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딸 ‘장학금’ 명목 299만 원” 김영란법 위반 법원 첫 판단

입력 2020.01.15 (10:30) 수정 2020.01.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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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미성년자 자녀 통장에 민원인이 장학금이라며 넣은 돈은 경찰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보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하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하고, 그에 기반한 징계는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특정 공무원의 자녀가 장학금 명목으로 수수한 돈에 대해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본 사법부 판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울행정법원은 딸의 장학금 명목으로 299만 원을 받은 경찰관이 청탁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강등 처분을 받자 징계가 부당하다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지난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앞서 서울 관내에서 근무하던 경찰관 A 씨는 민원인 B 씨와 알고 지내던 중, 2017년 B 씨로부터 자신의 11살 딸 명의의 통장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전달했습니다. B 씨는 2017년 7월부터 9월 사이 각각 100만 원, 99만 원, 100만 원 등 총 299만 원을 A 씨 딸의 장학금 명목으로 통장에 입금했습니다.

현행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제8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서울지방경찰청은 징계위원회와 소청심사위를 거쳐 A 씨에게 청탁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강등' 처분을 했고, 징계부가금을 함께 부과했습니다.

A 씨는 강등 처분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A 씨는 "조사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이 있고, 민원인이 딸에게 장학금 등을 줄 명목으로 통장에 돈을 넣은 것이라서 이를 딸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지언정 A 씨가 수수한 것으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청탁금지법상 딸의 통장으로 입금된 금원을 A 씨가 수수한 것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1회 100만 원을 초과하여 입금된 것이 아니며, 총 금원 합계액이 299만 원에 불과하므로 청탁금지법 위반도 아니고, 다수의 상훈 공적이 있고 성실하게 수십 년간 공무를 수행해 왔다며 강등은 지나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나 A 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A 씨가 민원인으로부터 딸의 장학금 등 명목으로 금원을 수수하기 위하여 딸의 통장을 민원인에게 양도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후 위 통장 계좌로 입금된 합계 299만 원은 이를 A 씨가 수수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겁니다.

법원은 "A 씨는 민원인이 생활비 통장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딸 명의 통장을 건네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나, 경찰공무원인 원고는 통장 등의 양도가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됨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면서 "그럼에도 굳이 자신의 11살 딸 명의 통장을 민원인의 생활비 통장으로 교부해주었다고 보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민원인이 이 통장에 입금한 돈을 인출해 사용한 사정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또 "민원인이 장학금 등을 줄 명목으로 통장에 금원을 입금하였을 뿐이므로, 이를 A 씨의 딸이 수수한 것이고 A 씨가 수수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취지로도 주장하나, A 씨와 민원인의 관계 및 통장 명의자가 딸이자 11살의 미성년자에 불과하다는 점 등 사정들에 비춰보면 딸 통장으로 입금된 돈 전부가 A 씨가 수수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법원은 "딸 명의의 통장에 들어온 돈이 형식적으로 '1회 100만 원을 초과'하여 입금된 것은 아니나, 전체 금원의 성격, 이체 기간, 총 입금액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을 위반하여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았다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며 징계사유를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최초 100만 원 입금 시점부터 약 10일이 지난 시점에 99만 원, 다시 20일 정도가 지나 100만 원이 입금되어 매우 근접한 기간에 금원들의 입금이 이루어진 점 △각 입금액이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제한 범위에 거의 근접한 액수에 해당하는 점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을 편법적으로 탈피하기 위하여 금원을 분할하여 제공하는 행위 등에 대해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1회’는 금원이 지급된 경위 및 횟수,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아울러 "A 씨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등의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공무원으로서 높은 도덕성, 윤리성, 준법의식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에 위배해 청탁금지법 등을 위반했다"며 "위와 같은 비위행위들은 일반 국민의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를 크게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게 처리되어야 할 사법절차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하므로, 그 자체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를 엄중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다"며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2심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음 달 선고를 앞둔 상황입니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는 장학금 지급 대상을 밀접한 직무 관련성이 있는 특정 공직자 등의 자녀로 한정해 장학금이 부모인 공직자 등에게 직접 제공된다는 의사가 확인되는 경우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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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5 10:30:56
    • 수정2020-01-15 15:56:15
    취재K
경찰의 미성년자 자녀 통장에 민원인이 장학금이라며 넣은 돈은 경찰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보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하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하고, 그에 기반한 징계는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특정 공무원의 자녀가 장학금 명목으로 수수한 돈에 대해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본 사법부 판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울행정법원은 딸의 장학금 명목으로 299만 원을 받은 경찰관이 청탁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강등 처분을 받자 징계가 부당하다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지난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앞서 서울 관내에서 근무하던 경찰관 A 씨는 민원인 B 씨와 알고 지내던 중, 2017년 B 씨로부터 자신의 11살 딸 명의의 통장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전달했습니다. B 씨는 2017년 7월부터 9월 사이 각각 100만 원, 99만 원, 100만 원 등 총 299만 원을 A 씨 딸의 장학금 명목으로 통장에 입금했습니다.

현행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제8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서울지방경찰청은 징계위원회와 소청심사위를 거쳐 A 씨에게 청탁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강등' 처분을 했고, 징계부가금을 함께 부과했습니다.

A 씨는 강등 처분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A 씨는 "조사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이 있고, 민원인이 딸에게 장학금 등을 줄 명목으로 통장에 돈을 넣은 것이라서 이를 딸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지언정 A 씨가 수수한 것으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청탁금지법상 딸의 통장으로 입금된 금원을 A 씨가 수수한 것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1회 100만 원을 초과하여 입금된 것이 아니며, 총 금원 합계액이 299만 원에 불과하므로 청탁금지법 위반도 아니고, 다수의 상훈 공적이 있고 성실하게 수십 년간 공무를 수행해 왔다며 강등은 지나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나 A 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A 씨가 민원인으로부터 딸의 장학금 등 명목으로 금원을 수수하기 위하여 딸의 통장을 민원인에게 양도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후 위 통장 계좌로 입금된 합계 299만 원은 이를 A 씨가 수수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겁니다.

법원은 "A 씨는 민원인이 생활비 통장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딸 명의 통장을 건네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나, 경찰공무원인 원고는 통장 등의 양도가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됨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면서 "그럼에도 굳이 자신의 11살 딸 명의 통장을 민원인의 생활비 통장으로 교부해주었다고 보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민원인이 이 통장에 입금한 돈을 인출해 사용한 사정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또 "민원인이 장학금 등을 줄 명목으로 통장에 금원을 입금하였을 뿐이므로, 이를 A 씨의 딸이 수수한 것이고 A 씨가 수수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취지로도 주장하나, A 씨와 민원인의 관계 및 통장 명의자가 딸이자 11살의 미성년자에 불과하다는 점 등 사정들에 비춰보면 딸 통장으로 입금된 돈 전부가 A 씨가 수수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법원은 "딸 명의의 통장에 들어온 돈이 형식적으로 '1회 100만 원을 초과'하여 입금된 것은 아니나, 전체 금원의 성격, 이체 기간, 총 입금액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을 위반하여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았다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며 징계사유를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최초 100만 원 입금 시점부터 약 10일이 지난 시점에 99만 원, 다시 20일 정도가 지나 100만 원이 입금되어 매우 근접한 기간에 금원들의 입금이 이루어진 점 △각 입금액이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제한 범위에 거의 근접한 액수에 해당하는 점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을 편법적으로 탈피하기 위하여 금원을 분할하여 제공하는 행위 등에 대해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1회’는 금원이 지급된 경위 및 횟수,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아울러 "A 씨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등의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공무원으로서 높은 도덕성, 윤리성, 준법의식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에 위배해 청탁금지법 등을 위반했다"며 "위와 같은 비위행위들은 일반 국민의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를 크게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게 처리되어야 할 사법절차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하므로, 그 자체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를 엄중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다"며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2심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음 달 선고를 앞둔 상황입니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는 장학금 지급 대상을 밀접한 직무 관련성이 있는 특정 공직자 등의 자녀로 한정해 장학금이 부모인 공직자 등에게 직접 제공된다는 의사가 확인되는 경우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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