로 자세히 지켜봐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참조〉
나토 런던 선언 (https://www.nato.int/cps/en/natohq/official_texts_171584.htm?selectedLocale=en)
옌스 스톨렌베르크 사무총장 기자회견 (https://www.nato.int/cps/en/natohq/opinions_171554.htm)
북대서양 조약(https://www.nato.int/cps/en/natohq/official_texts_171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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