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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검(복수)!” 다시 불붙는 미국·이란의 40년 전쟁
입력 2020.01.18 (09:10) 취재K
“엔테검(복수)!” 다시 불붙는 미국·이란의 40년 전쟁
새해 첫 주, 이라크에 울려 퍼진 폭발음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폭격에 희생된 사람의 이름은 가셈 솔레이마니. 22년간 이란혁명수비대 핵심 조직을 이끈 군부 최고위 실세입니다. 미국은 '침묵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공격용 드론 'MQ-9'을 띄워 그를 제거했습니다.

교전 상황도 아닌데, 테러조직이 아닌 정상국가의 군 관계자를 노린 이례적인 공격. 이란은 분노했습니다. 장례식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소리 높여 '엔테검(복수)'을 외쳤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악연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성향 왕조를 몰아낸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40년에 걸친 긴 전쟁의 역사를 <시사기획 창>이 재조명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이란.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아랍계의 침략에 이어 영국의 지배까지 받으며 자부심은 퇴색해 갔습니다. 이란을 해방시킨 건 코사크(기마병) 부대장이었던 레자 칸. 그는 1926년 팔레비 왕조를 세워 미국의 지원 아래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습니다. 당시 이란은 대표적 친미국가였고, 미국은 이란을 통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잇따른 경제위기와 인권탄압, 왕정의 부패로 197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납니다. 왕은 쫓겨나고, 추방됐던 이슬람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귀국해 이슬람 혁명을 완성합니다.

그해 11월 9일,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영화 '아르고'로 재조명된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이란 혁명군은 미국으로 도망간 왕을 내놓으라며 미국 외교관과 민간인 52명을 444일간 억류했습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 외교사에 정말 치욕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소련의 남진을 막아주던 최대 우방국 이란이 순식간에 반미국가로 돌아서자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타도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듬해인 1980년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이라크를 지원합니다.

하지만 패색이 짙었던 8년간의 전쟁에서 이란은 이라크를 물리쳤습니다. 이때 솔레이마니가 속한 이란혁명수비대가 승리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전쟁 막바지 가장 결정적인 전투인 호람샤르 전투에서 솔레이마니가 혁혁한 공을 세웠고 전쟁 영웅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으로선 또 한번 자존심을 구긴 셈입니다.

1990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친미에서 반미로 돌아선 후세인을 상대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벌였고, 결국 후세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수니파인 후세인이 제거되면서 이라크에서 시아파의 영향력이 되살아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2010년 '아랍의 봄'이 중동을 휩쓸면서 시리아를 통치하던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은 힘을 잃었습니다. 이때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가 시리아와 이라크로 세력을 확장합니다.

IS가 미국과 서방국가를 상대로 과격한 테러를 이어가자, 미국은 IS를 격파하기 위해 이란과 암묵적으로 공조합니다. 솔레이마니가 서방국가들에게 주목받은 것도 바로 IS 퇴치 작전을 지휘하면서부터입니다.

수년에 걸친 IS 퇴치작전으로 결국 아사드 정권이 되살아났고, 시리아 내부에서 이란과 시아파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레바논의 무장조직 '헤즈볼라'까지 연결되는 '시아파 벨트'가 완성된 겁니다. 이란은 40년간 격변을 거듭한 끝에 중동의 주요 무대인 '초승달 지역'을 모두 시아파의 나라로 바꿨습니다. 반면 미국 입장에선 손을 대면 댈수록 중동에서 영향력을 잃는 역설적인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트럼프와 솔레이마니트럼프와 솔레이마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동에서 시아파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는 배경에 가셈 솔레이마니가 있다고 봤습니다. 이란혁명수비대 산하 특수부대인 '알 쿠드스(Al-Quds)를 22년간 이끌면서 시아파 무장조직을 지원하고,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를 주도해왔다는 겁니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은 알 쿠드스에 대해 "드론과 미사일을 이용한 보복 공격, 사이버 공격 등에 특화된 부대로 이란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해 경제 제재를 강조하자, 솔레이마니도 함께 패러디 사진을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강경 보수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상징적인 전리품으로 그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란은 '피의 복수'를 다짐했지만, 우크라이나 여객기 오인 격추로 동력은 다소 떨어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솔레이마니를 추종하는 시아파 무장조직이 국지적 테러에 나설 가능성이 더욱 커졌고, 미국과 우방국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저강도 소규모의 동시다발적 국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습니다. 중동 지역의 혼란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불붙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 <시사기획창> '엔테검, 미-이란 40년 전쟁'은 18일 오후 8시 KBS 1TV에서 방송됩니다.
  • “엔테검(복수)!” 다시 불붙는 미국·이란의 40년 전쟁
    • 입력 2020.01.18 (09:10)
    취재K
“엔테검(복수)!” 다시 불붙는 미국·이란의 40년 전쟁
새해 첫 주, 이라크에 울려 퍼진 폭발음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폭격에 희생된 사람의 이름은 가셈 솔레이마니. 22년간 이란혁명수비대 핵심 조직을 이끈 군부 최고위 실세입니다. 미국은 '침묵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공격용 드론 'MQ-9'을 띄워 그를 제거했습니다.

교전 상황도 아닌데, 테러조직이 아닌 정상국가의 군 관계자를 노린 이례적인 공격. 이란은 분노했습니다. 장례식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소리 높여 '엔테검(복수)'을 외쳤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악연은 1979년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성향 왕조를 몰아낸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40년에 걸친 긴 전쟁의 역사를 <시사기획 창>이 재조명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이란.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아랍계의 침략에 이어 영국의 지배까지 받으며 자부심은 퇴색해 갔습니다. 이란을 해방시킨 건 코사크(기마병) 부대장이었던 레자 칸. 그는 1926년 팔레비 왕조를 세워 미국의 지원 아래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습니다. 당시 이란은 대표적 친미국가였고, 미국은 이란을 통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잇따른 경제위기와 인권탄압, 왕정의 부패로 197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납니다. 왕은 쫓겨나고, 추방됐던 이슬람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귀국해 이슬람 혁명을 완성합니다.

그해 11월 9일,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영화 '아르고'로 재조명된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이란 혁명군은 미국으로 도망간 왕을 내놓으라며 미국 외교관과 민간인 52명을 444일간 억류했습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 외교사에 정말 치욕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소련의 남진을 막아주던 최대 우방국 이란이 순식간에 반미국가로 돌아서자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타도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듬해인 1980년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이라크를 지원합니다.

하지만 패색이 짙었던 8년간의 전쟁에서 이란은 이라크를 물리쳤습니다. 이때 솔레이마니가 속한 이란혁명수비대가 승리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전쟁 막바지 가장 결정적인 전투인 호람샤르 전투에서 솔레이마니가 혁혁한 공을 세웠고 전쟁 영웅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으로선 또 한번 자존심을 구긴 셈입니다.

1990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친미에서 반미로 돌아선 후세인을 상대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벌였고, 결국 후세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수니파인 후세인이 제거되면서 이라크에서 시아파의 영향력이 되살아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2010년 '아랍의 봄'이 중동을 휩쓸면서 시리아를 통치하던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은 힘을 잃었습니다. 이때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가 시리아와 이라크로 세력을 확장합니다.

IS가 미국과 서방국가를 상대로 과격한 테러를 이어가자, 미국은 IS를 격파하기 위해 이란과 암묵적으로 공조합니다. 솔레이마니가 서방국가들에게 주목받은 것도 바로 IS 퇴치 작전을 지휘하면서부터입니다.

수년에 걸친 IS 퇴치작전으로 결국 아사드 정권이 되살아났고, 시리아 내부에서 이란과 시아파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레바논의 무장조직 '헤즈볼라'까지 연결되는 '시아파 벨트'가 완성된 겁니다. 이란은 40년간 격변을 거듭한 끝에 중동의 주요 무대인 '초승달 지역'을 모두 시아파의 나라로 바꿨습니다. 반면 미국 입장에선 손을 대면 댈수록 중동에서 영향력을 잃는 역설적인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트럼프와 솔레이마니트럼프와 솔레이마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동에서 시아파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는 배경에 가셈 솔레이마니가 있다고 봤습니다. 이란혁명수비대 산하 특수부대인 '알 쿠드스(Al-Quds)를 22년간 이끌면서 시아파 무장조직을 지원하고,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를 주도해왔다는 겁니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은 알 쿠드스에 대해 "드론과 미사일을 이용한 보복 공격, 사이버 공격 등에 특화된 부대로 이란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해 경제 제재를 강조하자, 솔레이마니도 함께 패러디 사진을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강경 보수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상징적인 전리품으로 그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란은 '피의 복수'를 다짐했지만, 우크라이나 여객기 오인 격추로 동력은 다소 떨어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솔레이마니를 추종하는 시아파 무장조직이 국지적 테러에 나설 가능성이 더욱 커졌고, 미국과 우방국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저강도 소규모의 동시다발적 국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습니다. 중동 지역의 혼란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불붙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 <시사기획창> '엔테검, 미-이란 40년 전쟁'은 18일 오후 8시 KBS 1TV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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