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으로 혼란에 빠진 프랑스, 과연 우리는?

입력 2019.12.10 (07:01) 수정 2019.12.1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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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프랑스 정부가 연금개혁에 나서자 프랑스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섰다. 철도 노조와 항공 관제사는 물론 지하철 노조, 교직원 노조까지 가세해 자칫 프랑스가 마비상태에 빠질 위험에 처했다. 게다가 과거 노란조끼 시위 같은 과격 시위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사실 프랑스에서 연금개혁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는 40개가 넘는 복잡한 연금체계를 갖고 있어서 형평성은 물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체계여서 날이 갈수록 연금 재정의 안정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연금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1995년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연금 개편에 나섰다가 거센 반발로 연금개혁이 무산되고 정권도 심각한 레임덕에 처했다. 그 뒤에도 수차례 연금 개혁에 나섰지만, 결국 제대로 연금을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은 2010년 사르코지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시 연금 문제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연금개혁 갈등은 일찌감치 연금 제도를 도입했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떠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탈리아도 수차례 연금 개혁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정권이 흔들리는 레임덕을 경험했다. 하지만 너무나 후한 연금제도에 대해 유럽연합의 압박이 계속되자 이탈리아도 어쩔 수 없이 연금개혁에 나섰고, 그 결과 노후 연금은 크게 줄어들었다.

924배라는 천문학적인 수익비의 비밀

연금은 우리의 노후를 지켜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나라에서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애초부터 각국이 연금이 처음 설계할 때 그 당시 기성세대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예상치 못하게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연금 재정이 예상보다도 더 크게 악화되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최초의 사회보장제 수혜자로 기록된 이다 메이 풀러(Ida May Fuller)는 1939년 은퇴해서 1975년 본인의 나이 100세로 숨질 때까지 연금으로 생활했다. 그런데 본인이 납입한 사회보장세는 고작 24.75달러에 불과했던 것에 반해 받은 혜택은 무려 2만 2,889달러나 되었다. 무려 924배나 되는 수익비를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놀라운 수익비는 설계 당시의 기성세대를 위한 후한 연금 설계 덕분이다.

국민연금 연구원의 논문을 보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도 1928년생 여성의 경우 수익비가 72배, 즉 낸 연금보험료의 72배를 받아가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평생에 걸친 연평균 수익률이 27.2%로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런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인 24%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같은 수익비가 1990년생 남성으로 가면 1.62배로 뚝 떨어지게 된다.

연금의 두 가지 길.. 대립인가? 사회적 타협인가?

이처럼 설계 단계에서 워낙 후하게 설계됐던 연금은 세대 간, 직종 간, 계층 간 사회적 대립을 키우는 요인이 되어 왔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은 이 같은 연금 격차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대립이 일어났고, 그 결과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도 연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자칫하다가는 이런 갈등에 빠질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워낙 많은 돈이 연금보험료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최근 재정 추계대로 2041년부터 국민연금이 재정수지 적자로 돌아서면 그 갈등이 표면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청년 세대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모든 세대를 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는 비교적 슬기롭게 연금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독일의 연금 개혁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독일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나 남유럽 같은 극단적인 대립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독일이 그나마 갈등이 적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연금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격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사회적 타협점을 찾아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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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12-10 07:57:15
    취재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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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가 연금개혁에 나서자 프랑스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섰다. 철도 노조와 항공 관제사는 물론 지하철 노조, 교직원 노조까지 가세해 자칫 프랑스가 마비상태에 빠질 위험에 처했다. 게다가 과거 노란조끼 시위 같은 과격 시위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사실 프랑스에서 연금개혁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는 40개가 넘는 복잡한 연금체계를 갖고 있어서 형평성은 물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체계여서 날이 갈수록 연금 재정의 안정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연금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1995년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연금 개편에 나섰다가 거센 반발로 연금개혁이 무산되고 정권도 심각한 레임덕에 처했다. 그 뒤에도 수차례 연금 개혁에 나섰지만, 결국 제대로 연금을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은 2010년 사르코지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시 연금 문제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연금개혁 갈등은 일찌감치 연금 제도를 도입했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떠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탈리아도 수차례 연금 개혁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정권이 흔들리는 레임덕을 경험했다. 하지만 너무나 후한 연금제도에 대해 유럽연합의 압박이 계속되자 이탈리아도 어쩔 수 없이 연금개혁에 나섰고, 그 결과 노후 연금은 크게 줄어들었다.

924배라는 천문학적인 수익비의 비밀

연금은 우리의 노후를 지켜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나라에서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애초부터 각국이 연금이 처음 설계할 때 그 당시 기성세대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예상치 못하게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연금 재정이 예상보다도 더 크게 악화되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최초의 사회보장제 수혜자로 기록된 이다 메이 풀러(Ida May Fuller)는 1939년 은퇴해서 1975년 본인의 나이 100세로 숨질 때까지 연금으로 생활했다. 그런데 본인이 납입한 사회보장세는 고작 24.75달러에 불과했던 것에 반해 받은 혜택은 무려 2만 2,889달러나 되었다. 무려 924배나 되는 수익비를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놀라운 수익비는 설계 당시의 기성세대를 위한 후한 연금 설계 덕분이다.

국민연금 연구원의 논문을 보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도 1928년생 여성의 경우 수익비가 72배, 즉 낸 연금보험료의 72배를 받아가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평생에 걸친 연평균 수익률이 27.2%로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런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인 24%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같은 수익비가 1990년생 남성으로 가면 1.62배로 뚝 떨어지게 된다.

연금의 두 가지 길.. 대립인가? 사회적 타협인가?

이처럼 설계 단계에서 워낙 후하게 설계됐던 연금은 세대 간, 직종 간, 계층 간 사회적 대립을 키우는 요인이 되어 왔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은 이 같은 연금 격차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대립이 일어났고, 그 결과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도 연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자칫하다가는 이런 갈등에 빠질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워낙 많은 돈이 연금보험료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최근 재정 추계대로 2041년부터 국민연금이 재정수지 적자로 돌아서면 그 갈등이 표면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청년 세대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모든 세대를 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는 비교적 슬기롭게 연금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독일의 연금 개혁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독일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나 남유럽 같은 극단적인 대립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독일이 그나마 갈등이 적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연금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격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사회적 타협점을 찾아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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