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세계경영 신화 김우중 전 회장…불꽃 같았던 83년 인생

입력 2019.12.10 (06:28) 수정 2019.12.1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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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향년 83세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재계 2위 그룹의 총수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를 내고 해외도피 생활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보냈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의 성공신화는 만 30세 때인 1967년부터 싹을 틔웠다.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근무하던 '청년 김우중'은 대우실업을 창업한뒤, 급성장했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의 주력으로 성장시켰다. 김 전 회장의 거침없는 확장 경영의 결과 창업 15년만에 대우는 자산 규모 국내 4대 재벌로 성장했다.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당시 고인은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보 반 키에트 베트남 총리와 악수하고 있는 김우중 전 회장보 반 키에트 베트남 총리와 악수하고 있는 김우중 전 회장

그러나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을 불러왔다.

1998년 당시 그룹 구조조정의 최우선 핵심사안으로 꼽혔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월과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천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말년에 '제2의 고향' 베트남 등을 오가며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GYBM)에 주력하며 명예회복에 나섰다.

전경련 회장시절의 김우중 전 회장전경련 회장시절의 김우중 전 회장

김 전 회장은 맹자 '진심편'(盡心編)을 자주 인용하곤 했다. "得天下英材而敎育之三樂也."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교육자의 기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그는 한국에서 투병에 들어간 2017년 말 이전까지 번찌 골프장에서 머물면서 GYBM의 성공 안착을 위해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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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0 06:28:48
    • 수정2019-12-10 07:57:15
    사회
9일 향년 83세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재계 2위 그룹의 총수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를 내고 해외도피 생활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보냈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의 성공신화는 만 30세 때인 1967년부터 싹을 틔웠다.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근무하던 '청년 김우중'은 대우실업을 창업한뒤, 급성장했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의 주력으로 성장시켰다. 김 전 회장의 거침없는 확장 경영의 결과 창업 15년만에 대우는 자산 규모 국내 4대 재벌로 성장했다.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당시 고인은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보 반 키에트 베트남 총리와 악수하고 있는 김우중 전 회장
그러나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을 불러왔다.

1998년 당시 그룹 구조조정의 최우선 핵심사안으로 꼽혔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월과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천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말년에 '제2의 고향' 베트남 등을 오가며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GYBM)에 주력하며 명예회복에 나섰다.

전경련 회장시절의 김우중 전 회장
김 전 회장은 맹자 '진심편'(盡心編)을 자주 인용하곤 했다. "得天下英材而敎育之三樂也."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교육자의 기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그는 한국에서 투병에 들어간 2017년 말 이전까지 번찌 골프장에서 머물면서 GYBM의 성공 안착을 위해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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