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의장과 아들

입력 2019.12.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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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아들 공천"

20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0일, 저녁 8시 38분.

문희상 국회의장은 결국,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속개를 선언했습니다.

막판까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여야 합의를 주문했지만, 민주당과 한국당, 두 당의 합의가 최종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은 항의했습니다. 제1야당을 뺀, 이른바 '4+1 협의체'가 논의한 예산안 상정은 무효라는 겁니다.


"문희상 의장 사퇴하라, 사퇴하라, 사퇴하라!"

이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뒤이은 한국당 의원들의 구호.

"아들 공천! 공천 대가!"

이건 뭘까요?

한국당 "의장은 예산안 상정, 민주당은 아들 공천"

20대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문희상.

15대국회를 제외하고, 경기도 의정부에서만 내리 6선을 한 민주당의 거물 정치인입니다. 대중에겐 배우 이하늬의 외삼촌으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본회의 속개를 선언하고 있다문희상 국회의장이 본회의 속개를 선언하고 있다

그 날,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구호 속 '아들'은 문희상 의장의 장남, 문석균 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상임부위원장입니다.

한국당 의원들의 "아들 공천, 공천 대가"를 좀 길게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민주당은 문 의장의 아들을 문 의장의 지역구인 의정부에 공천해주고, 의장은 그 대가로 민주당의 예산안을 상정해준 것 아니냐?"

민주당 소속이었던 문희상 의장의 지역구는 경기도 의정부갑입니다.

문 의장은 지난해 7월 국회의장에 당선됐고, 국회법에 따라 당적이 없어지면서 겸임하고 있던 의정부갑 지역위원장에서도 물러납니다.

지난해 7월, 국회의장에 당선된 문희상 의장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지난해 7월, 국회의장에 당선된 문희상 의장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6개월 뒤 의정부갑 지역위원회의 상임부위원장에 문 의장의 아들이 임명됩니다.

문 의장은 의정부에서만 6선을 한 지역 맹주이고, 관례상 의장을 역임한 뒤엔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까지는 '팩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당 의원들의 주장대로 '지역구 세습'인 걸까요?

그리고 이 지역구 세습을 위해 문 의장이 '아들 공천'과 '예산안 상정'을 거래한 걸까요?

반론① 아버지가 의장인 게 과연 '프리미엄'일까?

당사자인 문석균 부위원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의정부갑 지역위원회와 의장실 취재를 종합해보면, 문 부위원장은 내년 총선 출마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접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취재원들은 문 부위원장이 아버지와 상관없이, 원래 정치에 뜻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버지 문 의장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 출신을 역임한 게 그 증거라는 겁니다. 또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본인은 정치를 예전부터 하고 싶어 했는데 오히려 견제만 많이 받고 있다"며 "그렇게 따지면 본인이 하고 싶어 했던 진로가 막혔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당에서 페널티가 되지 않겠느냐"면서 "자연인인 아들이 자기 정치를 하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 다른 의장실 관계자도 "의장님 아들이 선거에 나가서 문희상 '프리미엄'이 많을지 '디스카운트'가 많을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지역 맹주이자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란 '프리미엄'이 더 강할지, 지역구 세습 논란과 계속 맞서야 하는 '디스카운트'가 더 강할지는 분명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반론② 부위원장만 30명…당 활동도 오래전부터

'지역구 세습' 논란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별다른 정치활동을 하지 않던 문석균 부위원장이 지난해 말 '갑자기' 상임부위원장에 임명됐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정부갑 지역위원회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지역위원회에 '위원장'이 아닌 '부위원장'은 30명 정도에 달하는데, 문 부위원장도 그중 하나라는 겁니다.

다만, 지난해 말 '상임' 그러니까 일종의 '수석 부위원장'에 임명된 거고, 그전에도 부위원장으로서 활동은 쭉 해왔다는 설명입니다.

상임부위원장의 임명 권한은 지역위원회 위원장에게 있습니다.

문희상 의장 선출로 공석이 된 의정부갑 지역위원장의 직무대행을 맡은 박창규 위원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능력도 있다고 봤고, 정치에 대한 꿈도 있는 것 같아 임명했다"고 말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당선이 되고 안되는 건 주민이 판단할 부분"이라면서, 다른 당원도 경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장의 '후광 효과'로 문 부위원장이 훨씬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엔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인 김경협 의원도 통화에서 "본인의 능력과 자질, 그게 중요하다"면서 "아버지가 의장이라고 특혜를 주는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본인이 하겠다고 하면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하고, 경선 주자가 있으면 경선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그게 딱 한국당 생각 수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내 불안한 시선도…"좋은 모습은 아냐"

하지만 당내에서 지역구 세습 논란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분명 존재합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아버지가 의장이라고 선거에 못 나오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강제적으로 그럴 수는 없는데 감안이 되지 않겠느냐"면서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당직자도 "지역 내에서 평판이 좋진 않은 것 같다"면서 "실질적으로 서점을 10년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지역위원장보다 본인이 더 나서는 모습에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일, 문희상 국회의장 옆에서 3당 원내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지난 10일, 문희상 국회의장 옆에서 3당 원내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습, 매우 예민한 단어입니다.

'불공정'에 대한 분노 지수가 부쩍 오른, 요즘 한국 사회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입법부 수장을 역임한 아버지 지역구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의장의 아들,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총선 룰을 확정한 민주당의 공천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현시점에서의 '세습 공천' 논란은 실체보다 심증에 가깝습니다.

더 나아가 아들의 공천을 확약받으려고, 국회의장이 무리하게 예산안을 상정했다는 주장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더욱 어렵습니다.

아버지가 의장이면, 아들은 응당 정치를 포기해야 하는 건지도 고민해봐야 할 지점입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10일, 예산안이 통과된 뒤 몸 상태가 악화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의장의 컨디션이 급격히 악화한 건 다른 것보다도 '아들 공천' 구호의 영향이 컸을 거라고, 의장실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지역구 세습 논란에 마침표를 찍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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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의장과 아들
    • 입력 2019-12-12 07:00:16
    여심야심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아들 공천"

20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0일, 저녁 8시 38분.

문희상 국회의장은 결국,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속개를 선언했습니다.

막판까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여야 합의를 주문했지만, 민주당과 한국당, 두 당의 합의가 최종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은 항의했습니다. 제1야당을 뺀, 이른바 '4+1 협의체'가 논의한 예산안 상정은 무효라는 겁니다.


"문희상 의장 사퇴하라, 사퇴하라, 사퇴하라!"

이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뒤이은 한국당 의원들의 구호.

"아들 공천! 공천 대가!"

이건 뭘까요?

한국당 "의장은 예산안 상정, 민주당은 아들 공천"

20대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문희상.

15대국회를 제외하고, 경기도 의정부에서만 내리 6선을 한 민주당의 거물 정치인입니다. 대중에겐 배우 이하늬의 외삼촌으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본회의 속개를 선언하고 있다
그 날,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구호 속 '아들'은 문희상 의장의 장남, 문석균 민주당 경기 의정부갑 상임부위원장입니다.

한국당 의원들의 "아들 공천, 공천 대가"를 좀 길게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민주당은 문 의장의 아들을 문 의장의 지역구인 의정부에 공천해주고, 의장은 그 대가로 민주당의 예산안을 상정해준 것 아니냐?"

민주당 소속이었던 문희상 의장의 지역구는 경기도 의정부갑입니다.

문 의장은 지난해 7월 국회의장에 당선됐고, 국회법에 따라 당적이 없어지면서 겸임하고 있던 의정부갑 지역위원장에서도 물러납니다.

지난해 7월, 국회의장에 당선된 문희상 의장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6개월 뒤 의정부갑 지역위원회의 상임부위원장에 문 의장의 아들이 임명됩니다.

문 의장은 의정부에서만 6선을 한 지역 맹주이고, 관례상 의장을 역임한 뒤엔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까지는 '팩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당 의원들의 주장대로 '지역구 세습'인 걸까요?

그리고 이 지역구 세습을 위해 문 의장이 '아들 공천'과 '예산안 상정'을 거래한 걸까요?

반론① 아버지가 의장인 게 과연 '프리미엄'일까?

당사자인 문석균 부위원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의정부갑 지역위원회와 의장실 취재를 종합해보면, 문 부위원장은 내년 총선 출마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접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취재원들은 문 부위원장이 아버지와 상관없이, 원래 정치에 뜻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버지 문 의장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 출신을 역임한 게 그 증거라는 겁니다. 또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본인은 정치를 예전부터 하고 싶어 했는데 오히려 견제만 많이 받고 있다"며 "그렇게 따지면 본인이 하고 싶어 했던 진로가 막혔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당에서 페널티가 되지 않겠느냐"면서 "자연인인 아들이 자기 정치를 하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 다른 의장실 관계자도 "의장님 아들이 선거에 나가서 문희상 '프리미엄'이 많을지 '디스카운트'가 많을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지역 맹주이자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란 '프리미엄'이 더 강할지, 지역구 세습 논란과 계속 맞서야 하는 '디스카운트'가 더 강할지는 분명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반론② 부위원장만 30명…당 활동도 오래전부터

'지역구 세습' 논란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별다른 정치활동을 하지 않던 문석균 부위원장이 지난해 말 '갑자기' 상임부위원장에 임명됐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정부갑 지역위원회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지역위원회에 '위원장'이 아닌 '부위원장'은 30명 정도에 달하는데, 문 부위원장도 그중 하나라는 겁니다.

다만, 지난해 말 '상임' 그러니까 일종의 '수석 부위원장'에 임명된 거고, 그전에도 부위원장으로서 활동은 쭉 해왔다는 설명입니다.

상임부위원장의 임명 권한은 지역위원회 위원장에게 있습니다.

문희상 의장 선출로 공석이 된 의정부갑 지역위원장의 직무대행을 맡은 박창규 위원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능력도 있다고 봤고, 정치에 대한 꿈도 있는 것 같아 임명했다"고 말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당선이 되고 안되는 건 주민이 판단할 부분"이라면서, 다른 당원도 경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장의 '후광 효과'로 문 부위원장이 훨씬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엔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인 김경협 의원도 통화에서 "본인의 능력과 자질, 그게 중요하다"면서 "아버지가 의장이라고 특혜를 주는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본인이 하겠다고 하면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하고, 경선 주자가 있으면 경선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그게 딱 한국당 생각 수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내 불안한 시선도…"좋은 모습은 아냐"

하지만 당내에서 지역구 세습 논란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분명 존재합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아버지가 의장이라고 선거에 못 나오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강제적으로 그럴 수는 없는데 감안이 되지 않겠느냐"면서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당직자도 "지역 내에서 평판이 좋진 않은 것 같다"면서 "실질적으로 서점을 10년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지역위원장보다 본인이 더 나서는 모습에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일, 문희상 국회의장 옆에서 3당 원내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습, 매우 예민한 단어입니다.

'불공정'에 대한 분노 지수가 부쩍 오른, 요즘 한국 사회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입법부 수장을 역임한 아버지 지역구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의장의 아들,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총선 룰을 확정한 민주당의 공천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현시점에서의 '세습 공천' 논란은 실체보다 심증에 가깝습니다.

더 나아가 아들의 공천을 확약받으려고, 국회의장이 무리하게 예산안을 상정했다는 주장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더욱 어렵습니다.

아버지가 의장이면, 아들은 응당 정치를 포기해야 하는 건지도 고민해봐야 할 지점입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10일, 예산안이 통과된 뒤 몸 상태가 악화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의장의 컨디션이 급격히 악화한 건 다른 것보다도 '아들 공천' 구호의 영향이 컸을 거라고, 의장실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지역구 세습 논란에 마침표를 찍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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