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선수들의 집단폭행은 살인”…아들 잃은 아버지의 외침

입력 2020.01.0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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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그 죽음

지난 1일 새벽, 스물다섯이 되던 날. 소집해제를 석 달 앞둔 아들은,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한 클럽 앞 골목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20대 청년 세 명은 아들을 둘러싼 채 끌고 가 수차례 폭행했습니다. 곧바로 소방대원이 출동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들은 끝내 숨졌습니다. 부검 결과 사인은 뇌출혈. 머리를 집중적으로 맞았기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알고 보니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세 사람은 유명 체대 등에서 태권도를 전공한 유단자들이었습니다. 일부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폭행 이후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귀가하는 여유도 부렸지만 이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법원은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이들은 검찰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수사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 죽음에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은 이유

하지만 세 사람에겐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상해에 대해서는 고의가 있었지만, 사망의 결과가 고의 없이 발생한 경우 이 혐의가 적용됩니다. 결국, 피의자들이 고의로 아들을 숨지게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정황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살인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겁니다.

한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추가 수사를 통해 살인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되면, 구속영장은 상해치사죄로 발부됐지만 살인죄로 재판에 넘기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사람이 사망할 가능성이 큰 흉기를 사용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해치사나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칼이나 도끼 같은 위협적인 흉기를 사용했다면 가해자가 이 행위로 사람이 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폭행했다고 볼 수 있지만,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찼을 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는 겁니다.

"무술 유단자의 급소 공격은 살인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아버지 A 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머리가 '급소'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무술인들이 집중적으로 머리를 가격했을 땐, 게다가 집단으로 폭행했을 땐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A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가해자들이 상해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엄중 처벌돼야 한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상해치사죄가 적용된다면 가해자들은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지만, 살인죄의 경우 5년 이상 징역 또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A 씨는 "태권도 시합을 할 때 머리에 헬멧을 쓰는 건 당연히 급소인 머리를 보호하려는 것이고, 무술 유단자인 가해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 것"이라면서 "신발을 신은 발로 무지막지하게 머리를 때렸는데 이렇게 사람을 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또 인체의 급소를 잘 아는 사람이 상대의 급소를 공격해 숨지게 했다면 살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2000년 8월 대법원판결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격투기 6단, 합기도 5단 등 특공무술에 능한 무술 교관 출신 피고인이 피해 여성의 목울대를 여러 차례 가격해 숨지게 한 것은 순간적으로나마 살해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는 "가해자들이 상해치사죄로 가볍게 벌을 받는다면 우리 아이가 너무 억울할 것 같다"며 "가해자 측은 한 번도 사과하거나 연락해온 적이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서울 광진구 클럽 집단폭행’ 사건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지난 6일 게시됐습니다.‘서울 광진구 클럽 집단폭행’ 사건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지난 6일 게시됐습니다.

"엄중히 처벌해달라"…국민청원 동의 2만 명 돌파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 사건의 가해자들을 엄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이틀 만에 2만 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자신을 지방에 사는 20대 청년이라고 소개한 청원자는 "가해자들이 저지른 죄보다 약한 처벌을 받고 이른 시일 안에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며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과 대검찰청에 "이 사건 가해자 3명이 엄중하게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며 "단지 법리적 해석과 양형 기준만이 아닌 국민의 법 감정 또한 고려해 조사, 구형과 판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이번 주중 수사를 마무리하고 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입니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을 거쳐 가해자들이 어떤 처벌을 받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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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08 15:04:29
    취재K
새해 첫날, 그 죽음

지난 1일 새벽, 스물다섯이 되던 날. 소집해제를 석 달 앞둔 아들은,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한 클럽 앞 골목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20대 청년 세 명은 아들을 둘러싼 채 끌고 가 수차례 폭행했습니다. 곧바로 소방대원이 출동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들은 끝내 숨졌습니다. 부검 결과 사인은 뇌출혈. 머리를 집중적으로 맞았기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알고 보니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세 사람은 유명 체대 등에서 태권도를 전공한 유단자들이었습니다. 일부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폭행 이후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귀가하는 여유도 부렸지만 이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법원은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이들은 검찰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수사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 죽음에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은 이유

하지만 세 사람에겐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상해에 대해서는 고의가 있었지만, 사망의 결과가 고의 없이 발생한 경우 이 혐의가 적용됩니다. 결국, 피의자들이 고의로 아들을 숨지게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정황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살인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겁니다.

한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추가 수사를 통해 살인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되면, 구속영장은 상해치사죄로 발부됐지만 살인죄로 재판에 넘기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사람이 사망할 가능성이 큰 흉기를 사용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해치사나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칼이나 도끼 같은 위협적인 흉기를 사용했다면 가해자가 이 행위로 사람이 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폭행했다고 볼 수 있지만,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찼을 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는 겁니다.

"무술 유단자의 급소 공격은 살인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아버지 A 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머리가 '급소'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무술인들이 집중적으로 머리를 가격했을 땐, 게다가 집단으로 폭행했을 땐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A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가해자들이 상해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엄중 처벌돼야 한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상해치사죄가 적용된다면 가해자들은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지만, 살인죄의 경우 5년 이상 징역 또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A 씨는 "태권도 시합을 할 때 머리에 헬멧을 쓰는 건 당연히 급소인 머리를 보호하려는 것이고, 무술 유단자인 가해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 것"이라면서 "신발을 신은 발로 무지막지하게 머리를 때렸는데 이렇게 사람을 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또 인체의 급소를 잘 아는 사람이 상대의 급소를 공격해 숨지게 했다면 살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2000년 8월 대법원판결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격투기 6단, 합기도 5단 등 특공무술에 능한 무술 교관 출신 피고인이 피해 여성의 목울대를 여러 차례 가격해 숨지게 한 것은 순간적으로나마 살해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는 "가해자들이 상해치사죄로 가볍게 벌을 받는다면 우리 아이가 너무 억울할 것 같다"며 "가해자 측은 한 번도 사과하거나 연락해온 적이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서울 광진구 클럽 집단폭행’ 사건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지난 6일 게시됐습니다.
"엄중히 처벌해달라"…국민청원 동의 2만 명 돌파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 사건의 가해자들을 엄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이틀 만에 2만 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자신을 지방에 사는 20대 청년이라고 소개한 청원자는 "가해자들이 저지른 죄보다 약한 처벌을 받고 이른 시일 안에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며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과 대검찰청에 "이 사건 가해자 3명이 엄중하게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며 "단지 법리적 해석과 양형 기준만이 아닌 국민의 법 감정 또한 고려해 조사, 구형과 판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이번 주중 수사를 마무리하고 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입니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을 거쳐 가해자들이 어떤 처벌을 받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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