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맞으면 안 되고, 우리는 맞아도 되는 존재일까요?”

입력 2020.01.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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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자주 봐서, 잘 씻지 않아서, 늦잠을 자서, 시험 성적이 안 좋아서, 거짓말을 해서…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이 제 주변의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이 체벌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른 중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분, 잘 안 씻는 분들 계세요. 청소 잘 안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노력해도 일이 안되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그분들의 버릇을 고친다고 때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이유로 맞아도 ‘맞을 만했네’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어른은 맞으면 안 되고 우리는 맞아도 되는 존재일까요?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습니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기자회견 참석한 9살 임한울 씨기자회견 참석한 9살 임한울 씨

9살 임한울 씨가 오늘(13일) 국회에서 얘기한 내용입니다. 기사를 덧붙이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쉽게 간명하게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어 그대로 전합니다.

정의당·아동단체, "민법 915조 자녀 징계권 삭제해야"

정의당과 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아동단체들은 오늘(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법 915조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이텔릭체)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 어디에도 '체벌'을 해도 된다고 명시돼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훈육은 '체벌'을 포함한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성인 68.3%가 상황에 따라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아동학대 시작은 '버릇 고치기 위한' 체벌"

하지만 진짜 부모에게는 자녀를 체벌할 권리가 있는 걸까요?

아동단체 관계자들은 "많은 경우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버릇을 고치기 위한’체벌로 시작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동건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장은 "아동학대 현장에서 상담원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남의 가정사에 왜 개입하느냐? 내 자녀의 훈육을 못 하게 하면 너희들이 내 아이들을 키워 줄 거냐 등의 답변"이라고 전합니다.

부모들이 아동들을 소유물로 여기고 훈육을 통해 아동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믿는 태도에서 학대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이미 아동복지법은 체벌 금지, 전 세계 56개 나라가 아동 체벌 전면 금지

거기다 아동복지법 제5조 2항에는‘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동단체와 정의당은 민법 915조가 아동복지법과 충돌할 뿐 아니라, 이미 민법 913조에 친권자가 아동을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 915조가 없어도 훈육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현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전 세계 56개 나라가 법으로 가정을 포함한 아동과 관련된 모든 장소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OECD 36개 나라 가운데 22개국이 해당합니다.

참석자들은 민법 915조가 구시대적 조항임이 분명한데도 고쳐지지 않은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유권자가 아니어서 정치권이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노력에 정치권이 소홀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기자회견 참석한 13살 최서인 씨.기자회견 참석한 13살 최서인 씨.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13살 최서인 씨의 발언으로 기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단지 맞는 게 두려워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런 존재이고 싶습니다. 맞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훈육이라는 명분 하에 전국의 모든 아동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체벌은 훈육이 아닌 폭력입니다. 누구보다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만 남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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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은 맞으면 안 되고, 우리는 맞아도 되는 존재일까요?”
    • 입력 2020-01-13 18:08:18
    취재K
"핸드폰을 자주 봐서, 잘 씻지 않아서, 늦잠을 자서, 시험 성적이 안 좋아서, 거짓말을 해서…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이 제 주변의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이 체벌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른 중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분, 잘 안 씻는 분들 계세요. 청소 잘 안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노력해도 일이 안되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그분들의 버릇을 고친다고 때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이유로 맞아도 ‘맞을 만했네’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어른은 맞으면 안 되고 우리는 맞아도 되는 존재일까요?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습니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기자회견 참석한 9살 임한울 씨
9살 임한울 씨가 오늘(13일) 국회에서 얘기한 내용입니다. 기사를 덧붙이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쉽게 간명하게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어 그대로 전합니다.

정의당·아동단체, "민법 915조 자녀 징계권 삭제해야"

정의당과 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아동단체들은 오늘(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법 915조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이텔릭체)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 어디에도 '체벌'을 해도 된다고 명시돼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훈육은 '체벌'을 포함한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성인 68.3%가 상황에 따라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아동학대 시작은 '버릇 고치기 위한' 체벌"

하지만 진짜 부모에게는 자녀를 체벌할 권리가 있는 걸까요?

아동단체 관계자들은 "많은 경우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버릇을 고치기 위한’체벌로 시작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동건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장은 "아동학대 현장에서 상담원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남의 가정사에 왜 개입하느냐? 내 자녀의 훈육을 못 하게 하면 너희들이 내 아이들을 키워 줄 거냐 등의 답변"이라고 전합니다.

부모들이 아동들을 소유물로 여기고 훈육을 통해 아동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믿는 태도에서 학대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이미 아동복지법은 체벌 금지, 전 세계 56개 나라가 아동 체벌 전면 금지

거기다 아동복지법 제5조 2항에는‘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동단체와 정의당은 민법 915조가 아동복지법과 충돌할 뿐 아니라, 이미 민법 913조에 친권자가 아동을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 915조가 없어도 훈육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현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전 세계 56개 나라가 법으로 가정을 포함한 아동과 관련된 모든 장소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OECD 36개 나라 가운데 22개국이 해당합니다.

참석자들은 민법 915조가 구시대적 조항임이 분명한데도 고쳐지지 않은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유권자가 아니어서 정치권이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노력에 정치권이 소홀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기자회견 참석한 13살 최서인 씨.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13살 최서인 씨의 발언으로 기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단지 맞는 게 두려워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런 존재이고 싶습니다. 맞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훈육이라는 명분 하에 전국의 모든 아동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체벌은 훈육이 아닌 폭력입니다. 누구보다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만 남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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