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수사 100일…‘진실의 마침표’는 언제?

입력 2019.12.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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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DNA 증거 나와 수사한 지 100일
프로파일러 투입해 이춘재 자백 받아내
8차 사건 두고 검경 대립
관련자 비협조로 수사 한계

'증거물 일부를 국과수에 DNA 분석 의뢰한 결과, 채취한 DNA와 일치한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아 관련 여부 수사 중에 있음.'

지난 9월 18일 오후 7시 33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금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이름이 바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의 실마리를 30여 년 만에 찾은 경찰은 이튿날인 9월 19일 정식 브리핑을 하고 본격 수사에 들어갔고, 오늘(27일)까지 100일이 지났다.

경찰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진실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지난 100일 동안 이춘재의 자백 등 여러 성과가 있었지만, 검경 대립 등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증거의 왕' 자백을 받아내다

범행을 저지른 범인의 자백은 자백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강요나 개입 등 자백을 오염시키는 요소가 없다면 '증거의 왕'으로 통한다. 범인만큼 범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춘재 사건 수사는 3개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출발점이었지만, 이 외에 목격자 진술이나 사건 현장 상황 등 다른 증거는 없었다. 이춘재의 자백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이유다.

경찰은 '강호순 사건'에 투입됐던 범죄심리분석요원을 동원해 부산교소도에 있는 이춘재를 면담 조사했다. 이춘재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춘재를 이감하지 않고 부산까지 가는 수고를 감수했다.

경찰은 DNA 증거가 나왔다는 사실 외에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고 이춘재를 면담했다. 이춘재는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진술했다. 사건 현장은 그림까지 그리면서 설명했다.

이춘재는 DNA가 나온 사건을 포함해 살인 14건, 성폭행 및 성폭행 미수 30여 건을 자백했다. 연쇄살인 10건 외에 추가 자백까지 한 셈이다. 이춘재가 죄책감 때문에 자백을 했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 가운데 살인 14건 전부와 성폭행 9건의 피의자로 이춘재를 입건했다. 통상 형사사건에서 입건은 수사 초기 단계에 이뤄지지만, 이 사건에서는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돼 사실관계 확인이 된 이후 이뤄졌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할 수 없다는 특수성 때문에 입건이 범인을 확정 짓는 용도로 활용된 셈이다.


'원죄'있는 검경, 협력 대신 대립

'증거의 왕'을 확보한 성과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검경이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두고 대립 양상을 띠는 소동이 벌어졌다.

8차 사건은 30년 전 윤 모 씨가 범인으로 잡혀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사건이다. 이춘재가 이 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자백하면서 윤 씨는 지난달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은 법원이 일단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지를 결정한 뒤 받아들이기로 하면 재심을 연다. 재심 전에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이 먼저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검찰 의견을 듣는다.

검찰은 8차 사건 재심 개시에 대한 의견을 내기 위해 경찰의 수사 기록을 요구했다. 경찰은 30년 전 수사 기록은 넘겼지만, 최근 수사 기록은 아직 수사가 덜 끝났다는 이유로 넘기지 않았다.

그러자 검찰은 지난 11일 8차 사건 직접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부산교도소에 있던 이춘재도 수원구치소로 이감했다. 이감 과정에서 경찰과 상의는 없었고, 경찰은 이감된 이후에야 이감 사실을 알았다.

수사 기록 공유와 이감에서 한 차례씩 상대방을 곤란하게 한 검경은 8차 사건과 관련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냈다.

30년 전 국과수는 8차 사건 현장에서 나온 체모와 윤 씨 체모의 성분이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를 냈고, 이는 윤 씨가 옥살이를 하는 데 결정적 증거가 됐다.

경찰은 이 국과수 감정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는데, 검찰은 오류를 넘어서 조작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 브리핑을 경찰이 반박하고, 경찰 브리핑을 검찰이 반박하기도 했다.

30년 전 경찰은 윤 씨를 범인으로 잡았고, 검찰은 이 과정을 지휘했다. 검경은 윤 씨를 억울하게 만들었다는 '원죄'가 있는 셈이다. 진실규명을 통해 이 원죄를 씻어야 하는 검경은 협력 대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다. 기억 안 난다"…관련자들의 비협조

이춘재 사건 수사는 검경 대립 외에도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 대표적인 게 관련자들의 비협조다.

8차 사건에서는 과거 형사들의 강압 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윤 씨를 불법 체포했고, 폭행과 밤샘 조사 등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었다.

이춘재가 살해했다고 자백한 '실종 초등생'과 관련해선 부실 수사 의혹이 일었다. 초등생 실종 당시 경찰이 초등생의 소지품이 발견된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경찰은 이러한 의혹들을 수사했는데, 형사들은 의혹을 부인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연락까지도 피하는 형사들도 있었다. 윤 씨의 억울함이나 초등생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러한 비협조는 비판할 수밖에 없는 태도였다.

성과에 아쉬움을 동시에 경찰 수사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 안에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음 달 중에는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이 아직 입건하지 않은 20여 건의 성폭행 및 성폭행 미수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춘재의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등이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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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재 수사 100일…‘진실의 마침표’는 언제?
    • 입력 2019-12-27 10:53:01
    취재K
DNA 증거 나와 수사한 지 100일 <br />프로파일러 투입해 이춘재 자백 받아내 <br />8차 사건 두고 검경 대립 <br />관련자 비협조로 수사 한계
'증거물 일부를 국과수에 DNA 분석 의뢰한 결과, 채취한 DNA와 일치한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아 관련 여부 수사 중에 있음.'

지난 9월 18일 오후 7시 33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금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이름이 바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의 실마리를 30여 년 만에 찾은 경찰은 이튿날인 9월 19일 정식 브리핑을 하고 본격 수사에 들어갔고, 오늘(27일)까지 100일이 지났다.

경찰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진실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지난 100일 동안 이춘재의 자백 등 여러 성과가 있었지만, 검경 대립 등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증거의 왕' 자백을 받아내다

범행을 저지른 범인의 자백은 자백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강요나 개입 등 자백을 오염시키는 요소가 없다면 '증거의 왕'으로 통한다. 범인만큼 범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춘재 사건 수사는 3개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출발점이었지만, 이 외에 목격자 진술이나 사건 현장 상황 등 다른 증거는 없었다. 이춘재의 자백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이유다.

경찰은 '강호순 사건'에 투입됐던 범죄심리분석요원을 동원해 부산교소도에 있는 이춘재를 면담 조사했다. 이춘재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춘재를 이감하지 않고 부산까지 가는 수고를 감수했다.

경찰은 DNA 증거가 나왔다는 사실 외에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고 이춘재를 면담했다. 이춘재는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진술했다. 사건 현장은 그림까지 그리면서 설명했다.

이춘재는 DNA가 나온 사건을 포함해 살인 14건, 성폭행 및 성폭행 미수 30여 건을 자백했다. 연쇄살인 10건 외에 추가 자백까지 한 셈이다. 이춘재가 죄책감 때문에 자백을 했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 가운데 살인 14건 전부와 성폭행 9건의 피의자로 이춘재를 입건했다. 통상 형사사건에서 입건은 수사 초기 단계에 이뤄지지만, 이 사건에서는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돼 사실관계 확인이 된 이후 이뤄졌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할 수 없다는 특수성 때문에 입건이 범인을 확정 짓는 용도로 활용된 셈이다.


'원죄'있는 검경, 협력 대신 대립

'증거의 왕'을 확보한 성과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검경이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두고 대립 양상을 띠는 소동이 벌어졌다.

8차 사건은 30년 전 윤 모 씨가 범인으로 잡혀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사건이다. 이춘재가 이 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자백하면서 윤 씨는 지난달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은 법원이 일단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지를 결정한 뒤 받아들이기로 하면 재심을 연다. 재심 전에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이 먼저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검찰 의견을 듣는다.

검찰은 8차 사건 재심 개시에 대한 의견을 내기 위해 경찰의 수사 기록을 요구했다. 경찰은 30년 전 수사 기록은 넘겼지만, 최근 수사 기록은 아직 수사가 덜 끝났다는 이유로 넘기지 않았다.

그러자 검찰은 지난 11일 8차 사건 직접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부산교도소에 있던 이춘재도 수원구치소로 이감했다. 이감 과정에서 경찰과 상의는 없었고, 경찰은 이감된 이후에야 이감 사실을 알았다.

수사 기록 공유와 이감에서 한 차례씩 상대방을 곤란하게 한 검경은 8차 사건과 관련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냈다.

30년 전 국과수는 8차 사건 현장에서 나온 체모와 윤 씨 체모의 성분이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를 냈고, 이는 윤 씨가 옥살이를 하는 데 결정적 증거가 됐다.

경찰은 이 국과수 감정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는데, 검찰은 오류를 넘어서 조작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 브리핑을 경찰이 반박하고, 경찰 브리핑을 검찰이 반박하기도 했다.

30년 전 경찰은 윤 씨를 범인으로 잡았고, 검찰은 이 과정을 지휘했다. 검경은 윤 씨를 억울하게 만들었다는 '원죄'가 있는 셈이다. 진실규명을 통해 이 원죄를 씻어야 하는 검경은 협력 대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다. 기억 안 난다"…관련자들의 비협조

이춘재 사건 수사는 검경 대립 외에도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 대표적인 게 관련자들의 비협조다.

8차 사건에서는 과거 형사들의 강압 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윤 씨를 불법 체포했고, 폭행과 밤샘 조사 등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었다.

이춘재가 살해했다고 자백한 '실종 초등생'과 관련해선 부실 수사 의혹이 일었다. 초등생 실종 당시 경찰이 초등생의 소지품이 발견된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경찰은 이러한 의혹들을 수사했는데, 형사들은 의혹을 부인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연락까지도 피하는 형사들도 있었다. 윤 씨의 억울함이나 초등생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러한 비협조는 비판할 수밖에 없는 태도였다.

성과에 아쉬움을 동시에 경찰 수사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 안에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음 달 중에는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이 아직 입건하지 않은 20여 건의 성폭행 및 성폭행 미수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춘재의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등이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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