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출근’…쌍용차 마지막 해고 46명의 또다른 기다림

입력 2020.01.07 (16:19) 수정 2020.01.0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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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합니다, 11년 만에"

부슬비가 내리는 평택 쌍용 자동차 공장 앞. 마지막 남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오늘은 복직 합의에 따라 다시 출근하는 첫 날입니다. 2009년 쌍용차 사태로 회사를 떠난 지 11년 만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엔 기쁨보다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납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사측이 경영난을 이유로 '무기한 유급 휴직'을 일방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서도 배치받지 못했습니다.

화가 나고 막막했지만, 유급 휴직 통보는 2018년 복직 합의 결정에 어긋나는 위법적인 조치라고 생각해 일단 출근을 강행했습니다. 사측도 이들의 출입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닦는 해고 노동자. 하얀 목도리는 복직 선물로 딸이 떠줬다고 합니다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닦는 해고 노동자. 하얀 목도리는 복직 선물로 딸이 떠줬다고 합니다

오늘 출근한 46명 중에는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도 포함됐습니다. 언젠가 취재현장에서 만났을 땐 대리운전 부업 얘기를 하며 생계난을 내비쳤던 그. 끈질긴 해고 반대 투쟁에 앞장섰고, 마지막으로 복직하겠노라 말했던 김 씨의 표정에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김 씨는 "휴직 통보를 받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 속에서 지난 며칠을 보냈다"며 "사회적 합의를 어긴 것은 사측이며, 즉각 부서배치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해고자는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난다"며 "우리의 출근은 떳떳하다. 안에서 싸워 일자리를 찾겠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헬기가 쌍용차 공장 위로 최루액을 살포하는 모습경찰 헬기가 쌍용차 공장 위로 최루액을 살포하는 모습

"사태"로 불린 쌍용차 파업, 그리고 상처

2009년 1월, 당시 쌍용차의 모회사였던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합니다. 5월 8일 사측은 2,405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노동부에 신고서를 냈고, 21일부터 쌍용차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고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노사 간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찰은 이른바 '쌍용차 사태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강제해산 방침을 밝혔습니다. 결국 8월 4~5일 경찰특공대가 파업 진압 작전에 나섰습니다.

크레인을 이용해 공장 옥상에 진입한 경찰특공대크레인을 이용해 공장 옥상에 진입한 경찰특공대

경찰의 '작전'은 전쟁을 방불케 했습니다. 헬기가 투입돼 2급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 20만 리터를 살포했습니다. 경찰특공대는 다목적 발사기로 스펀지탄을 발사했습니다. 크레인을 타고 공장 옥상에 진입해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렀습니다.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건도 동원됐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국가폭력, 경기경찰청장과 청와대의 직거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이어 2009년 1월 용산사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으로 대형집회가 잇따르고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커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쌍용차 폭력 진압은 청와대의 직접 지시였습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조사위는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이 진압반대 의사를 밝히자,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상급자인 강희락 청장을 배제하고 청와대와 직접 접촉해 진압작전을 승인받았다고 2018년 밝혔습니다.

조사위는 그러면서 쌍용차 사태는 '국가폭력'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쌍용차 폭력 진압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민갑룡 경찰청장쌍용차 폭력 진압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민갑룡 경찰청장

민갑룡 경찰청장은 조사위 발표가 나오자 "법 집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큰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하지만 파업 진압 당시 피해 경찰이 노조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77일간의 이른바 '옥쇄파업' 이후 생활고와 마음의 상처 등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은 30명에 이릅니다. 쌍용차 폭력 진압이 '사회적 살인'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11년이 지났어도 "해고는 살인이다"

줄소송과 굴뚝 투쟁, 단식 투쟁 등 파업 이후에도 상처는 계속 벌어졌습니다. 2013년 무급휴직자 454명이 회사로 돌아갔지만, 파업의 앙금은 계속됐습니다. 해고자의 단계적 복직에 노사가 합의했지만, 속도는 느렸습니다.

2018년 7월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쌍용차의 새 주인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쌍용차 해고자 복직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에게 해고자 복직을 요청하는 문재인 대통령마힌드라 회장에게 해고자 복직을 요청하는 문재인 대통령

그해 9월 쌍용차 노사는 마침내 2019년 상반기까지 남아있는 해고자 119명의 전원 복직에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마침표가 찍히는 듯했으나 이번 '유급휴직' 상황이 발생하면서 또다시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해고자 46명은 앞으로 매일 회사로 출근해 일거리를 달라고 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회사가 응하지 않을 경우 부당휴직 구제신청, 임금차액 지급 가처분 신청 등 모든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습니다.

통상임금의 70%를 받는 '유급휴직'으로 전환됐지만, 돈보다는 11년 동안 떠난 생산라인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바람입니다.

이와 별개로 회사와 국가(경찰)가 이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배상액은 이자를 합쳐 100억 원을 훌쩍 넘어선 상황. 복직 뒤에도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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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년 만의 출근’…쌍용차 마지막 해고 46명의 또다른 기다림
    • 입력 2020-01-07 16:19:58
    • 수정2020-01-07 16:34:18
    취재K
"오늘 출근합니다, 11년 만에"

부슬비가 내리는 평택 쌍용 자동차 공장 앞. 마지막 남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오늘은 복직 합의에 따라 다시 출근하는 첫 날입니다. 2009년 쌍용차 사태로 회사를 떠난 지 11년 만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엔 기쁨보다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납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사측이 경영난을 이유로 '무기한 유급 휴직'을 일방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서도 배치받지 못했습니다.

화가 나고 막막했지만, 유급 휴직 통보는 2018년 복직 합의 결정에 어긋나는 위법적인 조치라고 생각해 일단 출근을 강행했습니다. 사측도 이들의 출입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닦는 해고 노동자. 하얀 목도리는 복직 선물로 딸이 떠줬다고 합니다
오늘 출근한 46명 중에는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도 포함됐습니다. 언젠가 취재현장에서 만났을 땐 대리운전 부업 얘기를 하며 생계난을 내비쳤던 그. 끈질긴 해고 반대 투쟁에 앞장섰고, 마지막으로 복직하겠노라 말했던 김 씨의 표정에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김 씨는 "휴직 통보를 받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 속에서 지난 며칠을 보냈다"며 "사회적 합의를 어긴 것은 사측이며, 즉각 부서배치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해고자는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난다"며 "우리의 출근은 떳떳하다. 안에서 싸워 일자리를 찾겠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헬기가 쌍용차 공장 위로 최루액을 살포하는 모습
"사태"로 불린 쌍용차 파업, 그리고 상처

2009년 1월, 당시 쌍용차의 모회사였던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합니다. 5월 8일 사측은 2,405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노동부에 신고서를 냈고, 21일부터 쌍용차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고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노사 간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찰은 이른바 '쌍용차 사태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강제해산 방침을 밝혔습니다. 결국 8월 4~5일 경찰특공대가 파업 진압 작전에 나섰습니다.

크레인을 이용해 공장 옥상에 진입한 경찰특공대
경찰의 '작전'은 전쟁을 방불케 했습니다. 헬기가 투입돼 2급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 20만 리터를 살포했습니다. 경찰특공대는 다목적 발사기로 스펀지탄을 발사했습니다. 크레인을 타고 공장 옥상에 진입해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렀습니다.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건도 동원됐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국가폭력, 경기경찰청장과 청와대의 직거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이어 2009년 1월 용산사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으로 대형집회가 잇따르고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커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쌍용차 폭력 진압은 청와대의 직접 지시였습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조사위는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이 진압반대 의사를 밝히자,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상급자인 강희락 청장을 배제하고 청와대와 직접 접촉해 진압작전을 승인받았다고 2018년 밝혔습니다.

조사위는 그러면서 쌍용차 사태는 '국가폭력'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쌍용차 폭력 진압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민갑룡 경찰청장
민갑룡 경찰청장은 조사위 발표가 나오자 "법 집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큰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하지만 파업 진압 당시 피해 경찰이 노조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77일간의 이른바 '옥쇄파업' 이후 생활고와 마음의 상처 등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은 30명에 이릅니다. 쌍용차 폭력 진압이 '사회적 살인'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11년이 지났어도 "해고는 살인이다"

줄소송과 굴뚝 투쟁, 단식 투쟁 등 파업 이후에도 상처는 계속 벌어졌습니다. 2013년 무급휴직자 454명이 회사로 돌아갔지만, 파업의 앙금은 계속됐습니다. 해고자의 단계적 복직에 노사가 합의했지만, 속도는 느렸습니다.

2018년 7월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쌍용차의 새 주인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쌍용차 해고자 복직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에게 해고자 복직을 요청하는 문재인 대통령
그해 9월 쌍용차 노사는 마침내 2019년 상반기까지 남아있는 해고자 119명의 전원 복직에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마침표가 찍히는 듯했으나 이번 '유급휴직' 상황이 발생하면서 또다시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해고자 46명은 앞으로 매일 회사로 출근해 일거리를 달라고 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회사가 응하지 않을 경우 부당휴직 구제신청, 임금차액 지급 가처분 신청 등 모든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습니다.

통상임금의 70%를 받는 '유급휴직'으로 전환됐지만, 돈보다는 11년 동안 떠난 생산라인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바람입니다.

이와 별개로 회사와 국가(경찰)가 이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배상액은 이자를 합쳐 100억 원을 훌쩍 넘어선 상황. 복직 뒤에도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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