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땀 흘려도 처벌?’…애매한 ‘에이즈예방법’ 헌재 간다

입력 2020.01.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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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예방법'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신진화 판사는 지난해 11월, 에이즈예방법(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가운데 제19조와 제25조 2항이 위헌인지 판단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자세한 법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한 법률 조항위헌법률심판 제청한 법률 조항

현행법에 따르면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체액'을 통해 '전파매개행위'를 하면 징역 3년의 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크게 헌법의 두 원칙을 위반했다고 봤습니다.

명확성 원칙 위반…사람 많은 곳에서 재채기해도 처벌?

재판부는 '에이즈예방법'에서 말하는 '체액'과 '전파매개행위'가 너무 애매하고 광범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전파매개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HIV를 감염시킨 사람인지 아니면 감염시킬 '위험'이 있는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또한, 체액은 정액뿐 아니라 땀, 타액, 눈물 등까지 포함하는데 그렇다면 눈물과 땀을 전파하는 것도 처벌할 수 있는지 법에서 명확하지 나와 있지 않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현재 '에이즈예방법'은 HIV 감염인이 다른 사람과 같은 빨대를 쓰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재채기를 하더라도 범죄 구성요건으로 볼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애매한 법 조항은 범죄와 형벌이 법률로 정해져야 하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겁니다.

과잉금지원칙 위반…의학기술의 발달에 못 미치는 법 조항

HIV 감염인이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전파매개행위'를 하면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벌금형도 없습니다.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재판부는 오직 징역형밖에 없는 엄한 법 조항과 에이즈 치료 의학이 발달한 현실과 부딪힌다고 지적했습니다.

엄중식 가천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에이즈는 이제 만성감염병이 됐다. 치료제 약을 꾸준히 하루 1번 복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HIV 전파가 안 되는 수준으로 에이즈 치료 의학이 발전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엄 교수는 "에이즈 발견 당시와 비교해 진단과 치료 및 관리가 발달했는데, 에이즈예방법을 만들 당시의 법 조항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채윤 성 소수자 인권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에이즈예방법'이 만들어졌던 1987년 당시에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으로 법을 만들었다. 이 법이 여러 번 개정됐지만, 이 부분은 아직 개정이 안 됐다. 입법부에서 개정해야 하는데 법을 적용하는 사법부에서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고 본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재판부는 2018년 '에이즈예방법' 위반으로 기소된 HIV 감염자인 한 성 소수자 남성에 대해 재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병원 진단을 받은 이 남성은 HIV가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성과 성접촉을 한 상대 남성도 HIV에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질병 감염자에게 형사법을 적용하는 '에이즈예방법'. 치료기술의 발전에 맞춰 관련법도 바뀔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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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과 땀 흘려도 처벌?’…애매한 ‘에이즈예방법’ 헌재 간다
    • 입력 2020-01-15 17:31:11
    취재K
'에이즈예방법'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신진화 판사는 지난해 11월, 에이즈예방법(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가운데 제19조와 제25조 2항이 위헌인지 판단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자세한 법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한 법률 조항
현행법에 따르면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체액'을 통해 '전파매개행위'를 하면 징역 3년의 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크게 헌법의 두 원칙을 위반했다고 봤습니다.

명확성 원칙 위반…사람 많은 곳에서 재채기해도 처벌?

재판부는 '에이즈예방법'에서 말하는 '체액'과 '전파매개행위'가 너무 애매하고 광범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전파매개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HIV를 감염시킨 사람인지 아니면 감염시킬 '위험'이 있는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또한, 체액은 정액뿐 아니라 땀, 타액, 눈물 등까지 포함하는데 그렇다면 눈물과 땀을 전파하는 것도 처벌할 수 있는지 법에서 명확하지 나와 있지 않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현재 '에이즈예방법'은 HIV 감염인이 다른 사람과 같은 빨대를 쓰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재채기를 하더라도 범죄 구성요건으로 볼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애매한 법 조항은 범죄와 형벌이 법률로 정해져야 하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겁니다.

과잉금지원칙 위반…의학기술의 발달에 못 미치는 법 조항

HIV 감염인이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전파매개행위'를 하면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벌금형도 없습니다.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재판부는 오직 징역형밖에 없는 엄한 법 조항과 에이즈 치료 의학이 발달한 현실과 부딪힌다고 지적했습니다.

엄중식 가천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에이즈는 이제 만성감염병이 됐다. 치료제 약을 꾸준히 하루 1번 복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HIV 전파가 안 되는 수준으로 에이즈 치료 의학이 발전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엄 교수는 "에이즈 발견 당시와 비교해 진단과 치료 및 관리가 발달했는데, 에이즈예방법을 만들 당시의 법 조항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채윤 성 소수자 인권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에이즈예방법'이 만들어졌던 1987년 당시에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으로 법을 만들었다. 이 법이 여러 번 개정됐지만, 이 부분은 아직 개정이 안 됐다. 입법부에서 개정해야 하는데 법을 적용하는 사법부에서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고 본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재판부는 2018년 '에이즈예방법' 위반으로 기소된 HIV 감염자인 한 성 소수자 남성에 대해 재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병원 진단을 받은 이 남성은 HIV가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성과 성접촉을 한 상대 남성도 HIV에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질병 감염자에게 형사법을 적용하는 '에이즈예방법'. 치료기술의 발전에 맞춰 관련법도 바뀔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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