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벌어진 ‘찬물 학대’의 비극…상습인가 우발인가

입력 2020.01.1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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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6시쯤 경기도 여주시의 기온은 영상 1.1도였다. 영하의 날씨는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겨울 날씨인 건 분명했다.

9살 A 군은 이러한 엄동설한에 아파트 베란다에 방치됐다. 그냥 방치된 게 아니라 찬물이 담긴 어린이용 욕조에 속옷만 입은 채로 앉아있었다. 엄마 B 씨가 식사 준비를 하는데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등 방해해 벌을 준 것이었다.

B 씨는 A 군을 욕조에 한 시간 정도 뒀다가 방으로 데려가 옷을 입히고 쉬게 했다. 1시간 뒤 밥을 먹이려고 보니까 A 군은 의식이 없었다. A 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4년 전에도 학대로 분리 조치
경찰은 B 씨를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체포해 어제(12일) 구속했다. 경찰 조사결과 A 군이 학대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A 군이 학대를 당했다는 신고는 2016년에도 두 차례 접수됐다. 법원은 A 군과 부모의 분리를 결정했고, A 군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보호를 받았다.

A 군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2018년 2월, 부모와 분리된 지 21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들도 A 군을 데려오기를 원하고, A 군도 집에 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4년 전 어떠한 종류의 학대가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A 군이 집으로 돌아온 지 11개월 만에 학대로 숨지면서 가정 복귀 조치가 적정했는지, 복귀 이후 관리가 제대로 됐는지 등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아동학대 피해 아동과 가해자의 분리는 법원이 결정하지만, 가정 복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한다. 가정 복귀 이후 관리는 각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맡고 있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총괄하는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내부 지침에 따라 아동학대 가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모니터링 주기는 내부 지침이라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망 원인은 저체온증 의심…몸에서 멍 발견"
경찰은 오늘(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A 군을 부검했다. 국과수는 부검 당일 간단한 구두 소견을 내놓고, 최종 소견을 부검 3~4주 후에 통보한다.

경찰에 따르면 국과수는 A 군 부검 구두 소견에서 사망 원인을 명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저체온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A 군의 몸에서는 멍 자국 6개가 발견됐다. 멍은 양쪽 무릎에 집중돼 있었다. 폭행이 있었는지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다.

A 군의 어머니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무릎 부위 멍에 대해서는 "평소 A 군이 침대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장난을 칠 때 무릎으로 뛰어내렸다"고 설명했다.

A 군의 아버지도 1차 참고인 조사에서 폭행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 군의 몸에 멍이 있는 이유를 확인하고 있다.


상습이든 우발이든 '재학대'는 확실
A 군 어머니와 아버지의 진술이 맞는다면 A 군은 집으로 돌아온 2018년 2월 이후 최근까지 상습 학대를 당한 것은 아니고, 지난 10일 우발적으로 벌을 줬는데 사망한 것이다.

경찰도 현재까지는 상습 학대 정황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A 군 몸에서 멍이 발견됐고, 과거 학대 때문에 분리 조치된 적도 있어서 상습 학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A 군이 사망한 이유가 상습적 학대인지 우발적 학대인지는 곧 결론이 나겠지만, 중요한 것은 2016년 학대로 오랜 분리 기간을 거쳐서 가정에 복귀한 뒤 '재학대'가 벌어져 A 군이 사망했다는 점이다.

한겨울에 9살 아동을 집 밖이나 다름없는 베란다에, 그것도 찬물이 담긴 욕조 속에 1시간을 방치했다는 건 명백한 학대이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재학대는 2,543건, 피해 아동은 2,195명이었다. 2018년 기준 재학대 사건은 2014년 이후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경찰에 신고접수된 사례 중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사례가 2018년에 다시 신고 접수돼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를 의미한다.

2018년 전체 아동학대 사건 대비 재학대 비율은 10.3%였다. 이 비율은 2016년 8.5%, 2017년 9.7%로 해마다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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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동설한에 벌어진 ‘찬물 학대’의 비극…상습인가 우발인가
    • 입력 2020-01-13 16:04:52
    취재K
지난 10일 오후 6시쯤 경기도 여주시의 기온은 영상 1.1도였다. 영하의 날씨는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겨울 날씨인 건 분명했다.

9살 A 군은 이러한 엄동설한에 아파트 베란다에 방치됐다. 그냥 방치된 게 아니라 찬물이 담긴 어린이용 욕조에 속옷만 입은 채로 앉아있었다. 엄마 B 씨가 식사 준비를 하는데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등 방해해 벌을 준 것이었다.

B 씨는 A 군을 욕조에 한 시간 정도 뒀다가 방으로 데려가 옷을 입히고 쉬게 했다. 1시간 뒤 밥을 먹이려고 보니까 A 군은 의식이 없었다. A 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4년 전에도 학대로 분리 조치
경찰은 B 씨를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체포해 어제(12일) 구속했다. 경찰 조사결과 A 군이 학대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A 군이 학대를 당했다는 신고는 2016년에도 두 차례 접수됐다. 법원은 A 군과 부모의 분리를 결정했고, A 군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보호를 받았다.

A 군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2018년 2월, 부모와 분리된 지 21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들도 A 군을 데려오기를 원하고, A 군도 집에 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4년 전 어떠한 종류의 학대가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A 군이 집으로 돌아온 지 11개월 만에 학대로 숨지면서 가정 복귀 조치가 적정했는지, 복귀 이후 관리가 제대로 됐는지 등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아동학대 피해 아동과 가해자의 분리는 법원이 결정하지만, 가정 복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한다. 가정 복귀 이후 관리는 각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맡고 있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총괄하는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내부 지침에 따라 아동학대 가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모니터링 주기는 내부 지침이라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망 원인은 저체온증 의심…몸에서 멍 발견"
경찰은 오늘(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A 군을 부검했다. 국과수는 부검 당일 간단한 구두 소견을 내놓고, 최종 소견을 부검 3~4주 후에 통보한다.

경찰에 따르면 국과수는 A 군 부검 구두 소견에서 사망 원인을 명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저체온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A 군의 몸에서는 멍 자국 6개가 발견됐다. 멍은 양쪽 무릎에 집중돼 있었다. 폭행이 있었는지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다.

A 군의 어머니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무릎 부위 멍에 대해서는 "평소 A 군이 침대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장난을 칠 때 무릎으로 뛰어내렸다"고 설명했다.

A 군의 아버지도 1차 참고인 조사에서 폭행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 군의 몸에 멍이 있는 이유를 확인하고 있다.


상습이든 우발이든 '재학대'는 확실
A 군 어머니와 아버지의 진술이 맞는다면 A 군은 집으로 돌아온 2018년 2월 이후 최근까지 상습 학대를 당한 것은 아니고, 지난 10일 우발적으로 벌을 줬는데 사망한 것이다.

경찰도 현재까지는 상습 학대 정황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A 군 몸에서 멍이 발견됐고, 과거 학대 때문에 분리 조치된 적도 있어서 상습 학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A 군이 사망한 이유가 상습적 학대인지 우발적 학대인지는 곧 결론이 나겠지만, 중요한 것은 2016년 학대로 오랜 분리 기간을 거쳐서 가정에 복귀한 뒤 '재학대'가 벌어져 A 군이 사망했다는 점이다.

한겨울에 9살 아동을 집 밖이나 다름없는 베란다에, 그것도 찬물이 담긴 욕조 속에 1시간을 방치했다는 건 명백한 학대이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재학대는 2,543건, 피해 아동은 2,195명이었다. 2018년 기준 재학대 사건은 2014년 이후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경찰에 신고접수된 사례 중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사례가 2018년에 다시 신고 접수돼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를 의미한다.

2018년 전체 아동학대 사건 대비 재학대 비율은 10.3%였다. 이 비율은 2016년 8.5%, 2017년 9.7%로 해마다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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