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피소드] ‘애니멀 호더’와 ‘들개’ 사이

입력 2020.01.09 (19:03) 수정 2020.01.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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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과 피플의 소중한 드라마, 지구별을 함께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 간에는 기쁜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둘 사이에 벌어지는 갖가지 드라마를 전하며 서로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감동과 재미가 함께 있는 애피소드, KBS의 첫 동물뉴스 프로그램입니다.

오로지 사람의 시각으로만 동물을 바라봐 왔던 기존의 지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이른바 '동물권'(동물의 생존 권리 : Animal Rights)의 시각에서 동물을 바라보려 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씩이나마 확대돼 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동물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조차도 전보다는 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반려인 또는 주인 없이 거리를 떠도는 불쌍한 반려동물들을 눈에 띄는 대로 거둬서 돌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상적이었지만, 요즘엔 혹시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 : 수집하듯 다수의 동물을 데려다 기르는 동물학대의 한 유형)가 아닌지 하고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동물권 행동 카라'와 취재진이 함께 가 본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의 야산도 한때나마 그런 의심(?)을 받았던 곳이다.

야산의 얼기설기 개집야산의 얼기설기 개집

이곳에는 크고 작은 개 30여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주변 주민들의 민원도 많았다고 한다. 밤마다 짖어대는 소리에 주민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됐고, 덩치 큰 개들이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로 내려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놓곤 했기에 관할 지자체 역시 관리 문제로 고민이 컸다고 한다. 혹시나 '들개떼'가 될까 봐 지자체나 주민 모두 고민을 했던 것이다.

주민 한 분이 유기견 두 마리를 데려다가 이 야산에서 키우기 시작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딱한 유기견을 돌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찌 알았는지 주변에 버려진 개들(한때는 주인 또는 반려인이 있었던 개들)까지 이 야산으로 몰려오고 자체적으로 번식도 하면서 개체 수가 30여 마리로 늘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해당 주민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들에게 사료는커녕 음식 쓰레기를 먹일 수밖에 없었고, 개들이 사는 환경도 열악해질 수 밖에 없었다.

밥그릇엔 음식 쓰레기밥그릇엔 음식 쓰레기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각종 쓰레기도 갖다 버렸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 어린 강아지들은 병에 걸리기도 했고, 죽은 강아지도 방치된 채 있었다고 한다.

아픈 강아지들아픈 강아지들

결국, 그동안 유기견들을 돌보았던 주민이 동물권 행동 카라에 이 문제를 상의했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카라 측도 수의사협회, 지자체 등과 협의해 이 야산의 유기견 서식지(?)에 대한 환경 개선작업을 벌였다. 하나의 프로젝트였다.

환경 개선 작업환경 개선 작업

이 프로젝트에는 중성화 수술은 물론 입양을 보내는 일까지 포함돼 있어서, 경제적 부담과 발품까지 동반되는 아주 까다롭고 껄끄러운 일이었다. 민원, 그리고 열악한 환경이라는 현실적 고민을 아주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지난해 11월의 일이었다.

중성화 수술중성화 수술

동물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거리에 내몰린 강아지들을 데려다가 중성화 수술을 한다고 하면 일견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강아지들도 짝짓기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꽤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무작정 동물의 행복권만 이야기하기 이전에 유기견들이 어떻게 양산되고 있는가를 우선 되짚어 봐야 한다. '들개'로 오인되는 '불쌍한 유기견들'의 문제는 분명, 사람들, 특히 사람들의 욕망에서 빚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이 책임지고 풀어야 할 문제다.

대중 매체나 소셜 미디어는 매일같이 예쁜 반려동물들의 동영상이나 미담 등을 쏟아내면서 '사람들'이 "아 너무 귀여워" 또는 "아 너무 불쌍해" 하는 식의 감정을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련 미디어를 소비하면서 '이쁜 강아지'나 '귀여운 고양이'를 소유하고 (소비하고) 싶은 충동도 느끼게 된다. 생산과 소비에 충실한 자본주의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엔 그러한 충동적 수요를 충족시켜 돈을 벌고자 하는 관련 산업(예를 들어 강아지
번식 공장 등)이 나설 차례다.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가 생명을 사고파는 경제 활동을 하고 난 이후엔 '충동'만으로는 도저히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들'이 속출하게 된다. 소비행위를 후회하게 되고, 그 결과는 한 생명을 길거리에 버리는 행위로 나타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이렇게 버려진 유기견만 9만여 마리라고 한다.
분명 중성화 수술은 최선책이 아니다. 동물보호단체들도 최선책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건 사람의 욕망, 산업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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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09 19:03:02
    • 수정2020-01-10 15: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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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과 피플의 소중한 드라마, 지구별을 함께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 간에는 기쁜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둘 사이에 벌어지는 갖가지 드라마를 전하며 서로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감동과 재미가 함께 있는 애피소드, KBS의 첫 동물뉴스 프로그램입니다. 오로지 사람의 시각으로만 동물을 바라봐 왔던 기존의 지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이른바 '동물권'(동물의 생존 권리 : Animal Rights)의 시각에서 동물을 바라보려 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씩이나마 확대돼 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동물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조차도 전보다는 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반려인 또는 주인 없이 거리를 떠도는 불쌍한 반려동물들을 눈에 띄는 대로 거둬서 돌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상적이었지만, 요즘엔 혹시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 : 수집하듯 다수의 동물을 데려다 기르는 동물학대의 한 유형)가 아닌지 하고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동물권 행동 카라'와 취재진이 함께 가 본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의 야산도 한때나마 그런 의심(?)을 받았던 곳이다. 야산의 얼기설기 개집 이곳에는 크고 작은 개 30여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주변 주민들의 민원도 많았다고 한다. 밤마다 짖어대는 소리에 주민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됐고, 덩치 큰 개들이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로 내려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놓곤 했기에 관할 지자체 역시 관리 문제로 고민이 컸다고 한다. 혹시나 '들개떼'가 될까 봐 지자체나 주민 모두 고민을 했던 것이다. 주민 한 분이 유기견 두 마리를 데려다가 이 야산에서 키우기 시작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딱한 유기견을 돌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찌 알았는지 주변에 버려진 개들(한때는 주인 또는 반려인이 있었던 개들)까지 이 야산으로 몰려오고 자체적으로 번식도 하면서 개체 수가 30여 마리로 늘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해당 주민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들에게 사료는커녕 음식 쓰레기를 먹일 수밖에 없었고, 개들이 사는 환경도 열악해질 수 밖에 없었다. 밥그릇엔 음식 쓰레기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각종 쓰레기도 갖다 버렸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 어린 강아지들은 병에 걸리기도 했고, 죽은 강아지도 방치된 채 있었다고 한다. 아픈 강아지들 결국, 그동안 유기견들을 돌보았던 주민이 동물권 행동 카라에 이 문제를 상의했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카라 측도 수의사협회, 지자체 등과 협의해 이 야산의 유기견 서식지(?)에 대한 환경 개선작업을 벌였다. 하나의 프로젝트였다. 환경 개선 작업 이 프로젝트에는 중성화 수술은 물론 입양을 보내는 일까지 포함돼 있어서, 경제적 부담과 발품까지 동반되는 아주 까다롭고 껄끄러운 일이었다. 민원, 그리고 열악한 환경이라는 현실적 고민을 아주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지난해 11월의 일이었다. 중성화 수술 동물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거리에 내몰린 강아지들을 데려다가 중성화 수술을 한다고 하면 일견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강아지들도 짝짓기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꽤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무작정 동물의 행복권만 이야기하기 이전에 유기견들이 어떻게 양산되고 있는가를 우선 되짚어 봐야 한다. '들개'로 오인되는 '불쌍한 유기견들'의 문제는 분명, 사람들, 특히 사람들의 욕망에서 빚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이 책임지고 풀어야 할 문제다. 대중 매체나 소셜 미디어는 매일같이 예쁜 반려동물들의 동영상이나 미담 등을 쏟아내면서 '사람들'이 "아 너무 귀여워" 또는 "아 너무 불쌍해" 하는 식의 감정을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련 미디어를 소비하면서 '이쁜 강아지'나 '귀여운 고양이'를 소유하고 (소비하고) 싶은 충동도 느끼게 된다. 생산과 소비에 충실한 자본주의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엔 그러한 충동적 수요를 충족시켜 돈을 벌고자 하는 관련 산업(예를 들어 강아지 번식 공장 등)이 나설 차례다.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가 생명을 사고파는 경제 활동을 하고 난 이후엔 '충동'만으로는 도저히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들'이 속출하게 된다. 소비행위를 후회하게 되고, 그 결과는 한 생명을 길거리에 버리는 행위로 나타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이렇게 버려진 유기견만 9만여 마리라고 한다. 분명 중성화 수술은 최선책이 아니다. 동물보호단체들도 최선책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건 사람의 욕망, 산업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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