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린 놈과 맞은 놈이 변호사가 같으면?…“안됨”

입력 2020.01.0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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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접어든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수사…'동기' 규명만 남아

해를 넘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수사가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기준을 변경한 사실이 위법했는지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수사를 거의 끝낸 상태입니다.

이제 검찰의 칼끝은 분식 회계의 '동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해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2015년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경영권 승계구도를 만들기 위함이고, 이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 전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습니다. 합병에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는 떨어뜨려야 합니다. 두 계열사 간 합병 비율에도 이같은 기업가치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익을 부풀리도록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검찰 소환 1시간 반 만에 돌아간 핵심 피의자…무슨 일이?

이런 의혹을 규명할 핵심 피의자가 어제(7일) 오전 검찰에 나왔습니다.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입니다. 김신 전 대표는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삼성물산 대표를 지내면서 고의로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김 전 대표를 상대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한 것 아닌지 캐물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전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선지 1시간 반만에 다시 돌아갔습니다. 통상 검찰 조사가 밤늦도록 이뤄지는 점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김 전 대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핵심 인물, 심야 조사가 금지되기 전이라면 밤샘 조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알고보니 김 전 대표과 함께 온 변호인이 삼성물산 측을 대리하는 변호사인 게 문제가 됐습니다.

검찰 "피해자 변호인이 가해자 변호도 맡을 순 없어"

좀 더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A가 B를 폭행한 혐의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는다고 가정해봅시다.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A씨는 변호인을 선임하고 검찰에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변호인, 알고 보니 폭행을 당한 B의 변호도 같이 맡고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A는 해당 변호인의 입회 하에 조사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호인의 이해관계가 충돌되기 때문입니다. '때린 놈과 맞은 놈이 변호사가 같으면 안 된다', 변호인 선임의 원칙입니다.

검찰이 봤을 때, 합병의 피해자는 '삼성물산'인데 김신 전 대표는 이 합병을 이끈 '가해자'인 겁니다. 따라서 피해자인 삼성물산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가해자인 김 전 대표도 변호하는 건 안된다는 논리입니다.

삼성 "우리 사이에 '때리고 맞고'가 어딨나"

삼성의 입장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로 여전히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회장이라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기업집단 지정의 기준으로 삼는 '동일인', 다시 말해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는 합병 전이나 후나 여전히 이건희 회장이라는 겁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가 된 건 합병 1년 뒤인 2016년 10월입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그룹 내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게 삼성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계열사 간 '때리고 맞고', 즉 제일모직의 주가는 높이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후려치는 조율은 없었다는 겁니다.

삼성물산은 김 전 대표가 2015년 5월 해외 발전소 공사 수주를 합병 전에 공시하지 않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당시엔 수주 확정이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엔 일종의 구두계약(제한적 착수지시서)만 체결했고, 이 경우에는 공시를 원래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만의 문제일 뿐, 그룹 차원의 관여는 없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그룹 차원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있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이 인정했기 때문에 검찰은 이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겁니다. 검찰은 승계작업에 관여한 삼성 전현직 고위 임원들 소환을 마치는 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소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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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린 놈과 맞은 놈이 변호사가 같으면?…“안됨”
    • 입력 2020-01-08 07:01:13
    취재K
막바지 접어든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수사…'동기' 규명만 남아

해를 넘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수사가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기준을 변경한 사실이 위법했는지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수사를 거의 끝낸 상태입니다.

이제 검찰의 칼끝은 분식 회계의 '동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해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2015년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경영권 승계구도를 만들기 위함이고, 이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 전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습니다. 합병에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는 떨어뜨려야 합니다. 두 계열사 간 합병 비율에도 이같은 기업가치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익을 부풀리도록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검찰 소환 1시간 반 만에 돌아간 핵심 피의자…무슨 일이?

이런 의혹을 규명할 핵심 피의자가 어제(7일) 오전 검찰에 나왔습니다.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입니다. 김신 전 대표는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삼성물산 대표를 지내면서 고의로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김 전 대표를 상대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한 것 아닌지 캐물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전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선지 1시간 반만에 다시 돌아갔습니다. 통상 검찰 조사가 밤늦도록 이뤄지는 점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김 전 대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핵심 인물, 심야 조사가 금지되기 전이라면 밤샘 조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알고보니 김 전 대표과 함께 온 변호인이 삼성물산 측을 대리하는 변호사인 게 문제가 됐습니다.

검찰 "피해자 변호인이 가해자 변호도 맡을 순 없어"

좀 더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A가 B를 폭행한 혐의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는다고 가정해봅시다.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A씨는 변호인을 선임하고 검찰에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변호인, 알고 보니 폭행을 당한 B의 변호도 같이 맡고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A는 해당 변호인의 입회 하에 조사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호인의 이해관계가 충돌되기 때문입니다. '때린 놈과 맞은 놈이 변호사가 같으면 안 된다', 변호인 선임의 원칙입니다.

검찰이 봤을 때, 합병의 피해자는 '삼성물산'인데 김신 전 대표는 이 합병을 이끈 '가해자'인 겁니다. 따라서 피해자인 삼성물산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가해자인 김 전 대표도 변호하는 건 안된다는 논리입니다.

삼성 "우리 사이에 '때리고 맞고'가 어딨나"

삼성의 입장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로 여전히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회장이라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기업집단 지정의 기준으로 삼는 '동일인', 다시 말해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는 합병 전이나 후나 여전히 이건희 회장이라는 겁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가 된 건 합병 1년 뒤인 2016년 10월입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그룹 내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게 삼성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계열사 간 '때리고 맞고', 즉 제일모직의 주가는 높이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후려치는 조율은 없었다는 겁니다.

삼성물산은 김 전 대표가 2015년 5월 해외 발전소 공사 수주를 합병 전에 공시하지 않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당시엔 수주 확정이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엔 일종의 구두계약(제한적 착수지시서)만 체결했고, 이 경우에는 공시를 원래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만의 문제일 뿐, 그룹 차원의 관여는 없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그룹 차원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있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이 인정했기 때문에 검찰은 이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겁니다. 검찰은 승계작업에 관여한 삼성 전현직 고위 임원들 소환을 마치는 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소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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