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드러난 ‘가거도 사고’ 원인…지금은?

입력 2020.01.08 (21:21) 수정 2020.01.0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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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끊이지 않는 각종 사건사고와 재난으로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도 그만큼 간절합니다.

그래서 KBS도 올해 핵심 보도 의제로 안전을 선정했습니다.

오늘(8일) 첫 순서로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응급 구조헬기의 안전 문제를 짚어봅니다.

응급헬기는 특히 변변한 병원이 없는 산간 도서 지역에선 국민들의 생명줄입니다.

하지만 생명줄을 책임지는 조종사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지난해 응급 구조에 나선 헬기가 독도 부근에서 추락해 소방대원 5명이 숨졌죠.

그런데 5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전남 가거도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헬기는 왜 추락했던 걸까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가거도 헬기 사고조사 보고서를 입수해 사고 원인과 안전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신지수 기자입니다.

[리포트]

곳곳이 찢겨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동체.

2015년 3월 13일 밤 전남 가거도 인근 해상에 추락한 해경 헬기입니다.

응급 환자를 태우러 갔다 해경 대원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습니다.

5년 만에 입수한 공식 보고서입니다.

저녁 7시 40분쯤, 구름 높이가 운항 가능기준보다 낮았지만 긴급구조이기에 비행 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8시 2분, 저고도 비행안전 유의라는 공군 관제소 전달이 교신의 끝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번쩍이며 지나가는 미세한 불빛.

사고 전 헬기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가거도 방파제는 어둠과 해무에 싸여 있었지만 조명 하나 없었습니다.

보고서엔 8시 25분, 전조등을 비추며 착륙장을 찾는듯하던 헬기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조사위는 조명 등 참조점이 없는 상태에서 항공기의 위치, 속도등을 착각하는 '공간정위상실'로 고도가 낮아지는 것을 모르고 추락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특히 당시 바다 위 해상부이, 즉 부표를 착륙장으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언급합니다.

[현직 헬기 조종사/음성변조 : "도서 지역의 작은 불빛들을 참고로 하기 때문에 날씨가 안 좋을 때 (비행)하게 되면 참고점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 거죠. 항공기 자세 잡기도 힘들고."]

사고 헬기 조종사는 경력 29년, 부조종사도 20년 넘은 군 출신 베테랑이었습니다.

사고조사보고서는 헬기 이착륙장의 열악한 상황이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은 어떤지, 사고 이후 달라진 점은 있는지 제가 직접 헬기를 타고 이동해 확인해보겠습니다 목포에서 헬기로 40분, 서남해 최남단 섬, 가거도가 보입니다.

이착륙장은 사고 뒤 새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다와 바로 붙어 있어. 주변에 배가 몰려있는 데다 어구까지 쌓여있어 낮에도 헬기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황규오/서해해경 헬기 기장 : "주변에 한 50m 이내에 날릴 게 있으면 안 되거든요. 그게 장애물이 돼가지고 항공기 엔진 흡입기 쪽에 들어가서 사고 날 위험도 크고."]

사고 뒤 헬기장엔 조명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점검을 위해 조명을 켜달라고 요청했더니 작동이 안 된다고 합니다.

결국 켜는 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밤이었다면 또 조명 없이 착륙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 반복될 뻔한 겁니다.

이착륙장을 책임져야 하는 지자체 공무원은, 담당자인 사실도 전원을 켜는 방법도 모릅니다.

[가거도 면사무소 관계자/음성변조 : "조명 시설은 설치했지만 사용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처 저희들이 전원이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확인을 미처 못 했었던 것이고."]

서해 또 다른 섬의 응급헬기 착륙장.

밤이 되자 바다와 하늘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데 조명시설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거도 사고 5년째. 전국 3천197개 응급헬기 이착륙장중 조명이 설치된 곳은 175곳에 불과합니다.

KBS 뉴스 신지수입니다.

목숨 건 야간 해상 출동

헬기 이착륙장에 조명도 하나 없는 상태에선 어두워지고 나면 어디에 내리고 어디서 떠야 할지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야간 출동이 얼마나 잦을까요?

KBS가 해경과 소방의 5년간 응급환자 이송 실적을 전수분석 했습니다.

해경은 5년 동안 모두 590차례 응급 헬기로 환자를 이송했는데요 이 가운데 30%가 밤이었습니다.

소방헬기로 5년간 환자를 이송한 것은 모두 7천6백 번이 넘었습니다.

이 중에 야간 비행이 1183번, 15%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야간출동보다 더 어려운 건 야간 해상출동입니다.

특히 인천과 전남 등은 야간 출동 거의 모두 밤바다 위를 비행해야 했습니다.

지난해 독도 헬기 사고나 5년 전 가거도 사고 때처럼 말입니다.

조종사들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김문성/중앙119구조본부 소방헬기 조종사 : "야간 해상일 경우에 무월광일 경우가 많습니다. 무월광에다가 다음에 시정도 안 좋고, 바람도 많이 불고 가다 보면 정말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안 될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응급헬기, 이런 위험을 줄이고 좀 더 안전해지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이슬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언제까지 눈에 의존해야…” 응급헬기, 안전장치 태부족

헬기는 비행기와 달리 지상에서 이착륙을 돕는 관제 시스템이 없습니다.

뜨고 내리는 위치와 경로, 기상조건 확인이 그만큼 중요하지만 공항이 아닌 곳은 정확한 기상정보부터 확인이 어렵습니다.

[현직 응급헬기 조종사/음성변조 : "도서 지역은 구두를 통해서 현지에 있는 파출소나 전문적이지 않은 분들의 정보를 가지고 임무를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죠."]

궁여지책으로 고속도로 CCTV를 참고하기도 합니다.

[김성운/KBS 1호 헬기 조종사 : "국도의 CCTV 영상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한적이기 때문에.. 관측 장비나 인력을 보강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무인 기상 관측 장비나 CCTV나 웹캠 같은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눈에 의존하는 시계비행이 대부분이지만, 안전장치는 부족합니다.

기상상황을 실시간 확인하는 기상레이더나 공중 충돌을 방지하는 장치, 또 지상 장애물 접근 때 경고하는 장치 블랙박스 등이 필요하지만, 네 가지 안전장비를 모두 갖춘 건 소방과 해경 헬기 49대 중 9대뿐입니다.

또 소방헬기의 경우 직제상 필요한 조종사와 정비사만 2백 90명인데 빈자리가 80명이 넘습니다.

정확한 운항 정보 파악과 비행계획 수립으로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운항관리사는 충원할 엄두도 못 내는 실정입니다.

[최연철/한서대 헬리콥터학과 교수 : "조종사, 구조사는 조종과 구조 임무를 수행하고, 운항관리사는 경로라든지 비행기의 위험요소라든지 이런 부분을 파악할 수 있으면 안전하게 비행이 될 것으로..."]

안전 시스템은 부족하고, 언제까지 눈과 판단에 의존해야 할지 조종사들도 답답합니다.

[현직 응급헬기 조종사/음성변조 : "'이게 남 일이 아니구나.' 언젠가는 내가, 나한테도 닥쳐올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거를 계속해야 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사실은 많이 들어요."]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응급헬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피해도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KBS 뉴스 이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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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 만에 드러난 ‘가거도 사고’ 원인…지금은?
    • 입력 2020-01-08 21:29:21
    • 수정2020-01-08 22:13:28
    뉴스 9
[앵커]

끊이지 않는 각종 사건사고와 재난으로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도 그만큼 간절합니다.

그래서 KBS도 올해 핵심 보도 의제로 안전을 선정했습니다.

오늘(8일) 첫 순서로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응급 구조헬기의 안전 문제를 짚어봅니다.

응급헬기는 특히 변변한 병원이 없는 산간 도서 지역에선 국민들의 생명줄입니다.

하지만 생명줄을 책임지는 조종사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지난해 응급 구조에 나선 헬기가 독도 부근에서 추락해 소방대원 5명이 숨졌죠.

그런데 5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전남 가거도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헬기는 왜 추락했던 걸까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가거도 헬기 사고조사 보고서를 입수해 사고 원인과 안전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신지수 기자입니다.

[리포트]

곳곳이 찢겨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동체.

2015년 3월 13일 밤 전남 가거도 인근 해상에 추락한 해경 헬기입니다.

응급 환자를 태우러 갔다 해경 대원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습니다.

5년 만에 입수한 공식 보고서입니다.

저녁 7시 40분쯤, 구름 높이가 운항 가능기준보다 낮았지만 긴급구조이기에 비행 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8시 2분, 저고도 비행안전 유의라는 공군 관제소 전달이 교신의 끝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번쩍이며 지나가는 미세한 불빛.

사고 전 헬기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가거도 방파제는 어둠과 해무에 싸여 있었지만 조명 하나 없었습니다.

보고서엔 8시 25분, 전조등을 비추며 착륙장을 찾는듯하던 헬기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조사위는 조명 등 참조점이 없는 상태에서 항공기의 위치, 속도등을 착각하는 '공간정위상실'로 고도가 낮아지는 것을 모르고 추락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특히 당시 바다 위 해상부이, 즉 부표를 착륙장으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언급합니다.

[현직 헬기 조종사/음성변조 : "도서 지역의 작은 불빛들을 참고로 하기 때문에 날씨가 안 좋을 때 (비행)하게 되면 참고점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 거죠. 항공기 자세 잡기도 힘들고."]

사고 헬기 조종사는 경력 29년, 부조종사도 20년 넘은 군 출신 베테랑이었습니다.

사고조사보고서는 헬기 이착륙장의 열악한 상황이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은 어떤지, 사고 이후 달라진 점은 있는지 제가 직접 헬기를 타고 이동해 확인해보겠습니다 목포에서 헬기로 40분, 서남해 최남단 섬, 가거도가 보입니다.

이착륙장은 사고 뒤 새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다와 바로 붙어 있어. 주변에 배가 몰려있는 데다 어구까지 쌓여있어 낮에도 헬기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황규오/서해해경 헬기 기장 : "주변에 한 50m 이내에 날릴 게 있으면 안 되거든요. 그게 장애물이 돼가지고 항공기 엔진 흡입기 쪽에 들어가서 사고 날 위험도 크고."]

사고 뒤 헬기장엔 조명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점검을 위해 조명을 켜달라고 요청했더니 작동이 안 된다고 합니다.

결국 켜는 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밤이었다면 또 조명 없이 착륙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 반복될 뻔한 겁니다.

이착륙장을 책임져야 하는 지자체 공무원은, 담당자인 사실도 전원을 켜는 방법도 모릅니다.

[가거도 면사무소 관계자/음성변조 : "조명 시설은 설치했지만 사용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처 저희들이 전원이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확인을 미처 못 했었던 것이고."]

서해 또 다른 섬의 응급헬기 착륙장.

밤이 되자 바다와 하늘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데 조명시설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거도 사고 5년째. 전국 3천197개 응급헬기 이착륙장중 조명이 설치된 곳은 175곳에 불과합니다.

KBS 뉴스 신지수입니다.

목숨 건 야간 해상 출동

헬기 이착륙장에 조명도 하나 없는 상태에선 어두워지고 나면 어디에 내리고 어디서 떠야 할지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야간 출동이 얼마나 잦을까요?

KBS가 해경과 소방의 5년간 응급환자 이송 실적을 전수분석 했습니다.

해경은 5년 동안 모두 590차례 응급 헬기로 환자를 이송했는데요 이 가운데 30%가 밤이었습니다.

소방헬기로 5년간 환자를 이송한 것은 모두 7천6백 번이 넘었습니다.

이 중에 야간 비행이 1183번, 15%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야간출동보다 더 어려운 건 야간 해상출동입니다.

특히 인천과 전남 등은 야간 출동 거의 모두 밤바다 위를 비행해야 했습니다.

지난해 독도 헬기 사고나 5년 전 가거도 사고 때처럼 말입니다.

조종사들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김문성/중앙119구조본부 소방헬기 조종사 : "야간 해상일 경우에 무월광일 경우가 많습니다. 무월광에다가 다음에 시정도 안 좋고, 바람도 많이 불고 가다 보면 정말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안 될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응급헬기, 이런 위험을 줄이고 좀 더 안전해지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이슬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언제까지 눈에 의존해야…” 응급헬기, 안전장치 태부족

헬기는 비행기와 달리 지상에서 이착륙을 돕는 관제 시스템이 없습니다.

뜨고 내리는 위치와 경로, 기상조건 확인이 그만큼 중요하지만 공항이 아닌 곳은 정확한 기상정보부터 확인이 어렵습니다.

[현직 응급헬기 조종사/음성변조 : "도서 지역은 구두를 통해서 현지에 있는 파출소나 전문적이지 않은 분들의 정보를 가지고 임무를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죠."]

궁여지책으로 고속도로 CCTV를 참고하기도 합니다.

[김성운/KBS 1호 헬기 조종사 : "국도의 CCTV 영상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한적이기 때문에.. 관측 장비나 인력을 보강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무인 기상 관측 장비나 CCTV나 웹캠 같은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눈에 의존하는 시계비행이 대부분이지만, 안전장치는 부족합니다.

기상상황을 실시간 확인하는 기상레이더나 공중 충돌을 방지하는 장치, 또 지상 장애물 접근 때 경고하는 장치 블랙박스 등이 필요하지만, 네 가지 안전장비를 모두 갖춘 건 소방과 해경 헬기 49대 중 9대뿐입니다.

또 소방헬기의 경우 직제상 필요한 조종사와 정비사만 2백 90명인데 빈자리가 80명이 넘습니다.

정확한 운항 정보 파악과 비행계획 수립으로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운항관리사는 충원할 엄두도 못 내는 실정입니다.

[최연철/한서대 헬리콥터학과 교수 : "조종사, 구조사는 조종과 구조 임무를 수행하고, 운항관리사는 경로라든지 비행기의 위험요소라든지 이런 부분을 파악할 수 있으면 안전하게 비행이 될 것으로..."]

안전 시스템은 부족하고, 언제까지 눈과 판단에 의존해야 할지 조종사들도 답답합니다.

[현직 응급헬기 조종사/음성변조 : "'이게 남 일이 아니구나.' 언젠가는 내가, 나한테도 닥쳐올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거를 계속해야 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사실은 많이 들어요."]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응급헬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피해도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KBS 뉴스 이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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