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반려, 또 반려”…경찰 영장신청에 검찰은 불청구 도돌이표

입력 2020.01.0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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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머리 이번에 싹 다 잘라낸다"

지난 2016년 개봉해 7백만 명이 본 영화 '마스터'는 수만 명의 회원에게 다단계 사기를 치고 승승장구하는 '진 회장'(이병헌)과 그를 추적하는 경찰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김재명'(강동원)을 다룬 영화입니다. 김재명은 여러 난관 속에서도 하나하나 사건을 해결하고, 진 회장의 뒤를 봐준 '높으신 분'들을 잡기 전 이 말을 남깁니다. 영화 포스터에도 적혀있는 문구, "썩은 머리 이번에 싹 다 잘라낸다".


현실의 지능범죄수사대, 몇 달째 진전없는 수사 답보 왜?

지능범죄수사대, 약칭 지수대는 영화 마스터가 개봉하기 한 해 전인 2015년 지방경찰청에 있던 기존 지능팀에 일부 수사 부서를 통합해 창설한 수사 조직입니다. 경찰청 훈령 '지능범죄수사대 운영규칙'에 따른 지수대의 임무는 2개 이상의 경찰서에 걸쳐 발생한 사건이나 사회적 관심도가 큰 사건에 대한 정보수집 및 수사입니다.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만큼 지수대에는 소위 '엘리트' 경찰들이 근무하기도 하고, 자부심이 높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지수대의 수사가 몇 달째 진전없는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반려, 반려, 또 반려"

먼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의 학교 생활기록부를 유출했다는 의혹 관련 고발 사건입니다. 검찰 출신인 주 의원은 지난해 9월 '공익 제보'로 조 장관 딸의 고등학교 학생부를 확보했다면서 일부 내용을 공개해 유출 논란이 일었고, 한 시민단체는 유출 과정을 수사해달라며 주 의원을 고발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수대는 그동안 서울시교육청 서버 관리 부서를 압수수색하고 조 전 장관 딸이 졸업한 한영외고 교직원들을 조사했지만, 유출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피고발인인 주 의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주 의원의 이메일과 휴대전화에 대해 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메일 영장만 청구돼 법원에서 발부됐고 통신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반려됐습니다. 조 씨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유출한 곳으로 검찰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에 일부 제동이 걸린 형국입니다.


다음은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사건입니다. 임 부장검사는 지난 2015년 부산지검 윤 모 검사가 민원인의 고소장을 분실한 뒤 다른 고소장을 복사해 바꿔치기했는데도, 당시 검찰 수뇌부가 윤 검사를 제대로 감찰하지 않고 그대로 사표를 수리해 '직무유기' 혐의가 있다며 지난해 4월 경찰에 고발장을 냈습니다.

고발된 사람은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김주현 전 대검 차장, 황철규 전 부산고검장, 조기룡 서울고검 부장검사 등 4명입니다. 경찰은 고의 파쇄 의혹도 있는 만큼 당시 감찰자료와 사건기록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3번에 걸쳐 부산지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신청했지만 모두 반려, 영장 불청구 결정을 받았습니다. 지수대가 관련 물증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검사가 검찰 수뇌부를 고발한 사건 수사도 제동이 걸린 상황입니다.


檢 "통신영장 청구는 이후 검토…교과서적인 이유로 기각"

검찰은 모두 이유가 있어 반려했다는 설명입니다. 먼저 주광덕 의원에 대한 통신영장 불청구와 관련해서는 영장이 발부된 이메일의 경우 고발된 사안과 관련한 것만 한정, 추출해 압수할 수 있지만, 통신기록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국회의원이라 주고받는 연락이 많을 텐데 통신기록을 모두 들여다 본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런 만큼 이메일을 먼저 조사한 뒤, 그 이후에도 필요성이 있다면 통신영장 청구를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반려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임은정 부장검사가 검찰 수뇌부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해서 검찰 관계자는 직무유기라는 범죄 혐의가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성립하기 어렵고, 입증 가능성이 별로 없어서 영장을 기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직무유기란 건 교과서를 보더라도 아주 명확하게 규정돼 있고, 그런 교과서적인 이유로 기각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검·경 갈등 속…'별장 성 접대' 김학의·윤중천 수사검사 고발장 접수

경찰의 영장 신청, 검찰의 영장 반려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가운데 37개 시민단체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2013년과 2014년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며 지난달 고발장을 경찰에 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지수대에 배당됐고 조만간 고발인 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시민단체들은 고발장에서 2013년 당시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음에도 검찰 단계에서 부실을 넘어 실체를 덮는 수준의 은폐수사가 벌어져 모두 무혐의 판단을 받았고, 그 결과 최소한의 정당한 처벌조차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검찰 수사가 왜곡됐는지, 구체적인 압력은 어떠했는지 등을 밝혀달라며 당시 수사검사 등 4명을 고발했는데, 현재로선 특정할 수 없지만 '윗선'에 대한 수사도 경찰에 요청했습니다.

수사의 A, B, C가 있다면 보통은 고발인과 참고인에 대한 진술 조사를 시작으로 다음 단계는 물증을 확보하는 단계입니다. 자료요청을 할 수도 있고, 압수수색을 통해 강제수사에 돌입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도 고발인 조사 등이 이뤄지면 당시 검찰의 수사기록 등을 확보해야 수사가 진행될 텐데, 검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이 내줄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은 하나인데 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찰은 사건마다 다른 해석으로 수사를 진행하거나 진행하지 않고 있는 형국이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각자의 정치적 입장으로 다른 해석을 한다면, 사건 당사자나 국민은 무엇을 신뢰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만큼 검경이 서로 보완하며 수사해 나가는 협조 체계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만, 검찰이 영장을 내주지 않고 있는 사안들의 과녁이 공통되게 검찰을 향한다는 건 오비이락일까요? 그리고, 올해엔 "싹 다 잘라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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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 반려, 또 반려”…경찰 영장신청에 검찰은 불청구 도돌이표
    • 입력 2020-01-07 07:01:32
    취재K
"썩은 머리 이번에 싹 다 잘라낸다"

지난 2016년 개봉해 7백만 명이 본 영화 '마스터'는 수만 명의 회원에게 다단계 사기를 치고 승승장구하는 '진 회장'(이병헌)과 그를 추적하는 경찰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김재명'(강동원)을 다룬 영화입니다. 김재명은 여러 난관 속에서도 하나하나 사건을 해결하고, 진 회장의 뒤를 봐준 '높으신 분'들을 잡기 전 이 말을 남깁니다. 영화 포스터에도 적혀있는 문구, "썩은 머리 이번에 싹 다 잘라낸다".


현실의 지능범죄수사대, 몇 달째 진전없는 수사 답보 왜?

지능범죄수사대, 약칭 지수대는 영화 마스터가 개봉하기 한 해 전인 2015년 지방경찰청에 있던 기존 지능팀에 일부 수사 부서를 통합해 창설한 수사 조직입니다. 경찰청 훈령 '지능범죄수사대 운영규칙'에 따른 지수대의 임무는 2개 이상의 경찰서에 걸쳐 발생한 사건이나 사회적 관심도가 큰 사건에 대한 정보수집 및 수사입니다.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만큼 지수대에는 소위 '엘리트' 경찰들이 근무하기도 하고, 자부심이 높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지수대의 수사가 몇 달째 진전없는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반려, 반려, 또 반려"

먼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의 학교 생활기록부를 유출했다는 의혹 관련 고발 사건입니다. 검찰 출신인 주 의원은 지난해 9월 '공익 제보'로 조 장관 딸의 고등학교 학생부를 확보했다면서 일부 내용을 공개해 유출 논란이 일었고, 한 시민단체는 유출 과정을 수사해달라며 주 의원을 고발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수대는 그동안 서울시교육청 서버 관리 부서를 압수수색하고 조 전 장관 딸이 졸업한 한영외고 교직원들을 조사했지만, 유출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피고발인인 주 의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주 의원의 이메일과 휴대전화에 대해 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메일 영장만 청구돼 법원에서 발부됐고 통신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반려됐습니다. 조 씨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유출한 곳으로 검찰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에 일부 제동이 걸린 형국입니다.


다음은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사건입니다. 임 부장검사는 지난 2015년 부산지검 윤 모 검사가 민원인의 고소장을 분실한 뒤 다른 고소장을 복사해 바꿔치기했는데도, 당시 검찰 수뇌부가 윤 검사를 제대로 감찰하지 않고 그대로 사표를 수리해 '직무유기' 혐의가 있다며 지난해 4월 경찰에 고발장을 냈습니다.

고발된 사람은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김주현 전 대검 차장, 황철규 전 부산고검장, 조기룡 서울고검 부장검사 등 4명입니다. 경찰은 고의 파쇄 의혹도 있는 만큼 당시 감찰자료와 사건기록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3번에 걸쳐 부산지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신청했지만 모두 반려, 영장 불청구 결정을 받았습니다. 지수대가 관련 물증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검사가 검찰 수뇌부를 고발한 사건 수사도 제동이 걸린 상황입니다.


檢 "통신영장 청구는 이후 검토…교과서적인 이유로 기각"

검찰은 모두 이유가 있어 반려했다는 설명입니다. 먼저 주광덕 의원에 대한 통신영장 불청구와 관련해서는 영장이 발부된 이메일의 경우 고발된 사안과 관련한 것만 한정, 추출해 압수할 수 있지만, 통신기록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국회의원이라 주고받는 연락이 많을 텐데 통신기록을 모두 들여다 본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런 만큼 이메일을 먼저 조사한 뒤, 그 이후에도 필요성이 있다면 통신영장 청구를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반려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임은정 부장검사가 검찰 수뇌부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해서 검찰 관계자는 직무유기라는 범죄 혐의가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성립하기 어렵고, 입증 가능성이 별로 없어서 영장을 기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직무유기란 건 교과서를 보더라도 아주 명확하게 규정돼 있고, 그런 교과서적인 이유로 기각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검·경 갈등 속…'별장 성 접대' 김학의·윤중천 수사검사 고발장 접수

경찰의 영장 신청, 검찰의 영장 반려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가운데 37개 시민단체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2013년과 2014년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며 지난달 고발장을 경찰에 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지수대에 배당됐고 조만간 고발인 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시민단체들은 고발장에서 2013년 당시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음에도 검찰 단계에서 부실을 넘어 실체를 덮는 수준의 은폐수사가 벌어져 모두 무혐의 판단을 받았고, 그 결과 최소한의 정당한 처벌조차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검찰 수사가 왜곡됐는지, 구체적인 압력은 어떠했는지 등을 밝혀달라며 당시 수사검사 등 4명을 고발했는데, 현재로선 특정할 수 없지만 '윗선'에 대한 수사도 경찰에 요청했습니다.

수사의 A, B, C가 있다면 보통은 고발인과 참고인에 대한 진술 조사를 시작으로 다음 단계는 물증을 확보하는 단계입니다. 자료요청을 할 수도 있고, 압수수색을 통해 강제수사에 돌입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도 고발인 조사 등이 이뤄지면 당시 검찰의 수사기록 등을 확보해야 수사가 진행될 텐데, 검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이 내줄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은 하나인데 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찰은 사건마다 다른 해석으로 수사를 진행하거나 진행하지 않고 있는 형국이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각자의 정치적 입장으로 다른 해석을 한다면, 사건 당사자나 국민은 무엇을 신뢰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만큼 검경이 서로 보완하며 수사해 나가는 협조 체계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만, 검찰이 영장을 내주지 않고 있는 사안들의 과녁이 공통되게 검찰을 향한다는 건 오비이락일까요? 그리고, 올해엔 "싹 다 잘라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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