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전기장판에 네 살배기 3도 화상…‘이불 덮고 잔 게 잘못’?

입력 2019.12.28 (09:04) 수정 2019.12.28 (09: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춥습니다. 전기장판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주의하셔야겠습니다. 전기장판에서 갑자기 원인 불명의 불이 나 네 살배기가 하반신에 큰 화상을 입는 사고가 났는데요, 만든 업체의 제조물책임이 인정됐지만, 손해배상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사용 시 주의사항을 안 지킨 점이 문제가 돼 배상금액이 깎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합당한지는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원인 모를 전기장판 불…아이 하반신 심한 화상

불과 2년 전인 2017년 12월, A 씨 부부는 당시 다섯 살짜리 아이를 B 실업이 제조한 전기장판 위에 눕히고 잠을 재웠습니다. 그런데 새벽 4시쯤 이 전기장판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습니다. 아이는 양쪽 다리와 발, 허벅지, 손에 심재성 2~3도의 화상을 입었습니다.

화상은 1도 화상, 2도 표재성 화상, 2도 심재성 화상, 3도 화상으로 정도가 나뉩니다. 심재성 화상이란 하부 진피층이 손상된 정도에 이르는 화상이라고 합니다. 통증을 느끼는 신경까지 훼손된 경우도 있고, 흉터가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다쳐 화가 난 A 씨 부부는 B 실업 대표이사와 롯데손해보험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제조업체인 B 실업의 전기장판 하자로 사고가 날 경우. 사고당 1천만 원의 범위에서 보상하기로 하는 내용의 보험계약을 맺은 업체였습니다.

원인은 전기장판 열선 과열로 화재…제조사 책임은 인정

이 사건의 쟁점은 둘이었습니다. 우선 B 실업이 제조한 전기장판에 하자가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양측은 감정을 통해 치열하게 다퉜습니다.

감정인은 "전기장판 중 네 군데에서 탄화된 흔적이 발견된 점, 이 중 한 곳에서 최소 90도 이상의 과열이 발생해 과열 원인 지점으로 추정된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이에 근거해 전기장판 내부의 열선 과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그동안 "제조물의 결함을 이유로 제조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경우 그 제품 생산과정은 전문가인 제조업자만이 알 수 있어 그 제품에 어떤 결함이 존재했는지,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는지는 일반인으로선 밝힐 수 없는 특수성이 있어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 및 그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고 봐 왔습니다.

이 때문에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소비자 측에서 △그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점 △그 사고가 어떤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정을 증명할 경우, 제조업자가 그 사고가 제품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제품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해, 소비자의 증명책임을 경감해주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같은 법리에 따라 "화재는 전기장판 열선 과열 때문에 발화된 것으로 판명된바 전기장판 내부의 전열선은 전기장판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한 접근하게 되지 않는 부분이므로, 이 사건 화재는 제조자의 배타적 지배영역에 있다고 보인다"면서 "전기장판이 정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태서 이 사건 전기장판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B 실업과 롯데손해보험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법원 "높은 온도로 장시간, 장판에 이불·베개 올려놓고 사용"…부모 과실

두 번째 쟁점은 손해액, 특히 부모의 과실을 인정할지 여부였습니다.

제품의 '사용 시 주의사항'에는 "라텍스 또는 메모리폼 소재의 제품 위나 아래에 매트를 놓고 사용하지 말 것, 고온 부분에서 사용 시 매트의 과열이나 화상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장시간 사용을 금할 것"이라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부모에게도 과실이 일부 있고, 제조업체의 책임을 감경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감정인은 전기장판 탄화물질의 양을 보면 전기장판 표피층, 솜 층뿐 아니라 주변 이불이나 베개, 쿠션 등 주변에 있었던 물질과 같은 수지류가 녹아 아이의 팔다리에 부착됐다고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부모로서는 화재 당시 만 4세였던 아이를 전기장판 위에 눕히고 재울 경우 비교적 낮은 온도로 설정하고, 장시간 사용해선 안 되며, 주변에 변형이 쉽게 될 수 있는 이불이나 베개 등을 올려놓고 사용해선 안 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면서 "과실이 화재 확대에 기여했다. (부모에게) 과실비율 20%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법은 B 실업과 롯데손해보험에 △치료비 1,100만 원의 80%를 지급할 것 △아동에 대한 위자료 500만 원, 부모에게 각각 100만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선고했습니다. 양측은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지난달 확정됐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판결남] 전기장판에 네 살배기 3도 화상…‘이불 덮고 잔 게 잘못’?
    • 입력 2019-12-28 09:04:43
    • 수정2019-12-28 09:31:27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춥습니다. 전기장판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주의하셔야겠습니다. 전기장판에서 갑자기 원인 불명의 불이 나 네 살배기가 하반신에 큰 화상을 입는 사고가 났는데요, 만든 업체의 제조물책임이 인정됐지만, 손해배상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사용 시 주의사항을 안 지킨 점이 문제가 돼 배상금액이 깎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합당한지는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원인 모를 전기장판 불…아이 하반신 심한 화상

불과 2년 전인 2017년 12월, A 씨 부부는 당시 다섯 살짜리 아이를 B 실업이 제조한 전기장판 위에 눕히고 잠을 재웠습니다. 그런데 새벽 4시쯤 이 전기장판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습니다. 아이는 양쪽 다리와 발, 허벅지, 손에 심재성 2~3도의 화상을 입었습니다.

화상은 1도 화상, 2도 표재성 화상, 2도 심재성 화상, 3도 화상으로 정도가 나뉩니다. 심재성 화상이란 하부 진피층이 손상된 정도에 이르는 화상이라고 합니다. 통증을 느끼는 신경까지 훼손된 경우도 있고, 흉터가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다쳐 화가 난 A 씨 부부는 B 실업 대표이사와 롯데손해보험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제조업체인 B 실업의 전기장판 하자로 사고가 날 경우. 사고당 1천만 원의 범위에서 보상하기로 하는 내용의 보험계약을 맺은 업체였습니다.

원인은 전기장판 열선 과열로 화재…제조사 책임은 인정

이 사건의 쟁점은 둘이었습니다. 우선 B 실업이 제조한 전기장판에 하자가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양측은 감정을 통해 치열하게 다퉜습니다.

감정인은 "전기장판 중 네 군데에서 탄화된 흔적이 발견된 점, 이 중 한 곳에서 최소 90도 이상의 과열이 발생해 과열 원인 지점으로 추정된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이에 근거해 전기장판 내부의 열선 과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그동안 "제조물의 결함을 이유로 제조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경우 그 제품 생산과정은 전문가인 제조업자만이 알 수 있어 그 제품에 어떤 결함이 존재했는지,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는지는 일반인으로선 밝힐 수 없는 특수성이 있어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 및 그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고 봐 왔습니다.

이 때문에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소비자 측에서 △그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점 △그 사고가 어떤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정을 증명할 경우, 제조업자가 그 사고가 제품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제품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해, 소비자의 증명책임을 경감해주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같은 법리에 따라 "화재는 전기장판 열선 과열 때문에 발화된 것으로 판명된바 전기장판 내부의 전열선은 전기장판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한 접근하게 되지 않는 부분이므로, 이 사건 화재는 제조자의 배타적 지배영역에 있다고 보인다"면서 "전기장판이 정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태서 이 사건 전기장판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B 실업과 롯데손해보험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법원 "높은 온도로 장시간, 장판에 이불·베개 올려놓고 사용"…부모 과실

두 번째 쟁점은 손해액, 특히 부모의 과실을 인정할지 여부였습니다.

제품의 '사용 시 주의사항'에는 "라텍스 또는 메모리폼 소재의 제품 위나 아래에 매트를 놓고 사용하지 말 것, 고온 부분에서 사용 시 매트의 과열이나 화상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장시간 사용을 금할 것"이라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부모에게도 과실이 일부 있고, 제조업체의 책임을 감경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감정인은 전기장판 탄화물질의 양을 보면 전기장판 표피층, 솜 층뿐 아니라 주변 이불이나 베개, 쿠션 등 주변에 있었던 물질과 같은 수지류가 녹아 아이의 팔다리에 부착됐다고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부모로서는 화재 당시 만 4세였던 아이를 전기장판 위에 눕히고 재울 경우 비교적 낮은 온도로 설정하고, 장시간 사용해선 안 되며, 주변에 변형이 쉽게 될 수 있는 이불이나 베개 등을 올려놓고 사용해선 안 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면서 "과실이 화재 확대에 기여했다. (부모에게) 과실비율 20%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법은 B 실업과 롯데손해보험에 △치료비 1,100만 원의 80%를 지급할 것 △아동에 대한 위자료 500만 원, 부모에게 각각 100만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선고했습니다. 양측은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지난달 확정됐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