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타이완 대선 한 달 앞으로…‘시진핑’의 역설

입력 2019.12.11 (13:48) 수정 2019.12.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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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나라(타이완)가 진정한 독립 개체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希望有一天,我們的國家可以被當成一個真正獨立的個體來看待

지난해 11월 열린 타이완 금마장(金馬奬) 영화제는 이 수상 소감 한마디에 발칵 뒤집혔다. 반중(反中) 성향 대학생들의 입법원(국회 격) 점거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상을 받게 된 푸위 감독이 '타이완 독립'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타이완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곧장 발끈했다. 중국 배우들은 이듬해인 지난달 열린 금마장을 보이콧했고 기업들이 줄줄이 후원을 취소하는 등 후폭풍은 1년이 지나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이 수상 소감이 1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내년 1월 11일 타이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의 선거 캠프가 최근 내놓은 홍보 영상 속에서다. '세계를 통해 타이완을 사랑하게 되다《從世界愛上台灣》'라는 제목의 영상은 타이완 젊은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타이완의 자랑스러움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으로 마지막 장소가 홍콩이다.

밤낮으로 최루탄이 터지는 홍콩의 시위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며 청년의 독백이 이어진다. "타이완에서 우리는 쉽지 않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타이완이라는 국가가 진정한 독립 개체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很希望有一天台灣這個國家可以被當作一個真正獨立的個體來看待

지난해 금마장 영화제에서 ‘타이완 독립’을 언급해 큰 파장을 불러온 수상 소감(좌)을 연상케 하는 차이잉원 총통의 대선 홍보 영상 속 내레이션(우) [출처 : 유튜브 캡처]지난해 금마장 영화제에서 ‘타이완 독립’을 언급해 큰 파장을 불러온 수상 소감(좌)을 연상케 하는 차이잉원 총통의 대선 홍보 영상 속 내레이션(우) [출처 : 유튜브 캡처]

"중국 무서운 나라"…홍콩 보며 "일국양제 통일 반대"

'독립 성향'으로 평가받는 차이잉원 총통의 정부도 대외적으로 '독립 선언'을 추구하지는 않고 있다. 차이잉원 정부의 기조는 양안(兩岸·중국과 타이완) 관계의 '현상 유지'다. 만약 타이완이 독립을 선언한다고 해도 현재의 정치 지형상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대중국 정책을 담당하는 타이완 행정원 대륙위원회의 지난 10월 조사에서도 타이완인 87.4%가 양안 관계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탈(脫)중국화' 즉,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차이 정부의 현실적인 타협점이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직설적으로 '독립'까지 언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홍콩 시위대를 지지합니다. 중국은 아주 무서운 나라거든요. 타이완의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두려워 중국에 반항하지 않으려 해요.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하나가 되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지난달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타이완대학에서 만난 판민쩐 씨는 홍콩 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 6월부터 이어지는 홍콩 사태를 보는 타이완인들의 마음은 무겁다.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타이완'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중국은 타이완에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방식으로 통일하자며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이 약속받은 50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은 타이완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새해 벽두인 1월 2일,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며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고 타이완을 향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당장 일국양제가 실시될 것 같은 두려움에, 일국양제식 통일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타이완인들은 올해 크게 늘어 10명 중 9명꼴에 달하게 됐다.


中 '눈엣가시' 빼려다… 타이완 vs 중국 싸움으로 변해

선거 때마다 '주권 수호'를 앞세워온 민진당은 이번에도 홍콩의 혼란과 중국의 압박을 통한 반중 정서를 성공적으로 이슈화했다. 초반부터 시위대 지지 의사를 밝혀온 차이 총통은 홍콩을 통해 중국의 '일국양제'는 실패했다는 게 입증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이완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은 '주권'이 있기 때문"이라며 반중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중국은 차이잉원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다. 차이 정부는 '92컨센서스'(92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를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로 중국과 갈등을 고조시켜 왔다.차이 총통 집권 이후 양안의 당국 간 교류는 완전히 멈춘 상태이다. 판스핑 국립타이완사범대 교수는 차이 정부의 현상 유지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중국'으로 통일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독립의 추구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대선을 앞두고 군사·경제·외교 등 전방위로 타이완을 몰아붙였다. 지난달 중국이 자체 기술로 만든 첫 항공모함으로 타이완해협을 통과하는 무력 시위를 벌였고, 막대한 경제력을 앞세워 타이완의 몇 안 남은 수교국을 빼앗아 외교적으로 고립도 시켰다. 선거를 6개월 앞둔 지난 8월 중국 본토인들에게 타이완 여행 금지령을 내린 것은 타이완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란 해석이 많다.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이같은 압박은 타이완 총통 선거 구도를 '민진당 대 국민당'이 아닌 '타이완과 중국'의 싸움으로 바꿔놓아 버렸다. 여기에 홍콩 사태에 중국이 강경 일변도로 대처하면서 차이잉원이 대세가 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안정적인 양안 관계를 추구하는 국민당은 반중 정서가 높아지는 데 효과적으로 받아칠 전략이 없어보이는 상황이다.

그 결과 차이 총통은 재선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다. 각종 실정으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참패하고 올초만해도 차이의 지지율은 20%대에 머물렀지만 8월 이후엔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10일 빈과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50.8%를 기록했다. 국민당 대선 후보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의 15.2% 지지율과는 30% 넘게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양안 갈등, 중국 공산당이 타이완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

공유식 한국외대 대만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양안 갈등을 "중국이 타이완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타이완은 1949년 국민당 장제스를 따라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외성인(外省人) 세대가 줄고 타이완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종' 내성인(內省人)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중국인이라는 정체성과 '하나의 중국'의 개념은 약해지고 '우리는 중국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커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은 타이완의 변화에서 오는 반발을 일부 극렬 독립분자의 움직임이나 외세의 영향으로만 치부하고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6개월간 지속되는 홍콩 사태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 민주주의를 겪은 홍콩을 중국이 이해하지 않으면서 홍콩의 갈등은 해를 넘기고서도 계속될 것 같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타이완 대선도 중국이 타이완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차이잉원의 선거를 돕는 최대 조력자가 시진핑 주석이라는 세간의 말을 스스로 입증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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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1 13:48:25
    • 수정2019-12-12 09:03:07
    특파원 리포트
"언젠가 우리나라(타이완)가 진정한 독립 개체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希望有一天,我們的國家可以被當成一個真正獨立的個體來看待

지난해 11월 열린 타이완 금마장(金馬奬) 영화제는 이 수상 소감 한마디에 발칵 뒤집혔다. 반중(反中) 성향 대학생들의 입법원(국회 격) 점거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상을 받게 된 푸위 감독이 '타이완 독립'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타이완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곧장 발끈했다. 중국 배우들은 이듬해인 지난달 열린 금마장을 보이콧했고 기업들이 줄줄이 후원을 취소하는 등 후폭풍은 1년이 지나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이 수상 소감이 1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내년 1월 11일 타이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의 선거 캠프가 최근 내놓은 홍보 영상 속에서다. '세계를 통해 타이완을 사랑하게 되다《從世界愛上台灣》'라는 제목의 영상은 타이완 젊은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타이완의 자랑스러움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으로 마지막 장소가 홍콩이다.

밤낮으로 최루탄이 터지는 홍콩의 시위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며 청년의 독백이 이어진다. "타이완에서 우리는 쉽지 않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타이완이라는 국가가 진정한 독립 개체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很希望有一天台灣這個國家可以被當作一個真正獨立的個體來看待

지난해 금마장 영화제에서 ‘타이완 독립’을 언급해 큰 파장을 불러온 수상 소감(좌)을 연상케 하는 차이잉원 총통의 대선 홍보 영상 속 내레이션(우) [출처 : 유튜브 캡처]
"중국 무서운 나라"…홍콩 보며 "일국양제 통일 반대"

'독립 성향'으로 평가받는 차이잉원 총통의 정부도 대외적으로 '독립 선언'을 추구하지는 않고 있다. 차이잉원 정부의 기조는 양안(兩岸·중국과 타이완) 관계의 '현상 유지'다. 만약 타이완이 독립을 선언한다고 해도 현재의 정치 지형상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대중국 정책을 담당하는 타이완 행정원 대륙위원회의 지난 10월 조사에서도 타이완인 87.4%가 양안 관계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탈(脫)중국화' 즉,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차이 정부의 현실적인 타협점이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직설적으로 '독립'까지 언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홍콩 시위대를 지지합니다. 중국은 아주 무서운 나라거든요. 타이완의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두려워 중국에 반항하지 않으려 해요.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하나가 되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지난달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타이완대학에서 만난 판민쩐 씨는 홍콩 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 6월부터 이어지는 홍콩 사태를 보는 타이완인들의 마음은 무겁다.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타이완'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중국은 타이완에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방식으로 통일하자며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이 약속받은 50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은 타이완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새해 벽두인 1월 2일, 무력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며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으라고 타이완을 향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당장 일국양제가 실시될 것 같은 두려움에, 일국양제식 통일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타이완인들은 올해 크게 늘어 10명 중 9명꼴에 달하게 됐다.


中 '눈엣가시' 빼려다… 타이완 vs 중국 싸움으로 변해

선거 때마다 '주권 수호'를 앞세워온 민진당은 이번에도 홍콩의 혼란과 중국의 압박을 통한 반중 정서를 성공적으로 이슈화했다. 초반부터 시위대 지지 의사를 밝혀온 차이 총통은 홍콩을 통해 중국의 '일국양제'는 실패했다는 게 입증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이완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은 '주권'이 있기 때문"이라며 반중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중국은 차이잉원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다. 차이 정부는 '92컨센서스'(92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를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로 중국과 갈등을 고조시켜 왔다.차이 총통 집권 이후 양안의 당국 간 교류는 완전히 멈춘 상태이다. 판스핑 국립타이완사범대 교수는 차이 정부의 현상 유지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중국'으로 통일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독립의 추구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대선을 앞두고 군사·경제·외교 등 전방위로 타이완을 몰아붙였다. 지난달 중국이 자체 기술로 만든 첫 항공모함으로 타이완해협을 통과하는 무력 시위를 벌였고, 막대한 경제력을 앞세워 타이완의 몇 안 남은 수교국을 빼앗아 외교적으로 고립도 시켰다. 선거를 6개월 앞둔 지난 8월 중국 본토인들에게 타이완 여행 금지령을 내린 것은 타이완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란 해석이 많다.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이같은 압박은 타이완 총통 선거 구도를 '민진당 대 국민당'이 아닌 '타이완과 중국'의 싸움으로 바꿔놓아 버렸다. 여기에 홍콩 사태에 중국이 강경 일변도로 대처하면서 차이잉원이 대세가 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안정적인 양안 관계를 추구하는 국민당은 반중 정서가 높아지는 데 효과적으로 받아칠 전략이 없어보이는 상황이다.

그 결과 차이 총통은 재선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다. 각종 실정으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참패하고 올초만해도 차이의 지지율은 20%대에 머물렀지만 8월 이후엔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10일 빈과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50.8%를 기록했다. 국민당 대선 후보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의 15.2% 지지율과는 30% 넘게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양안 갈등, 중국 공산당이 타이완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

공유식 한국외대 대만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양안 갈등을 "중국이 타이완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타이완은 1949년 국민당 장제스를 따라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외성인(外省人) 세대가 줄고 타이완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종' 내성인(內省人)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중국인이라는 정체성과 '하나의 중국'의 개념은 약해지고 '우리는 중국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커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은 타이완의 변화에서 오는 반발을 일부 극렬 독립분자의 움직임이나 외세의 영향으로만 치부하고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6개월간 지속되는 홍콩 사태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 민주주의를 겪은 홍콩을 중국이 이해하지 않으면서 홍콩의 갈등은 해를 넘기고서도 계속될 것 같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타이완 대선도 중국이 타이완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차이잉원의 선거를 돕는 최대 조력자가 시진핑 주석이라는 세간의 말을 스스로 입증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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