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장애 비하’…“고의성 없다는 게 더 문제”

입력 2020.01.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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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의지가 좀 약하다고 한다.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것에 대한 꿈이 있어서 그분들이 더 의지가 강하단 얘기를 심리학자한테 들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당 유투브 채널에 출연해서 한 말입니다. 민주당 1호 영입인사인 장애인권운동가 최혜영 교수를 칭찬하면서 한 얘기인데요. 최 교수는 교통사고로 척수 장애를 갖게 된 중도 장애인입니다.

이해찬 대표 "고의성 없었다. 심리학자의 말 인용한 것"

논란이 일자 이 대표는 당일 서면으로 "부적절한 말이었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했는데요.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또다시 사과를 하긴했는데 이번에도 "고의성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쪽을 이렇게 낮게 보고 한 말이 아니"라면서 "그런 분석이 있다는 말을 전해들어서 한 말인데 상처를 줬다고 하면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고의성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

그런데 장애인단체 등은 이해찬 대표의 발언이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을 대놓고 무시하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위한다라고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배우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장애인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장애는 '나쁜 것' 또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는 겁니다.

장애 비하 발언 비판하며, 또 장애 비하

이런 인식은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비판하기 위해 한국당이 내놓은 논평에도 그대로 깔려있었습니다. 한국당 박용찬 대변인은 논평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다. 삐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라는 문구를 넣었다가 논란이 되자 뒤늦게 삭제했습니다.

역시나 고의성은 없었다고 해명했죠.

반복되는 '아무 생각없이' 하는 비하 발언


정치인들이 고의성 없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벙어리', '정신병 환자', 심지어 욕설까지…. 장애인을 비하하는 뜻을 담은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썼습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한국당 황교안 대표, 홍준표 전 대표 등 대부분 당에서도 소위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많은 장애인들은 좌절합니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이 전해지자 장애인으로 17대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장향숙 전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비교의 대상도 비교의 자료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어렵든 힘들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누구나 그렇듯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장애를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수준이 그 사회의 인식 수준"

장향숙 전 의원은 "장애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 사회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있는 '비정상'의 상태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이라는 거죠.

그래서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장애 비하 발언은 더 뼈아픕니다. 우리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게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비하 발언, 책임은 누가?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비하 발언을 한 정치인에게 징계가 내려진 적도 없고, 장애인 단체가 수차례 진정을 냈지만, 인권위는 지난해 연말 국회에 대책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보냈을 뿐입니다. 국회에서는 이에 대해 전혀 논의가 안 되는 현실이고요.

장애인단체들은 또 이해찬 대표의 발언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진정을 냈습니다. 인권위가 진짜 뭘 바꿔줄 것으로 생각한다기 보다는 "이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입니다.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이런 비하 발언을 한 곳에서 당내에서 이것을 책임지려고 하는 자세조차도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또 잠잠해지면 끝나고 그러고 난 뒤에 반복되고 장애인 인권문제는 시혜와 동정의 문제로 치부되고, 선거 때가 되면 또 감성팔이에 나서고"이게 지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영입 1호 인사로 장애인을 선택했고, 아마도 각 당이 소수자를 위한다며 장애인 정책을 내놓을 겁니다. 그런데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바꾸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지금까지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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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복되는 ‘장애 비하’…“고의성 없다는 게 더 문제”
    • 입력 2020-01-17 18:17:22
    취재K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의지가 좀 약하다고 한다.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것에 대한 꿈이 있어서 그분들이 더 의지가 강하단 얘기를 심리학자한테 들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당 유투브 채널에 출연해서 한 말입니다. 민주당 1호 영입인사인 장애인권운동가 최혜영 교수를 칭찬하면서 한 얘기인데요. 최 교수는 교통사고로 척수 장애를 갖게 된 중도 장애인입니다.

이해찬 대표 "고의성 없었다. 심리학자의 말 인용한 것"

논란이 일자 이 대표는 당일 서면으로 "부적절한 말이었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했는데요.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또다시 사과를 하긴했는데 이번에도 "고의성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쪽을 이렇게 낮게 보고 한 말이 아니"라면서 "그런 분석이 있다는 말을 전해들어서 한 말인데 상처를 줬다고 하면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고의성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

그런데 장애인단체 등은 이해찬 대표의 발언이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을 대놓고 무시하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위한다라고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배우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장애인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장애는 '나쁜 것' 또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는 겁니다.

장애 비하 발언 비판하며, 또 장애 비하

이런 인식은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비판하기 위해 한국당이 내놓은 논평에도 그대로 깔려있었습니다. 한국당 박용찬 대변인은 논평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다. 삐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라는 문구를 넣었다가 논란이 되자 뒤늦게 삭제했습니다.

역시나 고의성은 없었다고 해명했죠.

반복되는 '아무 생각없이' 하는 비하 발언


정치인들이 고의성 없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벙어리', '정신병 환자', 심지어 욕설까지…. 장애인을 비하하는 뜻을 담은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썼습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한국당 황교안 대표, 홍준표 전 대표 등 대부분 당에서도 소위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많은 장애인들은 좌절합니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이 전해지자 장애인으로 17대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장향숙 전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비교의 대상도 비교의 자료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어렵든 힘들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누구나 그렇듯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장애를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수준이 그 사회의 인식 수준"

장향숙 전 의원은 "장애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 사회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있는 '비정상'의 상태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이라는 거죠.

그래서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장애 비하 발언은 더 뼈아픕니다. 우리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게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비하 발언, 책임은 누가?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비하 발언을 한 정치인에게 징계가 내려진 적도 없고, 장애인 단체가 수차례 진정을 냈지만, 인권위는 지난해 연말 국회에 대책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보냈을 뿐입니다. 국회에서는 이에 대해 전혀 논의가 안 되는 현실이고요.

장애인단체들은 또 이해찬 대표의 발언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진정을 냈습니다. 인권위가 진짜 뭘 바꿔줄 것으로 생각한다기 보다는 "이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입니다.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이런 비하 발언을 한 곳에서 당내에서 이것을 책임지려고 하는 자세조차도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또 잠잠해지면 끝나고 그러고 난 뒤에 반복되고 장애인 인권문제는 시혜와 동정의 문제로 치부되고, 선거 때가 되면 또 감성팔이에 나서고"이게 지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영입 1호 인사로 장애인을 선택했고, 아마도 각 당이 소수자를 위한다며 장애인 정책을 내놓을 겁니다. 그런데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바꾸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지금까지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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