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역사 을지로 공구거리…‘실핏줄’ 협업 생태계 깨지나

입력 2019.12.22 (21:24) 수정 2019.12.2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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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금속 제품이면 못 만드는 게 없다는 곳이죠,

작은 공업사들이 밀집한 바로 서울 을지로 공구거리입니다.

이 거리의 각 점포들이 협력해 70년 세월 동안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왔는데요.

그런데 이 협업 생태계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어떤 사연인지, 양민철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낡은 전깃줄이 얼기설기 보이는 곳.

금속, 정밀...

옛스런 글자가 적힌 간판들.

70년 역사의 서울 을지로 공구상가입니다.

8개 재개발 구역에 속한 이 거리에선 주로 배지를 만듭니다.

빼곡한 점포들은 제각각으로 보이지만 물건 만들 때는 하나의 공장처럼 움직입니다.

[황민석/공업사 사장 : "여러 기술자분들이 이쪽에 다 있다 보니까 우리가 오더(주문)를 받으면 조각하는 데서 도안도 해야 되고, 그런 분들이 다 여기 주위에 계십니다."]

먼저 배지 틀이 만들어지면 3백여 미터 떨어진 공업사로 옮겨집니다.

여기서 배지를 찍어내고, 찍어낸 배지는 다시 옮겨지고, 광택을 내고, 마지막으로 색을 입힙니다.

[강현원/도색업체 사장 : "(마지막으로) 나한테 넘어오는 거에요. 그래서 채색해 여기서 완성하면 가서 포장해 마무리가 되는 거지... 몇 과정이 들어가니까, 한 집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집에서..."]

배지가 완성됐습니다.

이 배지의 도안을 그리는 것부터 색을 입히는 마무리 작업까지 모든 과정이 이 거리에서만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이 70년의 협업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릅니다.

2014년부터 재개발이 시작돼 한쪽에선 아파트를 짓고 있습니다.

배지 거리를 중심으로, 한 때 7백 명을 웃돌던 업주들은 이제, 3백여 명만 남았습니다.

[현욱/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 "(여기는) 같이 머물러야지만 또 같이 일을 할 수 있고 같이 살 수 있는 구조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을 텐데요. 인위적으로 따로 뜯어내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대부분 세입자여서 보상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따로 모였지만 한 몸처럼 일궈온 평생의 직업을 잃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업체들의 애원과 반발이 커지자 서울시는 사업을 재검토해 올해 안에 대책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70년 넘게 이어진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협업 생태계가 사라질까, 한숨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민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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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 역사 을지로 공구거리…‘실핏줄’ 협업 생태계 깨지나
    • 입력 2019-12-22 21:26:38
    • 수정2019-12-22 21:31:21
    뉴스 9
[앵커]

금속 제품이면 못 만드는 게 없다는 곳이죠,

작은 공업사들이 밀집한 바로 서울 을지로 공구거리입니다.

이 거리의 각 점포들이 협력해 70년 세월 동안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왔는데요.

그런데 이 협업 생태계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어떤 사연인지, 양민철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낡은 전깃줄이 얼기설기 보이는 곳.

금속, 정밀...

옛스런 글자가 적힌 간판들.

70년 역사의 서울 을지로 공구상가입니다.

8개 재개발 구역에 속한 이 거리에선 주로 배지를 만듭니다.

빼곡한 점포들은 제각각으로 보이지만 물건 만들 때는 하나의 공장처럼 움직입니다.

[황민석/공업사 사장 : "여러 기술자분들이 이쪽에 다 있다 보니까 우리가 오더(주문)를 받으면 조각하는 데서 도안도 해야 되고, 그런 분들이 다 여기 주위에 계십니다."]

먼저 배지 틀이 만들어지면 3백여 미터 떨어진 공업사로 옮겨집니다.

여기서 배지를 찍어내고, 찍어낸 배지는 다시 옮겨지고, 광택을 내고, 마지막으로 색을 입힙니다.

[강현원/도색업체 사장 : "(마지막으로) 나한테 넘어오는 거에요. 그래서 채색해 여기서 완성하면 가서 포장해 마무리가 되는 거지... 몇 과정이 들어가니까, 한 집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집에서..."]

배지가 완성됐습니다.

이 배지의 도안을 그리는 것부터 색을 입히는 마무리 작업까지 모든 과정이 이 거리에서만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이 70년의 협업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릅니다.

2014년부터 재개발이 시작돼 한쪽에선 아파트를 짓고 있습니다.

배지 거리를 중심으로, 한 때 7백 명을 웃돌던 업주들은 이제, 3백여 명만 남았습니다.

[현욱/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 "(여기는) 같이 머물러야지만 또 같이 일을 할 수 있고 같이 살 수 있는 구조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을 텐데요. 인위적으로 따로 뜯어내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대부분 세입자여서 보상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따로 모였지만 한 몸처럼 일궈온 평생의 직업을 잃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업체들의 애원과 반발이 커지자 서울시는 사업을 재검토해 올해 안에 대책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70년 넘게 이어진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협업 생태계가 사라질까, 한숨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민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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