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끈질긴K] “극한 임무 수행하는데…” 특전사 방탄안경 충격실험서 ‘박살’

입력 2020.01.21 (21:31) 수정 2020.01.2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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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안 되면 되게 하라'

우리 군 최정예 부대, 특전사의 대표적인 구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는 목표로 임무에 임하는 특전사에서도 '이것만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KBS 취재진에 들려왔습니다.

장병들에게 보급된 이 '방탄안경' 때문인데요.

최근 내구성 실험을 해보니 렌즈가 깨져버렸습니다.

장병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인데, 끈질긴K가 파헤쳤습니다.

[리포트]

지난 2017년 12월 창설된 특전사 특수임무여단.

한반도 유사시 적진에 잠입해 적 지도부와 지휘 시설을 마비시키는 고강도 특수임무를 수행합니다.

훈련도 극한 상황에서 진행됩니다.

이 때문에 훈련이나 실전 상황에서 총탄의 탄피나 파편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 안경을 착용합니다.

그런데 KBS에 이 방탄안경을 가지고 실험한 제보영상이 들어왔습니다.

[방탄안경 실험영상 제보자/음성대역 : "우리나라에는 실험설비가 마땅치 않아요. 그러니까 렌즈 방탄실험을 하는 설비요. 외국에서 실험한 영상이 있는데, 한 번보실래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습니다."]

사람 머리 모형에 씌운 안경.

안경 생산업체가 특전사 납품 물량과 같은 것이라며 군에 제공한 방탄안경을 실험하는 장면입니다.

전문 실험 장비에 규격화된 발사체를 끼워넣고 버튼을 누르면, 안경을 향해 날아갑니다.

군의 요구 조건에 따르면, 안경은 깨지면 안되는데도 뚫리고 깨진 흔적이 역력합니다.

색깔만 다른 같은 제품의 경우, 투명렌즈보다 더 심하게 깨진데다 안경테까지 날아가 버립니다.

동일하게 실험한 미군용 제품의 경우, 렌즈 겉에 흠집이 갈 뿐, 뚫리거나 깨지지 않았습니다.

군이 요구한 구매 요구서에는 'MIL-PRF라는 미국 군사규격의 충격 수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일정한 규격의 발사체를 640ft/s, 시속으로 따지면 약 시속 702km 이상의 속도로 쐈을 때 렌즈가 견뎌야 합니다.

하지만 규격으로 정한 충격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600ft/s 시속 660km 미만의 속도로 실험이 진행됐는데도 렌즈가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제품은 군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했다고 시험성적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대해 생산업체 측은 시험성적서를 낼 당시엔 내구성 기준을 충족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내구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KBS에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된 안경은 군에 보급된 지 1년이 갓 지난 제품입니다.

[방탄안경 실험영상 제보자/음성대역 : "이걸 쓰고 있는 우리 대원들...'본인이 이렇게 하찮은 사람인가' 자괴감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 방탄 안경의 납품 과정을 육군에 공식 질의했습니다.

육군은 시험성적서를 확인했고, 계약과 납품 절차상에도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군 관계자 누구도 제품 성능을 실제 테스트하거나 성능 실험에 참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양욱/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들도 일종의 부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을 제외하고 입찰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신뢰를 저버리게 되는 경우에 이를 제어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방탄 안경이 특전사 장병들에게 보급될 수 있었던 걸까요?

취재해 보니,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의 안전보다는 사업자들 배만 불리는 장비 입찰 방식이 문제였습니다.

계속해서 송금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낙찰 받으면 무조건 이득” 깜깜이 품질 관리

국방부가 방탄안경 입찰 공고를 낸 건 2018년 9월.

최종 낙찰된 회사에 찾아가 봤습니다.

공장 창고에 철조망과 울타리들이 쌓여 있습니다.

[낙찰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주로 뭐 만드는 업체에요?) 울타리. (안경도 만드시나요?) 아니, 안경은 안 만들어요."]

울타리를 만드는 업체가 국방부 방탄안경 낙찰을 받은 뒤 중개업자를 통해 다시 안경 제조업체를 물색한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국군 재정단은 업체가 제시한 가격과 수출우수기업 가점 등을 따져 납품 업체를 결정했다고 답했습니다.

낙찰 추정가가 1억에서 2억 미만이면 중소기업진흥법 등에 따라 제조는 물론 유통기업까지 모든 중소기업이 입찰 참여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방탄안경 입찰엔 390여 개 중소기업이 참여했습니다.

청소기와 가방, 조명기구를 만드는 등 안경 생산과는 관계없는 기업이 90% 이상이었습니다.

무엇이 됐든 우선 낙찰부터 받고 보는게 업계 관행이라는 겁니다.

[낙찰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단가니 뭐니 안보고, 낙찰을 받으면 금액이 좋게 나오니까 일단 낙찰받고 나서 생각하는 거죠. 보통 그렇게 하죠."]

방탄안경 1200여 개를 구매하는 데 쓰인 군 예산은 1억 1600만 원입니다.

이중 과연 얼마 정도가 안경 생산업체에 돌아갔을까?

[안경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8천 몇백만 원. 중간 중간(기업들)이 몇 %씩 먹고 우리한테로 넘어오는 거죠. 조달청 사이트에서 매일매일 그걸 확인해 봐야되는데 그래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 직원도 없고..."]

국방전자조달시스템에 올라오는 이런 경쟁입찰 건은 한해 수천 건이 넘습니다.

[안경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도 옛날에 냉장고나 세탁기를 몇년 전에 해봤는데 백번해도 한번도 안돼요. 로또뽑기처럼 돼 있는 상태라서..."]

이에 대해 군은 "현행 구매 입찰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관련 기관과 협의해 좋은 제품이 장병들에게 보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법대로, 절차대로 진행됐다는 특전사 방탄안경 납품.

거기엔 우리 군의 경쟁력, 장병들 안전과 직결되는 품질 관리는 정작 없었습니다.

끈질긴K 송금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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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끈질긴K] “극한 임무 수행하는데…” 특전사 방탄안경 충격실험서 ‘박살’
    • 입력 2020-01-21 21:37:53
    • 수정2020-01-21 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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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안 되면 되게 하라'

우리 군 최정예 부대, 특전사의 대표적인 구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는 목표로 임무에 임하는 특전사에서도 '이것만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KBS 취재진에 들려왔습니다.

장병들에게 보급된 이 '방탄안경' 때문인데요.

최근 내구성 실험을 해보니 렌즈가 깨져버렸습니다.

장병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인데, 끈질긴K가 파헤쳤습니다.

[리포트]

지난 2017년 12월 창설된 특전사 특수임무여단.

한반도 유사시 적진에 잠입해 적 지도부와 지휘 시설을 마비시키는 고강도 특수임무를 수행합니다.

훈련도 극한 상황에서 진행됩니다.

이 때문에 훈련이나 실전 상황에서 총탄의 탄피나 파편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 안경을 착용합니다.

그런데 KBS에 이 방탄안경을 가지고 실험한 제보영상이 들어왔습니다.

[방탄안경 실험영상 제보자/음성대역 : "우리나라에는 실험설비가 마땅치 않아요. 그러니까 렌즈 방탄실험을 하는 설비요. 외국에서 실험한 영상이 있는데, 한 번보실래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습니다."]

사람 머리 모형에 씌운 안경.

안경 생산업체가 특전사 납품 물량과 같은 것이라며 군에 제공한 방탄안경을 실험하는 장면입니다.

전문 실험 장비에 규격화된 발사체를 끼워넣고 버튼을 누르면, 안경을 향해 날아갑니다.

군의 요구 조건에 따르면, 안경은 깨지면 안되는데도 뚫리고 깨진 흔적이 역력합니다.

색깔만 다른 같은 제품의 경우, 투명렌즈보다 더 심하게 깨진데다 안경테까지 날아가 버립니다.

동일하게 실험한 미군용 제품의 경우, 렌즈 겉에 흠집이 갈 뿐, 뚫리거나 깨지지 않았습니다.

군이 요구한 구매 요구서에는 'MIL-PRF라는 미국 군사규격의 충격 수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일정한 규격의 발사체를 640ft/s, 시속으로 따지면 약 시속 702km 이상의 속도로 쐈을 때 렌즈가 견뎌야 합니다.

하지만 규격으로 정한 충격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600ft/s 시속 660km 미만의 속도로 실험이 진행됐는데도 렌즈가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제품은 군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했다고 시험성적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대해 생산업체 측은 시험성적서를 낼 당시엔 내구성 기준을 충족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내구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KBS에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된 안경은 군에 보급된 지 1년이 갓 지난 제품입니다.

[방탄안경 실험영상 제보자/음성대역 : "이걸 쓰고 있는 우리 대원들...'본인이 이렇게 하찮은 사람인가' 자괴감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 방탄 안경의 납품 과정을 육군에 공식 질의했습니다.

육군은 시험성적서를 확인했고, 계약과 납품 절차상에도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군 관계자 누구도 제품 성능을 실제 테스트하거나 성능 실험에 참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양욱/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들도 일종의 부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을 제외하고 입찰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신뢰를 저버리게 되는 경우에 이를 제어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방탄 안경이 특전사 장병들에게 보급될 수 있었던 걸까요?

취재해 보니,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의 안전보다는 사업자들 배만 불리는 장비 입찰 방식이 문제였습니다.

계속해서 송금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낙찰 받으면 무조건 이득” 깜깜이 품질 관리

국방부가 방탄안경 입찰 공고를 낸 건 2018년 9월.

최종 낙찰된 회사에 찾아가 봤습니다.

공장 창고에 철조망과 울타리들이 쌓여 있습니다.

[낙찰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주로 뭐 만드는 업체에요?) 울타리. (안경도 만드시나요?) 아니, 안경은 안 만들어요."]

울타리를 만드는 업체가 국방부 방탄안경 낙찰을 받은 뒤 중개업자를 통해 다시 안경 제조업체를 물색한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국군 재정단은 업체가 제시한 가격과 수출우수기업 가점 등을 따져 납품 업체를 결정했다고 답했습니다.

낙찰 추정가가 1억에서 2억 미만이면 중소기업진흥법 등에 따라 제조는 물론 유통기업까지 모든 중소기업이 입찰 참여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방탄안경 입찰엔 390여 개 중소기업이 참여했습니다.

청소기와 가방, 조명기구를 만드는 등 안경 생산과는 관계없는 기업이 90% 이상이었습니다.

무엇이 됐든 우선 낙찰부터 받고 보는게 업계 관행이라는 겁니다.

[낙찰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단가니 뭐니 안보고, 낙찰을 받으면 금액이 좋게 나오니까 일단 낙찰받고 나서 생각하는 거죠. 보통 그렇게 하죠."]

방탄안경 1200여 개를 구매하는 데 쓰인 군 예산은 1억 1600만 원입니다.

이중 과연 얼마 정도가 안경 생산업체에 돌아갔을까?

[안경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8천 몇백만 원. 중간 중간(기업들)이 몇 %씩 먹고 우리한테로 넘어오는 거죠. 조달청 사이트에서 매일매일 그걸 확인해 봐야되는데 그래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 직원도 없고..."]

국방전자조달시스템에 올라오는 이런 경쟁입찰 건은 한해 수천 건이 넘습니다.

[안경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도 옛날에 냉장고나 세탁기를 몇년 전에 해봤는데 백번해도 한번도 안돼요. 로또뽑기처럼 돼 있는 상태라서..."]

이에 대해 군은 "현행 구매 입찰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관련 기관과 협의해 좋은 제품이 장병들에게 보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법대로, 절차대로 진행됐다는 특전사 방탄안경 납품.

거기엔 우리 군의 경쟁력, 장병들 안전과 직결되는 품질 관리는 정작 없었습니다.

끈질긴K 송금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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