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IBK 은행장 설 전에 출근할 수 있을까?

입력 2020.01.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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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채용이나 승진 따위의 인사에서, 배후의 높은 사람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러분은 낙하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전 정의대로 높은 분의 지원이나 힘을 받아 좋은 자리 차지하는 거로 생각하십니까? 그 '낙하산'이 만약 능력이나 경험,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면 진짜 낙하산으로 봐야 할까요? 아닐까요?

'출근 실패 역대 최장기록'...불명예 쓴 기업은행장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이 낙하산 논란으로 20일째 출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책은행 수장이 있습니다. 바로 직전에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입니다.

2013년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갖고 있었던 금융권의 역대 최장 출근 저지 기록(14일)까지 경신했습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혔죠. "기업은행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거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윤 행장이 자격이나 경력 면에서 미달하는 게 없다면서 "기업은행은 정부가 투자한 국책은행이고 정책금융기관으로, 인사권이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전, 현직 경제학과 교수 3명에게 물어봤는데 윤 행장의 자격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습니다.

윤 행장이 은행 근무 경험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기재부 국장과 OECD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등 이력을 볼 때, 기업은행장으로서 능력이나 자질이나 특별히 떨어진다고 보긴 힘들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다만 기업은행이 기획재정부가 지분 53%를 보유한 국책은행이지만, 나머지 46% 지분은 일반 주주들이 가진 상장기업이란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조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입니다. "자신들은 내부인사를 고집하지 않았으며, 낙하산 반대가 어찌 내부 행장 요구냐"면서 반문했습니다.

또 자신들은 공정하고 투명한 은행장 선임을 원할 뿐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과거에 낙하산을 근절하겠단 약속을 어긴 만큼, 사과와 재발 방지가 없다면 대화에 나설 뜻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노조가 주장하는 '투명한 임명'과 '약속 준수', 근거를 따져봤습니다.

① 투명한 임명

기업은행장 임명 절차는 중소기업법에 딱 한 문장이 나옵니다. 26조 1항을 보면 "은행장은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任免)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사실 기업은행뿐만 아니라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우리나라 3대 국책은행은 모두 금융위원장 또는 기재부 장관이 제청(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습니다.

문제는 금융위와 기재부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누굴 후보자로 추천했는지는 정부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한 기업은행 관계자도 "이번 은행장 인사 과정에서 하마평이 곳곳에서 나왔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누가 후보로 올라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강화된 금융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인사추천위원회 등을 열고 CEO를 임명하는 시중은행보다 국책 은행의 인사 투명성이 더 취약한 셈입니다.

김상봉/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은행이긴 하지만 공모방식이나,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한 방식, 여러 다른 합의 기구에 의한 방식을 통해서 (금융위원장이) 행장을 추천하거나 선임하거나 하는 방식들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담당인 금융위 인사행정국장의 입장을 들으려고 3일 동안 10번 넘게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카톡과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금융위 대변인은 "윤종원 행장의 경우 금융에 대한 이해가 넓고 정책적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 점이 높게 평가돼 제청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답을 대신 했습니다.

② 약속 준수

노조가 말하는 약속은 7년 전인 2013년 12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은행장 후보로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을 임명하려 하자 민주당 정무위 소속 의원 10명은 성명을 냈습니다.

중소기업은행장, 모피아 낙하산 인사 절대 안 돼 - 관치는 독극물, 관치금융의 폐습 끊어야!

(…)과거 산업화 시대의 인사와 관행, 관치금융의 폐습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개발독재시대의 관치금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경우 또다시 금융위기가 도래하고 국민들을 불행하게 할 것이다. 정부는 좋은 관치도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과 같은 것이다. 좋은 관치가 있다는 말은 좋은 독극물, 좋은 발암물질이 있다는 것처럼 어불성설이다.

(…)낙하산을 계속한다면, 금융산업의 발전은 요원해질 것이다. 금융감독기능이 무력화되고, 자율성은 바닥에 떨어지고, 창의성은 없어질 것이다.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내부인사 출신을 내치고, 모피아를 낙하산으로 보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적재적소에 최고의 인재를 널리 골라 써야 한다. 중소기업은행장의 모피아 낙하산 인사 계획을 하루빨리 단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후 2016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기업은행장에 임명하려 했을 때도 민주당은 낙하산 방지법을 발의하며 저지했습니다.

정책협약서정책협약서

201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는 말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약속했고 문서도 남겼습니다. 당시 민주당 선대위는 금융노조와 정책협약을 맺었습니다. 협약서 1항 2절에는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임명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노조는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약속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협약서에 서명한 당시 민주당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윤호중 공동정책본부장과 현재 민주당의 견해를 들으려 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낙하산' 공직자 전체가 국민 비판받아...투명성·정당성 확보해야"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 탄생한 금융위원회 산하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는 2017년 12월 금융행정혁신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위원회는 여기서 "일부 금융 공공기관에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물이 선임될 경우 공직자 전체가 국민의 비판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공공기관의 기관장 등의 선임과 관련하여 선임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절차 등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하며", 특히 "공공기관 운영법에 적용을 받지 않고 개별법에 따라 선임하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한국거래소 등은 합리적 개선 방안을 강구"하라는 권고까지 내렸습니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별로 없었습니다. 언제쯤이면 윤 행장은 기업은행 본점 10층에는 있는 행장실에 올라갈 수 있을까요? 설 전에는 정상 출근이 가능할까요? 또 언제쯤이면 매번 반복되는 낙하산 논란이 사라지게 될까요? 정말 답은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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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종원 IBK 은행장 설 전에 출근할 수 있을까?
    • 입력 2020-01-22 11:09:30
    취재K
낙하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채용이나 승진 따위의 인사에서, 배후의 높은 사람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러분은 낙하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전 정의대로 높은 분의 지원이나 힘을 받아 좋은 자리 차지하는 거로 생각하십니까? 그 '낙하산'이 만약 능력이나 경험,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면 진짜 낙하산으로 봐야 할까요? 아닐까요?

'출근 실패 역대 최장기록'...불명예 쓴 기업은행장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이 낙하산 논란으로 20일째 출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책은행 수장이 있습니다. 바로 직전에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입니다.

2013년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갖고 있었던 금융권의 역대 최장 출근 저지 기록(14일)까지 경신했습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혔죠. "기업은행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거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윤 행장이 자격이나 경력 면에서 미달하는 게 없다면서 "기업은행은 정부가 투자한 국책은행이고 정책금융기관으로, 인사권이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전, 현직 경제학과 교수 3명에게 물어봤는데 윤 행장의 자격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습니다.

윤 행장이 은행 근무 경험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기재부 국장과 OECD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등 이력을 볼 때, 기업은행장으로서 능력이나 자질이나 특별히 떨어진다고 보긴 힘들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다만 기업은행이 기획재정부가 지분 53%를 보유한 국책은행이지만, 나머지 46% 지분은 일반 주주들이 가진 상장기업이란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조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입니다. "자신들은 내부인사를 고집하지 않았으며, 낙하산 반대가 어찌 내부 행장 요구냐"면서 반문했습니다.

또 자신들은 공정하고 투명한 은행장 선임을 원할 뿐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과거에 낙하산을 근절하겠단 약속을 어긴 만큼, 사과와 재발 방지가 없다면 대화에 나설 뜻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노조가 주장하는 '투명한 임명'과 '약속 준수', 근거를 따져봤습니다.

① 투명한 임명

기업은행장 임명 절차는 중소기업법에 딱 한 문장이 나옵니다. 26조 1항을 보면 "은행장은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任免)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사실 기업은행뿐만 아니라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우리나라 3대 국책은행은 모두 금융위원장 또는 기재부 장관이 제청(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습니다.

문제는 금융위와 기재부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누굴 후보자로 추천했는지는 정부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한 기업은행 관계자도 "이번 은행장 인사 과정에서 하마평이 곳곳에서 나왔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누가 후보로 올라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강화된 금융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인사추천위원회 등을 열고 CEO를 임명하는 시중은행보다 국책 은행의 인사 투명성이 더 취약한 셈입니다.

김상봉/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은행이긴 하지만 공모방식이나,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한 방식, 여러 다른 합의 기구에 의한 방식을 통해서 (금융위원장이) 행장을 추천하거나 선임하거나 하는 방식들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담당인 금융위 인사행정국장의 입장을 들으려고 3일 동안 10번 넘게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카톡과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금융위 대변인은 "윤종원 행장의 경우 금융에 대한 이해가 넓고 정책적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 점이 높게 평가돼 제청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답을 대신 했습니다.

② 약속 준수

노조가 말하는 약속은 7년 전인 2013년 12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은행장 후보로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을 임명하려 하자 민주당 정무위 소속 의원 10명은 성명을 냈습니다.

중소기업은행장, 모피아 낙하산 인사 절대 안 돼 - 관치는 독극물, 관치금융의 폐습 끊어야!

(…)과거 산업화 시대의 인사와 관행, 관치금융의 폐습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개발독재시대의 관치금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경우 또다시 금융위기가 도래하고 국민들을 불행하게 할 것이다. 정부는 좋은 관치도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과 같은 것이다. 좋은 관치가 있다는 말은 좋은 독극물, 좋은 발암물질이 있다는 것처럼 어불성설이다.

(…)낙하산을 계속한다면, 금융산업의 발전은 요원해질 것이다. 금융감독기능이 무력화되고, 자율성은 바닥에 떨어지고, 창의성은 없어질 것이다.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내부인사 출신을 내치고, 모피아를 낙하산으로 보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적재적소에 최고의 인재를 널리 골라 써야 한다. 중소기업은행장의 모피아 낙하산 인사 계획을 하루빨리 단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후 2016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기업은행장에 임명하려 했을 때도 민주당은 낙하산 방지법을 발의하며 저지했습니다.

정책협약서
201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는 말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약속했고 문서도 남겼습니다. 당시 민주당 선대위는 금융노조와 정책협약을 맺었습니다. 협약서 1항 2절에는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임명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노조는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약속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협약서에 서명한 당시 민주당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윤호중 공동정책본부장과 현재 민주당의 견해를 들으려 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낙하산' 공직자 전체가 국민 비판받아...투명성·정당성 확보해야"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 탄생한 금융위원회 산하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는 2017년 12월 금융행정혁신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위원회는 여기서 "일부 금융 공공기관에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물이 선임될 경우 공직자 전체가 국민의 비판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공공기관의 기관장 등의 선임과 관련하여 선임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절차 등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하며", 특히 "공공기관 운영법에 적용을 받지 않고 개별법에 따라 선임하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한국거래소 등은 합리적 개선 방안을 강구"하라는 권고까지 내렸습니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별로 없었습니다. 언제쯤이면 윤 행장은 기업은행 본점 10층에는 있는 행장실에 올라갈 수 있을까요? 설 전에는 정상 출근이 가능할까요? 또 언제쯤이면 매번 반복되는 낙하산 논란이 사라지게 될까요? 정말 답은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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