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라. 잘 있그라 철아”…박종철 열사 아버지 6,810일 간의 기록

입력 2020.01.13 (19:06) 수정 2020.01.1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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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에 편집 및 게재된 사진들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제공 받았습니다. 일기의 원문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들아 막내야 너가 이 세상 올때 무얼 남겨놓코 갈려고 왔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교에서 고졸까지 받아 두었든 상장 내지 표장장을 아버지가 부질없이 새보니 64개였드라. 주먹구구로 계산해보니 다른데 줄 여가 없이 다 갔아 모아둔 것 같구나. 이것도 저것도 다 부질없는 소리 같구나" - 고 박정기 씨 일기 발췌

1988년 1월 14일 새벽 5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가 쓴 자필 일기이자 추모사 중 일부입니다. 박 씨는 1988년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1주기 추모제에 앞서 이 추도사를 작성하고 자신의 일기장에 옮겨적었습니다.

박용수 씨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제공한 박정기 씨 사진박용수 씨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제공한 박정기 씨 사진

손으로 써 내려간 6,810일 간의 기록

"철아 하여든 아버지가 말하고저 한다. 역사는 차곡차곡 사이고 정리된다. 좋은 것, 못된 것, 잘한 일, 못한 일들이 사이고 사이고 있구나. 지금 아버지가 너무나도 원망스럽구나. 내 사랑하든 아들아 이 천지가 다 무너지는 순간들이 허르는 시간 비바람에 천둥이 치고 치드니 아버지 머리에 와닷는것 같다"
- 고 박정기 씨 일기 발췌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 씨가 20년 동안 직접 손으로 쓴 일기장 일부가 오늘(13일)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박 열사 33주기를 하루 앞둔 오늘, 가족으로부터 기증받은 박 씨의 일기 원문 일부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을 공개했습니다. 사업회는 박 씨가, 막내아들 박종철 열사가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1987년 12월 20일부터 2006년 8월 11일까지 20년 동안 일기를 작성했다고 전했습니다.

제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제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들 잃은 아버지의 비통함…민주화를 외치다 떠나간 영혼들에 대한 위로

"지금도 차듸찬 간방에서 동지들이 무서운 용기로 투쟁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사람 사는 새상 만드러다오, 라고 왜치면서 죽어간 친구, 선배, 후배, 형들에게 이 아버지 말 전해다오. 모두들 걱정 말라고. 우리 아버지까지 민주운동 자신 있다고 하는대 걱정 말라고. 그 영혼들에게 열심이 달래다오. 너는 친구 사기는 데는 일가견 있짜아. 앞장서서 그런 일 잘하지 않은냐"
- 고 박정기 씨 일기 발췌


박 씨의 글엔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비통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세어본 학창시절의 표창장이 모두 64개. 박 씨는 "이것도 저것도 다 부질없는 소리 같구나"라고 적어내려갑니다. 이어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 천지가 다 무너지는 순간들이 허르는 시간 비바람에 천둥이 치고 치드니 아버지 머리에 와닷는것 같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자랑스러운 기억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방학 기간이면 어김없이 여름이면 농촌활동, 겨울이면 비민굴 속에서 서민생활을 같이 했다나요. 이제 생각해보니 너무 장하고 좀 과장한다면 거룩한 사나이다운 일들 했다고 칭찬하고 십읍니다"라며 아들을 기억합니다.

민주화를 위해 힘쓰다 떠나간 영혼들에 대한 위로, 민주화를 향한 결의도 담겨있습니다. 박 씨는 아들에게 지금도 차디찬 감방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료, 사람 사는 세상 만들어 달라고 외치다 죽어간 친구와 선후배 모두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얘기합니다. '

그리고 일기의 마지막. 아들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어머니 누나는 서울 형님 형수 집에 있고 아버지 혼자 한없는 감홰 톳보기(안경)속으로 눈물을 딱고 딱겄으나 그래도 지면이 다 저젔구나. 잘가라. 잘있그라. 철아"
- 고 박정기 씨 일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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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가라. 잘 있그라 철아”…박종철 열사 아버지 6,810일 간의 기록
    • 입력 2020-01-13 19:06:36
    • 수정2020-01-13 20:38:46
    취재K
※ 기사에 편집 및 게재된 사진들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제공 받았습니다. 일기의 원문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들아 막내야 너가 이 세상 올때 무얼 남겨놓코 갈려고 왔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교에서 고졸까지 받아 두었든 상장 내지 표장장을 아버지가 부질없이 새보니 64개였드라. 주먹구구로 계산해보니 다른데 줄 여가 없이 다 갔아 모아둔 것 같구나. 이것도 저것도 다 부질없는 소리 같구나" - 고 박정기 씨 일기 발췌

1988년 1월 14일 새벽 5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가 쓴 자필 일기이자 추모사 중 일부입니다. 박 씨는 1988년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1주기 추모제에 앞서 이 추도사를 작성하고 자신의 일기장에 옮겨적었습니다.

박용수 씨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제공한 박정기 씨 사진
손으로 써 내려간 6,810일 간의 기록

"철아 하여든 아버지가 말하고저 한다. 역사는 차곡차곡 사이고 정리된다. 좋은 것, 못된 것, 잘한 일, 못한 일들이 사이고 사이고 있구나. 지금 아버지가 너무나도 원망스럽구나. 내 사랑하든 아들아 이 천지가 다 무너지는 순간들이 허르는 시간 비바람에 천둥이 치고 치드니 아버지 머리에 와닷는것 같다"
- 고 박정기 씨 일기 발췌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 씨가 20년 동안 직접 손으로 쓴 일기장 일부가 오늘(13일)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박 열사 33주기를 하루 앞둔 오늘, 가족으로부터 기증받은 박 씨의 일기 원문 일부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을 공개했습니다. 사업회는 박 씨가, 막내아들 박종철 열사가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1987년 12월 20일부터 2006년 8월 11일까지 20년 동안 일기를 작성했다고 전했습니다.

제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들 잃은 아버지의 비통함…민주화를 외치다 떠나간 영혼들에 대한 위로

"지금도 차듸찬 간방에서 동지들이 무서운 용기로 투쟁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사람 사는 새상 만드러다오, 라고 왜치면서 죽어간 친구, 선배, 후배, 형들에게 이 아버지 말 전해다오. 모두들 걱정 말라고. 우리 아버지까지 민주운동 자신 있다고 하는대 걱정 말라고. 그 영혼들에게 열심이 달래다오. 너는 친구 사기는 데는 일가견 있짜아. 앞장서서 그런 일 잘하지 않은냐"
- 고 박정기 씨 일기 발췌


박 씨의 글엔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비통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세어본 학창시절의 표창장이 모두 64개. 박 씨는 "이것도 저것도 다 부질없는 소리 같구나"라고 적어내려갑니다. 이어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 천지가 다 무너지는 순간들이 허르는 시간 비바람에 천둥이 치고 치드니 아버지 머리에 와닷는것 같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자랑스러운 기억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방학 기간이면 어김없이 여름이면 농촌활동, 겨울이면 비민굴 속에서 서민생활을 같이 했다나요. 이제 생각해보니 너무 장하고 좀 과장한다면 거룩한 사나이다운 일들 했다고 칭찬하고 십읍니다"라며 아들을 기억합니다.

민주화를 위해 힘쓰다 떠나간 영혼들에 대한 위로, 민주화를 향한 결의도 담겨있습니다. 박 씨는 아들에게 지금도 차디찬 감방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료, 사람 사는 세상 만들어 달라고 외치다 죽어간 친구와 선후배 모두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얘기합니다. '

그리고 일기의 마지막. 아들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어머니 누나는 서울 형님 형수 집에 있고 아버지 혼자 한없는 감홰 톳보기(안경)속으로 눈물을 딱고 딱겄으나 그래도 지면이 다 저젔구나. 잘가라. 잘있그라. 철아"
- 고 박정기 씨 일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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