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인생은 왜 보호시설을 전전하나

입력 2019.12.3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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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민(가명)이는 9살 인생 대부분을 여러 보호시설에서 보냈습니다. 집에서 지낸 기간은 다 합쳐서 1년 남짓. 그마저도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생후 9개월에 시작된 폭력… 보호시설 전전

아버지의 폭력은 돌도 되기도 전에 시작됐습니다. 2009년, 생후 9개월 된 승민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들은 이웃의 신고로 처음 학대가 알려져 보호시설로 옮겨졌지만, 지적 장애가 있는 승민이를 반기는 곳은 없었습니다.

전국에 10곳 안팎인 학대 피해 장애아동 거주시설은 이미 꽉 차 대기 순번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었고, 장애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아동보호시설에선 학대 후유증까지 더해 이상 행동을 보이는 승민이를 버거워했습니다.

화면출처: 유튜브 ‘교육부 TV’화면출처: 유튜브 ‘교육부 TV’

결국, 세 살 때 집으로 돌려보내졌고, 다시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장난을 치고, 용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 아버지는 이때 아동학대죄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았고, 승민이는 다시 쫓기듯 시설에 맡겨졌습니다.

시설서도 외면… 번번이 가해 부모 곁으로

하지만 복지사 한 명이 비장애 아동 여섯, 일곱 명을 돌봐야 하는 보호시설에서, 일대일 돌봄이 필요한 승민이는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옮겨 다닌 시설만 7곳. 전국을 떠돌았지만 더는 받아주겠다는 시설을 찾지 못했고, 지난해 말 결국 또 부모에게 보내졌습니다.


'밥 달라고 해서' '안 자고 돌아다녀서' '시끄럽게 해서' 또래 아이들의 흔한 투정이 승민이에겐 학대의 이유였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까지 가세해 한 달 가까이 이어진 구타. 주먹질 발길질은 기본이고, 둔기를 이용한 폭행도 일상이었습니다. 피우던 담배를 물리는 등 집 밖에서도 학대 행위는 계속됐고, 살려달라는 절규도 주위의 만류도 소용없었습니다.

이 일로 다시 법정에 선 부모는 뻔뻔하게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반성한다고 했지만 1, 2심 유죄 판결(아버지 징역 1년 2월, 어머니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갈 곳 없는 장애 아동 '학대의 악순환'


승민 군은 현재 부모의 집 소재지가 아닌 다른 지역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선천적 장애는 물론, 계속된 떠돌이 생활과 학대 후유증으로 정신질환 증세까지 심해져, 약물을 복용하며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탭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승민이를 위한 전담 자원 봉사자를 배치하는 등 주변의 도움으로 차츰 안정을 찾으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돌봄도 얼마나 유지될지 알 수 없습니다.

현재 있는 곳도 역시 비장애 아동을 위한 보호시설이어서, 사실상 더부살이 중인 승민이를 돌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설 측은 승민이를 돌보는 사이, 다른 아이들에게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또 장애 재활 등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없는 곳이다 보니, 단순히 함께 지내는 것만이 승민이에게 최선인지도 고민입니다.

10명 중 8명은 학대하는 부모 집으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펴낸 '2017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피해 아동(22,367건)이 분리 보호를 받는 비율은 18.7%(4,179건)에 불과합니다. 주 양육자, 즉 부모에 의한 원가정 보호 사례가 80.9%(18,104건)로 대부분. 물론 학대 피해의 정도나 재발 우려 등을 고려해 부모의 양육이 낫다고 판단한 사례들도 있지만, 승민 군처럼 머물 보호시설을 찾지 못해 강제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재학대 사례(2,160건)의 95%(2,053건)가 부모에 의해 벌어지고, 발생 장소도 '가정 내'가 95.1% (2,055건)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학대의 악순환에 내몰린 건 비단 승민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승민이에겐 두 명의 누나도 있습니다. 이들 역시 부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보호시설 생활을 하고 있지만, 승민이와 달리 장애가 없어 처음 입소한 시설에 적응한 뒤 계속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모의 양육 의사가 없기 때문에, 승민 군의 누나들은 아마 시설 생활이 보장된 만 18세까지 지내다 자립하게 될 겁니다.

남매는 가정에서 벌어진 범죄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이를 보듬을 사회적 보호도 충분하지 않아 저마다 다른 처지에서 두 번, 세 번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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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살 인생은 왜 보호시설을 전전하나
    • 입력 2019-12-30 08:57:31
    취재K
승민(가명)이는 9살 인생 대부분을 여러 보호시설에서 보냈습니다. 집에서 지낸 기간은 다 합쳐서 1년 남짓. 그마저도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생후 9개월에 시작된 폭력… 보호시설 전전

아버지의 폭력은 돌도 되기도 전에 시작됐습니다. 2009년, 생후 9개월 된 승민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들은 이웃의 신고로 처음 학대가 알려져 보호시설로 옮겨졌지만, 지적 장애가 있는 승민이를 반기는 곳은 없었습니다.

전국에 10곳 안팎인 학대 피해 장애아동 거주시설은 이미 꽉 차 대기 순번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었고, 장애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아동보호시설에선 학대 후유증까지 더해 이상 행동을 보이는 승민이를 버거워했습니다.

화면출처: 유튜브 ‘교육부 TV’
결국, 세 살 때 집으로 돌려보내졌고, 다시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장난을 치고, 용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 아버지는 이때 아동학대죄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았고, 승민이는 다시 쫓기듯 시설에 맡겨졌습니다.

시설서도 외면… 번번이 가해 부모 곁으로

하지만 복지사 한 명이 비장애 아동 여섯, 일곱 명을 돌봐야 하는 보호시설에서, 일대일 돌봄이 필요한 승민이는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옮겨 다닌 시설만 7곳. 전국을 떠돌았지만 더는 받아주겠다는 시설을 찾지 못했고, 지난해 말 결국 또 부모에게 보내졌습니다.


'밥 달라고 해서' '안 자고 돌아다녀서' '시끄럽게 해서' 또래 아이들의 흔한 투정이 승민이에겐 학대의 이유였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까지 가세해 한 달 가까이 이어진 구타. 주먹질 발길질은 기본이고, 둔기를 이용한 폭행도 일상이었습니다. 피우던 담배를 물리는 등 집 밖에서도 학대 행위는 계속됐고, 살려달라는 절규도 주위의 만류도 소용없었습니다.

이 일로 다시 법정에 선 부모는 뻔뻔하게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반성한다고 했지만 1, 2심 유죄 판결(아버지 징역 1년 2월, 어머니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갈 곳 없는 장애 아동 '학대의 악순환'


승민 군은 현재 부모의 집 소재지가 아닌 다른 지역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선천적 장애는 물론, 계속된 떠돌이 생활과 학대 후유증으로 정신질환 증세까지 심해져, 약물을 복용하며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탭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승민이를 위한 전담 자원 봉사자를 배치하는 등 주변의 도움으로 차츰 안정을 찾으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돌봄도 얼마나 유지될지 알 수 없습니다.

현재 있는 곳도 역시 비장애 아동을 위한 보호시설이어서, 사실상 더부살이 중인 승민이를 돌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설 측은 승민이를 돌보는 사이, 다른 아이들에게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또 장애 재활 등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없는 곳이다 보니, 단순히 함께 지내는 것만이 승민이에게 최선인지도 고민입니다.

10명 중 8명은 학대하는 부모 집으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펴낸 '2017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피해 아동(22,367건)이 분리 보호를 받는 비율은 18.7%(4,179건)에 불과합니다. 주 양육자, 즉 부모에 의한 원가정 보호 사례가 80.9%(18,104건)로 대부분. 물론 학대 피해의 정도나 재발 우려 등을 고려해 부모의 양육이 낫다고 판단한 사례들도 있지만, 승민 군처럼 머물 보호시설을 찾지 못해 강제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재학대 사례(2,160건)의 95%(2,053건)가 부모에 의해 벌어지고, 발생 장소도 '가정 내'가 95.1% (2,055건)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학대의 악순환에 내몰린 건 비단 승민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승민이에겐 두 명의 누나도 있습니다. 이들 역시 부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보호시설 생활을 하고 있지만, 승민이와 달리 장애가 없어 처음 입소한 시설에 적응한 뒤 계속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모의 양육 의사가 없기 때문에, 승민 군의 누나들은 아마 시설 생활이 보장된 만 18세까지 지내다 자립하게 될 겁니다.

남매는 가정에서 벌어진 범죄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이를 보듬을 사회적 보호도 충분하지 않아 저마다 다른 처지에서 두 번, 세 번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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