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작전명 ‘록 왈라비’…호주에 당근비를 내려라

입력 2020.01.14 (15:27) 수정 2020.01.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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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품 당근을 먹고 있는 왈라비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구조품 당근을 먹고 있는 왈라비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작전명 '록 왈라비', 왈라비 구하기 나선 호주

호주 내 곳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붓꼬리바위왈라비가 잿더미 속에서 용케 당근을 찾았습니다.

캥거루과에 속하는 왈라비는 바위 더미와 절벽에서 서식하는 호주의 대표적 동물 가운데 하나인데요. 이제는 3만여 마리만 남아 있을 정도로 멸종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호주 붓꼬리바위왈라비가 지금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벌써 몇 달째 계속되는 최악의 산불 때문입니다. 왈라비 자체도 화마에 목숨을 많이 잃었지만, 왈라비가 살고 있던 생태계가 망가진 것도 큰 문제인데요.

산불 난 현장에 '당근 비' 뿌리는 호주 공무원들

작전명 '록 왈라비'. 호주가 '바위왈라비 구하기'에 나섰습니다.

다친 왈라비를 직접 구조하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겠지만, 호주 공무원들이 주력하고 있는 건 바로 '당근비'를 내리는 일입니다.


붓꼬리바위왈라비의 주 서식지로 알려진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에서는 공무원들이 헬기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왈라비가 좋아하는 고구마, 당근을 말 그대로 '비처럼' 뿌려주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상공에서 뿌린 고구마와 당근만 1,000kg이 넘습니다.

이렇게 '당근 비'를 내려주는 이유, 짚이시지요? 대형 산불로 왈라비가 살던 곳들이 잿더미가 되면서 왈라비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기 때문인데요.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는 왈라비 서식지에 먹이가 풍부해질 때까지 이렇게 '당근 비', '고구마 비'를 계속 내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기능적 멸종' 위기 처한 코알라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코알라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코알라

호주의 또 하나의 대표적인 동물, 코알라 역시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수전 레이 호주 환경장관은 이번 산불로 뉴사우스웨일스 주 북동부 해안 지역의 코알라 개체 수만 최대 30% 감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코알라 서식지의 경우 전체 80% 정도가 파괴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알라는 장시간 잠을 자고, 특정 식물만 먹는 등 타고난 습성 등으로 이번 산불 이전에도 취약한 종으로 여겨져 왔는데요. 움직임이 느린 코알라들이 산불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으면서 코알라는 사실상 '기능적 멸종' 단계에 들어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능적 멸종 상태는 어떤 종의 개체 수가 너무 줄어서 더 이상 생태계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는 생존 가능성도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실제 호주 일부 지역에서는 코알라를 '취약종'에서 '멸종위기종'으로 까지 보호 등급을 상향 조정할 계획입니다. 당장 코알라와 왈라비 등을 살리고 생태계를 복원하는데도 5천만 호주달러, 우리 돈으로 약 4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코알라 '뉴질랜드 이민' 청원까지

호주 바로 옆 나라 뉴질랜드도 손을 들었습니다. 서식지가 심각하게 파괴된 코알라를 뉴질랜드로 데려오자는 온라인 청원이 제기된 겁니다.

dpa통신에 따르면 현지시간 13일까지 7천여 명이 청원에 동의했지만, 시드니 대학 밸런티나 멜라 교수는 "코알라는 몇 가지 나무, 그중에서도 독소와 영양소의 함량에 따라 특정한 이파리만 선택한다"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건 사실상 힘들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최대 10억 마리 동물이 화마 영향받았다"

화상 입은 새끼 캥거루들 (출처: 호주 와루나 동물병원 페이스북)화상 입은 새끼 캥거루들 (출처: 호주 와루나 동물병원 페이스북)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현재까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만 산불에 희생된 동물들이 5억 마리 정도입니다. 시드니 대학 생태학자들이 추정하는 수치인데요. 조류, 파충류, 박쥐를 제외한 포유류 등을 합산한 수치입니다.

여기에 곤충과 개구리 등 양서류까지 포함하면 화마에 희생된 '인간 이외 개체'의 수는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드니 대학의 생태학자 크리스토퍼 딕맨은 최대 10억 마리 동물들이 산불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서울 면적의 100배가 잿더미로 변한 호주, 이곳에선 지금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소방대원들 뿐만 아니라 3천 명의 육해공군과 예비군까지 나서서 산불 진압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요.

화마에 목숨을 잃은 사람 최소 28명, 희생된 야생 동물들은 최소 수억 마리입니다. 어쩌면 왈라비와 코알라가 지구 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산불로 인한 연기도 위협적입니다. 호주 산불로 인한 스모그는 기류를 타고 지구 남반구를 반 바퀴 돌아서 칠레와 아르헨티나까지 도달했고 지금은 다시 호주로 향하고 있는데요.

수십 년 만의 최악의 산불이 호주만 겪고 있는 재앙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루하루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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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4 15:27:22
    • 수정2020-01-20 16: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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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품 당근을 먹고 있는 왈라비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작전명 '록 왈라비', 왈라비 구하기 나선 호주

호주 내 곳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붓꼬리바위왈라비가 잿더미 속에서 용케 당근을 찾았습니다.

캥거루과에 속하는 왈라비는 바위 더미와 절벽에서 서식하는 호주의 대표적 동물 가운데 하나인데요. 이제는 3만여 마리만 남아 있을 정도로 멸종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호주 붓꼬리바위왈라비가 지금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벌써 몇 달째 계속되는 최악의 산불 때문입니다. 왈라비 자체도 화마에 목숨을 많이 잃었지만, 왈라비가 살고 있던 생태계가 망가진 것도 큰 문제인데요.

산불 난 현장에 '당근 비' 뿌리는 호주 공무원들

작전명 '록 왈라비'. 호주가 '바위왈라비 구하기'에 나섰습니다.

다친 왈라비를 직접 구조하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겠지만, 호주 공무원들이 주력하고 있는 건 바로 '당근비'를 내리는 일입니다.


붓꼬리바위왈라비의 주 서식지로 알려진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에서는 공무원들이 헬기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왈라비가 좋아하는 고구마, 당근을 말 그대로 '비처럼' 뿌려주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상공에서 뿌린 고구마와 당근만 1,000kg이 넘습니다.

이렇게 '당근 비'를 내려주는 이유, 짚이시지요? 대형 산불로 왈라비가 살던 곳들이 잿더미가 되면서 왈라비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기 때문인데요.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는 왈라비 서식지에 먹이가 풍부해질 때까지 이렇게 '당근 비', '고구마 비'를 계속 내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기능적 멸종' 위기 처한 코알라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코알라
호주의 또 하나의 대표적인 동물, 코알라 역시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수전 레이 호주 환경장관은 이번 산불로 뉴사우스웨일스 주 북동부 해안 지역의 코알라 개체 수만 최대 30% 감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코알라 서식지의 경우 전체 80% 정도가 파괴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알라는 장시간 잠을 자고, 특정 식물만 먹는 등 타고난 습성 등으로 이번 산불 이전에도 취약한 종으로 여겨져 왔는데요. 움직임이 느린 코알라들이 산불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으면서 코알라는 사실상 '기능적 멸종' 단계에 들어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능적 멸종 상태는 어떤 종의 개체 수가 너무 줄어서 더 이상 생태계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는 생존 가능성도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실제 호주 일부 지역에서는 코알라를 '취약종'에서 '멸종위기종'으로 까지 보호 등급을 상향 조정할 계획입니다. 당장 코알라와 왈라비 등을 살리고 생태계를 복원하는데도 5천만 호주달러, 우리 돈으로 약 4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코알라 '뉴질랜드 이민' 청원까지

호주 바로 옆 나라 뉴질랜드도 손을 들었습니다. 서식지가 심각하게 파괴된 코알라를 뉴질랜드로 데려오자는 온라인 청원이 제기된 겁니다.

dpa통신에 따르면 현지시간 13일까지 7천여 명이 청원에 동의했지만, 시드니 대학 밸런티나 멜라 교수는 "코알라는 몇 가지 나무, 그중에서도 독소와 영양소의 함량에 따라 특정한 이파리만 선택한다"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건 사실상 힘들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최대 10억 마리 동물이 화마 영향받았다"

화상 입은 새끼 캥거루들 (출처: 호주 와루나 동물병원 페이스북)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현재까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만 산불에 희생된 동물들이 5억 마리 정도입니다. 시드니 대학 생태학자들이 추정하는 수치인데요. 조류, 파충류, 박쥐를 제외한 포유류 등을 합산한 수치입니다.

여기에 곤충과 개구리 등 양서류까지 포함하면 화마에 희생된 '인간 이외 개체'의 수는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드니 대학의 생태학자 크리스토퍼 딕맨은 최대 10억 마리 동물들이 산불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서울 면적의 100배가 잿더미로 변한 호주, 이곳에선 지금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소방대원들 뿐만 아니라 3천 명의 육해공군과 예비군까지 나서서 산불 진압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요.

화마에 목숨을 잃은 사람 최소 28명, 희생된 야생 동물들은 최소 수억 마리입니다. 어쩌면 왈라비와 코알라가 지구 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산불로 인한 연기도 위협적입니다. 호주 산불로 인한 스모그는 기류를 타고 지구 남반구를 반 바퀴 돌아서 칠레와 아르헨티나까지 도달했고 지금은 다시 호주로 향하고 있는데요.

수십 년 만의 최악의 산불이 호주만 겪고 있는 재앙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루하루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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