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수술③ “왜 피로 물들였어?” “어쩔 수 없어서…하하하”

입력 2019.12.16 (11:04) 수정 2019.12.1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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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수술, '초보 의사' 미용성형 실습 수단으로 악용

유령수술은 대형 성형병원에서 지금도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취재진이 만난 전문의들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그 배경에는 성형외과 업계가 지닌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도 다른 전문의와 마찬가지로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얻는다. 그런데 사실 대학병원에서는 미용성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수련의 과정에서 미용성형을 접해볼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전문의를 딴 후 첫 직장으로 대형 성형외과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이른바 실습해 볼 환자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령수술 시스템에서 이른바 멘토들의 수술을 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령수술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의를 딴 뒤 곧장 대형 성형병원에 취업한 한 전문의는 “초보 의사들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거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죠. 연차가 일단 몇 년 차 안 될 경우는, 아무리 본인이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수술이 능숙하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것만 가지고도 리스크가 일단 있는 거고.”라고 말했다.

역시 전문의를 취득한 뒤 첫 직장으로 대형 성형외과에서 일했던 박 모 씨. 물론 그도 유령수술을 했다. 그는 취재진에 “도덕적이지 않은 느낌이 좀 있었는데 이 업계에 발들인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사실 이게 뭐 이른바 손을 푼다고 하는데 그 케이스를 경험하는 게 사실 되게 은혜로운 일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원장의 지시로 유령 수술을 해야 했던 젊은 의사들은 병원장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친구들(젊은 의사들)은 이제 유령수술에 들어가서 자기 뭐랄까 수술적인 스킬은 늘고 또 그만큼 수입도 받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그래서 오히려 그 아래 일했던 친구들은 (원장을) 원망하거나 이러진 않더라고요.”

경험을 쌓길 원하는 초보의사와 유령의사가 필요한 대형병원. 이른바 WIN WIN이다.

취재팀은 유령 수술이 실제 이뤄지는 수술실 영상을 입수했다. 2013년 서울 강남에서 가슴 수술을 받았던 최 OO 씨. 상담을 했던 원장은 환자가 수면마취로 잠이 든 후에야 나타났다. 수술복도 입지 않은 채였다.


수술은 환자가 본 적 없던 젊은 의사가 집도했다. 전형적인 유령수술이었다. 환자 몸에서 지방을 뽑아내는 과정은 능숙하지 못했다. 젊은 의사는 지방이 너무 안 나온다며 망했다며 선배 의사와 대화한다.

수술 도중에 "원장님은 딱 찔렀는데 '아, 이거 근육이다.' 이렇게 알 수 있어요?"라고 묻기도 한다. 수술이 마무리될 때쯤 수술실에 들어온 대표원장은 "어? 왜 지방을 또 이렇게 피로 물들였어?"라고 묻고 젊은 의사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며 하하하하 웃는다. 영상 속에 담긴 대화다.

최 씨는 다리 등에 후유증이 생겼다. 학업, 결혼 모두 어그러졌다. 병원을 상대로 6년째 소송 중이다.


2014년 여고생 사망사건 이후 유령수술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5년 2월 보건복지부는 대리수술 방지책을 내놨다. 매년 1회 이상 미용성형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적발 시 행정조치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후 미용성형 실태조사는 없었다. 2016년엔 유령수술로 인한 자격정지를 12개월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자격 정지 사례를 묻자 최근 3년간 유령수술로 인해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성형외과 전문의는 단 한 명뿐이라는 대답이 왔다. 그렇다면 유령수술은 사라진 것일까?

'유령수술의 온상에서 나는 더 있을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한 성형외과 전문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국인의 얼굴 미학에 대한 연구 성과와 함께 평소 무분별한 미용성형을 경계했던 의사였다.


‘보통의 착한 의사로 살고 싶었던’ 그. 개인 사정으로 학교에서 나와 일반 병원의 봉직의로 들어간 지 불과 몇 달 채 되지 않아 SNS에 성형의료계 비리를 폭로하는 유서를 남겼다.

‘조직적으로 시행된 유령수술의 온상에서 나는 더 있을 수 없었다. 이 유령수술은 직원들 모두 알고 있어도 점차 그 나쁜 짓에 둔감해졌다. 수익을 위해서 공장 시스템은 더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는 의사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유령수술을 거부했다.

‘과다경쟁, 덤핑, 공장식 병원 운영, 대리 유령수술, 달콤한 과장허위성형광고, 모든 것이 악순환되고 있다. 나는 이 미용성형 악의 연대의 중심에서 더 이상 의사로서 가치를 찾기가 힘들었다.’

취재진은 현재 강남 성형외과에서 봉직의로 일하는 사람을 어렵게 만났다. 그는 극도로 조심했다. “손을 바꿔가면서 하는 건데. 의국에 모여 있으면 몇 번 방 지정하면 들어가는 거고. 그러면 다 세팅되어 있는 거죠. 수술 준비 다 되어 있고 마취되어 있는 상태죠.”라며 유령수술을 설명했다.

요즘도 유령수술이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요즘 성수기라.. (하루) 두 번에서 세 번. 많게는 한 네 번 정도까지. 예전보다는 많이 줄긴 했는데"라고 답했다. 본인이 최근까지도 하루 2~4회 유령수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유령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2019년 10월 4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유령수술과 관련해 전 대한성형외과 의사회 법제이사인 김선웅 원장이 나왔다. 그는 이 자리에서 "2000년 초반부터 500명 정도가 사망한 것 중에 유령수술에 의한 사망을 2~300명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근절이 안 되느냐. 유령수술이라는 범죄가 뭔지를 몰라요." 라고 말했다.

[연관기사] [시사기획 창] 유령수술, 누가 나를 수술했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4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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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령수술③ “왜 피로 물들였어?” “어쩔 수 없어서…하하하”
    • 입력 2019-12-16 11:04:38
    • 수정2019-12-16 13:09:23
    탐사K
유령수술, '초보 의사' 미용성형 실습 수단으로 악용

유령수술은 대형 성형병원에서 지금도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취재진이 만난 전문의들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그 배경에는 성형외과 업계가 지닌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도 다른 전문의와 마찬가지로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얻는다. 그런데 사실 대학병원에서는 미용성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수련의 과정에서 미용성형을 접해볼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전문의를 딴 후 첫 직장으로 대형 성형외과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이른바 실습해 볼 환자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령수술 시스템에서 이른바 멘토들의 수술을 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령수술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의를 딴 뒤 곧장 대형 성형병원에 취업한 한 전문의는 “초보 의사들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거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죠. 연차가 일단 몇 년 차 안 될 경우는, 아무리 본인이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수술이 능숙하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것만 가지고도 리스크가 일단 있는 거고.”라고 말했다.

역시 전문의를 취득한 뒤 첫 직장으로 대형 성형외과에서 일했던 박 모 씨. 물론 그도 유령수술을 했다. 그는 취재진에 “도덕적이지 않은 느낌이 좀 있었는데 이 업계에 발들인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사실 이게 뭐 이른바 손을 푼다고 하는데 그 케이스를 경험하는 게 사실 되게 은혜로운 일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원장의 지시로 유령 수술을 해야 했던 젊은 의사들은 병원장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친구들(젊은 의사들)은 이제 유령수술에 들어가서 자기 뭐랄까 수술적인 스킬은 늘고 또 그만큼 수입도 받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그래서 오히려 그 아래 일했던 친구들은 (원장을) 원망하거나 이러진 않더라고요.”

경험을 쌓길 원하는 초보의사와 유령의사가 필요한 대형병원. 이른바 WIN WIN이다.

취재팀은 유령 수술이 실제 이뤄지는 수술실 영상을 입수했다. 2013년 서울 강남에서 가슴 수술을 받았던 최 OO 씨. 상담을 했던 원장은 환자가 수면마취로 잠이 든 후에야 나타났다. 수술복도 입지 않은 채였다.


수술은 환자가 본 적 없던 젊은 의사가 집도했다. 전형적인 유령수술이었다. 환자 몸에서 지방을 뽑아내는 과정은 능숙하지 못했다. 젊은 의사는 지방이 너무 안 나온다며 망했다며 선배 의사와 대화한다.

수술 도중에 "원장님은 딱 찔렀는데 '아, 이거 근육이다.' 이렇게 알 수 있어요?"라고 묻기도 한다. 수술이 마무리될 때쯤 수술실에 들어온 대표원장은 "어? 왜 지방을 또 이렇게 피로 물들였어?"라고 묻고 젊은 의사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며 하하하하 웃는다. 영상 속에 담긴 대화다.

최 씨는 다리 등에 후유증이 생겼다. 학업, 결혼 모두 어그러졌다. 병원을 상대로 6년째 소송 중이다.


2014년 여고생 사망사건 이후 유령수술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5년 2월 보건복지부는 대리수술 방지책을 내놨다. 매년 1회 이상 미용성형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적발 시 행정조치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후 미용성형 실태조사는 없었다. 2016년엔 유령수술로 인한 자격정지를 12개월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자격 정지 사례를 묻자 최근 3년간 유령수술로 인해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성형외과 전문의는 단 한 명뿐이라는 대답이 왔다. 그렇다면 유령수술은 사라진 것일까?

'유령수술의 온상에서 나는 더 있을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한 성형외과 전문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국인의 얼굴 미학에 대한 연구 성과와 함께 평소 무분별한 미용성형을 경계했던 의사였다.


‘보통의 착한 의사로 살고 싶었던’ 그. 개인 사정으로 학교에서 나와 일반 병원의 봉직의로 들어간 지 불과 몇 달 채 되지 않아 SNS에 성형의료계 비리를 폭로하는 유서를 남겼다.

‘조직적으로 시행된 유령수술의 온상에서 나는 더 있을 수 없었다. 이 유령수술은 직원들 모두 알고 있어도 점차 그 나쁜 짓에 둔감해졌다. 수익을 위해서 공장 시스템은 더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는 의사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유령수술을 거부했다.

‘과다경쟁, 덤핑, 공장식 병원 운영, 대리 유령수술, 달콤한 과장허위성형광고, 모든 것이 악순환되고 있다. 나는 이 미용성형 악의 연대의 중심에서 더 이상 의사로서 가치를 찾기가 힘들었다.’

취재진은 현재 강남 성형외과에서 봉직의로 일하는 사람을 어렵게 만났다. 그는 극도로 조심했다. “손을 바꿔가면서 하는 건데. 의국에 모여 있으면 몇 번 방 지정하면 들어가는 거고. 그러면 다 세팅되어 있는 거죠. 수술 준비 다 되어 있고 마취되어 있는 상태죠.”라며 유령수술을 설명했다.

요즘도 유령수술이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요즘 성수기라.. (하루) 두 번에서 세 번. 많게는 한 네 번 정도까지. 예전보다는 많이 줄긴 했는데"라고 답했다. 본인이 최근까지도 하루 2~4회 유령수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유령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2019년 10월 4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유령수술과 관련해 전 대한성형외과 의사회 법제이사인 김선웅 원장이 나왔다. 그는 이 자리에서 "2000년 초반부터 500명 정도가 사망한 것 중에 유령수술에 의한 사망을 2~300명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근절이 안 되느냐. 유령수술이라는 범죄가 뭔지를 몰라요." 라고 말했다.

[연관기사] [시사기획 창] 유령수술, 누가 나를 수술했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4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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