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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유교 수업 들어야”…부산시의 기막힌 ‘성 인지’ 예산
입력 2020.01.16 (07:01) 취재K
“여성은 유교 수업 들어야”…부산시의 기막힌 ‘성 인지’ 예산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2013년부터 남녀 성차별 없이 성 평등을 고려해 예산을 편성하도록 한 '성 인지 예산' 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부산에서만 1조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는데요. KBS가 부산시와 16개 기초자치단체가 성 인지 예산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전부 살펴봤습니다.

틀니 시술이 성평등 사업?

부산의 한 구청은 지난해 노인 틀니 시술을 지원하는데 성 인지 예산 1천5백만 원을 투입했습니다. 이 사업에 어떻게 성 인지 예산이 쓰였을까요? 취재진이 구청 관계자에게 묻자 "올해 예산에는 빠졌다. 성 인지 예산으로 편성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잘못 사용한 걸 인정한 겁니다.

피서객을 모으려고 해수욕장 시설을 정비하는 데 1억 2천만 원, 산복도로 재생 사업에도 6천만 원의 성 인지 예산이 쓰였습니다. 이 밖에도 노인, 청소년, 장애인을 위한 복지 사업에 '성별' 표기만 억지로 끼워 넣은 사업들도 수두룩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성 평등 효과가 기대되는 사업에 예산이 투입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부산시와 기초자치단체의 지난해 성 인지 예산서부산시와 기초자치단체의 지난해 성 인지 예산서

한 해 1조 원…부실하게 집행되는 이유는?

부산시의 올해 성 인지 예산은 1조 원이 넘었습니다. 지난해의 3배 수준입니다. 한 해 12조 원 규모의 전체 예산을 기준으로 비중이 1년 새 3%대에서 10%까지 늘었습니다. 기초자치단체들도 덩달아 매년 성 인지 예산 규모를 늘리고 있습니다.


예산은 어마어마하게 느는데, 집행 실태는 황당합니다. 성 인지 예산으로 집행된 '어린이 숲 체험 교실' 사업을 살펴봤습니다. 예산 편성 이유에는 '성별 격차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 판단으로 사업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정된 사업이 적절한지 심의하거나 협의하는 절차도 사실상 없었습니다. 부산시는 뒤늦게 올해부터 평가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아직도 담당 공무원이 알아서 예산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외부기관의 자문을 받는 일도 있지만 형식에 불과합니다. 한 구청 관계자는 외부 컨설팅에서 지적을 받은 사업에도 다시 성 인지 예산을 편성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성 차별 사업에도 투입…취지 역행

성 인지 예산서를 살펴보던 취재진을 당황하게 한 대목이 있습니다. 성 편견을 심화시키거나 성차별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는 사업에 성 인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겁니다.

부산 동래구는 '동래향교 충효교실' 운영에 성 인지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구체적인 사업 목적과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유교 경전 수업에 대한 여성 이용자의 선호도가 낮아 여성 참여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돼 있습니다. '다도와 서예'가 주요 사업 프로그램입니다.

부산 동래구가 성 인지 예산으로 편성한 ‘동래향교 충효교실’ 사업부산 동래구가 성 인지 예산으로 편성한 ‘동래향교 충효교실’ 사업

김영 부산대 여성연구소장은 "여성 참여를 높이기 위해 다도 교육을 한다는 건 전형적으로 성별 분업을 강화하는 발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해운대구는 친절도 향상 시책을 추진하는 데 성 인지 예산을 썼습니다. '여성 공무원의 민원 업무 담당 비율이 높아 업무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게 사업 시행 이유입니다. 이럴 경우 상식적으로 민원 업무의 남녀 비율을 맞추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정작 해운대구가 발굴한 사업은 '감성 힐링 워크숍'입니다.

이에 대해 김영 소장은 "여성이 계속 담당하되 그 스트레스는 힐링 캠프로 풀어주겠다는 건 우리가 위로라도 해 줘야지, 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행안부 지침 따랐다"…실체는 딴판

성 인지 예산을 왜 적절하게 쓰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공통으로 나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행정안전부 지침'입니다. 행안부 지침에 있는 걸 보고 했다는 해명이었지요. 행안부 지침대로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성 인지 예산을 쓴다는 부산 동구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행안부는 남성과 여성 장애인의 선호도 차이를 고려해 여성 일자리를 지원하도록 사업 시책을 제시했지만, 동구는 성별 격차와 아무 관련 없는 단순한 '장애인 일자리 확대'를 사업 목표로 삼았습니다.

연제구의 '재난 취약가구 안전점검' 사업도 비교해 봤습니다. 여성 가구주와 여성 독거노인 비율을 분석해 재난 취약과의 연관성을 따진 행안부 지침과 달리 연제구는 아예 성별 개념을 배제했습니다.

행안부는 "사업 제목만 베껴 썼을 뿐, 내용을 제대로 참고하지 않은 건 지침을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각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목적에 맞게 지역 상황을 고려해 예산을 써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무늬만 '자문'…결국 '실적 경쟁'

부산시 성별영향분석센터는 성 인지 예산과 관련해 부산에서 유일하게 자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했을까요?

부산시 성별영향분석센터부산시 성별영향분석센터

부산시는 올해 처음으로 센터에 성 인지 예산 자문을 요청했습니다. 정책 시행 8년 만입니다. 1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에선 단 4곳만 자문을 진행했습니다. 심지어 자문했다는 수영구는 성별영향분석센터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사업도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자문의 구속력이 없고, 사실상 예산 편성이 끝난 뒤에 형식적으로 자문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센터의 핵심 관계자는 "부산시와 16개 기초자치단체의 사업 가운데 우수 사례로 꼽을 만한 건 한 건도 없다"며 "성 인지 관련 사업에 대한 신규 발굴도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형식적 절차도 없이 성 인지 예산이 마구잡이로 쓰이는 데는 보이지 않는 실적 경쟁도 한몫합니다. 단순히 예산 규모로만 성 평등 정책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예산의 양적 증가가 오히려 정책의 질적 악화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부산시 관계자는 "중앙부처에서 성 인지 예산 규모로 시·도간 순위를 매기는 데다 예산이 적으면 의회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을까 긴장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성 평등 정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분위기에 떠밀려 형식도, 내용도 없는 성 인지 예산 사업이 덩치만 키워가고 있는 겁니다.
  • “여성은 유교 수업 들어야”…부산시의 기막힌 ‘성 인지’ 예산
    • 입력 2020.01.16 (07:01)
    취재K
“여성은 유교 수업 들어야”…부산시의 기막힌 ‘성 인지’ 예산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2013년부터 남녀 성차별 없이 성 평등을 고려해 예산을 편성하도록 한 '성 인지 예산' 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부산에서만 1조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는데요. KBS가 부산시와 16개 기초자치단체가 성 인지 예산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전부 살펴봤습니다.

틀니 시술이 성평등 사업?

부산의 한 구청은 지난해 노인 틀니 시술을 지원하는데 성 인지 예산 1천5백만 원을 투입했습니다. 이 사업에 어떻게 성 인지 예산이 쓰였을까요? 취재진이 구청 관계자에게 묻자 "올해 예산에는 빠졌다. 성 인지 예산으로 편성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잘못 사용한 걸 인정한 겁니다.

피서객을 모으려고 해수욕장 시설을 정비하는 데 1억 2천만 원, 산복도로 재생 사업에도 6천만 원의 성 인지 예산이 쓰였습니다. 이 밖에도 노인, 청소년, 장애인을 위한 복지 사업에 '성별' 표기만 억지로 끼워 넣은 사업들도 수두룩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성 평등 효과가 기대되는 사업에 예산이 투입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부산시와 기초자치단체의 지난해 성 인지 예산서부산시와 기초자치단체의 지난해 성 인지 예산서

한 해 1조 원…부실하게 집행되는 이유는?

부산시의 올해 성 인지 예산은 1조 원이 넘었습니다. 지난해의 3배 수준입니다. 한 해 12조 원 규모의 전체 예산을 기준으로 비중이 1년 새 3%대에서 10%까지 늘었습니다. 기초자치단체들도 덩달아 매년 성 인지 예산 규모를 늘리고 있습니다.


예산은 어마어마하게 느는데, 집행 실태는 황당합니다. 성 인지 예산으로 집행된 '어린이 숲 체험 교실' 사업을 살펴봤습니다. 예산 편성 이유에는 '성별 격차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 판단으로 사업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정된 사업이 적절한지 심의하거나 협의하는 절차도 사실상 없었습니다. 부산시는 뒤늦게 올해부터 평가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아직도 담당 공무원이 알아서 예산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외부기관의 자문을 받는 일도 있지만 형식에 불과합니다. 한 구청 관계자는 외부 컨설팅에서 지적을 받은 사업에도 다시 성 인지 예산을 편성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성 차별 사업에도 투입…취지 역행

성 인지 예산서를 살펴보던 취재진을 당황하게 한 대목이 있습니다. 성 편견을 심화시키거나 성차별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는 사업에 성 인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겁니다.

부산 동래구는 '동래향교 충효교실' 운영에 성 인지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구체적인 사업 목적과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유교 경전 수업에 대한 여성 이용자의 선호도가 낮아 여성 참여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돼 있습니다. '다도와 서예'가 주요 사업 프로그램입니다.

부산 동래구가 성 인지 예산으로 편성한 ‘동래향교 충효교실’ 사업부산 동래구가 성 인지 예산으로 편성한 ‘동래향교 충효교실’ 사업

김영 부산대 여성연구소장은 "여성 참여를 높이기 위해 다도 교육을 한다는 건 전형적으로 성별 분업을 강화하는 발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해운대구는 친절도 향상 시책을 추진하는 데 성 인지 예산을 썼습니다. '여성 공무원의 민원 업무 담당 비율이 높아 업무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게 사업 시행 이유입니다. 이럴 경우 상식적으로 민원 업무의 남녀 비율을 맞추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정작 해운대구가 발굴한 사업은 '감성 힐링 워크숍'입니다.

이에 대해 김영 소장은 "여성이 계속 담당하되 그 스트레스는 힐링 캠프로 풀어주겠다는 건 우리가 위로라도 해 줘야지, 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행안부 지침 따랐다"…실체는 딴판

성 인지 예산을 왜 적절하게 쓰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공통으로 나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행정안전부 지침'입니다. 행안부 지침에 있는 걸 보고 했다는 해명이었지요. 행안부 지침대로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성 인지 예산을 쓴다는 부산 동구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행안부는 남성과 여성 장애인의 선호도 차이를 고려해 여성 일자리를 지원하도록 사업 시책을 제시했지만, 동구는 성별 격차와 아무 관련 없는 단순한 '장애인 일자리 확대'를 사업 목표로 삼았습니다.

연제구의 '재난 취약가구 안전점검' 사업도 비교해 봤습니다. 여성 가구주와 여성 독거노인 비율을 분석해 재난 취약과의 연관성을 따진 행안부 지침과 달리 연제구는 아예 성별 개념을 배제했습니다.

행안부는 "사업 제목만 베껴 썼을 뿐, 내용을 제대로 참고하지 않은 건 지침을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각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목적에 맞게 지역 상황을 고려해 예산을 써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무늬만 '자문'…결국 '실적 경쟁'

부산시 성별영향분석센터는 성 인지 예산과 관련해 부산에서 유일하게 자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했을까요?

부산시 성별영향분석센터부산시 성별영향분석센터

부산시는 올해 처음으로 센터에 성 인지 예산 자문을 요청했습니다. 정책 시행 8년 만입니다. 1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에선 단 4곳만 자문을 진행했습니다. 심지어 자문했다는 수영구는 성별영향분석센터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사업도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자문의 구속력이 없고, 사실상 예산 편성이 끝난 뒤에 형식적으로 자문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센터의 핵심 관계자는 "부산시와 16개 기초자치단체의 사업 가운데 우수 사례로 꼽을 만한 건 한 건도 없다"며 "성 인지 관련 사업에 대한 신규 발굴도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형식적 절차도 없이 성 인지 예산이 마구잡이로 쓰이는 데는 보이지 않는 실적 경쟁도 한몫합니다. 단순히 예산 규모로만 성 평등 정책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예산의 양적 증가가 오히려 정책의 질적 악화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부산시 관계자는 "중앙부처에서 성 인지 예산 규모로 시·도간 순위를 매기는 데다 예산이 적으면 의회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을까 긴장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성 평등 정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분위기에 떠밀려 형식도, 내용도 없는 성 인지 예산 사업이 덩치만 키워가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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