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이야기① 트럼프 어깨 너머로 ‘뉴노멀’ 엿보기

입력 2019.12.1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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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지만 막무가내인 트럼프, 그의 막말이 놀랍진 않다. 그의 안마당인 트위터는 원래 그랬다. 비속어와 예의없는 말의 연속.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제롬 파월은 총재가 된 이래로 계속 이런 말을 듣고 있다. 말 그대로 들들 볶이고 있다. (오해가 없기를... 누가 보면 오바마가 임명했나 싶겠지만, 제롬은 트럼프가 임명했다.)


제롬 파월은 최고 금융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인데, 대체 누가 누구한테 뭐라는 걸까. 변호사 출신에, 미 재무부 경력이 있는 실물 금융 전문가이자 8년째 연준 이사였던 중앙은행장인데…

궁금한 것은 자극적 언사 아래에 깔려 있는 트럼프의 의도다. 무례할 뿐만 아니라, 식견도 모자라는 트럼프의‘트위터 행각'엔 이유가 있을 터. 과장된 언사는 익히 알려져 있고 놀라울 것도 없지만 (우리나라엔 방위비 분담금을 5배 더 내라고 배짱 베팅하기도 했잖은가!) 한 걸음 더 들어간 풍경을 볼 순 없을까.


트럼프의 '금융언어 DATA' 분석하기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트럼프가 연준(FRB)과 의장 제롬 파월에 대해 트위터와 언론에다 쏟아낸 말들을 모아 분석해봤다. 가장 많이 쓴 단어를 명사와 수식어를 중심으로 구분해 추렸고, 이 단어들의 빈도를 감안해 지도를 그렸다.

처음엔 데이터를 '트친'인 트럼프의 연준 관련 트윗을 한 땀 한 땀 모았다. 고된 수작업을 하다가…블룸버그 통신이 모아놓은 연준 관련 트윗, 언론 인터뷰를 발견했다. "블룸버그 만세!"를 외치며 해당 기사를 가져다 쓰기로 했다. 기간은 2017년 11월부터 최근까지다.

[관련 기사] Key Trump Quotes on Powell as Fed Remains in the Firing Line
By Christopher Condon (2019년 8월 22일)



상스러운 표현을 걷어낸 트럼프 표현의 요체

무례한 표현은 다채롭지만, 중요한 표현은 일정하다. 쉽게 말해, 욕은 수없이 많지만, 개념어는 적다. 우리 말도 육두문자는 지방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달라지지만, 중요한 개념은 그런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그래서 '중요한 개념어'는 반복된다. 단어 빈도수를 살펴보면 요점이 보이는 이유다.

명사의 경우 연준, 이나 중앙은행, 제롬, 제롬 파월, 이런 고유명사를 빼면 이자율(interest rate)과 미국 경제(US Economy), 달러, 중국(China), 다른 나라(country)들, 골칫거리(Problem) 정도가 남는다.

수식어는 애매해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트윗들을 죽 살펴보면서 명사들과 연관 지으면, 논리 구조를 잇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례한 언어를 발라내고 중립적인 경제학 언어만 남기면 아래와 같다.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낮춰라, 그러면 경제가 살아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경제에 유리해서다. 여기서 미국 경제는 성장률이다. 또 무역수지 적자 축소이며, 고용지표 상승이다. 금리를 내려서 기업과 가계의 자금 수요를 키우고, 더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다면 양적 완화로 아예 돈을 찍어 뿌리자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트럼프의 이 '포퓰리즘적 발상'은 '물가가 낮다'는 사실로 정당화된다. 실제로 금리를 연거푸 인하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푸는 양적 완화를 한 상황에서도 미국 물가 상승률은 8년간 1.75~2.00%대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실업률이 반세기 만에 가장 낮을 정도로 고용지표가 좋은데도 물가는 낮게 유지된다. 낮은 시장금리와 저실업으로 인해 물가가 치솟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준금리를 올려야겠지만, 물가는 요지부동 오르지 않는다.

물가만 보면 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다는, 또는 금리를 계속 내려도 된다는 '자칭 천재' 트럼프 말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뉴 노멀 New Normal 입문…포풀리스트 '트럼프'의 뜻대로 해야 하는 세상?

'저실업'에도 불구하고 '저물가'가 지속되고, 트럼프는 끊임없이 '저성장'을 걱정하며 경기부양을 외치는 상황, 이제 우리는 이 트럼프의 어깨너머로 미국 경제를 보며 이 이상한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상황은 경제학자들이 '이제 물가는 경제지표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물가를 보고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던 전통적 역할은 사라진 세상이다.

경제학 이론과 맞지 않는 '비정상 상황'이다. 그런데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이 '저성장'과 '저실업', '저물가'는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이상한 세상,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원더랜드를 '뉴노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뉴노멀'이 전 세계 중앙은행의 역할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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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은행 이야기① 트럼프 어깨 너머로 ‘뉴노멀’ 엿보기
    • 입력 2019-12-19 08:02:40
    취재K

대통령이지만 막무가내인 트럼프, 그의 막말이 놀랍진 않다. 그의 안마당인 트위터는 원래 그랬다. 비속어와 예의없는 말의 연속.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제롬 파월은 총재가 된 이래로 계속 이런 말을 듣고 있다. 말 그대로 들들 볶이고 있다. (오해가 없기를... 누가 보면 오바마가 임명했나 싶겠지만, 제롬은 트럼프가 임명했다.)


제롬 파월은 최고 금융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인데, 대체 누가 누구한테 뭐라는 걸까. 변호사 출신에, 미 재무부 경력이 있는 실물 금융 전문가이자 8년째 연준 이사였던 중앙은행장인데…

궁금한 것은 자극적 언사 아래에 깔려 있는 트럼프의 의도다. 무례할 뿐만 아니라, 식견도 모자라는 트럼프의‘트위터 행각'엔 이유가 있을 터. 과장된 언사는 익히 알려져 있고 놀라울 것도 없지만 (우리나라엔 방위비 분담금을 5배 더 내라고 배짱 베팅하기도 했잖은가!) 한 걸음 더 들어간 풍경을 볼 순 없을까.


트럼프의 '금융언어 DATA' 분석하기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트럼프가 연준(FRB)과 의장 제롬 파월에 대해 트위터와 언론에다 쏟아낸 말들을 모아 분석해봤다. 가장 많이 쓴 단어를 명사와 수식어를 중심으로 구분해 추렸고, 이 단어들의 빈도를 감안해 지도를 그렸다.

처음엔 데이터를 '트친'인 트럼프의 연준 관련 트윗을 한 땀 한 땀 모았다. 고된 수작업을 하다가…블룸버그 통신이 모아놓은 연준 관련 트윗, 언론 인터뷰를 발견했다. "블룸버그 만세!"를 외치며 해당 기사를 가져다 쓰기로 했다. 기간은 2017년 11월부터 최근까지다.

[관련 기사] Key Trump Quotes on Powell as Fed Remains in the Firing Line
By Christopher Condon (2019년 8월 22일)



상스러운 표현을 걷어낸 트럼프 표현의 요체

무례한 표현은 다채롭지만, 중요한 표현은 일정하다. 쉽게 말해, 욕은 수없이 많지만, 개념어는 적다. 우리 말도 육두문자는 지방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달라지지만, 중요한 개념은 그런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그래서 '중요한 개념어'는 반복된다. 단어 빈도수를 살펴보면 요점이 보이는 이유다.

명사의 경우 연준, 이나 중앙은행, 제롬, 제롬 파월, 이런 고유명사를 빼면 이자율(interest rate)과 미국 경제(US Economy), 달러, 중국(China), 다른 나라(country)들, 골칫거리(Problem) 정도가 남는다.

수식어는 애매해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트윗들을 죽 살펴보면서 명사들과 연관 지으면, 논리 구조를 잇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례한 언어를 발라내고 중립적인 경제학 언어만 남기면 아래와 같다.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낮춰라, 그러면 경제가 살아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경제에 유리해서다. 여기서 미국 경제는 성장률이다. 또 무역수지 적자 축소이며, 고용지표 상승이다. 금리를 내려서 기업과 가계의 자금 수요를 키우고, 더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다면 양적 완화로 아예 돈을 찍어 뿌리자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트럼프의 이 '포퓰리즘적 발상'은 '물가가 낮다'는 사실로 정당화된다. 실제로 금리를 연거푸 인하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푸는 양적 완화를 한 상황에서도 미국 물가 상승률은 8년간 1.75~2.00%대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실업률이 반세기 만에 가장 낮을 정도로 고용지표가 좋은데도 물가는 낮게 유지된다. 낮은 시장금리와 저실업으로 인해 물가가 치솟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준금리를 올려야겠지만, 물가는 요지부동 오르지 않는다.

물가만 보면 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다는, 또는 금리를 계속 내려도 된다는 '자칭 천재' 트럼프 말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뉴 노멀 New Normal 입문…포풀리스트 '트럼프'의 뜻대로 해야 하는 세상?

'저실업'에도 불구하고 '저물가'가 지속되고, 트럼프는 끊임없이 '저성장'을 걱정하며 경기부양을 외치는 상황, 이제 우리는 이 트럼프의 어깨너머로 미국 경제를 보며 이 이상한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상황은 경제학자들이 '이제 물가는 경제지표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물가를 보고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던 전통적 역할은 사라진 세상이다.

경제학 이론과 맞지 않는 '비정상 상황'이다. 그런데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이 '저성장'과 '저실업', '저물가'는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이상한 세상,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원더랜드를 '뉴노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뉴노멀'이 전 세계 중앙은행의 역할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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