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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라이브] “‘한국군 위안부’라는 존재, 가슴 아프지만 드러내고 인정해야 일본에 당당한 목소리 낼 수 있어”
입력 2020.01.16 (20:08) 수정 2020.01.16 (20:09) 김용민 라이브
[김용민 라이브] “‘한국군 위안부’라는 존재, 가슴 아프지만 드러내고 인정해야 일본에 당당한 목소리 낼 수 있어”

(▲ 한성대학교 김귀옥 교수 / 출처: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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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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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본부가 남긴 기록, 〈후방전사〉가 한국군 위안부의 증거
- 한국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의 연장선에 있어
- 육군에서 제도적으로 실시한 한국군 위안부
-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거짓 학자의 면모 보인다고 생각…. 경쟁할 생각 없어

■ 프로그램명 : 김용민 라이브
■ 코너명 : 〈쏙 인터뷰〉
■ 방송시간 : 1월 16일 (목) 17:39~17:56 KBS1R FM 97.3 MHz
■ 출연자 : 한성대학교 사회학과 김귀옥 교수



◇김용민: 20년 동안 군 위안부와 군 위안소를 중심으로 한 연구를 하면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학계에 발표한 학자가 있습니다. 한성대학교 사회학과 김귀옥. 책 제목은 이렇습니다.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 책에 대해서 ‘<반일 종족주의>에 뺨을 갈기는 책이다.’ 이렇게 평가를 했는데요.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라는 불편한 진실에 오늘은 한 걸음 더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 관련한 연구를 한 김귀옥 교수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귀옥: 안녕하십니까.

◇김용민: 교수님 감사합니다. 방송 출연 많이 안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귀옥: 틈틈이 띄엄띄엄 연구자는 공부를 하고 강의를 해야 하는 게 본업이니까요.

◇김용민: 그렇죠. 논문으로 말을 하는 자리가 바로 교수의 자리, 학자의 자리인데. 교수님 20년 동안 연구해 온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저희가 중심취지를 정확하게 헤아려야 할 텐데 좋은 말씀 기대하겠습니다. 2002년 ‘한국전쟁과 여성: 군위안부와 군위안소를 중심으로’ 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제기하셨는데요. 연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부터 여쭤보겠습니다.

◆김귀옥: 제가 한국군 위안부 그 자체를 20년 동안 연구를 해 왔다고 말하면 그건 좀 부끄러운 거고요. 저는 분단, 전쟁이 우리 사람에게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가 살고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사회학적으로 접근을 해왔죠.

◇김용민: 정말 큰 주제입니다.

◆김귀옥: 그런데 제가 96년도에 박사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 속초에서 한 6개월 정도를 살았습니다.

◇김용민: 논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김귀옥: 네. 당시 월남인 마을이라고 하는 속초에 청호동 아바이마을이 있어요. 거기서 제가 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역사 이야기 생애사를 들어 나가는 그런 과정에 어떤 할아버지하고 얘기를 하는데 그 할아버지는 농담도 잘하셔서 저한테 수사관이 왔다. 너 앞에서 내 인생을 다 밝히게 됐다. 이러면서 재미나게 얘기를 시작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분들은 별 의심 없이. 제가 이미 이 동네에, 일종에 서울에서 내려온 딸이라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예뻐해 주셨어요. 같이 농담도 하고, 같이 일도 하고 그 동네가 워낙 예전에 오징어를 많이 건업했거든요. 그런 일도 좀 같이 하면서 그러니까 이 친구는 그냥 공부만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 도움도 된다. 또 공부방이 있어서 청소년, 중고등학생들과 같이 공부도 하면서 놀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거든요.

◇김용민: 대단하시다.

◆김귀옥: 그런 과정이다 보니까 그분들이 허심탄회하게 자기 인생을 드러냈는데 문득 할아버지가 자기가 한국전쟁 때 위안부 같은 사람들을 봤다는 거예요. 그게 불쑥 나왔어요.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경험. 그래서 제가 너무 놀랐죠. 그게 1996년 12월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너무 그때 당황해서 그다음 말을 거의 잊을 정도로. 그래서 두세 번 이후에 더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김용민: 다시 한 번. 그러니까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라?

◆김귀옥: 위안부가 아니라. 저도 의심을 했죠. 그거 혹시 태평양전쟁 때를 얘기하시는 거 아닙니까? 라고 얘기 했는데. 아니야, 한국전쟁이야. 라고 얘기하면서 한국전쟁 때 위안부를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완전 머리에 뚜껑이 열린다고 하나요. 하얗게 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 조사를 받는 동안 대충 마치고 97년도에는 제가 많은 군사 기관 내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관련한 문건이 있는가 하고 군 위안부라는 것이 정말 저로서는 처음 들었고 정말 어느 누구한테도 그 할아버지 외에는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찾아본 즉 1956년도에 우리 육군본부에서 나온 <후방전사>라는. 일종에 그것도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 전쟁사입니다.

◇김용민: 후방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김귀옥: 네. 후방전사로서 그거는 육군에서 제작한 그리고 육군에서 편찬했고 육군, 군대라는 것은 한국전쟁기와 같은 전쟁기에는 일종에 정부거든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정부가 남긴 기록에서 한국군 위안부를 본겁니다. 그런데 제가 그 사실을 그냥 한두 사람의 인터뷰만 가지고 제가 하기에는 버거웠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제가 이미 찾았잖아요?

◇김용민: 증언자를 만났으니까.

◆김귀옥: 그런데 일단 제 박사 논문 자체는 아까 말한 분단이 우리 사람들에게 일반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면서 반공이 어떤 역사적인 과정이 있는지 또 월남인들의 삶이 과거로부터 현재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는 게 주안점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발표했습니다. 그다음에 2000년대부터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씩 발표도 하고 심지어는 말지에서도 글을 써달라고 하면서 제가 하나하나씩 이후에도 계속 박사 논문이 끝나고 나서 조사하면서 본격적으로 군 위안부와 관련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진짜 정말 뭔지 모르겠지만 나오는 거예요.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많은 할아버지들에 의해서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아니죠. 제가 만나봤던 사람들의 일부이니까요.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군 위안부에 대한 경험, 심지어는 납치한 경험. 그리고 군에서 어떻게 그 사람들을 그야말로 학대를 했다고 할까요. 너무도 착취를 한 그런 것을 일종에 가슴 아프게는 얘기했습니다마는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다르지 않다. 라고 이야기하니까 그때서야 조금은 창피하지만 자기 경험으로 자기가 개인에 대해서 아픔을 얘기한다는 차원이지 이게 한국군 위안부와 같은 그런 존재로서 자기가 인식하시는 부분이 안 되시더라고요. 할아버지들의 당시의 경험이. 그래서 그 경험들을 그렇다고 저는 그분들을 비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왜 그 사람들이 서있었던가. 군인으로서 서있었던가? 하는 것이 저는 더 가슴 아픈 일이었고, 우리 전체 분단사 전쟁사와 관련된 부분이니까요.

◇김용민: 할아버지는 우리 군에서 참전했던 것이고 그 와중에 우리 군에 있던 위안부 시설을 이용했다.

◆김귀옥: 그렇죠.

◇김용민: 그것을 의식 없이 얘기했다는 거죠?

◆김귀옥: 네.

◇김용민: 그럼 그 군대가 어느 군대인지 우리 군이겠지만.

◆김귀옥: 그건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속초에 있는 부대, 섬에 나가있는 부대 이런 데에서 그렇게 쓰고 있는 걸 봤습니다.

◇김용민: 그 위안부 피해자분들은 납치돼서 오신 분들?

◆김귀옥: 위안부로 추정되는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로부터. 그런데 소개를 받고 처음에 전화했을 때는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죠. 당신의 전쟁사, 그런 경험담을 듣고 싶습니다. 라고 얘기했더니 그래, 다음번에 다시 연락하라. 라고 해서 다시 연락했습니다. 아마 누가 소개했는지, 왜 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돼요. 그래서 다음번에 다시 전화를 하니까 아주 냉정하게 그 할머니. 냉정하지만 냉정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그 일을 무덤에 들고 갈 거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 그 말이 저한테는 정말 이 할머니들한테 이 얘기를 꺼낸다는 건 너무도 큰 상처가 되고 저는 지금도 그게 저한테 상처가 되거든요. 그렇다면 이분들의 그런 경험은 과연 무엇인가. 자기 인생을 그냥 그때 이후에 풀려난 이후에 완전히. 그런데 이 할머니는 스스로 납치라고 말하지 않죠. 그런데 그 사람을 이용했던 남성들이 납치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군 위안부는 그야말로 일본군 위안부의 그 연장선에 있었던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죠.

◇김용민: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규명이 됐습니까?

◆김귀옥: 제가 이번 책에서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에서도 이야기를 했고요. 그 전에 논문으로 발표를 했을 때도 장석윤이라는 사람이 그 당시 이 사람은 일제 시기에도 이미 고위 장교였고요. 일제시기에도 관동군까지 가서 관동군에서도 이런 정보활동을 했기 때문에.

◇김용민: 나쁜 것을 배워왔군요.

◆김귀옥: 네. 배워왔고. 그래서 이것을 육군에서 이걸 제도적으로 실시한 겁니다. 그냥 포주를 시켜서 시키는 게 아니라 군대자체가 사실 포주화 돼서 일을 했던 겁니다.

◇김용민: 장석윤.

◆김귀옥: 네. 장석윤.

◇김용민: 그때 지위가.

◆김귀옥: 그 당시에는 대령이었습니다.

◇김용민: 대령.

◆김귀옥: 네, 한국전쟁 당시에는 대령이었습니다.

◇김용민: 지금 살아있습니까?

◆김귀옥: 70년대에 돌아가셨어요.

◇김용민: 그 당시에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증언을 받을 수가 없었겠네요.

◆김귀옥: 그런데 이분은 친일파 인명사전에 나와 있는 분이라서 이분의 소상한 기록은 찾을 수 있습니다.

◇김용민: 그래요. 일제한테 못된 걸 배웠는데, 그런데 말이죠. <반일 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서울대 전 교수. 이분이 후방전사라는 자료를 인용하면서 유독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만 분노하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문제이다. 이런 논리를 폅니다. 김귀옥 교수님 논문을 강연에서 인용하기도 했다고 하던데요.

◆김귀옥: 제가 기억하기에는 2002년이었을까요? 제가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 것은 2002년도에 학술행사에서 이걸 발표하게 됐는데요. 그런데 그 이후에 2002년인지 3년인지 제가 어느 토론회가 그 당시에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많았잖아요. 토론회에서 그분이 나와서 어느 한국의 학자가 한국군 위안부를 얘기하더라. 라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분이 그래도 내 글을 봤구나. 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반일 종족주의에 제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연구한 결과로서 얘기하는 걸 보면서 ‘역시 거짓 학자의 면모를 보이신다’. 라고 생각해서 저는 그 분들하고 경쟁할 생각도 없고 그분들이 그분들의 일을 한다면 저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저의 작업, 연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경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김용민: 이영훈 씨의 논리는 이거인 것 같아요. 일본군도 그랬고 우리군도 그랬는데 위안부는 일상적인 일이고 불행했던 일들이지만 왜 유독 일본군 위안부만 얘기하느냐. 이런 말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

◆김귀옥: 제가 심지어는 전쟁은 곧 위안부를 가지고 있는가? 라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도 검토를 해 봤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한국전쟁 시기만이 아닌, 심지어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난중일기, 어디를 봐도 군 위안부 얘기 없습니다. 물론 술집에 대한 얘기도 있고요. 그런 얘기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군 위안부라는 것은 정말 근대 이후에 나온 것이고 그다음에 또 하나는 독일 같은 경우에는 군 위안부 형태는 있었습니다.

◇김용민: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김귀옥: 네. 그러나 그 군 위안부는 일본에 의한 군 위안부하고는 전적으로 다르고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끼리 쓰게 하는, 일종에 성매매하는 그런 식으로. 물론 그러나 그것도 역시 국가에 의한 폭력적인 하나의 장치라고 저는 생각하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그다음에 프랑스를 지배했을 때 했던 것이 프랑스를 지배해서 독일군을 위해서 썼던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이미 19세기에 유럽, 미국 등에서는 폐창 운동이 있었고, 일본도 폐창 운동. 다시 말하면 공창을 폐지하는 운동을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일본에 의한 정말 발명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이고 그 속에서 한국군 위안부는.

◇김용민: 카피해온 거죠.

◆김귀옥: 그야말로 카피라는 거죠.

◇김용민: 복사해 온 거죠.

◆김귀옥: 그래서 군인들도 그런 증언을 하거든요. 저에게 질문을 했던 여러 군인들이 있는데 군인들이 많은 경우에 군위안부 얘기가 나오면, 자기네 그야말로 대대장이 소위, 또는 중위였는데 다 관동군에 있었던, 또는 일본에 있었던 사람이어서 그런 군 위안부를 쓰게 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이건 정말 그 한국군 당시에 군 위안부를 체험했던 수많은 군인들의 일관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전쟁에도 다 있다. 라는 등 일본에도 있지만 한국에도 있다. 라는 그런 식의 말로는 이건 설명할 수 없는 그건 학자적인 게으름과 양심이 없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여지거든요.

◇김용민: 레이킴 님, 진짜 나쁜 것만 일본한테 배웠네요. 라고 하셨고요. 6192번 쓰시는 분 한국전에 위안부가 있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이건 온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왜 온 국민이 수년 전에 교수님이 발표하신 연구 결과인데 왜 잘 모를까요?

◆김귀옥: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이 주제는 가슴 아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나 이것을 당당하게 얘기를 해야 우리도 당당하게 일본한테 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논문으로 계속 제가 발표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종종 논문을 본 친구들은 심지어는 고등학생, 중학생들도 연락 오기도 하고요. 대학생들도 연락 와서 이것을 유튜브로도 올려놓은 것도 있고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알기에는 제가 대중적인 작가도 아니고요. 그런 대중적인 활동을 하는 데는 저는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만 연구자는 연구로 말하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연구로서 말해 온 것 같습니다.

◇김용민: 알겠습니다. 만약에 정부가 일본에 이런 과거사에 대해서 제대로 따진다면 우리 안에 이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역사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상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차원에 배상과 사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게 되는데 교수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귀옥: 일본 사람들도 일본 지식인들 많은 사람들도 저의 이 글을 알고 있고요.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군 위안부를 간혹 우익들이기는 하지만 이걸 본격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래, 한국에도 한국군 위안부가 있잖니. 라고 이걸 말하면 어떤 논리적인 결과가 나오느냐면 그러니까 일본 정부가 일본 군대가 했던 일본군 위안부를 인정해야 된다는 논리적인 귀결이 생기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우리 정부가 우리의 육군이 만들었다고 주장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지금 그 사실을 계속 은폐하면서 포주들이 했다는 등 계속해서 군대가 국가가 직접 하지 않은 이런 식으로 얘기를 돌리고 있고 아직 그것에 대해서 진상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모순을 자가당착적으로 잘 알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일본한테도 저는 우리가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쁜 것들을 배워서 이런 한국군 위안부를 썼고 또한 미국 위안부도 했던 거잖아요. 그런 사실을 우리 스스로 은폐하고 나면 일본하고 싸울 때 계속해서 어느 지점에 가서는 우리 스스로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당당하게 우리의 역사를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우리 그러한 여성 피해자들한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사죄를 할 때 일본한테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김용민: 알겠습니다. 양종숙 님 참으로 비참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감추지 말고 반성하고 진실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무 중요하고 충격적인 내용인데 짧게 여쭤봐서 많이 아쉽습니다.

◆김귀옥: 책으로 봐주십시오.

◇김용민: 알겠습니다. 한성대학교 사회학과 김귀옥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귀옥: 감사합니다.
  • [김용민 라이브] “‘한국군 위안부’라는 존재, 가슴 아프지만 드러내고 인정해야 일본에 당당한 목소리 낼 수 있어”
    • 입력 2020.01.16 (20:08)
    • 수정 2020.01.16 (20:09)
    김용민 라이브
[김용민 라이브] “‘한국군 위안부’라는 존재, 가슴 아프지만 드러내고 인정해야 일본에 당당한 목소리 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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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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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본부가 남긴 기록, 〈후방전사〉가 한국군 위안부의 증거
- 한국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의 연장선에 있어
- 육군에서 제도적으로 실시한 한국군 위안부
-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거짓 학자의 면모 보인다고 생각…. 경쟁할 생각 없어

■ 프로그램명 : 김용민 라이브
■ 코너명 : 〈쏙 인터뷰〉
■ 방송시간 : 1월 16일 (목) 17:39~17:56 KBS1R FM 97.3 MHz
■ 출연자 : 한성대학교 사회학과 김귀옥 교수



◇김용민: 20년 동안 군 위안부와 군 위안소를 중심으로 한 연구를 하면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학계에 발표한 학자가 있습니다. 한성대학교 사회학과 김귀옥. 책 제목은 이렇습니다.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 책에 대해서 ‘<반일 종족주의>에 뺨을 갈기는 책이다.’ 이렇게 평가를 했는데요.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라는 불편한 진실에 오늘은 한 걸음 더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 관련한 연구를 한 김귀옥 교수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귀옥: 안녕하십니까.

◇김용민: 교수님 감사합니다. 방송 출연 많이 안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귀옥: 틈틈이 띄엄띄엄 연구자는 공부를 하고 강의를 해야 하는 게 본업이니까요.

◇김용민: 그렇죠. 논문으로 말을 하는 자리가 바로 교수의 자리, 학자의 자리인데. 교수님 20년 동안 연구해 온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저희가 중심취지를 정확하게 헤아려야 할 텐데 좋은 말씀 기대하겠습니다. 2002년 ‘한국전쟁과 여성: 군위안부와 군위안소를 중심으로’ 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제기하셨는데요. 연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부터 여쭤보겠습니다.

◆김귀옥: 제가 한국군 위안부 그 자체를 20년 동안 연구를 해 왔다고 말하면 그건 좀 부끄러운 거고요. 저는 분단, 전쟁이 우리 사람에게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가 살고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사회학적으로 접근을 해왔죠.

◇김용민: 정말 큰 주제입니다.

◆김귀옥: 그런데 제가 96년도에 박사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 속초에서 한 6개월 정도를 살았습니다.

◇김용민: 논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김귀옥: 네. 당시 월남인 마을이라고 하는 속초에 청호동 아바이마을이 있어요. 거기서 제가 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역사 이야기 생애사를 들어 나가는 그런 과정에 어떤 할아버지하고 얘기를 하는데 그 할아버지는 농담도 잘하셔서 저한테 수사관이 왔다. 너 앞에서 내 인생을 다 밝히게 됐다. 이러면서 재미나게 얘기를 시작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분들은 별 의심 없이. 제가 이미 이 동네에, 일종에 서울에서 내려온 딸이라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예뻐해 주셨어요. 같이 농담도 하고, 같이 일도 하고 그 동네가 워낙 예전에 오징어를 많이 건업했거든요. 그런 일도 좀 같이 하면서 그러니까 이 친구는 그냥 공부만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 도움도 된다. 또 공부방이 있어서 청소년, 중고등학생들과 같이 공부도 하면서 놀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거든요.

◇김용민: 대단하시다.

◆김귀옥: 그런 과정이다 보니까 그분들이 허심탄회하게 자기 인생을 드러냈는데 문득 할아버지가 자기가 한국전쟁 때 위안부 같은 사람들을 봤다는 거예요. 그게 불쑥 나왔어요.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경험. 그래서 제가 너무 놀랐죠. 그게 1996년 12월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너무 그때 당황해서 그다음 말을 거의 잊을 정도로. 그래서 두세 번 이후에 더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김용민: 다시 한 번. 그러니까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라?

◆김귀옥: 위안부가 아니라. 저도 의심을 했죠. 그거 혹시 태평양전쟁 때를 얘기하시는 거 아닙니까? 라고 얘기 했는데. 아니야, 한국전쟁이야. 라고 얘기하면서 한국전쟁 때 위안부를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완전 머리에 뚜껑이 열린다고 하나요. 하얗게 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 조사를 받는 동안 대충 마치고 97년도에는 제가 많은 군사 기관 내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관련한 문건이 있는가 하고 군 위안부라는 것이 정말 저로서는 처음 들었고 정말 어느 누구한테도 그 할아버지 외에는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찾아본 즉 1956년도에 우리 육군본부에서 나온 <후방전사>라는. 일종에 그것도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 전쟁사입니다.

◇김용민: 후방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김귀옥: 네. 후방전사로서 그거는 육군에서 제작한 그리고 육군에서 편찬했고 육군, 군대라는 것은 한국전쟁기와 같은 전쟁기에는 일종에 정부거든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정부가 남긴 기록에서 한국군 위안부를 본겁니다. 그런데 제가 그 사실을 그냥 한두 사람의 인터뷰만 가지고 제가 하기에는 버거웠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제가 이미 찾았잖아요?

◇김용민: 증언자를 만났으니까.

◆김귀옥: 그런데 일단 제 박사 논문 자체는 아까 말한 분단이 우리 사람들에게 일반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면서 반공이 어떤 역사적인 과정이 있는지 또 월남인들의 삶이 과거로부터 현재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는 게 주안점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발표했습니다. 그다음에 2000년대부터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씩 발표도 하고 심지어는 말지에서도 글을 써달라고 하면서 제가 하나하나씩 이후에도 계속 박사 논문이 끝나고 나서 조사하면서 본격적으로 군 위안부와 관련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진짜 정말 뭔지 모르겠지만 나오는 거예요.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많은 할아버지들에 의해서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아니죠. 제가 만나봤던 사람들의 일부이니까요.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군 위안부에 대한 경험, 심지어는 납치한 경험. 그리고 군에서 어떻게 그 사람들을 그야말로 학대를 했다고 할까요. 너무도 착취를 한 그런 것을 일종에 가슴 아프게는 얘기했습니다마는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다르지 않다. 라고 이야기하니까 그때서야 조금은 창피하지만 자기 경험으로 자기가 개인에 대해서 아픔을 얘기한다는 차원이지 이게 한국군 위안부와 같은 그런 존재로서 자기가 인식하시는 부분이 안 되시더라고요. 할아버지들의 당시의 경험이. 그래서 그 경험들을 그렇다고 저는 그분들을 비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왜 그 사람들이 서있었던가. 군인으로서 서있었던가? 하는 것이 저는 더 가슴 아픈 일이었고, 우리 전체 분단사 전쟁사와 관련된 부분이니까요.

◇김용민: 할아버지는 우리 군에서 참전했던 것이고 그 와중에 우리 군에 있던 위안부 시설을 이용했다.

◆김귀옥: 그렇죠.

◇김용민: 그것을 의식 없이 얘기했다는 거죠?

◆김귀옥: 네.

◇김용민: 그럼 그 군대가 어느 군대인지 우리 군이겠지만.

◆김귀옥: 그건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속초에 있는 부대, 섬에 나가있는 부대 이런 데에서 그렇게 쓰고 있는 걸 봤습니다.

◇김용민: 그 위안부 피해자분들은 납치돼서 오신 분들?

◆김귀옥: 위안부로 추정되는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로부터. 그런데 소개를 받고 처음에 전화했을 때는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죠. 당신의 전쟁사, 그런 경험담을 듣고 싶습니다. 라고 얘기했더니 그래, 다음번에 다시 연락하라. 라고 해서 다시 연락했습니다. 아마 누가 소개했는지, 왜 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돼요. 그래서 다음번에 다시 전화를 하니까 아주 냉정하게 그 할머니. 냉정하지만 냉정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그 일을 무덤에 들고 갈 거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 그 말이 저한테는 정말 이 할머니들한테 이 얘기를 꺼낸다는 건 너무도 큰 상처가 되고 저는 지금도 그게 저한테 상처가 되거든요. 그렇다면 이분들의 그런 경험은 과연 무엇인가. 자기 인생을 그냥 그때 이후에 풀려난 이후에 완전히. 그런데 이 할머니는 스스로 납치라고 말하지 않죠. 그런데 그 사람을 이용했던 남성들이 납치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군 위안부는 그야말로 일본군 위안부의 그 연장선에 있었던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죠.

◇김용민: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규명이 됐습니까?

◆김귀옥: 제가 이번 책에서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에서도 이야기를 했고요. 그 전에 논문으로 발표를 했을 때도 장석윤이라는 사람이 그 당시 이 사람은 일제 시기에도 이미 고위 장교였고요. 일제시기에도 관동군까지 가서 관동군에서도 이런 정보활동을 했기 때문에.

◇김용민: 나쁜 것을 배워왔군요.

◆김귀옥: 네. 배워왔고. 그래서 이것을 육군에서 이걸 제도적으로 실시한 겁니다. 그냥 포주를 시켜서 시키는 게 아니라 군대자체가 사실 포주화 돼서 일을 했던 겁니다.

◇김용민: 장석윤.

◆김귀옥: 네. 장석윤.

◇김용민: 그때 지위가.

◆김귀옥: 그 당시에는 대령이었습니다.

◇김용민: 대령.

◆김귀옥: 네, 한국전쟁 당시에는 대령이었습니다.

◇김용민: 지금 살아있습니까?

◆김귀옥: 70년대에 돌아가셨어요.

◇김용민: 그 당시에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증언을 받을 수가 없었겠네요.

◆김귀옥: 그런데 이분은 친일파 인명사전에 나와 있는 분이라서 이분의 소상한 기록은 찾을 수 있습니다.

◇김용민: 그래요. 일제한테 못된 걸 배웠는데, 그런데 말이죠. <반일 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서울대 전 교수. 이분이 후방전사라는 자료를 인용하면서 유독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만 분노하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문제이다. 이런 논리를 폅니다. 김귀옥 교수님 논문을 강연에서 인용하기도 했다고 하던데요.

◆김귀옥: 제가 기억하기에는 2002년이었을까요? 제가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 것은 2002년도에 학술행사에서 이걸 발표하게 됐는데요. 그런데 그 이후에 2002년인지 3년인지 제가 어느 토론회가 그 당시에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많았잖아요. 토론회에서 그분이 나와서 어느 한국의 학자가 한국군 위안부를 얘기하더라. 라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분이 그래도 내 글을 봤구나. 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반일 종족주의에 제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연구한 결과로서 얘기하는 걸 보면서 ‘역시 거짓 학자의 면모를 보이신다’. 라고 생각해서 저는 그 분들하고 경쟁할 생각도 없고 그분들이 그분들의 일을 한다면 저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저의 작업, 연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경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김용민: 이영훈 씨의 논리는 이거인 것 같아요. 일본군도 그랬고 우리군도 그랬는데 위안부는 일상적인 일이고 불행했던 일들이지만 왜 유독 일본군 위안부만 얘기하느냐. 이런 말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

◆김귀옥: 제가 심지어는 전쟁은 곧 위안부를 가지고 있는가? 라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도 검토를 해 봤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한국전쟁 시기만이 아닌, 심지어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난중일기, 어디를 봐도 군 위안부 얘기 없습니다. 물론 술집에 대한 얘기도 있고요. 그런 얘기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군 위안부라는 것은 정말 근대 이후에 나온 것이고 그다음에 또 하나는 독일 같은 경우에는 군 위안부 형태는 있었습니다.

◇김용민: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김귀옥: 네. 그러나 그 군 위안부는 일본에 의한 군 위안부하고는 전적으로 다르고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끼리 쓰게 하는, 일종에 성매매하는 그런 식으로. 물론 그러나 그것도 역시 국가에 의한 폭력적인 하나의 장치라고 저는 생각하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그다음에 프랑스를 지배했을 때 했던 것이 프랑스를 지배해서 독일군을 위해서 썼던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이미 19세기에 유럽, 미국 등에서는 폐창 운동이 있었고, 일본도 폐창 운동. 다시 말하면 공창을 폐지하는 운동을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일본에 의한 정말 발명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이고 그 속에서 한국군 위안부는.

◇김용민: 카피해온 거죠.

◆김귀옥: 그야말로 카피라는 거죠.

◇김용민: 복사해 온 거죠.

◆김귀옥: 그래서 군인들도 그런 증언을 하거든요. 저에게 질문을 했던 여러 군인들이 있는데 군인들이 많은 경우에 군위안부 얘기가 나오면, 자기네 그야말로 대대장이 소위, 또는 중위였는데 다 관동군에 있었던, 또는 일본에 있었던 사람이어서 그런 군 위안부를 쓰게 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이건 정말 그 한국군 당시에 군 위안부를 체험했던 수많은 군인들의 일관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전쟁에도 다 있다. 라는 등 일본에도 있지만 한국에도 있다. 라는 그런 식의 말로는 이건 설명할 수 없는 그건 학자적인 게으름과 양심이 없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여지거든요.

◇김용민: 레이킴 님, 진짜 나쁜 것만 일본한테 배웠네요. 라고 하셨고요. 6192번 쓰시는 분 한국전에 위안부가 있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이건 온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왜 온 국민이 수년 전에 교수님이 발표하신 연구 결과인데 왜 잘 모를까요?

◆김귀옥: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이 주제는 가슴 아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나 이것을 당당하게 얘기를 해야 우리도 당당하게 일본한테 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논문으로 계속 제가 발표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종종 논문을 본 친구들은 심지어는 고등학생, 중학생들도 연락 오기도 하고요. 대학생들도 연락 와서 이것을 유튜브로도 올려놓은 것도 있고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알기에는 제가 대중적인 작가도 아니고요. 그런 대중적인 활동을 하는 데는 저는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만 연구자는 연구로 말하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연구로서 말해 온 것 같습니다.

◇김용민: 알겠습니다. 만약에 정부가 일본에 이런 과거사에 대해서 제대로 따진다면 우리 안에 이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역사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상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차원에 배상과 사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게 되는데 교수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귀옥: 일본 사람들도 일본 지식인들 많은 사람들도 저의 이 글을 알고 있고요.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군 위안부를 간혹 우익들이기는 하지만 이걸 본격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래, 한국에도 한국군 위안부가 있잖니. 라고 이걸 말하면 어떤 논리적인 결과가 나오느냐면 그러니까 일본 정부가 일본 군대가 했던 일본군 위안부를 인정해야 된다는 논리적인 귀결이 생기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우리 정부가 우리의 육군이 만들었다고 주장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지금 그 사실을 계속 은폐하면서 포주들이 했다는 등 계속해서 군대가 국가가 직접 하지 않은 이런 식으로 얘기를 돌리고 있고 아직 그것에 대해서 진상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모순을 자가당착적으로 잘 알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일본한테도 저는 우리가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쁜 것들을 배워서 이런 한국군 위안부를 썼고 또한 미국 위안부도 했던 거잖아요. 그런 사실을 우리 스스로 은폐하고 나면 일본하고 싸울 때 계속해서 어느 지점에 가서는 우리 스스로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당당하게 우리의 역사를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우리 그러한 여성 피해자들한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사죄를 할 때 일본한테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김용민: 알겠습니다. 양종숙 님 참으로 비참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감추지 말고 반성하고 진실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무 중요하고 충격적인 내용인데 짧게 여쭤봐서 많이 아쉽습니다.

◆김귀옥: 책으로 봐주십시오.

◇김용민: 알겠습니다. 한성대학교 사회학과 김귀옥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귀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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