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천사들…“어려운 이웃 위해 써 주세요”

입력 2020.01.13 (16:03) 수정 2020.01.1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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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기부자가 생애 처음으로 가로수 정비 일하며 받은 200만 원 월급봉투

익명의 기부자가 생애 처음으로 가로수 정비 일하며 받은 200만 원 월급봉투

"평생 첫 월급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주세요."

지난 2일, 제주시 애월읍사무소로 한 60대 여성이 찾아왔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을 찾은 이 여성은 조심스럽게 봉투 2개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가로수 정비 일을 해 받은 한 달 월급인데,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는 부탁과 함께 황급히 애월읍사무소를 나갔다.

봉투 2개에는 각각 100만 원씩 들어 있었다. 익명의 기부자는 담당 공무원의 차 한 잔 대접도 사양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기 위한 인적사항 기재도 거절했다. 당시 담당 공무원은 "본인도 어렵게 살고 있다고 소개하며 한 달 월급을 오롯이 내놓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다며 소외 이웃을 찾아 소중히 쓰겠다"고 취재진에게 훈훈한 마음을 전했다.

익명 기부자가 제주시 애월읍사무소로 보낸 10kg 쌀 30개 100만 원 상당익명 기부자가 제주시 애월읍사무소로 보낸 10kg 쌀 30개 100만 원 상당

산타 할머니 "사랑의 쌀 보냄수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인 지난달 23일에도 제주시 애월읍사무소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쌀 보냄시난 어려운 사람들한테 전달해 줍써. (쌀 보내니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세요)"라는 정겨운 제주어의 주인공은 70대로 추정되는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지난 2017년부터 매년 이맘때면 자신을 밝히지 않고 쌀 100만 원 상당을 마트를 통해 애월읍사무소로 보내며 어려운 이웃을 향한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익명 기부자의 쌀로 홀몸노인이 따뜻한 밥 한 끼를 짓고 있다. 익명 기부자의 쌀로 홀몸노인이 따뜻한 밥 한 끼를 짓고 있다.

밥 한 공기의 온정…"잘도 고맙수다~"

"쌀을 누가 보냈는지 모르지만 외롭게 사는 나를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사랑의 쌀 일부는 마을에 혼자 사는 85살 황윤옥 할머니에게 전달됐다.

황 할머니는 사회복지 공무원과 취재진이 쌀을 전하기 위해 방문하자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배달된 쌀은 며칠째 비어있던 밥솥을 채웠고 온정의 김이 황 할머니 마음에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한 남성이 동전 가득한 2ℓ짜리 페트병을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들고 들어 오는 장면 (지난달, 제주 시내 ○○아파트 CCTV 화면)한 남성이 동전 가득한 2ℓ짜리 페트병을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들고 들어 오는 장면 (지난달, 제주 시내 ○○아파트 CCTV 화면)

"작지만 좋은 곳에 써 주세요."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달 제주 시내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도 다녀갔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외출 후 와 보니 사무실 탁자에 동전이 가득한 2ℓ짜리 페트병과 "작지만 좋은 곳에 써 주세요."라는 메모가 놓여 있었다.

김영균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은 "감사의 인사라도 전하기 위해 CCTV를 확인해 봤지만, 낯이 익지 않은 주민이었어요. 여기가 임대아파트라 본인도 넉넉지 않을 텐데 2ℓ 페트병에 동전을 가득 모아 온 정성이 대단해요."라며 익명의 기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10만 원 상당의 동전이 든 페트병은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됐다.

한 여성이 빨간 돼지저금통을 KBS 제주방송총국에 전달하러 오는 장면한 여성이 빨간 돼지저금통을 KBS 제주방송총국에 전달하러 오는 장면

"아직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

"한 여성이 돼지저금통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해 달라고만 하고 홀연히 가버리셨어요." 지난달 KBS 제주방송총국에도 익명 기부자가 방문했다. 성금 모금 담당자가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고 했고 사랑의 돼지저금통은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현경은 담당자는 최근에는 기부금을 계좌이체만 하고 이름을 알리지 않는 기부자들도 잇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익명 기부자들을 보면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 한 푼 두 푼 모으신 분들이 많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한다며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임을 보여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관기사] 한 푼 두 푼의 기적…“어려운 이웃 위해 써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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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없는 천사들…“어려운 이웃 위해 써 주세요”
    • 입력 2020-01-13 16:03:48
    • 수정2020-01-13 16:04:21
    취재K

익명의 기부자가 생애 처음으로 가로수 정비 일하며 받은 200만 원 월급봉투

"평생 첫 월급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주세요."

지난 2일, 제주시 애월읍사무소로 한 60대 여성이 찾아왔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을 찾은 이 여성은 조심스럽게 봉투 2개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가로수 정비 일을 해 받은 한 달 월급인데,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는 부탁과 함께 황급히 애월읍사무소를 나갔다.

봉투 2개에는 각각 100만 원씩 들어 있었다. 익명의 기부자는 담당 공무원의 차 한 잔 대접도 사양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기 위한 인적사항 기재도 거절했다. 당시 담당 공무원은 "본인도 어렵게 살고 있다고 소개하며 한 달 월급을 오롯이 내놓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다며 소외 이웃을 찾아 소중히 쓰겠다"고 취재진에게 훈훈한 마음을 전했다.

익명 기부자가 제주시 애월읍사무소로 보낸 10kg 쌀 30개 100만 원 상당
산타 할머니 "사랑의 쌀 보냄수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인 지난달 23일에도 제주시 애월읍사무소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쌀 보냄시난 어려운 사람들한테 전달해 줍써. (쌀 보내니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세요)"라는 정겨운 제주어의 주인공은 70대로 추정되는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지난 2017년부터 매년 이맘때면 자신을 밝히지 않고 쌀 100만 원 상당을 마트를 통해 애월읍사무소로 보내며 어려운 이웃을 향한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익명 기부자의 쌀로 홀몸노인이 따뜻한 밥 한 끼를 짓고 있다.
밥 한 공기의 온정…"잘도 고맙수다~"

"쌀을 누가 보냈는지 모르지만 외롭게 사는 나를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사랑의 쌀 일부는 마을에 혼자 사는 85살 황윤옥 할머니에게 전달됐다.

황 할머니는 사회복지 공무원과 취재진이 쌀을 전하기 위해 방문하자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배달된 쌀은 며칠째 비어있던 밥솥을 채웠고 온정의 김이 황 할머니 마음에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한 남성이 동전 가득한 2ℓ짜리 페트병을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들고 들어 오는 장면 (지난달, 제주 시내 ○○아파트 CCTV 화면)
"작지만 좋은 곳에 써 주세요."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달 제주 시내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도 다녀갔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외출 후 와 보니 사무실 탁자에 동전이 가득한 2ℓ짜리 페트병과 "작지만 좋은 곳에 써 주세요."라는 메모가 놓여 있었다.

김영균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은 "감사의 인사라도 전하기 위해 CCTV를 확인해 봤지만, 낯이 익지 않은 주민이었어요. 여기가 임대아파트라 본인도 넉넉지 않을 텐데 2ℓ 페트병에 동전을 가득 모아 온 정성이 대단해요."라며 익명의 기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10만 원 상당의 동전이 든 페트병은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됐다.

한 여성이 빨간 돼지저금통을 KBS 제주방송총국에 전달하러 오는 장면
"아직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

"한 여성이 돼지저금통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해 달라고만 하고 홀연히 가버리셨어요." 지난달 KBS 제주방송총국에도 익명 기부자가 방문했다. 성금 모금 담당자가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고 했고 사랑의 돼지저금통은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현경은 담당자는 최근에는 기부금을 계좌이체만 하고 이름을 알리지 않는 기부자들도 잇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익명 기부자들을 보면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 한 푼 두 푼 모으신 분들이 많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한다며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임을 보여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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