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고위급 인사, ‘이례적’인 이유 세 가지

입력 2020.01.08 (21:45) 수정 2020.01.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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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렇게 말이 많은 검찰 인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8일) 오후 7시를 넘겨 대검 검사급(고검장·검사장급) 검사들에 대한 인사이동내역이 발표됐습니다. 추미애 신임 법무부장관이 단행한 첫 인삽니다.

대검 간부, 전원 보직이동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참모들이 사실상 전원 보직이 이동된 점입니다.

우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감찰무마 의혹 수사 등을 지휘한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청와대의 지방선거 불법 개입 의혹 수사를 지휘한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이 교체됐습니다.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검찰 수사력을 지휘하는 핵심 인물 둘은 단숨에 '한직'으로 배치되면서 진행중인 수사에 대해 손을 떼게 됐습니다.

이 외에도 검찰을 대표해 공수처법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국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 이원석 기획조정부장은 수원고검 차장검사로, 조국 전 장관 가족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펼쳐온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연수원장으로 전보됐습니다. 윤석열 총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윤대진 수원지검장도 비교적 한직인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밀려났습니다.

후임 중앙지검장엔 현 법무부 검찰국장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검사장이 임명됐습니다.

검찰 인사가 이례적인 이유 '3가지'

물론 이번 검찰 고위직 인사는 겉보기에 문제가 없습니다. 검사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대통령은 그 인사권을 정당하게 행사했습니다. 문제는 이번 인사에서 '이례적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선 인사의 시기입니다. 이번 인사는 지난해 하반기 검찰 인사 이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됐습니다. 부장검사급 검사의 경우 보직에 부임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면 통상 다음 인사를 건너뛰고 그 다음 인사에 이동하는 것이 보통입니다(1년 6개월 후 이동). 이번 같은 고위직 검사의 경우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6개월만에 인사를 낸 것은 대단히 짧은 주기의 인사인 건 분명합니다.

또, 인사의 절차입니다. 검찰 인사는 인사 시점으로부터 적어도 한 달 전쯤부터 법무부 검찰국에서 진행됩니다. 검찰국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에게 안이 올라가고, 청와대와의 협의 및 대통령 보고를 거치게 됩니다. 안이 확정된 후 검찰인사위원회를 거쳐 발표가 이뤄집니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검찰청법 34조).

쟁점은 이 '들어야 한다'는 조항의 의미였습니다. 추 장관은 그 동안 인사는 법무부장관이 낼 수 있고, 의견의 '단순 청취'로 해석해 왔습니다. 다만 검찰은 입법 취지상 '합의'는 아니라도 적어도 검찰총장과 어떠한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맞서 왔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 총장에게 오늘 오전 10시 30분까지 법무부 장관실로 나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섭니다. 그러나 윤 총장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요식행위에 그칠 것을 우려했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이 지점에서 명분은 법무부가 쥐게 됐습니다.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인데, 총장이 그에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섭니다.

그리고 공개된 인사에서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 등을 지휘했던 검찰 수뇌부가 모두 교체됐다는 점입니다. 대형 수사, 심지어 권력 핵심부를 겨냥한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책임지는 대검 간부를 교체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듭니다. 앞으로 수사책임자 교체에 이어 부장 및 차장급 인사를 통해 특수수사부서의 담당자들 역시 교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법적 문제 비화될까, '선례' 될 듯

이번 인사는 여러 모로 '선례'를 남겼습니다.

검찰 인사에 있어 인사권 행사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선례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진행 중인 수사가 있더라도 얼마든지 지휘를 맡은 수뇌부를 인사조치할 수 있다는 선례 등이 남았습니다. 이 선례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재미있는 건 오늘 인사가 나면서, 대법원에서 선고를 하루 앞둔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재판이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했단 점입니다.

안 전 국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2015년 하반기 검사 인사에서 검찰 인사담당 검사에게 특정 검사를 지청에서 지청으로 이동시키는 이례적 인사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했고,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됐습니다.

1심과 2심은 안 전 국장이 자신의 성추행 사실이 검찰 안팎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 인사권을 총괄하는 검찰국장의 권한을 남용했다고 보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내일 대법원은 안 전 국장이 검사인사담당 검사로 하여금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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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 고위급 인사, ‘이례적’인 이유 세 가지
    • 입력 2020-01-08 21:45:39
    • 수정2020-01-09 11:19:18
    취재K
지금까지 이렇게 말이 많은 검찰 인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8일) 오후 7시를 넘겨 대검 검사급(고검장·검사장급) 검사들에 대한 인사이동내역이 발표됐습니다. 추미애 신임 법무부장관이 단행한 첫 인삽니다.

대검 간부, 전원 보직이동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참모들이 사실상 전원 보직이 이동된 점입니다.

우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감찰무마 의혹 수사 등을 지휘한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청와대의 지방선거 불법 개입 의혹 수사를 지휘한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이 교체됐습니다.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검찰 수사력을 지휘하는 핵심 인물 둘은 단숨에 '한직'으로 배치되면서 진행중인 수사에 대해 손을 떼게 됐습니다.

이 외에도 검찰을 대표해 공수처법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국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 이원석 기획조정부장은 수원고검 차장검사로, 조국 전 장관 가족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펼쳐온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연수원장으로 전보됐습니다. 윤석열 총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윤대진 수원지검장도 비교적 한직인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밀려났습니다.

후임 중앙지검장엔 현 법무부 검찰국장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검사장이 임명됐습니다.

검찰 인사가 이례적인 이유 '3가지'

물론 이번 검찰 고위직 인사는 겉보기에 문제가 없습니다. 검사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대통령은 그 인사권을 정당하게 행사했습니다. 문제는 이번 인사에서 '이례적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선 인사의 시기입니다. 이번 인사는 지난해 하반기 검찰 인사 이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됐습니다. 부장검사급 검사의 경우 보직에 부임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면 통상 다음 인사를 건너뛰고 그 다음 인사에 이동하는 것이 보통입니다(1년 6개월 후 이동). 이번 같은 고위직 검사의 경우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6개월만에 인사를 낸 것은 대단히 짧은 주기의 인사인 건 분명합니다.

또, 인사의 절차입니다. 검찰 인사는 인사 시점으로부터 적어도 한 달 전쯤부터 법무부 검찰국에서 진행됩니다. 검찰국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에게 안이 올라가고, 청와대와의 협의 및 대통령 보고를 거치게 됩니다. 안이 확정된 후 검찰인사위원회를 거쳐 발표가 이뤄집니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검찰청법 34조).

쟁점은 이 '들어야 한다'는 조항의 의미였습니다. 추 장관은 그 동안 인사는 법무부장관이 낼 수 있고, 의견의 '단순 청취'로 해석해 왔습니다. 다만 검찰은 입법 취지상 '합의'는 아니라도 적어도 검찰총장과 어떠한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맞서 왔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 총장에게 오늘 오전 10시 30분까지 법무부 장관실로 나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섭니다. 그러나 윤 총장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요식행위에 그칠 것을 우려했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이 지점에서 명분은 법무부가 쥐게 됐습니다.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인데, 총장이 그에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섭니다.

그리고 공개된 인사에서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 등을 지휘했던 검찰 수뇌부가 모두 교체됐다는 점입니다. 대형 수사, 심지어 권력 핵심부를 겨냥한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책임지는 대검 간부를 교체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듭니다. 앞으로 수사책임자 교체에 이어 부장 및 차장급 인사를 통해 특수수사부서의 담당자들 역시 교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법적 문제 비화될까, '선례' 될 듯

이번 인사는 여러 모로 '선례'를 남겼습니다.

검찰 인사에 있어 인사권 행사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선례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진행 중인 수사가 있더라도 얼마든지 지휘를 맡은 수뇌부를 인사조치할 수 있다는 선례 등이 남았습니다. 이 선례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재미있는 건 오늘 인사가 나면서, 대법원에서 선고를 하루 앞둔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재판이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했단 점입니다.

안 전 국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2015년 하반기 검사 인사에서 검찰 인사담당 검사에게 특정 검사를 지청에서 지청으로 이동시키는 이례적 인사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했고,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됐습니다.

1심과 2심은 안 전 국장이 자신의 성추행 사실이 검찰 안팎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 인사권을 총괄하는 검찰국장의 권한을 남용했다고 보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내일 대법원은 안 전 국장이 검사인사담당 검사로 하여금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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