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다 선거법]② ‘연동형 비례대표제’…노무현의 꿈 이뤄졌나?

입력 2020.01.08 (15:27) 수정 2020.01.0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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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꿈, 이루어졌나?

한국 정치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화두로 던진 인물은 바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이 제도가 도입됐으니 늦게나마 그의 꿈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 시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한 배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열린 2002년 12월 26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에 참석해 "지역대결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더라도 무엇이든 양보할 생각이 있다"고 밝히면서 야당과의 연정도 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는 겁니다.

다음 해 노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과 야당과의 연정을 연계하는 구상을 지속적으로 밝혔습니다. 2003년 1월 18일 인터뷰에서는 "어느 지역도 한 정당이 70~80% 이상 석권하지 못하도록 해 지역구도가 극복되면 프랑스식으로 과반수 정치세력이 총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한 달 후 2003년 4월 2일 국회에서 첫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정치 개혁 구상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법 개정과 연계한 대연정을 공식적으로 야당에 제안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은 당시 정치권에서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대연정 제안을 순수하게 보지 않고 정치공학적 술수로 받아들였습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재보선에서 잇따라 패배했습니다. 그 결과 집권 열린우리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잃어 선거 개혁 이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17대 총선을 1년 앞두고 왜 선거법을 개정하자고 제안했는지 여러 가지 자료와 발언록이 남아 있습니다. 2010년 4월 26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유시민 前 복지부 장관이 자료를 정리해서 출간한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노 전 대통령은 20년 정치의 문제를 아래와 같이 요약하면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는 처방전으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시했습니다.



선거제도 뭐가 문제였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년 정치 인생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지역에 출마해 격전을 치르고 체험한 선거제도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소선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운영된 과거 선거법은 큰 두 정당이 실제 얻은 정당 지지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과대-대표(Over-representation)의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선거구를 통째로 차지하는 승자독식게임. 작은 정당도 지지율만큼 의석을 얻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선거제 개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사이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정당 지지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나눠 갖도록 강제하는 제도,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요구는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총선 결과를 다시 보겠습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실제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갔습니다. 두 정당의 지지율 합은 59%를 기록했지만, 할당 의석수는 전체 300석의 82%인 245석(122+123)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정당투표 지지율은 36.0%를 기록했지만, 전체 의석의 40.6%인 122석을 차지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정당 투표 지지율이 27.4%에 불과했지만 총의석의 41%인 123석을 차지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와 정당투표, 두 게임에서 다 새누리당에 지지율이 밀렸지만 총할당 의석은 1석이 더 많았습니다.

반면, 작은 정당은 큰 정당이 더 가져간 만큼 의석수가 사실상 줄었습니다. 당시 국민의당은 지역구 14.8%, 정당투표 28.7%를 얻었지만 할당의석은 38석으로 전체의 12.6%밖에 안 됩니다. 정의당도 지지율이 지역구 1.6%, 정당투표 7.7%를 기록했지만 총의석의 2.7%인 6석만 얻었습니다. 투표로 나타난 표심에 맞게 의석이 공정하게 배분되지 못한 것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비례성을 높여 사표를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소선거구제 중심의 승자독식게임에서는 탈락자를 선택해 버려지는 사표가 많습니다. 지난 13~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자가 얻은 총득표수는 평균 988만 표였지만 낙선자를 찍어 버려진 전체 사표는 평균 1,023만 표였습니다.


개정 선거법은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닌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이지만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선택 기준에 변화가 예상됩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지금까지 지역구 선거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최선’보다는 ‘차선이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찍고, 정당투표는 사실은 큰 의미를 안 두고 찍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구 투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당 투표고, 정당 투표는 정책을 보고 찍어야 되니까,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가진 정당은 어디냐에 따라 유권자들의 선택기준이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정치에서 혁명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 제3편에서 계속

◆ 제 3편에서는 국회가 국민을 얼마나 달았는지 알아보고 국회가 국민을 닮지 않았다면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또한,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난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총선의 결과에 적용할 경우 정당별 의석이 어떻게 변하는지 시뮬레이션하고, 21대 국회에서도 선거법 개정이 화두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을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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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금하다 선거법]② ‘연동형 비례대표제’…노무현의 꿈 이뤄졌나?
    • 입력 2020-01-08 15:27:20
    • 수정2020-01-08 15:42:16
    취재K
노무현의 꿈, 이루어졌나?

한국 정치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화두로 던진 인물은 바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이 제도가 도입됐으니 늦게나마 그의 꿈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 시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한 배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열린 2002년 12월 26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에 참석해 "지역대결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더라도 무엇이든 양보할 생각이 있다"고 밝히면서 야당과의 연정도 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는 겁니다.

다음 해 노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과 야당과의 연정을 연계하는 구상을 지속적으로 밝혔습니다. 2003년 1월 18일 인터뷰에서는 "어느 지역도 한 정당이 70~80% 이상 석권하지 못하도록 해 지역구도가 극복되면 프랑스식으로 과반수 정치세력이 총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한 달 후 2003년 4월 2일 국회에서 첫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정치 개혁 구상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법 개정과 연계한 대연정을 공식적으로 야당에 제안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은 당시 정치권에서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대연정 제안을 순수하게 보지 않고 정치공학적 술수로 받아들였습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재보선에서 잇따라 패배했습니다. 그 결과 집권 열린우리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잃어 선거 개혁 이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17대 총선을 1년 앞두고 왜 선거법을 개정하자고 제안했는지 여러 가지 자료와 발언록이 남아 있습니다. 2010년 4월 26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유시민 前 복지부 장관이 자료를 정리해서 출간한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노 전 대통령은 20년 정치의 문제를 아래와 같이 요약하면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는 처방전으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시했습니다.



선거제도 뭐가 문제였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년 정치 인생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지역에 출마해 격전을 치르고 체험한 선거제도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소선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운영된 과거 선거법은 큰 두 정당이 실제 얻은 정당 지지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과대-대표(Over-representation)의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선거구를 통째로 차지하는 승자독식게임. 작은 정당도 지지율만큼 의석을 얻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선거제 개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사이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정당 지지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나눠 갖도록 강제하는 제도,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요구는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총선 결과를 다시 보겠습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실제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갔습니다. 두 정당의 지지율 합은 59%를 기록했지만, 할당 의석수는 전체 300석의 82%인 245석(122+123)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정당투표 지지율은 36.0%를 기록했지만, 전체 의석의 40.6%인 122석을 차지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정당 투표 지지율이 27.4%에 불과했지만 총의석의 41%인 123석을 차지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와 정당투표, 두 게임에서 다 새누리당에 지지율이 밀렸지만 총할당 의석은 1석이 더 많았습니다.

반면, 작은 정당은 큰 정당이 더 가져간 만큼 의석수가 사실상 줄었습니다. 당시 국민의당은 지역구 14.8%, 정당투표 28.7%를 얻었지만 할당의석은 38석으로 전체의 12.6%밖에 안 됩니다. 정의당도 지지율이 지역구 1.6%, 정당투표 7.7%를 기록했지만 총의석의 2.7%인 6석만 얻었습니다. 투표로 나타난 표심에 맞게 의석이 공정하게 배분되지 못한 것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비례성을 높여 사표를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소선거구제 중심의 승자독식게임에서는 탈락자를 선택해 버려지는 사표가 많습니다. 지난 13~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자가 얻은 총득표수는 평균 988만 표였지만 낙선자를 찍어 버려진 전체 사표는 평균 1,023만 표였습니다.


개정 선거법은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닌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이지만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선택 기준에 변화가 예상됩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지금까지 지역구 선거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최선’보다는 ‘차선이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찍고, 정당투표는 사실은 큰 의미를 안 두고 찍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구 투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당 투표고, 정당 투표는 정책을 보고 찍어야 되니까,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가진 정당은 어디냐에 따라 유권자들의 선택기준이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정치에서 혁명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 제3편에서 계속

◆ 제 3편에서는 국회가 국민을 얼마나 달았는지 알아보고 국회가 국민을 닮지 않았다면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또한,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난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총선의 결과에 적용할 경우 정당별 의석이 어떻게 변하는지 시뮬레이션하고, 21대 국회에서도 선거법 개정이 화두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을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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