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미쓰비시重과 첫 면담…양금덕 할머니의 이야기
입력 2020.01.17 (21:41)
수정 2020.01.1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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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2007년 7월 20일부터 매주 금요일 집회를 벌여온 일본인들입니다.
이름하여 금요행동, 양심있는 일본인들의 이 집회가 오늘(17일)로 500회를 맞았습니다.
오늘(17일)은 특히 징용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를 도쿄 황현택 특파원이 만났습니다.
[리포트]
["다녀오겠습니다!"]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안으로 들어갑니다.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15개월 만의 첫 면담입니다.
40분간의 비공개 만남, 평생 응어리를 품고 산 할머니의 요구는 소박했습니다.
판결을 이행하라, 그것뿐이었습니다.
[양금덕/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 "(미쓰비시에서) 열심히 일 한 죄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노임 하나도 못 받고, '잘 못 했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 당신들 도리이냐고. 내가 이 세상을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냐고 그랬어요."]
일제 강점기, 13살 소녀는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가다시피 했습니다.
중노동에 온몸이 성치 않았고, 잦은 폭력과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밥을) 땅에다 부으라고 해서 발로 다 짓이기고 가고, 밥이 눈에 선해서 못 나가겠어요. 거지꼴로 화장실 왔다 갔다 하다가 (일본) 여자가 가고 없으면 양동이에 버린 밥을 주워 먹고 오고..."]
하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는 없었습니다.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걱정 말고 집에 가 있으면 다 주소가 있으니까 보내준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78년이 되었서도 1원짜리 하나 못 받고 있어요."]
20여 년 법정 투쟁은 할머니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야말로 참 날개만 있으면 날아갈 것 같았었죠."]
그러나 미쓰비시는 여전히 묵묵부답, 변한 건 없었습니다.
["우리 마음만 건드려놓고 눈물만 나오죠. 지금. (이대로) 이 세상을 떠날 일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분통이 나서 죽겠어요."]
한 맺힌 삶의 보상은 진심 어린 사죄뿐이라는 할머니.
["(배상금만은) 안 받을 겁니다. 사죄가 문제이지 돈이 문제입니까? 나는 제일 먼저 사죄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양금덕이가 왔다, 아베는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도쿄에서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2007년 7월 20일부터 매주 금요일 집회를 벌여온 일본인들입니다.
이름하여 금요행동, 양심있는 일본인들의 이 집회가 오늘(17일)로 500회를 맞았습니다.
오늘(17일)은 특히 징용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를 도쿄 황현택 특파원이 만났습니다.
[리포트]
["다녀오겠습니다!"]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안으로 들어갑니다.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15개월 만의 첫 면담입니다.
40분간의 비공개 만남, 평생 응어리를 품고 산 할머니의 요구는 소박했습니다.
판결을 이행하라, 그것뿐이었습니다.
[양금덕/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 "(미쓰비시에서) 열심히 일 한 죄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노임 하나도 못 받고, '잘 못 했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 당신들 도리이냐고. 내가 이 세상을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냐고 그랬어요."]
일제 강점기, 13살 소녀는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가다시피 했습니다.
중노동에 온몸이 성치 않았고, 잦은 폭력과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밥을) 땅에다 부으라고 해서 발로 다 짓이기고 가고, 밥이 눈에 선해서 못 나가겠어요. 거지꼴로 화장실 왔다 갔다 하다가 (일본) 여자가 가고 없으면 양동이에 버린 밥을 주워 먹고 오고..."]
하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는 없었습니다.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걱정 말고 집에 가 있으면 다 주소가 있으니까 보내준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78년이 되었서도 1원짜리 하나 못 받고 있어요."]
20여 년 법정 투쟁은 할머니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야말로 참 날개만 있으면 날아갈 것 같았었죠."]
그러나 미쓰비시는 여전히 묵묵부답, 변한 건 없었습니다.
["우리 마음만 건드려놓고 눈물만 나오죠. 지금. (이대로) 이 세상을 떠날 일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분통이 나서 죽겠어요."]
한 맺힌 삶의 보상은 진심 어린 사죄뿐이라는 할머니.
["(배상금만은) 안 받을 겁니다. 사죄가 문제이지 돈이 문제입니까? 나는 제일 먼저 사죄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양금덕이가 왔다, 아베는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도쿄에서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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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범’ 미쓰비시重과 첫 면담…양금덕 할머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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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1-17 21:45:53
- 수정2020-01-17 22:09:28
[앵커]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2007년 7월 20일부터 매주 금요일 집회를 벌여온 일본인들입니다.
이름하여 금요행동, 양심있는 일본인들의 이 집회가 오늘(17일)로 500회를 맞았습니다.
오늘(17일)은 특히 징용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를 도쿄 황현택 특파원이 만났습니다.
[리포트]
["다녀오겠습니다!"]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안으로 들어갑니다.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15개월 만의 첫 면담입니다.
40분간의 비공개 만남, 평생 응어리를 품고 산 할머니의 요구는 소박했습니다.
판결을 이행하라, 그것뿐이었습니다.
[양금덕/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 "(미쓰비시에서) 열심히 일 한 죄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노임 하나도 못 받고, '잘 못 했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 당신들 도리이냐고. 내가 이 세상을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냐고 그랬어요."]
일제 강점기, 13살 소녀는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가다시피 했습니다.
중노동에 온몸이 성치 않았고, 잦은 폭력과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밥을) 땅에다 부으라고 해서 발로 다 짓이기고 가고, 밥이 눈에 선해서 못 나가겠어요. 거지꼴로 화장실 왔다 갔다 하다가 (일본) 여자가 가고 없으면 양동이에 버린 밥을 주워 먹고 오고..."]
하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는 없었습니다.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걱정 말고 집에 가 있으면 다 주소가 있으니까 보내준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78년이 되었서도 1원짜리 하나 못 받고 있어요."]
20여 년 법정 투쟁은 할머니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야말로 참 날개만 있으면 날아갈 것 같았었죠."]
그러나 미쓰비시는 여전히 묵묵부답, 변한 건 없었습니다.
["우리 마음만 건드려놓고 눈물만 나오죠. 지금. (이대로) 이 세상을 떠날 일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분통이 나서 죽겠어요."]
한 맺힌 삶의 보상은 진심 어린 사죄뿐이라는 할머니.
["(배상금만은) 안 받을 겁니다. 사죄가 문제이지 돈이 문제입니까? 나는 제일 먼저 사죄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양금덕이가 왔다, 아베는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도쿄에서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2007년 7월 20일부터 매주 금요일 집회를 벌여온 일본인들입니다.
이름하여 금요행동, 양심있는 일본인들의 이 집회가 오늘(17일)로 500회를 맞았습니다.
오늘(17일)은 특히 징용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를 도쿄 황현택 특파원이 만났습니다.
[리포트]
["다녀오겠습니다!"]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안으로 들어갑니다.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15개월 만의 첫 면담입니다.
40분간의 비공개 만남, 평생 응어리를 품고 산 할머니의 요구는 소박했습니다.
판결을 이행하라, 그것뿐이었습니다.
[양금덕/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 "(미쓰비시에서) 열심히 일 한 죄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노임 하나도 못 받고, '잘 못 했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 당신들 도리이냐고. 내가 이 세상을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냐고 그랬어요."]
일제 강점기, 13살 소녀는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가다시피 했습니다.
중노동에 온몸이 성치 않았고, 잦은 폭력과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밥을) 땅에다 부으라고 해서 발로 다 짓이기고 가고, 밥이 눈에 선해서 못 나가겠어요. 거지꼴로 화장실 왔다 갔다 하다가 (일본) 여자가 가고 없으면 양동이에 버린 밥을 주워 먹고 오고..."]
하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는 없었습니다.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걱정 말고 집에 가 있으면 다 주소가 있으니까 보내준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78년이 되었서도 1원짜리 하나 못 받고 있어요."]
20여 년 법정 투쟁은 할머니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야말로 참 날개만 있으면 날아갈 것 같았었죠."]
그러나 미쓰비시는 여전히 묵묵부답, 변한 건 없었습니다.
["우리 마음만 건드려놓고 눈물만 나오죠. 지금. (이대로) 이 세상을 떠날 일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분통이 나서 죽겠어요."]
한 맺힌 삶의 보상은 진심 어린 사죄뿐이라는 할머니.
["(배상금만은) 안 받을 겁니다. 사죄가 문제이지 돈이 문제입니까? 나는 제일 먼저 사죄를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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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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